[세월호 100일] 1. 물타기에 주력한 박근혜 정권
김성훈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4/08/06 [23: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이 침몰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국민들의 외침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10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 등 어느 것 하나 명백하게 규명된 것이 없다. “안전과 관련한 규정을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관피아 등 사회악을 일소하고,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사회를 일신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요란한 빈 수레’임이 드러났다.

이는 지난 100일동안 박근혜 정권이 한 일을 돌이켜 볼 때 당연한 결과다. 박근혜 정권은 참사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을 비호하기 위해 사고의 책임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에게만 뒤집어씌우고, 유병언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구원파’를 비정상 집단으로 ‘악마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을 뿐, 그 어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참사 책임의 ‘정점’은 박근혜 대통령


<그림 1>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발언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을 비난하는 한겨레 1면 기사

청와대 비서진과 주요 관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의 책임을 지지않도록 하기위해 애써왔다. 일례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청와대를 겨냥하자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며 대통령을 감싸다 국민적 비난을 받았으며, 정홍원 총리 역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는 현행 법률상 중대본이다”라며 ‘세월호 임시국회’ 대정부 긴급현안질의 내내 거짓 증언까지 해가며 대통령을 비호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책임의 정점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조직체계에 그대로 드러나있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 이명박 정부 당시 운영되었던 수석비서관급의 국가위기관리실을 폐지하고 장관급으로 격상된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신설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정부의 외교안보 및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로서 명백한 법적 근거와 힘을 가지게 되었다. 2013년 12월 24일에 일부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며,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가안보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여 그 책임의 정점이 대통령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위기대응 매뉴얼을 관리하고 있으며, 매뉴얼에는 각 부처의 위기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중앙일보 4월 21일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에는 국가안보 관련 매뉴얼 14개, 재난에 관한 매뉴얼 15개 총 29개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정부 조직은 사실 일반 국민들의 눈에 볼 때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대통령의 명에 따라 청와대 보좌관과 그 조직이 중요한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4월 21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점도 본인이 참사에 대한 총체적인 최고책임을 가진 자리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대응과 관련해 최근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있었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사고 당일 청와대가 ‣ 오전 9시 19분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 이 시각으로부터 같은 날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의 7~8시간동안 박 대통령은 모처에서 서면이나 유선으로만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른바 ‘박 대통령의 7시간 미스테리’다.

청와대의 주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의 상황파악 없이 언론 보도를 통해 사고를 인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김한식 청해진해운 사장 등이 사고 직후인 4월 16일 오전 9시10분쯤 국정원에 문자메시지로 사고 사실을 보고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직체계상 국가안보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국정원이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7~8시간동안 박 대통령이 모처에서 서면이나 유선으로 보고를 받았는지도 의문이다. 오후 5시 15분, 세월호에 300명 넘게 갇혀 있는 시각에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첫 질문이 황당하게도 “구명조끼 입고 있다는데, 찾기 힘드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권 실세인 조원진 의원은 이러한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요구한 야권에 대해 “정 실장 증인 요청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얘기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자리인지도 의문이거니와,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은 분명히 평일이고 업무시간이었다. 대통령이 지나간 동선은 보안상 비밀이 될 수도 있지만, 공적 행적이 비밀이 될 순 없는 것이다.

청와대 보좌진을 비롯한 정부 여당 고위 관계자들의 대통령 비호행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이준석, 유병언을 내세운 박근혜

박근혜 정권은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 유병언을 비롯한 이른바 ‘구원파’ 종교인들을 내세우려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나서 이들을 지목함으로써 참사의 본질마저 왜곡시키려 하였다.

참사 초기, 박근혜 대통령은 선원들을 참사의 책임자로 몰아세웠다. 박 대통령은 4월 21일, “선원들이 살인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고 직접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비난 한마디는 사실상 검찰의 수사 지침이 되었다. 검찰은 5월 16일, 세월호 소속사인 청해진 해운 관계자와 선장 등 선박직 직원 15명에 대해 일사천리로 기소했다. 검찰은 특히 이준석 선장과 강원식(42) 1등 항해사, 김영호(47) 2등 항해사, 박기호(54) 기관장 등 4명에 대해서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내용대로 기소한 꼴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원들을 지목한 까닭은, 세월호 참사가 국가운영의 총체적 난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원들의 실수와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에서 비롯된 단순 사고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는 국민들 속에서 쉽사리 확산되지 못했다. 사고 발생 이전부터 국정원이 관계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며, 구조과정에서 해경과 해군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계속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정부와 자본의 유착관계도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세월호 사고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수사가 일단락되자 곧바로 청해진 해운을 겨냥하며, 세월호 참사가 청해진 해운에 의한 탐욕적인 부실 운항에 의해 비롯된 사고로 규정하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이번에 사고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은 지난 1997년에 부도가 난 세모그룹의 한 계열사를 인수해 해운업계에 진출한 회사다”며 “17년 전 3000억 원에 가까운 부도를 낸 기업이 회생절차를 악용해 200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탕감 받고 헐값에 원래 주인에게 되팔아서 탐욕적인 이익만 추구하다 이번 참사를 내고 말았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청해진 해운에 대해 “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 만들겠다”며 특유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청해진 해운과 세모그룹에 대한 수사에서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하자 아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이름을 수차례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박 대통령은 6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유병언 검거를 위해 검·경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지금까지의 검거 방식을 재점검하고 다른 추가적인 방법은 없는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경이 총동원됐지만 유병언의 도피극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당시 박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유 전 회장의 조속한 검거를 지시한 것은 벌써 세 번째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특정인을 공식적으로 세 차례나 언급하며 검거를 지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은 같은 날 오후 군까지 참여한 유관기관 관계자회의를 열기도 했다.
 
사실 여객선이 침몰했고 승객을 구조하지 않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도 책임이 있고, 선박의 무리한 증축과 화물 과적을 강행한 청해진 해운 관계자들도 책임이 무겁다. 그러나 이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초대형 ‘참사’로 확대시킨 모든 책임의 ‘정점’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수사 주체인 검찰은 대통령의 입김대로 움직였을 뿐 그 외에 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재난 대응과 관계된 공무원들의 책임을 규명하는 데는 무슨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지목된 이준석 선장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참사 책임의 ‘정점’으로 묘사되어 박 대통령의 책임을 가리는 데 이용되었을 뿐이다.

연이은 증거 은폐 조작

청와대는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앞장서기는커녕 관계당국의 증거 인멸, 은폐 시도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해명하지 않아 사실상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

세월호의 항적기록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기초자료로 사용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증거자료다. 그러나 정부당국이 공개한 항적자료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서 사고 원인을 둘러싼 혼란만 증폭되었다.

세월호의 항적기록은 정부당국에 의해 수차례 수정 공개되었다. 하지만 사고 당일인 4월16일 해수부 상황실 모니터화면을 통해 공개된 세월호의 항적은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추가로 공개된 항적과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또, 최종 공개된 세월호의 항적은 사고 당시 관제 구역인 진도연안 VTS가 공개한 레이더 항적자료와도 특정 지점에서 1분 8~10초가량의 시간차가 존재하는 등 일치하지 않았다.

지금도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자신들이 공개한 항적자료가 진도연안 VTS의 레이더 항적자료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월호와 진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이하 관제센터) 사이에 이루어진 교신 기록은 아예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신 기록 역시 사고 당시의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기초 증거자료 중 하나이다.

진도 관제센터는 사고 이후 세월호와의 교신내용이 있었음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4월 20일, 진도 관제센터는 언론이 잇따라 은폐 의혹을 제기하자 사고 당일 오전 9시 6분부터 9시 37분까지 세월호와 11차례 교신한 내용을 뒤늦게 공개했다. 실제로 YTN 취재진의 의뢰로 교신 녹취파일을 분석한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분석 결과 비정상적으로 소리가 끊어지는 부분이 무려 36곳이나 발견되었으며, 그 시간만 해도 무려 150초, 2분 30초나 되었다고 밝혔다. 결국 진도 관제센터가 공개한 진도 VTS 녹음 파일은 원본이 아니며, 조작 훼손된 내용인 것이다.

4월 19일 공개된 바 있는 제주 관제센터의 교신기록도 비정상적이긴 마찬가지다. 제주 관제센터의 4월 16일 오전 8시 55분부터 9시 5분까지 기록 중 마지막 5분의 기록은 대부분 녹음이 되어있지 않아 관제사의 ‘기억’에 의존해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중요한 단서로 활용될 수 있는 동영상들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사고 직후 이준석 선장이 투숙한 해경 수사관의 아파트 CCTV 기록이 2시간가량 삭제되었으며, 해경의 구조활동을 찍은 영상의 원본도 일부 삭제되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내부의 CCTV는 근무하는 해경에 의해 아예 다른 방향으로 돌려져있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 당국자들이 증거를 은폐 조작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말았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 이루어 져야

참사 이후 100일이 넘게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는 여전히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피해 보상이 우선이라고 하며 진상규명을 먼저 하자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책임 추궁을 피할 길이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검찰을 비롯한 수사당국은 청와대의 책임을 규명하기는커녕 느닷없이 유병언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었다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은 “더 이상 세월호 참사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참사에는 마땅히 전례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동반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싶다”는 유가족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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