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광화문 앞 한 음식점에서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88세) 생일잔치가 진행되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비전향장기수이기 때문에 북송명단에 들었지만 남녘의 청년학생들과 애국운동가들 곁에 누군가는 남아 함께 싸우는 것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리라 생각하여 주저 없이 남녘에 남아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계속 싸울 결심을 내렸다는 안합섭 선생은 “사실, 미제로부터 남녘의 주권을 아직도 되찾지 못했고 조국통일도 이루지 못했으며 지금도 옥중에서 많은 동지들이 투쟁하고 있으며 거리에서는 풍찬노숙하며 세월호 진실규명과 적폐청산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미수잔치가 다 무어냐고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동지들이 이렇게 생일상을 차려놓고 부르니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미제는 워낙 악랄한 세력이기 때문에 정세가 좀 좋아진다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동지들의 이런 사랑을 가슴에 안고 승리의 그날까지 민족적 양심이 명하는 대로 있는 힘껏 싸우겠다.”는 뜨거운 의지를 밝혔다.
안학섭 선생은 이번 강릉에서 진행된 여자하키대회차 남녘에 내려온 북 선수들 응원단 활동을 전 기간 전개하고 막 돌아왔다고 했다.
생일잔치는 양심수후원회와 환수복지당 등에서 준비했으며 당 소속 학생위원회 청년학생들이 실무는 물론 율동 등 축하무대까지 준비하였다.
이적 시인은 안학섭 선생의 반미 조국통일 투쟁과정에 신념과 양심을 지켜 싸운 삶을 조명한 축시를 낭송하였으며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안학섭 선생님의 장고한 기간 불굴의 투쟁을 전개해온 삶을 되새기며 오래오래 건강하실 것을 축원하였고 범민련 노수희 부의장, 한양대 청년들 등 많은 사람들도 건강하시어 통일을 꼭 보시고 통일 이후에도 남녘의 전사들의 든든한 언덕으로 늘 곁에 함께 해주기를 축원하였다.
아내 이혜경 여사는 앞으로도 정성을 다해 안학섭 선생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동지들이 뜻깊은 잔치를 마련해준 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1930년 4월 경기도 강화군 화정면 출생
1945년 화정초등학교 졸업, 졸업 후 농사일 돕던 중 작은 형님 탈영으로 주재소 괴롭힘을 피해 마니산 이모님 댁에 은신하다 해방을 맞음
1948년 개성 공립고등중학에 입학
1950년 6월 강화도로 돌아와 민청활동에 헌신
이후 인미군 후퇴 시 합류하여 개성에서 민청활동 재개
1952년 10월 무장육격대 편성되어 참전
1953년 4월 초 체포, 강원도 특무대에서 대구 특무대로 이송
1995년 8.15 광복절 특사로 42년 4개월여만에 출감
2000년 1차 송환 때 남쪽에 남아 통일운동에 헌신할 결심 세움, 이혜경 여사와 결혼.
현재 '평화협정체결운동본부' 고문, '통일관장'에서 활동
[축시]
나는 죽을수 없다
-안학섭 선생님 미수에 바치는 시
이적
희망을 가졌었다
누군가가 권했다
양키에 짓밟혀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려 왔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마땅히 서쪽으로 진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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