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섭 선생 미수잔치 뜻깊게 진행

이창기 기자 | 기사입력 2017/04/13 [10:29]

안학섭 선생 미수잔치 뜻깊게 진행

이창기 기자 | 입력 : 2017/04/13 [10:29]

 

▲ 미수잔치 상을 받은 43년 고문과 전향공작을 이겨낸 안학섭 비전향장기수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잔치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잔치, 안학섭 선생은 앞으로도 신념과 양심을 지켜 꼭 조국통일을 이루어낼 의지를 밝혔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1일 광화문 앞 한 음식점에서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88세) 생일잔치가 진행되었다.
안 선생은 43년 비전향장기수로 김선명 선생 다음으로 긴 구속 기간 신념과 양심을 지켜 싸웠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비전향장기수이기 때문에 북송명단에 들었지만 남녘의 청년학생들과 애국운동가들 곁에 누군가는 남아 함께 싸우는 것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리라 생각하여 주저 없이 남녘에 남아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계속 싸울 결심을 내렸다는 안합섭 선생은 “사실, 미제로부터 남녘의 주권을 아직도 되찾지 못했고 조국통일도 이루지 못했으며 지금도 옥중에서 많은 동지들이 투쟁하고 있으며 거리에서는 풍찬노숙하며 세월호 진실규명과 적폐청산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미수잔치가 다 무어냐고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동지들이 이렇게 생일상을 차려놓고 부르니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미제는 워낙 악랄한 세력이기 때문에 정세가 좀 좋아진다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동지들의 이런 사랑을 가슴에 안고 승리의 그날까지 민족적 양심이 명하는 대로 있는 힘껏 싸우겠다.”는 뜨거운 의지를 밝혔다. 

 

안학섭 선생은 이번 강릉에서 진행된 여자하키대회차 남녘에 내려온 북 선수들 응원단 활동을 전 기간 전개하고 막 돌아왔다고 했다. 

 

▲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잔치, 환수복지당 학생위원회 소속 청년학생들의 축하의 공연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잔치, 희망새의 노래 공연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생일잔치는 양심수후원회와 환수복지당 등에서 준비했으며 당 소속 학생위원회 청년학생들이 실무는 물론 율동 등 축하무대까지 준비하였다.
희망새도 축하 노래를 불러 잔치 마당을 더욱 흥겹게 축하해주었다. 

 

이적 시인은 안학섭 선생의 반미 조국통일 투쟁과정에 신념과 양심을 지켜 싸운 삶을 조명한 축시를 낭송하였으며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안학섭 선생님의 장고한 기간 불굴의 투쟁을 전개해온 삶을 되새기며 오래오래 건강하실 것을 축원하였고 범민련 노수희 부의장, 한양대 청년들 등 많은 사람들도 건강하시어 통일을 꼭 보시고 통일 이후에도 남녘의 전사들의 든든한 언덕으로 늘 곁에 함께 해주기를 축원하였다. 

 

아내 이혜경 여사는 앞으로도 정성을 다해 안학섭 선생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동지들이 뜻깊은 잔치를 마련해준 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의 미수잔치 조국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기념사진     © 자주시보

 


[안학섭 선생의 약력]

 

1930년 4월 경기도 강화군 화정면 출생

 

1945년 화정초등학교 졸업, 졸업 후 농사일 돕던 중 작은 형님 탈영으로 주재소 괴롭힘을 피해 마니산 이모님 댁에 은신하다 해방을 맞음 

 

1948년 개성 공립고등중학에 입학 

 

1950년 6월 강화도로 돌아와 민청활동에 헌신 

 

이후 인미군 후퇴 시 합류하여 개성에서 민청활동 재개 

 

1952년 10월 무장육격대 편성되어 참전 

 

1953년 4월 초 체포, 강원도 특무대에서 대구 특무대로 이송
이승만 정권은 국방경비법 32조, 33조인 이적행위와 간첩죄로 옭아매 무기형 선고.
이후 비인간적인 고문과 협박의 대대적인 전향공작을 이겨내며 감옥생활을 함 

 

1995년 8.15 광복절 특사로 42년 4개월여만에 출감

 

2000년 1차 송환 때 남쪽에 남아 통일운동에 헌신할 결심 세움, 이혜경 여사와 결혼. 

 

현재 '평화협정체결운동본부' 고문, '통일관장'에서 활동

 

 

[축시]

 

     나는 죽을수 없다

 

-안학섭 선생님 미수에 바치는 시

 

                                                 이적

 

희망을 가졌었다
일제로부터 건진
반쪼가리 조국을
마당으로 삼고
내몸 하나  미제의 지뢰밭에 던져
온전한 조국을 만들고 싶었다
행복한 꿈이었다
젊은 시절의 연애도 사랑도
사춘기의 고뇌 마져도
조국에 바칠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누군가가 권했다
안동지 , 안동지는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여 조국에 애국 하시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을 두고
학문에 머리를 처박는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내 머릿속에는 하얀 잿가루 였다
조국이 지시한 임무를 걸망에 짊어지고
저 승냥이떼가 우글거리는 반쪼가리 나의 땅을 찾아서
남하 했다

 

양키에 짓밟혀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려 왔다
꿈을 꿔도 잠을 자도
학살 당하는 내 핏줄들의 울음소리는 그칠줄 몰랐다
교도소에서 밧줄로 묶여 끌려 가고
보도연맹 굴비 엮듯 골짜기로 끌려 가고
바닷물에 빠트려 고기밥이 되게 하고
해방군 이라던 양키의 강간과 유린이
삼천리를 흥건히 적실 때
조국을 건지라는 내 가슴속의 분노의 지령이 꿈틀거렸다
행복한 분노가 가슴에 파도를 칠 때
그들은 내게 고문 했다
밤낮이 없었다
붉은색으로 드리워진 반쪽땅의 가짜 역사 앞에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굴복할 수는 없었다
강화도 화점면 내 생명의 테가 묻힌 땅에 부끄럽게 묻힐수는 없었다
전향을 강요 하던 그들은 맹수가 표효 하듯
주검을 요구 했다
전향은 미제에 굴종 하는
내 삶의 테두리는 아니었다
노을 붉은 하늘에
목을 처박고 죽고 싶다는 고통의 시간을 넘어
옥중 43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죽을수 없었다
조국의 해방을 보지 않고는 눈물 한방울 흘릴수 없었다
그 인고의 세월이 88년 이던가

 

해는 동쪽에서 떠서 마땅히 서쪽으로 진다
내 조국의 완전 해방도 마땅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듯 분명히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미제의 패권이 세상을 짓밟아도
제국은 내조국에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리라
아직 나는 늙을수 없다 아니, 늙을수 없다
동맥에 흐르던 피가 멈추면 동력을 돌려서라도
내 피를 돌게 만드리라
반드시, 반드시 조국해방을 본뒤
노을빛 조국의 산야에 재가 되어 흩어지리라
조국아 일어서라 !
동포야 철근 주먹을 불끈 쥐어라!
간악한 미제의 깃발을 내리고
이땅에 평화와 사랑의 눈발이 나부끼는 그날까지
나, 안학섭 , 살아 있으리라
눈을 시뻘겋게 뜨고  노려 보리라
새벽 찬 거리에  봄이 오고 있다
이 봄을 딛고 우리는 반드시 일어선다
아 ! 사랑 하는 나의 조국아 !        2017년 4월11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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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 2017/04/19 [13:32] 수정 | 삭제
  •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선생님, 부디부디 건강하셔서 꼭 통일기쁨 누리시기 바랍니다.
  • 동포 2017/04/14 [09:22] 수정 | 삭제
  • 곧 통일입니다
  • ㅓㅏ 2017/04/14 [09:19] 수정 | 삭제
  •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꼭 통일이 되는 세상 보셨으면 합니다
  • 포청천 2017/04/13 [15:42] 수정 | 삭제
  • 조국을 무한하게 사랑하신 그대앞에 서니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합니다
    하지만 그대가 있어 조국이 빛나고 자랑스럽습니다
    부디 찬란한 조국통일의 새날이 밝아올 때까지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 오직통일 2017/04/13 [12:14] 수정 | 삭제
  • 통일애국투사 안학섭 선생님 만수무강 하셔서 통일의 그날을 보시길 기원합니다.
  • 자주통일 2017/04/13 [11:18] 수정 | 삭제
  • 통일애국투사님의 기념비 건립합니다
  • 돌돌 2017/04/13 [11:16] 수정 | 삭제
  • 나이를 일컬을 때 흔히 쓰는 일본식 조어(造語) 가운데 하나이다. 88세 또는 여든여덟 살과 같은 의미이지만, 버려야 할 용어이다. 일본인들은 장수(長壽)에 관심이 많아 66세의 경우에는 '아름다울 미(美)'를 써서 미수(美壽), 77세의 경우에는 '기쁠 희(喜)'를 써서 희수(喜壽), 99세의 경우에는 '흰 백(白)'을 써서 백수(白壽) 등으로 표기하는데, 이들은 모두 초서(草書)와 파자(破字)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수 [米壽]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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