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말고 평화오라! 故 조영삼 시민사회장 영결식 열려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17/09/23 [12:41]

사드말고 평화오라! 故 조영삼 시민사회장 영결식 열려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7/09/23 [12:41]

사드철회 마중물이 되고자 한 평화주의자 고 조영삼 시민사회장 영결식이 23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시민사회장 마지막 날인 이날 영결식에는 각계각층 사회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영결식장은 효자동 주민 센터에서 청와대 분수대로 향하는 노상에 차려졌다. 앞서 장례식장인 한강성심병원에서는 오전 7시 30분 발인미사가 치러졌다. 이어 오전 9시에는 고인의 분신장소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고별방문이 있었다.

 

▲ 오전 10시 청와대 앞에서 열린 영결식     © 추광규 기자

 

 

사드배치 철회하라! 사드대신 평화오라!

 

문재인 정부는 사드배치 즉각 철회하라!

사드배치 강요하는 미국을 반대한다!

 

영결식은 한 시간여 남짓 동안 중간 중간 피 울음 토하는 한 맺힌 외침 속에 치러졌다.

 

공동장례위원장 강해윤은 추도사에서 "하나 된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먼저 남한에 민주정부가 들어서야만 한다는 희망으로 촛불을 들어 새 정부를 탄생시키고 무기로는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신념에 사드배치 철회를 외치며 온몸을 던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마중물이 되어주신 고 조영삼 통일열사여"라며 고인을 추도했다.

 

 

▲호상을 맡은 이덕우 변호사와 유가족이 묵념하고 있다.       © 추광규

 

 

공동장례위원장 최종진은 "이름 없는 평화주의자. 사드철회를 위해 기꺼이 마중물이 되신 고 조영삼 열사여"라면서 "우리는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의 평화와 통일된 세상을 꿈꿔 오신 것을 잘압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 시각에도 평화와 통일된 세상을 꿈꿔 오신 것을 잘압니다. 당신께서 살아 이루고자 했던 꿈은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던 꿈이요. 새 세상입니다. 우리가 싸우겠습니다"고 약속했다.

 

공동장례위원장 박석운은 "촛불 민의는 굴욕적 대미 추종으로 점철된 종속적 한미동맹의 나라가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 국민주권과 자주권이 숨 쉬는 나라입니다. 남은 우리가 고인의 유지를 가슴에 새가고 촛불 민의를 관철하여 끝끝내 이 땅에서 사드를 철거하고 이 땅의 평화를 반드시 실현 할 것"이라고 추도했다.

 

이덕우 호상은 "조영삼 프란치스코는 인도주의 평화주의자였습니다. 리인모 노인을 돌보다 감옥살이를 했고 북송된 리인모 노인의 초청을 흔쾌히 응하여 또 감옥살이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영삼 프란치스코는 몸에 불을 붙이고 어린 아이처럼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갔다"면서 "고인이 마중물이 되었으니 우리가 한 방울 물이 되어 시내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야 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  미망인 엄계희 씨가 유족 발언을 하고 있다.    © 추광규 기자

 

 

원로회의는 누가 조영삼 선생을 죽음으로 몰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깡패 두목 같은 발언과 그의 막료 국방장관의 군사옵션 따위의 호전적인 언사를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집약된 국민의 뜻과는 달리 미국의 압력에 끌려 다니면서 대북문제에 유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원로회의는 "국정농단과 적폐에 책임이 큰 수구정치세력과 수구언론은 반성은 커녕 정부의 개혁과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 왜곡하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서 미국의 호전적인 정책과 발언에 부화뇌동 전쟁을 부추기는 망동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원로회의는 이 같이 말한 후 "우리는 어떤 명목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의 전쟁을 반대하며 미국과 국내 수구세력의 망동이 계속된다면 제2의 촛불혁명으로 이를 단호히 분쇄할 것임을 촛불시민의 이름으로 천명한다"고 말했다.

 

미망인 엄계희씨는 유족 발언을 통해 “한얼이 아빠는 한 마디로 할 때 남에게 불이익이 되고 내게 이익이 된다면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서 “겸손하고 먹는 것까지 제한해서 소식하던 사람이었어요”라고 애틋함을 말했다.

 

▲ 영결식을 마친 장례인단이 미국대사관 앞 까지 꽃가마를 앞세운채 행진 하고 있다.    © 추광규

 

 

이어 “그는 평화통일을 꿈꾸던 사람이었다”면서 “제가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하고 물을 때 ‘나는 평화통일을, 그 다음에는 세계 평화를 꿈꾼다’고 대답했다”면서 “한얼이 아빠는 거실에서 항상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너무 멀리 보지 마. 발코니만 봐’라고 했는데 제가 멀리 보려했던 것을 멈추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엄계희씨는 계속해서 사드배치 반대와 관련한 서명 등의 활동과 분신 당일 아침의 상황을 말한 후 “한얼이 아빠는 평화의 마중물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서 “세상 소풍을 마치고 먼저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한얼이 아빠! 하늘나라에서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어 자유로운 영혼으로 안식을 누리십시오”라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꽃가마를 앞세운 채 미국대사관 앞으로 행진했다. 이어 미 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마친 후 오후 12시 40분 현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도착한 후 화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18시에는 성주 소성리에서 노제가 21시에는 밀양성당에서 봉안식을 끝으로 후원에 있는 천상낙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갖는다.

 

 

▲ 11시 30분경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노제     © 추광규 기자

 

 

 

 

바람의 자유인, 백만 촛불혁명의 한 평화주의자 고 조영삼님 약력  

 

고인은 지난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난 후 부산 동래고와 동국대를 졸업했다.

    

한겨레신문 지국장 등을 지낸 고인은 1991년 비전향장기수였던 이인모 선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1년여 돌봤다.

    

1992년 이인모 선생의 북송을 위해 남북회담차 남한에 온 북의 연형묵 총리를 면담하려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어 아르헨티나에서 거주하던 중 1995년 4월경 이인모 선생의 방북 초청을 수락하고 입북한 후 20여 일 동안 체류했다.

    

같은 해 9월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후 3년간의 망명수용소에서 생활한 후 독일에 일시체류 허가를 받아 머물렀다.

    

2010년 8월경 부인과 아들이 먼저 귀국한 후 2012년 12월 독일 거주 17년 만에 귀국 즉시 공항에서 국정원으로 연행됐다.

    

고인은 당국의 허가 없이 방북했다는 이유로 2014년 4월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이후 밀양에서 노모를 봉양하며 노무현 재단 밀양지부 운영위원 등의 사회활동을 펼쳤다.

    

앞서 고인은 2007년경부터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국제나그네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다. 2011년경부터는 시민기자로도 활동하면서 독일에서의 망명 생활을 감칠 맛 나는 글 솜씨로 소개하는 등 언론 활동을 했다.

    

2003년 엄계희 씨와 결혼한 고인은 1남(15)을 남겨 두고 58년 간의 세상 소풍을 2017년 9월 20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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