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 48] 모윤숙, 인간상, 인물평가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8/12 [12: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국부와 국모 

 

한국에서 이중의미를 갖는 8. 15가 다가오면서 역사해석이 또다시 쟁론거리들을 만든다. 한국 건국이 1919년이냐 1948년이냐는 쟁론은 정치적 열점으로 된지 여러 해 되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일종 기준으로까지 변한 그 문제에 대해 필자 나름 생각이 있으나 여기서는 괜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거들지 않겠다. 

 

역사평가는 어떤 의미에서 인물평가다. 일부 보수인사들이 이승만을 더 없이 위대한 인물로 그리고 자유한국당이 이승만을 “국부”로 떠받드는 데는 다분한 정치적 계산이 있다. 

역사적으로 “국부”는 단수와 복수로 나타난다. 어느 개인을 국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나하면 미국처럼 “국부들”이라는 표현이 곧잘 쓰이는 경우도 있다. 또 국부라고 공식적으로 불렸으나 국가의 멸망 혹은 제도의 변화로 그 칭호를 잃은 인물이 있나 하면, 국부라는 표현을 생전에 쓰지 않았고 그런 표현 자체를 혐오했으나 사후에 사람들이 붙인 인물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모택동, 1893~ 1976) 주석이 후자에 해당된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누군가를 국부라고 부르면 대개 국모 칭호가 파생된다. 중국의 쑨중산(손중산, 1866~ 1925)이 중화민국의 “국부”로 떠받들리니 그의 미망인인 쑹칭링(송경령, 1893~ 1981)이 국모로 불린 식이다. 쑹칭링은 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으로 되었다가 임종을 반달쯤 앞두고 명예주석으로 되었으니 굉장히 특이한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국모라는 칭호가 꼭 국부의 아내에게 붙지는 않아 대통령의 부인에게도 붙곤 했다. 그런 바람 영향을 받았는지 중국에서도 근년에 “국모”가 남용되는 상황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에 성립된 정부를 이었는데, 그 한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국부가 이승만이라고 할 수 있다. 숱한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독선거”를 고집하면서 밀어붙인 게 이승만이었으니까. 그런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한국의 기원으로 삼는다면 이승만은 기껏해야 “국부들”의 일원이다. 

이승만을 국부라고 우기면 국모도 있어야 맞다. 공식적으로야 프란체스카가 이승만 부인이지만 1948년 한국 정부의 수립에 큰 기여를 한 건 아니다. 실질적으로 남한 단독선거에 큰 기여를 한 건 모윤숙(1910~ 1990)이라고 알려졌다. 미인계를 써서 유엔한국위원장 크리슈나 메논 등을 홀려 1948년 3월 12일 표결에서 독자 선거 안에 찬성표를 내게 했다는 인물이다. 나라를 만드는 데서 큰 공로를 세웠다는 의미에서는 모윤숙이야말로 국모자격이 당당하지 않을까 싶다. 

 

모호한 모윤숙 인간상 

 

모윤숙은 문인과 언론인, 사회활동가 신분으로 현대사에서 아주 활약했고 영향력 있는 작품들도 꽤나 남겼으며 요즘에도 그를 소재로 하는 글들이 나온다. 헌데 여러 가지 사전들과 책자, 소개 글 등을 보면 모윤숙이 어떤 인물인지 형상을 알리지 않는다. 딱딱하게 경력과 작품들을 열거했거나 무작정 찬미하거나 친일파가 아니라고 비호하니 모윤숙이란 인간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까지의 한국 사전들에는 어느 문인이 어느 어느 반공대회에 참석했다는 게 중요한 경력으로 커다란 자랑거리로 적혔는데, 후에는 차차 줄어들었고 인터넷 사전들에서는 상당수 문인들의 국제적 반공활동경력이 빠졌다. 모윤숙은 반공을 빼놓으면 말할 게 많지 않은 사람이어서인지 반공대회 등 참가경력이 지워지지는 않았던데, 그런 경력을 보더라도 언제 어떤 고장에 어떤 회의 참석차로 다녀왔구나만 알릴뿐 그 인간상은 여전히 모호하다. 

 

북 소설에 나오는 모송죽 

 

필자 머릿속 모윤숙이란 인물의 이미지는 약간 황당하게도 조선(북한)의 장편소설 《시대의 탄생》(문예출판사 1964년 12월 초판, 1976년 8월 재판)을 통해 이뤄졌다. 

 

▲ 북 장편소설 《시대의 탄생》     © 자주시보, 중국시민

 

저자 석윤기(1929~ 1989)는 경상북도 달성군 사람으로서 광복 후 남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갈비대가 부러졌고 전쟁 기간 의용군에 가입하여 월북해 군대 운전사로 싸우다가 전후 작가로 된 사람이다. 한때 조선에서 소설을 제일 잘 쓰는 작가로 인정받은 그는 장편, 중편, 단편소설들을 많이 내놓았는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4. 15문학창작단 단장이기도 했다. 

비교적 조기 작품으로는 김책 항일투사를 원형으로 삼은 장편소설 《무성하는 해바라기》가 유명하고 후기에는 김일성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 불멸의 역사 중 장편소설들인 《대지는 푸르다》, 《고난의 행군》 등을 내놓아 김일성 주석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아들 석남진도 소설가로서 요즘에도 한국에 작품들이 소개되는 터이다. 

남에서 정치적 이유로 문단에 정식 등단하지는 못했으나 문인들과 잘 알았던 석윤기 선생은 《시대의 탄생》 중 1950년 6월 18일 밤 한미양행 중역이며 대한강재 사장인 국회의원 민성직 집을 그렸다. 솟을대문과 돌담이 둘러싼 오랜 집에서는 갖가지 인물들이 갖가지 활동을 벌인다. 

 

“오늘도 본채 큰 사랑에서는 진솔바지저고리에 호박물주리를 비딱이 입에 문 성직이가 간단한 주안상을 앞에 놓고 비단보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어떤 진객과 담소하고있고 양옥에서는 둘째 아들인 환규가 2층에 있는 자기 서재에서 학계, 예술계, 언론계의 저명한 인사들에 둘러싸여있다. 또한 사랑채에서는 륙군본부로부터 일선부대 대대장으로 전임해간 셋째아들 민삼랑이 자기의 군대동료들과 술상을 벌려놓았고 양옥 아래층에서는 피아노소리가 흘러나오는데 그것은 딱 옥규가 자기 대학 동무들을 청해들인것이다. 한편 큰아들 인규는 부엌에서 무엇인지 훔쳐먹다가 들키여 식모와 부엌데기가 아우성을 치고있다.”(151쪽)

 

인규는 어머니가 보약을 너무 먹어 태내병신이 된 인물로서 겨울이나 여름이나 벌거벗고 살아도 추위나 더위를 타는 법이 없고 말밥을 먹어도 배부르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니, 2018년까지 살았다면 기록적인 폭염도 히쭉 웃고 넘어갈 인물이다. 병신이라 가문에서 지위가 높지 않고 순서대로는 둘째 환규가 대를 이어야 한다. 헌데 민성직이 보기에 환규는 지나치게 유식하여 대학에 다닐 때에는 마르크스주의를 떠들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고 한때는 무슨 저술을 한다고 틀어박혀 앉더니 최근에는 “젊은 놈이 대학교수노라고 제 애비도 상종하기 만만찮은 유명한 사람들만 끌어들인다.”(152쪽) 광복 후 정치 놀음으로 재산을 많이 날린 민성직이 사업과 자식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가 공장 지배인의 아들이며 미군의 밀정인 송치호를 만나는 모습을 그린 다음 환규의 모임으로 넘어간다. 

 

“이 밤의 환규의 손님들은 그와 한 대학에서 국사를 강의하는 로학자 윤하응과 그이 딸 설란, 녀류시인이며 유명한 부인운동 《지도자》인 모송죽, 미국 공보원에 근무하는 사무엘 스파크씨, 신문기자 황보종 그리고 알수 없는 그림을 잘 그리는것으로 유명한 젊은 화가 박태설 등이였다. 여기에 치호가 끼여들어 주객이 모두 여덟명이 되였다.  

서재에 잇달린 응접실에는 주인의 담박한 성미를 말해주듯 특별한 장식도 없고 오직 모사품인지 진품인지 알수 없는 반 고포(고흐)의 20호짜리 풍경화 한폭이 걸려있을뿐이였다. 붉은 벽돌집 교회당도 푸른 강물도 온통 누렇게 그려놓은 그 그림앞에서 시인 모송죽이 연설이라도 하듯 목청을 돋구고있었다. 

올해 쉰두살에 난 모송죽은 강석훈양과는 달리 철두철미 정조를 지켜온 순수한 처녀로서 모든 기혼남녀는 물론 단순히 눈짓을 교환하는것조차 인간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함으로써 지구상의 대부분의 남녀들을 자기의 주의사상상의 원쑤로 선포한 녀자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녀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출로는 남자구실을 할수 있는 모든 남성을 소멸하는데 있다. 그는 아무데서나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론쟁을 하였고 그 굽힐수 없는 신념과 그 정력적인 열변으로써 그 모든 론쟁에서 혁혁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일약 남한 부인운동의 급선봉이 된 사람이였다. 오늘도 그는 쩔쩔매는 로교수 윤하응을 상대로 맹렬한 돌격전을 감행하고있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말씀은 즉 남성이 없는 지구는 매우 쓸쓸할것이란 말씀이지요? 그러나 저는 녀성으로서 확언하는바이비다만 남성과 녀성이 혼생하는 오늘의 지구는 혼란과 좌악의 란무장이지요. 아담과 이브의 적강이래 지구는 한번도 대청소를 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응당 한번은 쓸어버려야 합니다.》 

《허허허.》 

로교수는 어처구니가 없어 아까부터 피해갈 장소는 없는가 하고 두루 살피는것이였으나 녀류시인은 좀처럼 그를 놓아줄 눈치가 아니였기때문에 마침내 두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청소를 하십시오. 녀성들이야 원래 청소를 잘하시니까요.》 

옆에서 그들의 승부를 흥미있게 바라보고있던 박태설이 기호를 놓칠세라 한마디 반죽을 쳤다. 

《허지만 미쓰모, 그 대청소의 결과 모든 남성들이 다 없어진다면 그로부터 한세기 이내에 지구우에는 인류의 그림자가 없어질것이 아닌가요. 어떻습니까? 미쓰모의 견해는? 나는 여기서 새로운 그림의 중요한 주제를 암시받은것 같은데... 이 현대판 <노하의 대홍수>후에 인류는 어데로 갈것인가 하는 문제말입니다.》 

부인운동의 《지도자》는 여기서 분연히 노하였다.  

《당신들 남성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한판에 찍어낸것 같은 속물들뿐인가요? 당신들의 견해대로 하면 자기들이 없으면 인류는 곧 망하리라는 결론이 흘러나오는데 누가 그런 렴치좋은 생각을 가질 권리를 당신들에게 주었나요?》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문제이지요. 난 단연 그 대청소에 찬성합니다만 그런만큼 그 차후문제를 똑똑히 밝힐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말하는것은 오늘에 있어서도 모든 녀성들이 성모마리아와 같이 처녀로서도 능히 아이를 낳을수 있겠는지 하는 문제에 귀착되지요. 이것은 나의 다음번 작품의 주요...》 

《저리 썩 물러가세요. 난 그따위 더러운 말은 듣고싶지도 않아요.》 

박태설을 여지없이 격퇴시킨 모송죽양은 미처 숨통을 찌르지 못한채 놓쳐버린 늙은 적수 윤하응을 찾았으나 이때 하응은 이미 응접실 한쪽 구석에 있는 원탁자쪽으로 걸어가고있었다. 

거기서는 스파크씨와 황보종 그리고 늦게 들어온 치호 등이 한패가 되여 시사문제를 론의하고있었다. 하응이가 그 패에 가담한것은 그들의 화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모송죽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데 불과하였다. 그것은 송죽이 자신에게도 뻔하였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놓아줄수 없는 그 녀자의 심정이였다. 송죽은 상복과도 같은 검정드레스를 펄럭거리며 그리로 적수를 추격해갔다.”(156~ 158쪽)

 

덜레스의 한국방문을 논하는 자리에서 엉뚱하게 부인운동 지도자를 운운하여 좌중의 긴장을 풀어버린 모송죽은 또다시 윤하흥을 붙든다. 이는 창가에 서서 대화하는 환규와 설란의 대화로 알려진다. 

 

“... 사실... 보십시오, 모송죽양이 또 아버지를 붙들었습니다. 지구우에는 갈수록 저런 미치광이들이 늘어가고 그대신 성한 사람들은 적어집니다. 부득이 시세를 따라 성한 사람도 미치광이 흉내를 내야지요. 나에게는 이것이 참을수 없이 쓸쓸합니다.  

《참 난 저 녀자를 알수 없어요. 왜 우리 아버지만 보면 저렇게 대드는지요? 

《그야 저 녀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대드는 광기가 있는데다 아버지는 또 세상에 흔치 않는 성한 사람이기때문이지요.》 

그들은 모송죽에게 붙들리여 환규의 사무책상앞으로 끌려가는 윤하응교수를 바라보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이어 책상앞에서는 송죽의 날카로운 목청이 들려왔다. 

《선생님은 력사학자인 주제에 모계사회로부터 부계사회로 넘어온것이 인류의 타락의 시초라는것을 어째서 모른단말입니까? 참 유감인걸요.....》 ”(160~ 161쪽)

 

환규와 설란이 현실에 비관하는 담화가 이어지고 뒤이어 165쪽에서 윤하응 교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모숭죽을 가까스로 떼버리고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며 다가오더니 환규에게 내일 강화도로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고대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모송죽은 시사토의 패거리에 가담한다.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개성도 언어도 독특하여 인상적이고 검은 드레스를 걸친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한국에서 현대사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들을 그처럼 많이 찍었으면서도 모윤숙은 등장하지 않은 모양인데, 무척 유감스럽고 언젠가 누가 모윤숙을 연구한다면 위 장편소설 대목을 참고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된다. 

 

모윤숙 평가의 현실적 의의 

 

모윤숙은 김활란처럼 대학과 직결되지 않아서인지 그 경력과 명성에 비해 친일논란이 현실적으로는 동상 치우기 등으로 격렬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친일에서 친미로 넘어가고 반공을 면죄부로 삼으면서 대를 이어 권력과 재부를 누리는 한국 기득권세력을 알기 위해서 또 한국 사회의 고질을 고치기 위해서는 모윤숙이라는 인물도 철저한 해부가 필요하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같은 작품만으로는 모윤숙이라는 인간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기에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다큐멘터리, 극영화나 드라마로도 그려주면 좋겠다. 

한편 비록 소설 속 인물의 말이지만 모송죽의 과격한 발언들을 이번에 입력하면서 내내 근자에 진행된 페미니즘 시위들이 떠올랐다. 극단적인 사고방식과 표현이 모송죽과 비슷한 점들이 많아서이다. 시위가 아무리 이유가 있더라도, “한남”풍자, 문재인 대통령을 “곰”을 표현하고 떨어져 죽으라는 속어로 조롱한 등등은 너무 과하다. 

 

혹시 어느 페미니스트가 이 글을 보고 수십 년 전 자신들보다 더 강하게 나섰던 선배를 알게 되면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격언이 생각나 시무룩해질지 아니면 선배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겠다고 다짐할지? 

필자 개인적으로는 68년 전에 비기면 현시대에 극단주의자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서 등골이 서늘해난다. 가을은 시작되었다지만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아 서늘해나는 게 생리적으로는 싫지 않다만, 그래도 심리적으로는 두렵다. 인류의 절반을 적대시하면 통일문화 가꿔가기와 정반대로 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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