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화 가꿔가기49] “판문점 사건”이 남긴 숙제를 풀려면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8/08/19 [12: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판문점 사건”에 대한 같지 않은 평가 

 

어제는 8월 18일, 1976년 “판문점 사건” 발생 42돌이다. 그 사건으로 하여 휴전 후 반도가 가장 전쟁에 가까워졌었다고 평가받는데, 전쟁위험이 전에 없이 약해진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느낌이 야릇하다. 

 

판문점 사건을 남에서는 흔히 “도끼만행사건”이라고 부른다. 무지막지한 북괴군이 착한 미군을 도끼로 찍어죽였다는 식으로 알려졌던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다. 아직까지 전문 저서는 보지 못했는데, 인터넷 자료들을 역사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주장들을 접할 수 있다. 자칭 객관적인 입장에 섰다는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건 미군의 대규모 움직임에 김일성 주석이 겁을 먹어 사과를 했다는 등등이다. 한편 일부 탈북자들은 당년에 청년 김정일이 후계자 지위를 굳히려고 무모하게 사건을 벌였다가 큰 코를 다쳤노라고 주장한다. 

조선(북한)의 주장은 수십 년 일관적이다. 사건은 미국이 만들었다, 결과는 판문점경비구역 질서변경에 관한 조선의 주장이 먹혀들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지도자는 대담하고 현명하게 처사했다. 

 

북의 사건해설

 

조선 자료의 《판문점사건》해설을 보기로 하자. 불필요한 쟁론을 피하고저 경칭은 “*”로 대체한다. 

 

“주체65(1976)년 8월 18일 미제국주의자들은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해 계획적인 도발사건을 꾸며냈다.

*** ***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국의 포드행정부는 지난해 8월 18일 계획적으로 〈판문점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구실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소동을 미친 듯이 벌렸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전쟁의 방법으로 출로를 찾으려고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책동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하였다. 

그들은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여 1974년에는 하늘과 땅, 바다에서 2만 3 800여건, 1975년에는 무려 2만 8 150여건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행위를 감행하였으며 1976년 1월부터 7월 사이에만도 판문점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우리 측을 반대하여 400여건의 적대행동을 감행하였다.

구름이 잦으면 비가 오기마련이다.

미제는 우리 측을 반대하여 계통적으로 불집을 일으켜오다가 8월 18일에는 판문점공동경비 구역안에서 계획적인 충돌사건을 일으켰다. 

이날 10시 45분경 미제는 도끼를 가진 14명의 불한당들을 내몰아 쌍방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판문점공동경비 구역안의 나무를 제멋대로 찍어내는 무례한 행위를 감행하였으며 지어 그러한 비법행위를 그만 둘 것을 요구하는 우리 측 경비인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였다. 우리 측 경비인원들은 적들의 분별없는 도발에 대처하여 부득불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미리 대기시켜놓았던 30여명의 불한당들을 더 증강하여 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쌍방사이에는 격투가 벌어져 량쪽에 다 부상자들이 발생하였다. 

미제는 이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촬영준비를 해두었다가 저들에게 유리하게 찍은 《사진자료》들을 보도하면서 진상을 왜곡하여 만든 《서한》이라는 것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제출하여 공식문건으로 배포하도록 요청하는 한편 남조선강점 미군부대들에 《비상대기령》을 내려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 공화국을 압살해보려고 오키나와와 미국본토로부터 《F-4》초음속비행기와 《F-111》전투폭격기를 남조선에 끌어들이고 핵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주축으로 하는 미제7함대의 《기동타격함대》와 오키나와에서 1 800여명의 해병대를 끌어 들이였다.

미국의 포드행정부는 그 무슨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우리 공화국을 위협하였다.

이 사건은 전적으로 미제가 조선에서 불집을 일으키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꾸며낸 도발행위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전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는 당장 전쟁이 터질 수 있는 위기일발의 사태가 조성되였다.

**** 김정일***께서는 그때 《판문점사건》으로 떠는 것은 우리 인민이 아니라 미제라고, 자신께서는 미제의 발광을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정신착란으로밖에 보지 않는다고 하시며 미제의 발광은 어디까지나 서푼짜리 몸부림이라고, 우리 인민의 머리칼 하나 다치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 ***과 **** ***의 현명한 령도 밑에 오랜 기간의 간고한 혁명투쟁에서 단련되고 세련되였으며 선군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쥔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적들의 위협공갈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하여 응당한 조치를 취하였다.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장병들과 로농적위대원들, 붉은청년근위대원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은 당과 수령의 두리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뭉쳐 적들의 침략책동을 물리치기 위한 투쟁에 용감히 떨쳐나섰으며 한손에는 총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튼튼히 다지는 한편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은 적들의 무모한 도발책동을 성과적으로 저지시키고 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지켜냈으며 사회주의건설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주체65(1976)년 8월말 미제는 흰 기를 들고 공동경비 구역안에 도끼를 비롯한 흉기를 가지고 들어오지 말며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쌍방의 합의에 따라 처리할 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질서변경을 위한 우리의 주동적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판문점사건》은 미제국주의자들이야말로 전쟁의 도발자, 광신자이며 세계평화를 유린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준 반면에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패의 위력과 혁명적 기개를 다시 한 번 시위하였으며 선군이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시종일관한 평화애호정책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오늘도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악랄하게 추구하면서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해 갖은 비렬한 책동을 다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 군대와 인민이 무비의 담력을 지니신 천출명장 김정일장군님을 모신 무적필승의 군대, 영웅적 인민이라는 것을 아직도 다는 모르고 있으며 우리에게 그 어떤 침략책동도 짓부셔버릴 수 있는 막강한 군력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어리석게 놀아대고 있다.

이 땅의 평화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고 **** ***의 령도따라 강성대국건설의 한길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며 만일 적들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선군으로 다져온 무자비한 총대의 위력으로 침략자들을 단호히 격멸소탕하고야 말 것이다.“ 

 

2013년 7월 필자의 언급 

 

2013년 7월에 필자는 통일문화 만들어가며 186편 “76년 “8. 18판문점사건”에 대한 재조명”에서 판문점 사건에서 죽은 미군 장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 “옛 사진”(류원규 지음)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그 전쟁에 대해서는 하도 많은 글들이 나왔고 필자 자신도 전쟁을 재구성하는 글들을 쓰기 때문에, 《자주민보》 독자분들이 심미피로를 느끼지 말도록 오늘에는 조금 다른 소재를 다루려 한다. 하기야 결국에는 그 전쟁과 관계가 되지만.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에서 일어난 충돌사건이다. “판문점사건”이니 “미루나무사건”이니 “도끼만행사건”이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의 뿌리는 휴전협정의 내용에 있었고, 조선중앙텔레비전이 지난 7월 15일 “《도끼사건》의 주인공으로 영생하는 전사 -전 조선인민군 군관 공화국영웅 홍성문”이라는 소개프로를 방송했을 때, 이튿날 한국 언론들이 지난 해 12월에 촬영했다고 밝혀진 동영상을 이제 와서 방송하는 건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돌에 맞추는 것이라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관련보도에서 한국 언론인들은 당시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유감”을 표시했다고 부각하면서 마치 사죄나 굴복을 한 듯이 묘사했고, 프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홍성문을 표창, 찬양한 것이 마치도 김일성 주석과 달리 나선 셈인 듯이 풀이했다. 조선 관련 소식들마다 친절하게 토를 달아주는 한국 언론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야 그런가보다 믿을 수도 있겠지만, 역사사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휴전협정을 맺을 때에는 그 협정이 60년을 넘길 줄 몰랐던지 아니면 관련 측들이 협정을 잘 지키리라고 믿었던지 공동경비구역이라는 것을 설치했고 거기에서는 대립된 측들의 병사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미군이 그 구역에 있는 미루나무 한 그루가 감시에 방해된다는 구실을 붙여서 채벌하려는 바람에 큰 충돌이 벌어진 건 바로 그처럼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민군 경비병들이 자기 측의 허락을 받지 않고 채벌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제지하였으나 미군이 말을 듣지 않아 싸움이 붙었는데, 도끼 따위를 휴대한 미군 30여 명 대 맨손바람인 인민군 4명의 겨룸이 미군의 2명 사망, 여럿 부상이라는 일방적인 참패로 끝난 것은 무협소설가들도 꾸며내기 어려운 결과이다. 

격투가 끝난 다음 대규모 무력시위와 대결로 이어져 전쟁이라도 터질 법 했는데 좀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미군은 헬기까지 동원하여 그 미루나무를 기어이 없애버리고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채벌할 때 인민군이 보고만 있었으니 자기네가 이겼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장교와 병사들이 죽고 다쳤으나 그 어떤 보상도 받아내지 못한데 대해서는 슬그머니 피한다. 

조선 측에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승리를 주장해왔는데 자체 측에 인명피해가 없던 것도 당당한 이유지만, 사건결과 조선이 내놓은 주장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감스럽다, 그러니까 공동경비구역에서 쌍방 군인들의 자유로운 남북왕래가 새로운 충돌을 일으키지 말도록 공동경비구역을 분할함으로써 쌍방군인들의 직접접촉을 피하자. 결과 8월 25일 인민군과 “유엔군”이 유사충돌을 원천차단하는 데 합의했다. 이런 전후관계를 무시하고 구두로 전달되었다는 “유감”만 부풀려 굴복을 운운한다면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꼴이다. 

자료에 의하면 충돌사건 당시 한국군 혹은 미군에 속한 한국인병사인 카추사들도 있었다는데 김일성 주석은 언젠가 손님을 만난 자리에서 싸움이 터졌을 때 인민군 군인들이 “조선 사람은 피하라!”고 소리쳤기에 남조선군인들은 다치지 않고 미군들만 죽고 다쳤다고 이야기했다. 필자가 [통일문화 만들어가며 66] “화합의 이점은 무한하다”(http://www.jajusibo.com/jajuminbo_read.html?uid=6754)에서 소개한 중편소설 《대결》(김대성 지음)에서는 박호림이라는 한국 장교가 판문점사건에서 다쳐 이마에 상처가 남았다고 그려졌다. 

“8. 18사건” 및 그 뒤에 일어난 대결에서 한국군의 역할은 상당히 애매하다. 한국군이 워낙 휴전협정조인당사자가 아니어서인지 8월 25일 공동경비구역 분할안 확정에 끼이지 못했고 분할안 자체를 강력히 반대했다는 자료가 있는데 비해, 확인되지 않은 설들은 적지 않다. 게다가 그런 설들이 세월과 더불어 진화하니 그 또한 흥미롭다. 

5, 6년 전 까지만 해도 한국 사이트들에서 관련자료를 검색하면 사건 후에 팽팽하게 맞설 때 한국 특전사가 동원되었는데, 어느 선배가 북을 향해 오줌을 쌌다는 것이 굉장한 자랑거리로 부각되는 정도였다. 맨손바람인 인민군들에게 호되게 당한 미군이 한국군의 태권도유단자들을 불러들였다는 해석도 합리한 면이 많았다. 

헌데 차차 '설설'들의 내용이 풍부해지더니 지난 해 대통령선거시절에는 급기야 한국 특전사의 대활약으로까지 진화됐다. 미루나무를 자르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하고서도 미군들이 벌벌 떨기만 하는 바람에, 한국 특전사 군인들이 달려 나가 맞은 편 인민군 초소들을 박살냈는데 인민군이 꼼짝하지 못했고 지어는  수령의 초상화를 파괴해도 인민군이 움직이지 못했단다. 한국군이 미쳤다고 아우성치던 미군이 그제야 용기가 나서 나아가 나무를 잘랐다는 것이다. 이런 신화창조의 주인공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 특전사에 있었고 2012년에 대통령후보로 된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있었노라는 주장이 생겨나 퍼진 것 또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헌데 특전사 성원 문재인이 그런 신화의 창조자로서 무슨 표창을 받았느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게 허점이라면 커다란 허점이겠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의 프로에 의하면 조선에서는 사건 직후 참가군인들에게 높은 국가적 표창을 했다는데, 미군이 던진 도끼를 받아 쥐고 무섭게 날뛰면서 싸운 주역인 홍성문이 몇 해 후 다른 충돌에서 희생된 다음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았다는데 따라 미뤄보면 최고급표창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그 큰 역사사건의 주역을 그린 문예작품을 지금껏 필자가 보지 못한 건 좀 이상스러운 일이다.”

 

5년 뒤 남은 숙제 

 

5년이 지난 오늘까지 홍성문을 그린 문예작품을 보지는 못했으나 듣기는 했다. 북의 대외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장편소설 녹음파일들을 상당수 발표했는데, 그중 《고요한 행성》(박윤 지음)이 바로 판문점사건을 다뤘고 홍성문을 원형으로 하는 인물이 충돌 초기 강타를 당해 괴로워하는 대목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금년 6월 하순, 한국의 모 매체는 아래 세대에 역사를 알려주는 한 사람의 글을 발표했다. 판문점 사건의 현장 주역이었던 ‘쇠못 구두의 사나이’- 박철 군관이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졌다. 

 

▲ 박철이라고 알려진 인민군 군관     © 자주시보,중국시민

 

뒤이어 저자는 1984년 11월 23일 소련 가이드의 판문점 망명사건으로 사망했다고 소개하고 이렇게 썼다. 

 

“나이도 모르고 고향도 알 길 없는 ‘코리안’ 박철. 분단된 나라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어 ‘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한껏 발휘했던 그 난폭함이 끔찍하게 징그러울망정 그의 최후가 안쓰러워지는 이유는 남쪽에서도 비슷한 사람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 거야. 빨갱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 빨갱이라고 지목됐다는 이유로 짐승 같은 고문을 퍼부은 사람들, 자신들이 빨갱이라고 믿는 민간인 머리를 수박처럼 깨버리고 대검으로 찌르고 헬리콥터에서 기관총을 쏘아 갈긴 사람들, 그들 역시 박철이 발휘했던 잔인함의 체현자 아니었겠니. 분단이라는 외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사양하지 않았던, 또 그걸 당연하게 여겼던 무섭고 우스운 광대들이 아니었겠니. 판문점은 그 광대놀음판의 최말단이자 시작점이었고 말이야.” 

 

박철이란 바로 홍성문이고, 북의 소개프로에는 생몰연도가 나왔다고 기억된다. 또한 북의 자료들을 열심히 찾아보면 보다 상세한 인적사항들도 알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남의 사람들도 접촉할 수 있었던 텔레비전 소개프로가 중점으로 다룬 인물인데도 역사를 전문 연구한다는 사람이 “나이도 모르고 고향도 알길 없는”을 운운하고 게다가 “빨갱이” 진압에 열광했던 이남 군인들과 비기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군의 폭격 피해를 받은 북에서 나서 자란 군인이 “미제침략자”에 대한 적개심을 발휘한 것과 반공교육에 세뇌되어 동포를 죽인 게 비슷하다는 그 논리적 비약에 얼떨떨해난다. 4· 27 판문점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 발표된 이후 그런 수준의 글이 나와 후대교육에 쓰인다는 건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그런 역사전문가들에게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북은 홍성문 소개프로를 재방송하거나 그를 소개한 글들을 발표할 필요가 있겠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42년 동안 판문점 사건 결과가 만든 틀에 따르니 판문점 사건의 영향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리고 판문점 사건이 남긴 숙제는 많다. 판문점 사건 직후 북 응징에서 활약했다는 특전사 신화의 주인공들 중 하나가 문재인 대통령으로 변신한 현재, 숙제들을 풀어갈 여건은 전에 없이 좋아졌다. 역사학자들 그리고 42년 전 사건의 막전막후에서 활동했던 군인과 정치인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잘 모르던 문제점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남북 경협이나 이산가족 상봉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당사자들이 고령이라 더 늦기 전에 착수해야겠다. 판문점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사건들도 남북이 주제를 하나씩 정해서 당사자 모임을 조직하면 혹시 잠깐잠깐 다투더라도 역사의 진실은 보다 잘 알려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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