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2 .김지영 가극단 미래 배우

신혜원 | 기사입력 2019/06/30 [09:13]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2 .김지영 가극단 미래 배우

신혜원 | 입력 : 2019/06/30 [09:13]

 

젊은 미술인들의 단체인 <베란다항해>에서 활동하는 신혜원 작가가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활동가를 만나 매월 1회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신혜원 작가는 젊은 활동가와 생활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그 활동가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 인터뷰할 때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자주시보는 다양한 단체에서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자기 역할을 소중히 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응원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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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하는 게 아니라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왜 하느냐? 묻는다면 통일운동을 잘 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김지영 배우)

 

신혜원(이하 원) : 자기소개해 주세요.

김지영(이하 영) : 가극단 미래 배우 김지영이라고 합니다. 4.16연대 운영위원, 블랙리스트 타파를 위한 연극인 연석회의 공동대표, 경험과 상상 단원, 마로니에 촛불 운영위원 등의 활동도 하고 있어요.

 

원 : 하시는 일이 무척 많은데요, 이렇게 많은 활동을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영 : 주되게 하는 활동은 ‘가극단 미래(이하 ‘미래’)’인데요. ‘미래’ 자체가 사회에 관심이 많고, 기여하고자 하는 곳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대학로에서 공연하다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4.16 진상규명 촛불문화제 하는 것을 보게 되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첫날에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허드렛일을 했죠. 도움이 되고 싶어서 뭔가 해보자고 하면 네가 기획단을 해봐라, 이렇게되다 보니 운영위원도 하게 되었네요.

 

원 : ‘미래’활동을 주로 한다고 하셨는데요, ‘미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영 : ‘미래’는 2003년에 한총련 이야기(가제 : 저 빛나는 샛별처럼) 공연을 하면서 묶였던 한총련 출신 예술인들이 그다음 해인 2004년에 공식 창단한 극단입니다. 노래, 연극, 퍼포먼스 등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문예 운동을 해 보자고 결심해서 만들었지요. 창단하고 올해 15년 차 극단이 됐네요. 거리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노래도 만들어 부르고, 역사물 공연도 하고, 집회 공연도 하고 극장공연이나 찾아가는 공연 등 다양하게 많은 활동을 하는 극단입니다.

 

원 :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영 : 2005년 즈음 주한미군철거 실천단 활동을 했는데요, 당시 문예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보자고 결심하고 개사곡도 부르고 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무엇으로 내가 운동에 복무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나도 행복하게 끝까지 운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역할들도 제안받았지만 이 길로 왔지요.

 

원 : 그러면 몇 년부터 배우로 활동하신 거죠?

영 : 2006년부터예요.

 

원 : 그렇게 따지면 배우 생활 13년 차인가요? 돌아보면 어때요?

영 : 배우는 정말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만족이 없네요. 극단 자체가 정세나 현황에 맞게 새로운 작품을 많이 내고 할 때마다 상황도 다르니 긴장되고 그래요. 최근 적폐청산집회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온갖 방해를 뚫고 공연을 해야 하니 더 긴장되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웃어주고 박수쳐주고 호응해주니 힘도 나고요. 희로애락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직업이에요.

 

▲ 뮤지컬 '화순'에서 공연하는 김지영 배우 (앞여 가운데) [사진제공- 김지영 배우 ]     

 

원 : 극단에서 함께 공연하기도 하지만 ‘청소부 김말순’ 으로도 맹활약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유명한 인물은 어떻게 창조된 거예요?

영 : ‘미래’에서 ‘넌 꿈이 뭐야’라는 극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요, 그중 제일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청소부 아줌마가 있어요. 사람들이 옷 갈아입는 동안 시간을 끌어야 하는 역할이었는데요, 관객들에게 종이비행기에 꿈을 써서 날리라고 하고 그 중 몇 개를 펼쳐서 읽어보며 대화하며 진행했었지요. 그랬던 김말순 역할을 또 하게 된 건 주한미군 철수 투쟁에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당시 ‘미래’의 현황이 같이할만한 상황이 안 되어서 1인극이라도 만들어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전쟁기념관 앞에서 8.15 투쟁 때 첫 공연을 했어요. 

개인 활동이라기보다는 ‘미래’ 안에서도 다 같이 못 하면 한 명이라도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절박성에서 생긴 것 같아요. 다 같이 만드는 공연의 장점이 있고 한 사람이 기동성 있게 할 수 있는 공연의 장점이 있어요. 김말순 캐릭터가 세다 보니 그런 데에서 오는 재미와 힘도 있고요. 

그렇게 시작된 김말순 공연은 이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등 부정선거 규탄 집회 등 여러 곳에서 호응을 많이 받았어요. 국정원 앞 투쟁에서 공연할 때는 특히 호응을 많이 받았는데요, 싸우는 캐릭터이다 보니 분노가 높은 곳에서 더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박근혜 탄핵 촛불 때는 한 번도 공연에 서지 못했고 굳이 공연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어요. 당시엔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았으니까요. 주로 저는 공연이 있어야 되는데 설 사람이 없는 판에 많이 섭외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 자유한국당 해체 투쟁 때에도 하루 전날 섭외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러면 준비하는 것이 쉬운 건 아닌데 중요하게 요구되고 꼭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하는 거죠. 근데 엄청 힘들어요.

 

원 : 힘들어도 지금까지 열심히 해 오셨네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결심의 과정이 어땠나요?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는지요?

영 : 특별히 기억나는 공연이 김승교 변호사님 아프실 때인데요, 2015년 1월 1일에 사람들과 함께 화순에 가서 뵌 적이 있는데요, 새벽에 내려가야 하는데 전날 밤에 공연요청이 들어온 거예요. 지금까지 김말순 공연을 하면서 최고로 짧게 준비해서 올린 공연인데요, 어떻게 해서든 꼭 힘을 드리고 싶어서 얘기 듣자마자 하겠다고 했어요. 그 전날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신기하게 김말순 할 때 머리에 쓰는 가발을 갖고 있었어요. 왜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공연할 수 있었어요. 소성리 할머님들 앞에서도 공연했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이 이토록 장기적으로 투쟁을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든 힘 드리고 싶어서 준비하게 됐고요. 최근 자유한국당 해체 투쟁을 하면서는 대중들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고 뭐라도 더 해서 함께 힘을 느끼고 힘을 받아서 이 투쟁이 전진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제 공연 바로 전에 호성이 어머님(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신호성군 어머니)이 발언하시는데, 다들 우는데 눈물이 안 나고 어떻게든 공연을 잘해야겠다, 이 분노를 더 키워서 자유한국당을 엎을 수 있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머리가 핑핑 돌아가더군요. 정말 창작이라는 게 대중 속에 있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의 힘, 투쟁의 열기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키워낼 것인지를 잘 고민해야 하고 그럴 때 새로운 창작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무대에 올라갔는데 너무 신이 나는 거예요. 집회참가자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와 무대에서 보는 건 정말 달라요. 사람들이 와~ 일어나는 분위기가 너무 신나고 서로 너무 힘을 받는 거예요. 나도 어떻게든 힘을 드리고 투쟁의 동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참가자들의 감정이 높은 지점이 딱 만나는 지점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대중들이 함께 만드는 공연이고 시민들의 작품이라고 느껴져요. 그 행위 자체가 시원하고 감동적이고 예술적이거든요. 

 

원 : 김말순 공연을 어디 어디에서 했는지 기억나세요?

영 :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어요.

 

원 : 몇 회 정도 하셨어요?

영 : 기억이 안 나요. 많이 할 때는 정말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안 가봤는데 힘을 드리고 싶어서 하는 곳에서 하는 공연이 정말 힘들어요. 그곳의 정서를 모르거든요. 내용은 아는데 정서를 몰라서 웃기지 못한 경험이 몇 번 있어요. 소성리 집회에 갔을 때도 정서를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집회한 것 전체를 영상을 다 찍어서 올렸더라고요. 그걸 다 보니 정서를 알 수 있었고 그래서 할머님들께 힘을 드릴 수 있었어요. “사드 가고 통일 왔다. 사드 가고 평화 왔다. 우리 민족 만세” 노래를 불렀는데 이 부분을 예행연습하고 같이 부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소성리 활동가 한 분이 할머님들이 한 번도 일어나본 적이 없다고 안 될 거라고, 하지 마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분위기 봐서 한다고 했는데 할머니들이 다 일어나신 거예요. 너무 좋아해 주시고. 할머니들이 정말 시골에서 투쟁하시는 게 너무 큰일이고 중요하고 보람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걸 말씀해드리고 싶었어요.

 

▲ 성주 소성리에서 '김말순'으로 1인극 하는 김지영 배우[사진제공-김지영 배우]     

 

원 : 김말순으로서뿐 아니라 다른 공연들도 많이 하셨는데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영 :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 김련희 역할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김련희 씨는 이럴 때 어떻게 웃으며 얘기하시지’ 생각한 적이 있어요. 연습하면서 나는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래요. 상상이 안 되는데 웃으라고 하고. 공연이 일주일 남았는데 캐릭터를 바꾸어야 하나 고민도 많았어요. 공연 연습해야 하는데 정신이 무너진 거죠.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내게 오랜 수배 생활을 하면서 어떤 일을 대할 때 으레 비장하고 슬플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면서 김련희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구나, 그런 정서를 가질 수 있구나 깨달으면서 하루 만에 180도 바뀌었어요. 그러다 보니 공연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배우는 무엇을 채워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죠.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정신세계를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더 훌륭한, 저와 다른 정신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려면 많이 알고 훌륭해지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러면서 배우가 대단한 직업이라고 느끼게 됐어요. 

 

원 : 이렇게 잠시 얘기하는 중에도 여러 가지 깨달았던 지점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그런 것들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배우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계기라던가?

영 :  ‘여기는 통일대학’이라는 뮤지컬에서 제가 ‘오덕혜’라는 재일 동포 역할을 했어요. 전국 순회공연을 했는데 금강산에도 갔거든요. 북녘에서 공연하니 더 잘하고 싶은데 솔로로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자신이 없는 거예요. 너무 떨리고 긴장되고. 그러다가 공연 올라가기 전에 나는 약하지만 한총련 문예 일꾼으로 자긍심을 갖고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올라가니 너무 노래가 편하게 잘 되더라고요. 그날 무대 공포, 특히 노래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어요. 너무 신기한 경험을 한 거죠. 민족의 도움을 받아서 노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생각해요,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연습한 만큼은 나와서 억울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어요.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김말순 공연을 끝내고 무대 밑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친한 분을 만난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김말순 캐릭터를 8년 전부터 알았는데 그게 나인 줄 몰랐던 거예요. 김지영으로도 계속 알고 있던 분인데 말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은 나를 못 알아봐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게, 우리가 공연할 때 적폐세력 쪽에서 가장 세게 방해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실제로 위협을 느낄 때가 많아서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무대에 올라갈 때도 있어요. 그런 각오까지 하고 무대에 오른다는 걸 보통은 잘 모르죠. 공연하는 게 아니라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왜 하느냐? 묻는다면 통일운동을 잘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로 운동하고 싶어서요.  

 

▲ 거리에서 공연하는 가극단 미래.(가운데 김지영 배우) [사진제공-김지영 배우]     

 

원 : 얘기하면서 종종 나왔지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짧게 정리해주세요.

영 : 겸손하고 성실하고 도를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자로 ‘길 도(道)’자를 쓰잖아요. 길을 계속 가야 도를 알게 된대요. 길을 가면서 동지를 만나고 투쟁의 현장에 힘을 줄 수 있는 곳에서 계속 또 길을 찾아가면서 도덕을 아는 그런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원 : 예술가로서의 각오나 관객들 또는 다른 예술가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영 : 모두가 다 할 수 있을 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못할 때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날 바다’의 김지영 감독님이랑 일하면서 제가 했던 말이 있어요. “감독님, 이후에 다른 작품 하실 때 괜히 옛날에 고생했으니까 라고 생각해서 섭외하지 말고 최상의 배우를 선택하세요. 정말로 할 사람이 없을 때 저를 찾아오세요.” 투쟁이 커지면 유명한 배우나 가수들을 부르는데 돈이 없고 힘들 때 찾는 배우나 가수들이 우리들인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을 안 가지고 있으면 억울해지고 동지들이 미워지고 멀리 못 갈 것 같아요. 실제로 상처받고 떠나간 사람들도 있고요. 내가 택한 길, 스스로 선택한 인생인데 그 길을 기쁘게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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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김말순’ 으로, ‘자포케’로 또 다른 누군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김지영 배우.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영 활동가.

누군가 힘들어하면 주저 없이 달려가는 김지영 동지.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마음의 저수지를 본 것 같은 인터뷰였어요. 

더욱 넓은 마음으로 더 멀리 날아갈 노래와 몸짓을 기대합니다.

 

▲ 신혜원 작가가 김지영 배우와 인터뷰를 하면서 김지영 배우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렸다.     © 신혜원

 

▲ 신혜원 작가가 인터뷰를 하면서 김지영 배우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렸다.그림을 들고 사진을 찍은 김지영 배우     © 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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