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종종 영화보다 잔혹하다" 영화 블랙머니를 보고

정주희 통신원 | 기사입력 2019/12/15 [15:38]

"현실은 종종 영화보다 잔혹하다" 영화 블랙머니를 보고

정주희 통신원 | 입력 : 2019/12/15 [15:38]

* 영화 블랙머니에 대한 감상 기사입니다. (영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투기자본의 '호구', 대한민국

 

블랙머니, 일단은 무조건 추천한다. 많은 사람이 이 좋은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중요한 사건을 상기시켜 주는 영화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고, 쉽고, 재미있게.

 

2003,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자산가치 60조가 넘는 외환은행의 소유권을 14천억 원에 사들인다. 금융자본이 아닌 론스타는 애초에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의혹투성이인 5장짜리 팩스를 근거로 그게 가능해진다. 막대한 자본과 국제통상법을 통달한 법조인들, 모피아라 불리는 검은 머리 미국인들의 힘을 모으니 그야말로 어벤져스 급이다. 론스타는 은행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 외환카드사와의 인수합병, 주가조작 등으로 재미를 본 뒤, 201147천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하나은행에 되판 뒤 유유히 발을 뺀다.

 

영화는 이 모든 내용을 속도감 있고, 정확하게 잘 전달한다. 마치 잘 된 써머리 같다. 그 자체로 충분히 정보와 주장을 담고 있지만 사건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더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사건을 자세히 알고 나면 영화가 부족해 보인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심각하고, 더 열불난다. 미국 자본은 더욱 잔혹하고 내부의 적들은 극도로 한심하고 재수가 없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론스타에 넘기는 방법 말고는 외환은행을 살릴 길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그 정도로 부실한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을 이미 많은 관련자가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불법 여부를 떠나 애초에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에 은행을 넘기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세계 어디에도 정부가 나서서 정부 소유의 은행을 통째로 투기자본에 넘겨주는 얼빠진 나라는 없다.

 

투기자본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이윤 추구가 자신의 사명이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면 은행은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이다. 금융의 공공성을 비전문가가 섣불리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뭐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자금이 절실한 중소기업, 생활비와 집값이 절실한 서민 등 진짜 필요한 곳에 대출해주고, 소박한 기회라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게 공공성이 아닐까. 투기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면 공공성을 키우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기관, 대기업, 중견기업 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1999년에는 제일은행이 뉴브리지 캐피털에, 2000년에는 한미은행이 칼라일에 넘어갔고, 그 연장선상에서 외환은행도 론스타에 넘어갔다. 당시에는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구제해주는 고마운 조치이며 선진금융 기법을 도입해 배울 수 있다는 주장이 득세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이들 외국자본은 금융이 갖는 사회적 책무나 공공성보다는 주주가치와 수익성을 극대화 해왔다. 그 와중에 이득을 본 일부 검은 머리들이 있을 뿐 국부는 끊임없이 유출되고 국민들은 갈수록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2017년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등을 비롯한 우리나라 6대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73.3%나 된다. 지분율이 100%인 은행도 두 군데나 있다. 지방은행도 50%가 넘는 수준이다. 2017, 6대 시중은행이 총 76,222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이 중 36.4%27,756억 원이 주주들에게 배당되었고, 배당액의 73.3%18,656억 원이 외국인에게 배당되었다고 한다. 매년 천문학적인 배당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미국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이토록 가혹하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막프로와 김나리, 현실에 존재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두 명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명은 막프로.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다. 덩치도 목소리도 얼굴도 모두 묵직한 바위처럼 흔들림 없고, 탱크처럼 수사를 막 밀어붙이는 남자주인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돈 많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높은 지위에 있는 검사도 아니며 경제에도 문외한인 그가 잘나가는 정·재계 인사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이 사건을 막무가내로 파헤치는 것 자체가 시원하다.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감각은 그 매력을 돋우는 무척 큰 덤이다. 그런데 현실에 이런 검사가 있을까? 정치검찰, 떡값검찰, 성추행검사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듣고 살아서 그런지 확실히 흔치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검사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런 검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론스타 투쟁의 주연은 스타검사나 인권변호사 같은 뛰어난 개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무도 모르게 묻힐 수도 있었던 론스타 불법 매각 사건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그 부당함에 대해 저항했던 힘은 어느 개인의 힘이 아니었다. 열심히 싸웠던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직원들,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시민단체와 언론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에도 물론 그 모두가 등장하긴 한다. 그러나 주연이 아니라 적절한 배경처럼 거든다. 고발 영화에 항상 나오는 원래 그런 거 하는 사람들정도로 그려진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멋진 주인공보다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진짜 주연을 영화에서도 주인공으로 그려주었으면 어땠을까. 그 당시 가장 앞장서서 싸웠던 직원 한 명의 스토리만 들여다봐도 그 절박함과 치열함, 진솔함에서 충분히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절박함을 만들기 위해 성추행 검사라는 딱지를 떼려고 한다는 설정을 넣은 거 아닌가. 아무리 정의로운 사람이라도 계기가 없으면 각성하기 어려우므로. 영화를 보고 나서 저런 검사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후배의 말을 듣고 무척 아쉬웠다. 원래 주인공이 가장 멋있는 법이니 당연한 귀결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의로운 몇몇 엘리트가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눈길을 끄는 또 한 명의 인물, 국제통상전문가 김나리 변호사. 그녀의 마지막 행동이 달랐다면 정말 열 받았을 것 같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사실은 이 정도의 캐릭터도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김나리는 자기 아버지가, 이광주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몰랐을까? 영화에서는 몰랐다는 설정이지만 그럴 리가. 사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몰랐다기보다는 같은 부류의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기업사냥이라고 불리는 인수 합병으로 돈을 벌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 불법만이 나쁜 게 아니라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약자를 등쳐먹는 것 자체가 나쁜 거라는 걸 모르는 그런 사람. 김나리는 인생에서 너무 늦게 선택의 갈림길을 만난 모양이다. 결국 자기가 선택한 그 길로 멈추지 못하고 나아갈 것이다.

 

론스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팔고 나서도 외환은행 매각 과정이 부당하게 지연돼 큰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한다. 조만간 국민 세금을 5조나 또 뜯길 판이다.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은 어디에도 없다. 양심도 인정도 정의도 없는 자본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주인인 사회를 만드는 것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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