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619] 무시와 복귀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20/01/04 [11:19]

[정문일침 619] 무시와 복귀

중국시민 | 입력 : 2020/01/04 [11:19]

 

신년사에서 남북관계개선을 강조한 적 있는 김정은 위원장이 2020년에는 신년사를 하지 않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관련보도로 신년 메시지를 발송하면서 “남조선”의 “남”자도 거들지 않는 바람에 일부 한국 언론들은 무척 허전한 모양으로 왜 그랬겠냐는 동기 분석을 해댔고 이제 따로 거들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하였다. 현재 국제, 국내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남을 별도로 언급할 이유가 없건만 그런 기사가 버젓이 발표되니, 새 소식이 없어도 글감을 만들어내는 한국 기자의 밥벌이 재주가 잠깐 부러울 지경이다. 

 

우연하게도 2019년 마지막 날 밤에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14분 길이의 동영상 신년축사는 정치, 경제, 군사 성과들을 소상히 언급하고 마카오와 홍콩도 이야기했는데, 유독 타이완만은 한 글자도 거들지 않았다. 타이완 언론들만 보면 중국 대륙이 타이완 선거에 엄청 신경을 쓰면서 간첩을 파견하고 돈을 찔러주면서 선거들에 개입하는 듯하고 한국 언론들만 보면 대륙이 1월 11일에 예정된 타이완 대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차이잉원 후보를 반대하고 국민당 한궈위 후보를 지지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둘 다 별로라는 게 대륙의 민심이고 정부 측에서도 관심을 표하지 않으며 타이완은 시 주석의 신년 메시지에서 무시될 지경으로 무게감이 없다. 

 

타이완의 선거들 특히 “총통”선거들은 막바지의 돌발사건으로 유명하다. 2004년 연임 전망이 어둡던 천수이볜 “총통”이 막판 유세에서 총알 두 발을 맞았다는 미스터리 사건으로 전세가 뒤집힌 게 제일 유명하고, 2016년에는 투표일 전날 유세 활동이 다 끝난 야밤에 한국인들도 꽤 아는 연예인 쯔위 사건이 TV 등을 통해 터지면서 중국이 타이완을 탄압한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줬고 결국 차이잉원이 동정표를 많이 얻었다. 

 

한국 언론들은 타이완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옮기기만 하고 언론사들의 성향을 전하지 않기에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한궈위를 30% 이상 앞서고, 그 이유는 홍콩 사태다. 그런데 타이완에서 객관성을 표방하는 언론인들의 주장을 보고 들으면(중국 대륙에서 그런 언론인들의 시사프로동 영상들은 그날그날 쉽게 볼 수 있다.) 뤼메이(绿媒녹색미디어, 차이잉원 소속 민진당의 색깔이 녹색이어서 민진당이나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는 매체들을 뤼메이라고 부른다)들의 조사 결과에는 수분이 많고 둘의 차이가 결코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한다. 인기가 상당한 한궈위로서는 막판에 상대방이 꼼수(타이완 표현으로는 아오뿌奥步)를 쓰는 걸 막아야 했다. 

 

헌데 올해는 돌발 사건이 선거일을 9일 앞두고 터졌다. 2일 오전 공군의 블랙호크 헬기 한 대가 불시착 혹은 추락하여 참모총장 선이밍을 비롯한 8명의 장성과 장교들이 죽고, 5명이 다쳤다. 타이완군의 역사에서는 물론 그 전신인 국민당 군대의 근 100년 역사에서도 그렇게 비명에 죽은 최고급 장성은 전례가 없다. 원인에 대해서야 이제 조사가 진행되겠다만, 일단 사건 영향부터 보면 차이잉원의 선거에 유리하다는 게 공론이다. 차이잉원은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 선거 활동을 3일간 중지하겠다고 선포했는데, 그는 “총통”으로서 그 3일간 계속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감성팔이도 많이 할 수 있으나 한궈위는 꼼짝 못 하고 사흘간 손발이 묶여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잉원으로서는 타이완독립을 지지하던 심복 선이밍을 잃은 게 큰 손실이면서도 선이밍의 죽음이 재집권에는 호재로 되는 판이다. 

 

공군 조종사 출신인 선이밍의 경력 가운데 특이한 건 30대던 1980년대 남북 예멘이 싸울 때 아랍인으로 변장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운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 배후에 어느 나라가 있었겠느냐는 발뒤축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겠다. 당년에는 물론 타이완 군인의 개입이 극비였으나 뒷날 선이밍이 고속 승진하면서 자랑거리들을 내세우다 나니 드러난 경력이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어떤 세력들, 어떤 인간들이 개입했는지는 아직 절대다수가 알려지지 않았고 영원히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만, 물밑에서의 쟁투는 엄청 치열하기 마련이다. 

 

생전에 비밀임무를 수행했고 사후에 수수께끼를 남긴 선이밍의 죽음이 타이완 선거에서 마지막 변수로 될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1일 0시 전까지 어떤 희한한 일들이 생겨날까? 타이완의 20여 년 선거를 좀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긴장할 테고 필자처럼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극적인 역전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짜릿함까지 느낄 지경이다. 

 

타이완 선거들의 막판 돌발사건 빈발과 달리 한국 선거들에서는 막판의 분열과 퇴출이 어느 정도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2년 대선에서의 정몽준 씨, 2012년 대선에서의 안철수 씨가 “나 몰라라”의 극치를 보여줬다. 정몽준 씨는 근년에 조용하지만 안철수 씨는 수많은 좌절을 겪고도 가뜩이나 큰 꿈이 더 부푼 듯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전에 쓴 글들을 뒤져보니 근 2년 전 바른미래당이 태어나던 시기에 필자는 약칭을 “미래당”이라고 쓰지도 못하던 상황을 비꼬았다. 창당 멤버들이 나가고 쪼개질 만큼 쪼개져서 중간에 들어온 손학규 대표가 명색이나 유지하는 바른미래당도 미래가 없지만, 국민을 운운하면서 정계에 복귀한 안철수 씨도 미래가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인이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없으면 자신도 남들도 고생시키기 마련이다. 이제 4월 총선으로 무능한 정객들이 좀 떨어져 나가면 한국 정치가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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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민통 2020/01/04 [19:00] 수정 | 삭제
  • 촌철살인. 잘 읽었습니다.
  • 쪾어만게 까불어 2020/01/04 [15:29] 수정 | 삭제
  • 외세을 믿고 나라가 아닌 나라에서 설치는거다
  • kim 2020/01/04 [14:32] 수정 | 삭제
  • 조눔의 미쿡새까지들이 에멘의 내전에 대만의 똥개군들을 썼다는 것은 당시에 추측만 했지요. 그러나 근거적인 것들이 나타나는 군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들을 더 많이 더 자주 올리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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