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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5. 김맹구 대진연 문예위원장

믿음을 받은 것에 은혜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혜원 | 기사입력 2020/01/07 [23:58]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5. 김맹구 대진연 문예위원장

믿음을 받은 것에 은혜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혜원 | 입력 : 2020/01/07 [23:58]

 젊은 미술인들의 단체인 <베란다항해>에서 활동하는 신혜원 작가가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활동가를 만나 매월 1회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신혜원 작가는 젊은 활동가와 생활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활동가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 인터뷰할 때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자주시보는 다양한 단체에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자기 역할을 소중히 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응원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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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맹구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문예위원장. 문예 운동을 하면서도 유튜버로 맹활약중이다.     © 신혜원

 

▲ 김맹구 문예위원장과 인터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믿음과 사랑으로 더 큰 사람이 되는 김맹구 문예위원장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 신혜원

 

: 자기소개해 주세요.

: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문예위원장 김맹구입니다.

 

: 요즘 잘나가는 유튜버이기도 하죠? 팬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 지나가면 알아보고 그러죠.

 

: ‘맹탱벼를 보고 노래악단 씽에 가입한 친구도 있다고 들었어요.

: 얼마 전에 정모를 했는데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랑 작곡하는 친구가 왔어요. 두 명이 들어왔어요.

 

: 정모까지 할 정도인가요?

: 팬 미팅을 가고 싶다는 댓글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해 보자 하고 신청서를 받았어요. 15명이 신청했는데 당일에는 9명이 왔어요. 수다 떨듯이 방송을 하는 게 좋대요. 같이 이야기하고 술 한잔하고 싶을 정도로 편하게 여겨져서 왔다고 하더군요. 우리 생각에는 너무 어색할 것 같아서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봤어요. 영상을 많이 봐서 그분들 입장에서는 내적 친밀감이 있어서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고 하셔서 신기하더군요. 청주에서 올라온 분도 있었어요. 10대 시청자가 많아서 수능 끝나고 정모하면 안 되냐고 하는 요청들도 있어요. 다들 정의로운 활동에 관심을 갖고 대학에 가면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댓글들이 많아요.

 

: . 멋지네요. ‘맹탱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 2018년 콘텐츠 제작 동아리 너나들이에서 기획 영상을 고민했는데 마침 생리컵 바람이 불고 있었어요. 제가 생리컵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생리컵을 쓰는 사람, 막 사용을 시작한 사람, 안 쓰는 사람, 이런 조합으로 찍기로 하고 사전공부도 해가면서 찍었는데 그게 대박이 난 거죠. 사람들이 페북에서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그래서 2탄도 찍고 그러다가 고정 프로그램이 됐어요.

 

: 비정기적으로 올라오는 거죠?

: 4개월? 6개월 정도에 한 번씩 올라와요.

 

: 그렇게 자주 안 올라오는데도 인기가 많네요?

: “이렇게 자주 나오지도 않는 방송을 왜 기다려?”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너무 재밌어서 10번씩 돌려본대요. 정모 때 보니 장면을 외우더라고요. 나올 때까지 돌려보면 된다고 내주기만 하라고 해요. 저희도 신기하죠. 패널 3명의 케미가 잘 맞고 저희가 봐도 웃기니까요. 그게 합이 잘 맞아서 그런 것 같아요.

 

: 최근 맹탱벼에 변화가 있나요?

: 채널이 분화됐어요. 초반에는 페미니즘 관련한 내용으로 찍다가 활동하는 내용을 결합해서 찍는 방향으로 간간이 찍었어요. 페미니즘 관련한 영상들이 대박 나긴 했는데, 검색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여혐 드라마영상이 추천영상으로 떠서 조회 수가 급등하고 대박 났죠. 그전까지는 조회 수가 400~500대에 머무르다가 그때 몇 만 회가 떴어요. 초보 유튜버들을 띄우는 정책 덕분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초보 유튜버들이 계속 영상을 올릴 수 있게 하려고 등록 후 1~2번째 영상을 올려준다고 해요. 그래서 첫 영상을 잘 만들어야 한다네요. 페미니즘 연관 동영상으로도 많이 떴다고 들었어요. 지나가는 분 중에서 알아보시는 분들도 꽤 계시는데 영상을 본 것보다 썸네일로 많이 보신 것 같아요.

 

: ‘맹탱벼의 케미는 여전한가요?

: , 여전히 안 맞고. 방송용으로 맞추죠.

 

: ‘맹탱벼자리 배치는 일부러 맞춘 건가요?

: 탱이 진행자니까 그냥 앉았던 건데 몇 번 하다가 맹탱벼라고 순서대로 이름을 붙였죠. 처음에는 맹탱벼라는 이름도 없었던 것 같아요.

 

: 다른 유튜브도 더 진행하시죠? ‘집회가는 여자들기획 의도는 뭐였나요?

: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점령했잖아요. 20대를 위한 영상 채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토론을 하면서 패널을 정했어요. 내용도 반일반자한당 내용으로 하자고 정리하고요. 셋이 시작했는데 팀이 좀 커져야 할 것 같아요. 촬영 편집 기획을 셋이서 하기에는 벅차더라고요.

 

: 나경원의원 사무실 항의 방문 집회 리뷰 같은 코너도 있던데요.

: 독특한 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시사 내용을 재미있고 유흥으로도 볼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현장에 가는 것과 반자한당 내용과 투쟁을 복기해보는 것을 해 보려고 한 거예요. 준비했던 마음과 고민에 대해 코멘터리 방송을 만들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에피소드가 없어서 어려웠어요. 영화 코멘터리 방송 같은 걸 잘 기획해서 해 보려고 한 건데. 우리가 한 투쟁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나 옛날 투쟁 했던 걸 가져와서 의미에 맞게 해 보고 싶어요. ‘오늘도 자한당은코너도 있고 현장에 가서 찍는 코너도 있어요.

 

: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어요?

: ‘여자들이렇게 하면 유입이 많을 거로 생각했어요. 집회, 여자들. 이슈 잡기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독특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원했고요. 요즘엔 국민들이 집회에 많이 나가니까 후기나 소감 같은 걸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검색유입은 많이 없더군요. 홍보가 잘못된 것 같아요.

 

: 그런데 어쩌다가 유튜버가 됐나요?

: 방송은 전혀 체질이 아닌데요. 생리컵은 너무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전에 나온 생리컵 방송들은 너무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버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요. 저는 원래 띄워놓고 빠지는 역할이었어요. 방송에 적합한 사람은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인데 저는 너무 진지하고 진행에도 자신이 없어요. 탱이 진행을 너무 잘해서 같이 하면 편해요. , 저는 종종 한 번씩 터뜨리는 박명수같은 사람? 벼는 정준하나 노홍철 정도고 탱이 유재석. 그런 느낌일 거예요. ‘맹탱벼는 이제 캐릭터가 고정되어서 현실과 괴리되는 방송인의 심정을 알 것 같아요.

 

: 띄워놓고 나오는 역할이란 어떤 건가요?

: 정형을 만드는 담당이죠. 극 쓸 때처럼 유튜브도 정형을 만들어야 해요. 버릇인 것 같은데, 저는 해야 한다고 하면 일단 하고 좀 지나면 다른 걸 하고 그래요. ‘시사낭만청춘극단 끼활동을 할 때도 배우랑 작가로 좋은 친구들 몇 명 들어와서 성장하면 저는 나와서 이라는 노래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씽이 안정되면 문학 동아리도 만들려고 했어요. , 소설 등이 문예운동의 모체잖아요. 글 분야 역량이 너무 약하니까 만들고 싶어서 여러 친구랑 얘기도 했는데 아직 못 하고 있네요. ‘청춘나미라는 팟캐스트 동아리 활동도 했어요. 1~2명 모집됐었는데 안착이 안 됐어요. 해보니 진행자가 내용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안 되더라고요. 추억 속의 동아리네요. 팟캐스트 제작 동아리 청춘나미. 그때는 팟캐스트 제작 동아리가 많았어요. 나꼼수가 뜨면서 진보언론을 키우는 시기였거든요. 615TV도 팟캐스트로 전환하고. ‘여기 대학생이 있다라는 이름으로 동아리 제작팀도 있었어요. 탱이랑 저랑 했는데 재미가 없어서 망하고 그 뒤 주권방송에서 청춘나미를 진행했죠. 그렇게 다양하게 해봤던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 제가 느낄 땐 맹님이 대학 문예 운동의 대모같은 느낌이거든요. 왜 그런 느낌이 들까요?

: 한대련(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 만들어지고 문화국을 세우려 했어요. 제가 한대련 의장 임기 끝나고 문화국을 하면 어떠냐 하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나마 끼가 있어 보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놀랐지만 그렇게 시작했어요. 저 말고는 문예 운동을 살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은 없어질 거라고 얘기하고. 오기가 생겼죠. 그랬는데 잠시 다른 역할을 하면서 남아있던 학내 문예패들이 더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연극 동아리를 만들면서 문예 운동의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그 뒤 청춘의 지성중에서 문예 운동 했던 친구들이 율동패와 노래패를 만들고 그 뒤에 영상동아리가 만들어지고. 그런 식으로 장르를 넓혀갔어요.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대학생 문예 운동 동아리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첫 문예 활동은 뭐였어요?

: 대학 1학년 때 지역 6.15 통일문예한마당에서 마당극을 하는데 할아버지 역할을 했어요. 새내기였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다음엔 밴드부도 하고. 그런데 저는 나서기 싫으니까 애들을 빨리 키워서 내보내고 그랬어요.

 

: 문예 운동 몇 년차인 거죠?

: 2008년부터니까 12년차네요. 와 진짜 대박이네. ~~~ 연극계에서는 이 정도면 중견 배우인데.

 

: 돌아보면 어때요?

: 많은 믿음을 받았다. 하나도 모르고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믿고 역할을 주면서 키워준 것같아요. 오래 한 것에 비해 성과를 더 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스쳐 떠나간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 학생 문예 운동만 12년인데. 엄청 많은 기억이 있을 것 같아요. 성과와 과제가 뭘까요?

: 전 장르의 동아리를 건설하는 게 목표였는데 풍물, 그림, 문학이 없어 그게 과제예요. 어려운 학교 현황에서 단위들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좋은 지향이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다양한 문예패가 생긴 게 성과이고요. 문예패들이 주축이 되니 대학생노래패연합(이하 대노련)도 생겼어요. 우리 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운동에 복무하는 학생 문예일꾼들이 많아졌어요. 조직의 자부심으로 문예패들이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아요. 옛날에는 율동패가 나오면 그냥 나온다고 했는데 지금은 역시 대진연 예술단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고 다른 단체에서도 인정하고 국민들도 인정해주시니까. 새로운 전성기가 온 게 제일 큰 성과인 것 같아요. 장르와 규모를 늘리는 것이 과제이고요. 창작물을 많이 만드는 것도 성과네요. 요즘에는 자기들이 창작한 노래들을 부르면서 우리나라 선배님들 노래를 안 불러요. 지금은 창작을 안 하면 이상한 게 돼요. 기존 곡을 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하고. 정세에 민감하게 창작하는 일꾼들이 많아지고 자체의 힘으로 하려는 힘이 강해졌어요. 율동도 2년 동안 창작한 게 30곡 정도에요.

 

: 성과의 요인은 뭘까요?

: 문예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어요. 중요하다고 생각한 정책과 방향이 꽃핀 것 같아요. 그 방향이 맞았고 문예역량이 배가되고 조직역량도 높아졌어요. 사회적 영향도 늘어나고요. 역할을 잘 수행했죠. 어려울 때 도움도 많이 주었어요. 도움과 집단적, 조직적 대책이 요인인 것 같아요.

 

: 활동하면서 행복했던 기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 되게 많았는데, 재밌게 했던 시절은 끼 활동하던 때예요. 그때 같이 했던 친구들이 열정이 많고 즐겁게 했어요. 공연도 엄청 많이 했고 전성기 시절이었어요. 보람찼던 때는 2018해난디동동공연할 때요. 뮤지컬 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씽을 만들면서 내년에는 합 동뮤지컬을 해야 된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했죠. 정세나 내용도 잘 담아서 11.3 반미 투쟁 준비할 때 도움도 많이 됐어요. 관객들도 많이 와서 감동했다고 하셔서 보람도 느꼈고요. 모든 걸 창작으로 만들다니 너무 대단하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만들지 고민이었는데 되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아마 서로도 신기했을 거예요. 스텝까지 40명이었거든요. 몇 달 동안 작업했어요. 연습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면서 한 거예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대반전, 꽃물결 등 실천 활동을 했고, 그전에는 6월 지방선거 투쟁과 통일대행진단 활동을 하고 공연을 하고 11.3 투쟁이 있었고. 이런 투쟁에서 문예 일꾼들이 핵심으로 튼튼하게 운영된다는 게 신기했어요. 아이가 1살에서 갑자기 8살이 된 것 같은 느낌? 언제 이렇게 컸지 하고 바라보게 되는 느낌이었어요.

 

: 힘들었던 경험도 있을 것 같은데요.

: 문예 운동이 홀대받고 무관심하다고 느껴질 때요. 힘든 건 지금? 동아리들이 조직적 성과가 많지 않아요. 회원들이 많이 나가서 대규모 동아리들이 어느새 소규모 동아리들이 됐어요. 실천도 잘해야 하고 역할은 높아지는데 두 가지를 다 하기 어려워요. 어떻게 이걸 뚫고 나갈까 고민이에요.

 

: 잘 되겠죠?

: 일꾼들이 잘 하면 다 잘 되죠.

 

: 이렇게 활동해온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 믿음? 믿음을 받은 것에 은혜를 갚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1학년 때 실천단 대표 같은 걸 하라고 시켰는데 감동받아서 울었거든요. 사람도 많이 없었고 단대별 담당자같은 거였는데도 감동적이었어요. 누군가 날 믿어준 게 처음인 것 같다면서 울었네요. 그 기억이 오래 남아있어요. 가능성을 믿고 같이 토론하고 대책을 세워주는 게 행복한 과정이잖아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과정. 동지들을 위해 역할을 하는 보람과 행복이요. 받은 믿음과 사랑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사람들도 가치 있어지고. 그런 생각으로 운동해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전망이 어떻게 되나요?

: 요구되는 일을 잘해야겠다. 제가 잘하는 일 말고 꼭 필요한 일에 제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통일되면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묵묵히 자기 일을 잘 하고 그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 마지막으로 자주시보에 한 마디 부탁드려요.

: 자주시보 파이팅! 민족의 언론이 되어 주십시오. 민족의 정론지가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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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문예운동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김맹구님을 만났습니다.

 

바쁜 화중에 유튜버로도 맹활약을 하고 계신데요, 다채로운 이야기에 인터뷰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믿음이 고마워 울었다는 맹님과 함께 하기에 학생 문예운동이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더욱 커나갈 학생 문예운동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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