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치유하는 삶] 3. 홍익인간 그리고 현미잡곡밥

황선 | 기사입력 2020/02/12 [09:13]

[황선의 치유하는 삶] 3. 홍익인간 그리고 현미잡곡밥

황선 | 입력 : 2020/02/12 [09:13]

  

지난해 본지가 기사화했듯, 황선 평화이음 이사가 몸에 이상이 생겨 요양 중입니다.

 

최근 황선 이사가 상당히 효과를 보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몸살림 방법을 개인 SNS를 통해 연재를 시작했기에 협의하여 본지에도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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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밥상. 파래김     © 황선

 

설과 정월대보름을 채식인답게 보냈습니다. 설날엔 처음으로 각종 전에 두부와 비지 등으로 고기를 대체했습니다. 떡국에도 사골육수는 쓰지 않고 대신 원하는 사람만 고명으로 얹을 수 있도록 고명용 고기를 약간 볶아 준비했습니다.

다른 명절에 비해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정월대보름은 한결 수월한 날입니다.

정월대보름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알뜰한 채식인의 전통을 지녔는지 잘 알려주는 명절입니다. 오곡밥과 마른 나물에 부럼을 깨는 풍속은 이 땅에서 영양학의 역사가 만만치 않다는 것, 우리가 앞날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지혜로운 문명을 가졌다는 것 역시 엿볼 수 있습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저도 현미 보리 율무 귀리 조 검은콩 팥 밤에 죽염을 조금 넣고 잡곡밥을 지었습니다. 아홉 가지는 못 되어도 집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호박고지 말린 가지 시래기 무나물 등을 만들어 봤습니다.

어릴 땐 명절 중 유일하게 달갑지 않은 명절이 대보름이었습니다. 오곡밥도 나물 반찬도 아이 입맛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걸 다 먹기까지 몇 날 며칠을 말할 수 없이 철학적인 그 음식들을 견뎌야 했으니까요.

역시 우리 집 아이들도 젓가락 한 번 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음식들을 그리워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듯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어머니 밥상 비슷한 것을 그리워하다가 사랑하는 이들과 이런 음식들을 나눠 먹는 날이 오겠지요.

 

잡곡밥과 나물 밥상 앞에서 유독 소식을 하는 아이들과 억지로라도 세시풍속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왜 이런 음식을 먹는 명절을 다 만들었을까?”

예상대로 묵묵부답.

억지로, 부럼 깨는 소리에 도망친다는 귀신 이야기며, 가을에 비축한 영양분을 추위와 어둠에 모두 소모하고 쇠진해진 겨울의 막판, 저장해둔 말린 채소들과 잡곡으로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했던 과학적이고 깐진 살림 솜씨에 대한 이야기, 겨울과 봄 보릿고개에 유독 거칠어지고 버짐이 피는 아이들 피부에 호두며 땅콩 등 부럼을 먹는 것이 피부에 오일 바르는 것보다 좋다는 이야기 등을 하다가, 또 다른 질문.

우리 땅에 역사 이전부터 나는 것 중에 가장 약효가 좋다고 여겨져 온 것은 무엇일까?”

... 고사리?”

필경 지난밤 흔한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 고사리 요리를 본 때문에 나온 대답.

우리나라 신화 같은 걸 생각해봐.”

노골적인 힌트를 주자 바로 나온 답은,

마늘!” “!”

우리가 초딩이야? 이런 시시한 문제를 내다니.”

마늘과 쑥이야말로 신비의 명약인가 봅니다. 곰이 사람이 될 정도의 효험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요.

곰을 숭상하는 토템의 반영인지, 아니면 소외와 고독을 견디고 심한 역질을 치유한 자인지 모르겠으나, 그 시대부터 마늘과 쑥은 '양약고어구'의 대표적인 물질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지난 10개월 유독 많이 먹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마늘이었습니다.

평소 다진 마늘을 얼려두고 요리할 때마다 조금씩 떼어 쓰던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냉동실에 쟁여둔 다진 마늘은 물론이고, 식사 때마다 구워 먹기도 많이 먹고 초마늘이나 꿀마늘을 만들어 찬이나 샐러드 소스로도 애용했습니다. 김치통으로 한 통은 너끈히 먹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아침 나물 요리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마늘을 숨겨 넣었습니다.

지난번 글에 두 차례 장기 단식을 끝내고 가을부터 몸에서 나던 나쁜 냄새가 사라졌다고 했는데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의 이선재 선생님은 냄새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자 그때부터 면역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흑마늘과 버섯 등을 챙겨 먹으라고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쑥의 경우엔 봄에 된장국이나 범벅을 해 먹는 일도 연례행사 이상 뜸한 일이라 지난 수개월 볼 수도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쑥의 기운만큼은 백분 활용한 듯합니다. 바로 왕쑥뜸 입니다. 집이 아파트다 보니 통풍이 잘 는 날 창을 모두 열어두고 뜸을 떠도 민폐가 되기 일쑤라 고민되던 차, 가까운 곳에 있는 한의원의 도움을 받아 필요할 때마다 왕쑥뜸을 뜰 수 있었습니다. (바쁜 시간에 긴 시간 침상 하나를 점하고 있는 것도 큰 민폐인데 기꺼이 양해해주신 한의원 관계자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동굴 속 곰처럼 마늘과 쑥 만으로 백일 밤낮을 견딘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백일 간의 생채식이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다만 엄격하게 적용하면 생채식의 경우 밥까지 가열하지 않은 통곡식을 먹어야 하지만, 위도 상당히 약해진 상태인 것을 감안하여 여덟 가지 곡식을 갈아 만든 8곡미가루 죽을 가능한 오래 먹고 현미잡곡밥을 지어 천천히 오래 씹어 먹을 것을 당부받았습니다. 그 후로 잡곡밥이나 생곡식 가루를 각종 채소에 버무려 먹는 등 나름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다행히 잡곡을 평소에도 좋아한 편이라 백미 밥이 그립다거나 잡곡이 물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난 5월 이후 지금까지 백미 밥은 한 번도 먹지 않았고, 흰쌀을 산 적도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조상들이 그토록 먹고파했다는 '이밥'이라는 것도 아예 도정해버린 흰쌀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콩쥐가 아무리 절구질을 해도 잘해봐야 5분도미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흰쌀을 먹기 시작한 것도 근대 이후라고 합니다.

 

▲ 들깨가루와 고추장, 현미잡곡밥과 냉장고 속 채소.     © 황선

 

우리의 몸은 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환웅이 이 땅을 택한 이래, 농경사회에서 통곡식과 채소로 섭생하며 살기에 적당하게 진화되어 왔습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백성에게 육고기는 그야말로 큰 명절이나 생일날 조금 맛보는 특식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상 차리기가 어렵고 고기 요리가 아니면 찾아 들어갈 식당이 없습니다. (치유를 시작하고 가능한 한 외식을 피해왔지만 몇 차례 외식을 했는데 궁리를 거듭하다 찾은 가장 적당한 곳은 우리 콩 모두부를 파는 식당이었습니다.)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니니 그에 맞춰 몸의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맞는 말이지만 무엇이 이 시대의 전형적인 삶인가를 우리들의 유전자가 파악하고 그것에 맞춰 변화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어쩌면 전형을 찾을 수 없어 대혼란기만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혼란기의 증상은 대사질환, 생활습관병의 대유행이 될 것입니다. 국민 30% 이상이 암에 걸린다는 현대가 바로 그 혼란기인가 싶기도 합니다.

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진보해온 인간의 역사는 큰 줄기에서 자연을 배반하기보다 자연을 이용해 왔고, 그 질서 위에 사람에게 더 유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조를 시도해 온 역사였습니다. 자연을 이용한다는 것이 자연을 배반하는 일이 될 때,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대재앙이 될 것입니다.

자본과 물색없는 사대주의가 일으키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토착문명이 괄시받는 분위기 속에서 들기름보다 아보카도 오일의 효능에 바삭해지더니 결국 망해버린 들깨 농사로 인해 아보카도 오일도 들기름도 고가의 값을 치르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버린 것과 같은 예는 넘쳐나지요. 고가의 값을 지불할 것을 강요당하는 소비자로 내몰린 사람들이 대오각성을 거쳐 다시금 역사를 이어갈 것을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만, 스스로 오천 년 이상 옳은 방향으로 진보해 온 내 몸의 신호와 요구를 잘 파악할 때 사회적 각성도 조금은 빨라지겠지요.

 

여튼 콩쥐의 절구질 정도를 거친 쌀(현미)은 물에 담궈 두면 싹을 틔우지만, 완벽하게 도정한 백미는 며칠 불려두면 썩고 맙니다. 현미잡곡밥에는 백미밥보다 식이섬유 뿐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미네랄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합니다. 채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밥만이라도 현미잡곡밥으로 바꾸면 건강에서 좋은 신호가 있겠지요?

 

요즘은 흔치 않지만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사회단체가 있다면 꼭 현미밥을 지어 드실 것을 권합니다. , 바쁘시겠지만 꼭꼭 씹어 드시고요. 대충 삼키면 다음 날 화장실에서 모두 다시 만나게 됩니다.

 

▲ 황선 이사가 몸살림 방법을 하면서 읽었던 참고서적들     ©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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