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따라』서평 "자신보다 동지들을 그리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 이창기"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0/02/18 [14:03]

『님을 따라』서평 "자신보다 동지들을 그리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 이창기"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0/02/18 [14:03]

 

 

 

민족재단에서 월간 '민족과 통일' 2월호가 발간됐다. 

  

민족과 통일 [이달의 서재] 이창기 유고시집 『님을 따라』서평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2020년 올해도 1월 중반이 지나 어느덧 2월이 되어간다. 여러분은 올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올해는 목표를 정해서 이것만큼은 꼭 해내야지!’ ‘작년보다 행복한 새해를 보내야지’라는 생각, 다들 적어도 한번쯤은 하셨을 듯싶다.

 

글쓴이는 작년 한 해, 8개월 남짓 “나는 과연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왔나”, “사랑을 받지만 말고 나도 주변 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기”를 주제로 한솥밥 먹는 식구들과 거의 날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의 주고받음, 자기 자신만 생각해 주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도 상처를 받는 나날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 그 자체로 마음투쟁이었다.

 

흔히 우리는 마음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동지(同志)라고 부른다. 동지애(동지사랑)라는 말도 있다. 가족, 친지, 민중,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함께 분투해 나가는 이들 모두, 자기 주변의 이들이 모두 동지다. 모두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시구 하나가 사무치게 다가온다.

 

“그대 외로운가 / 생각해보라 / 그대가 준 사랑을 /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그 많은 불면의 밤 / 시기와 질투로 모대기면서 / 남을 위해 /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 / 단 한 시간만이라도 뒤척이며 / 잠 못 든 적이 있었는지를”

 

위 시는 이창기 자주시보 기자의 유고시집 『님을 따라』에 나오는 「생각해보라」의 몇 토막이다. 시인으로서 기자의 필명은 홍치산, 『바보과대표』와 『10분 사랑』 이후 26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이 이 세상에 나왔다. 민족의 자주와 조국의 통일을 염원한 저자는 생전 학생운동, 기자활동을 통해 이 땅의 분단체제·국가보안법과 맹렬하게 싸웠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주변 이들, 동지들을 앞서 생각하는 마음은 참 한결 같았다. 

 

제목 『님을 따라』에서 ‘님’은 부모, 아내, 친구, 청년,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이 땅의 사람들(민중·민족)이다. 2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투쟁의 현장 최전선, 학생회실, 감옥, 가정 등 온 곳에서 동지들을 따라 배우고 실천해온 저자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를 따라 읽는 우리가 곧 ‘이창기 동지라는 님’을 그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황선 시인은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내와 딸을, 부모님을 닮은 민중을,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 돌멩이와 바람소리도 눈여겨보고 귀담아듣는 사랑의 시작에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땀 흘려 싸운 무명씨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현재는 물론 미래와 후대들의 역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은 가르쳐줍니다.”

 

이창기 기자는 「단순한 삶」이라고 이름 붙인 짧은 시에서 이렇게 썼다. 

 

“옳으면 가고 / 해야할 일이라면 / 목숨을 던진다. // 살면 얼마나 산다고 / 나의 안락만을 탐하랴 // 단 하루를 살아도 / 민족을 위해 / 인간의 존엄을 위해!” 

 

저자의 육신은 이 땅을 떠나 쇠했을지언정, 투쟁가(무명전사)로서 민중과 민족을 소중히 여기는 숨결만큼은 생생히 숨 쉬고 있다. 또한 사리사욕 없이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사람을 귀히 여기는 자세가 소박한 빛을 내고 있다. 

 

“밟힐수록 / 뿌리 굵어지는 민들레 // 쓸수록 / 지혜 깊어가는 머리 // 칠수록 / 뼛속 강해지는 주먹 // 나눌수록 / 정 돈독해지는 가슴 // 하여, / 수천년 / 굵어지고 깊어지고 강해지고 / 돈독해진 / 우리 민족”

 

-「민들레 민족」 중에서

 

 시집을 드는 순간 표지 앞면, 말린 민들레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자신보다 동지들을 그리는 저자의 깨끗한 마음, 그와 관련한 일화 한 토막을 전해드리고 싶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들어간 감옥에서의 짧은 산책길, 이창기 기자는 민들레 몇 송이를 소중히 집어 든다. 그이는 손수 말린 민들레 등 풀꽃들을 햇볕에 말리고 편지마다 넣어 아내를 비롯한 동지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민들레의 뜻은 ‘문 둘레에서 피어난 꽃’이다. 옛날 사립문 둘레에서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꽃, 문 사이에서도 억척스럽게 문 둘레에까지 마구 핀 민초(民草)다. 그 자체로 외세와 반동에 끝없이 맞서 싸워 끝끝내 이겨온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민초(民草)다. 이름 모를 풀꽃 하나 피어있는 길모퉁이 쉽게 지나치지 않고 늘 낮은 자세로 살펴 시를 썼다는 이창기 기자, 동지들을 향한 따뜻하고 깨끗한 마음이 인상 깊다.

 

고백하건대 글쓴이는 이창기 기자를 짧게나마 몇 번 만나 뵈었다. 민족 승리의 강렬한 마음을 담은 글로서 만난 이창기 기자와, 실제 이창기 기자의 모습은 퍽 달라 꽤 놀랐다. 사람들과 한데 모여 갈비탕 먹은 어느 날, 글쓴이에게 수줍은 듯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가에 선하다.

 

어느 날 이창기 기자는 글쓴이가 일하는 사무실에 오셨는데 피자를 쏘셔서 다 함께 나눠먹었다. 그 때 먹은 피자 두, 세 조각은 정말 ‘별맛’이었다. 정말 정말로 맛났는데 돌아보면 이창기 기자의 마음이 담긴 마음의 맛이 아니었나 싶다. 기자는 또 어느 날 민족의 통일을 그리는 흥겨운 노래를 들으시며 취재와 촬영으로 분주하던 카메라 손길을 순식간에 고운 춤사위로 바꿔냈다. 그리고는 더덩실 더덩실 유려하고 고운 어깨춤을 췄다. 

 

2018년 겨울이 가까운 때, 투병하시던 병실을 찾아 글쓴이가 “얼른 평양에 가서 함께 맛있는 피자 드셔야죠”라고 하자 이창기 동지는 빙그레 웃으며 ‘엄지 척’을 들어주시기도 했다. 그 뒤 며칠도 되지 않아 ‘이창기 동지’는 세상을 떠났다. 글쓴이는 황망한 마음으로 동지를 기리는 추모제와, 노제, 화장터, 장지까지 따라가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이창기 동지를 떠나보내는 영상을 편집해야 했다. 그 순간순간 대목들이 아직도 가슴 사무치게 마음에 남아있다.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수줍음이 많은 동지, 따뜻한 동지, 춤사위가 고운 동지, 민족의 힘을 깃들게 한 맹렬한 글로 지침 없이 투쟁한 동지. 생활한복을 입은 신선 같은 풍모와 양복을 입은 기자로서의 모습이 꽤 달라 보였던 동지, 그럼에도 늘 동지들을 앞세웠던 한결같은 동지. 글쓴이에게 이창기 기자는 그런 동지로 남아있다. 비록 마주침은 짧았지만 행복하고 따뜻한 그이의 마음을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가 읽은 『님을 따라』 역시 지금 한솥밥 먹는 동지에게 전해 받은 것이다. 이창기 기자의 더덩실 더덩실 고운 어깨 춤사위도 그 동지가 찍어 이 세상에 남아있다. 이창기 기자의 모습, 글을 통해 이창기 기자를 그리는 사람들-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으리라. 또 이창기 기자를 모르셨더라도 이 글과 『님을 따라』를 통해 알아 가실 분들도 계시리라.  

 

이창기 기자는 「사랑」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랑받는 것도 행복이지만 / 나의 사랑에 / 누군가 행복해 한다면 / 그건 존재의 의미입니다. // 사랑 받는 것보다 / 사랑 주는 게 / 더 큰 기쁨인 존재는 / 사람뿐입니다.”

 

이처럼 시집에는 동지들을 위해 고민하고 밤을 샌 이창기 기자의 모습이 가득하다. “그 많은 불면의 밤 시기와 질투로 모대기면서 남을 위해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 단 한 시간만이라도 뒤척이며 잠 못 든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마치 귀 곁 가에서 말씀하시는 듯하다. 올해 목표, 자기혁신 과제로 ‘동지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기’로 삼은 글쓴이는 위 시구에 눈길이 자꾸 머물렀다.

 

이창기 기자의 아내 김일심 선생님은 “남편이 바빠서 시를 못 쓰는 줄 알았는데 수첩이나 노트의 작은 귀퉁이에 적어둔 손글씨를 발견하면 반가움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기쁜 날, 슬픈 날, 많은 날은 시인 홍치산으로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탈고를 거치지 않은 시들을 선별해주시고 제작에 의견을 모아주신 지인들게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이 많지만, 너그러운 남편은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라고 전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온 민족이 뜨거웠던 2018년. 투병과 평양 취재를 동시에 결심한 이창기 기자는 그해 11월 2일자 마지막 기사에서 “투병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생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직감합니다. 나의 이 마지막 몸뚱어리를 남김없이 민족의 평화적 통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적었다.

 

시집은 이창기 기자와 마음을 함께 하는 동지들, 여러 ‘엮은이들’이 힘을 모아 펴냈다. 이창기 기자, 동지, 시인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부디 더 많은 분들이 『님을 따라』를 통해 이창기 기자의 마음 곁에 가닿으셨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패 우리나라가 이창기 기자를 그리며 지은 「그런 사람」의 노랫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통일은 꼭 된다고 말하던 사람 우리 민족을 정말 사랑한 사람

사랑하는 동지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모든 걸 주던 사람

그런 사람 그런 사람 바로 당신이에요

그런 사람 그런 사람 나도 따라 배우리

승리는 코앞이라 말하던 사람 우리 민족의 힘을 믿은 사람

통일 위해 함께 걷는 이 길이 진짜 행복이라 말하던 사람

그런 사람 그런 사람 바로 당신이에요

그런 사람 그런 사람 나도 따라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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