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치유하는 삶] 9 .명현 없는 치유는 없다

황선 | 기사입력 2020/03/26 [23:24]

[황선의 치유하는 삶] 9 .명현 없는 치유는 없다

황선 | 입력 : 2020/03/26 [23:24]

처음 단식을 할 때, 하혈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유난히 검은 피가 토하듯 쏟아져 나왔는데, 두어 차례 더 비치더니 사라졌습니다. 현상 때문에 더럭 겁이 날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배가 편해진 것 같아서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몸 여기저기에 평소 없었던 부스럼이 돋았습니다.

우선 팔꿈치와 귀 뒤의 예풍혈 (귓불 뒤, 붙이는 멀미약 자리 즈음) 주변에 종기 같은 것이 돋았습니다.

최근 년 탁자에 턱을 고이거나 엎드린 자세로 책을 볼 때 통증이 오는 정도의 팔꿈치 관절통이 있었습니다. 촛불 행진 중 악소리가 날 정도의 통증과 함께 주저앉을 만큼 갑자기 힘이 풀려버리는 요통과 좌골신경통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팔꿈치 통증 정도에는 파스 한 장 붙이는 성의조차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그곳에 종기가 몇 개 돋으니 새삼, '그래 여기가 아팠었지' 생각이 났습니다.

측면 머리의 경우 최초 발진이 일어났다가 스러진 이후에 다시 돋기도 했는데, 유독 오른쪽이 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두통이 잦은 편이었는데 대부분의 두통이 오른쪽 편두통으로 시작되어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류의 통증이었습니다.

여덟 살 땐가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 나름 절박하게 "선생님, 골이 흔들려요."라고 두통을 호소했는데, 선생님이 박장대소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엔 도대체 선생님이 이 심각한 상황에 왜 저렇게 웃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후에 어머니께 '아이가 어르신들이 쓰는 말을 써서 너무 재미있다'고 하셨다길래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했지만, 이후로도 일상적으로 나를 괴롭힌 두통은 대부분 그 '골이 흔들리는 것 같은' 증상이었습니다.

살면서 몇 차례 전신마취를 했었는데 마취에서 깨어날 때도 오른쪽 두통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이에 대해 평양산원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그곳의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남측 여성이 평양산원에서 아기를 낳는 일이 초유의 일이어서였는지, 아니면 그곳의 의료인들이 자신의 이름표보다 더 눈에 띄게 달고 있는 <정성>이라는 배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급작스러운 진통과 자궁파열(바로 그 일 년 전에 제왕절개로 맏이를 낳은 터라, 또다시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종편방송 등에서는 '평양에서 일부러 배를 갈라 낳았다.'고 떠들고 있습니다.)의 위험 속에서 의료진들이 보여준 관심과 세심한 보살핌은 매우 인상 깊은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산원에서는 남쪽 병원에서 어떤 식의 마취를 했었는지 묻고 나서야 같은 방식의 마취를 했고 깨어나는 과정에도 어디가 불편하진 않은지 거듭 확인하곤 했는데 그때 역시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두통이 있으면 진통제를 투여하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그곳의 의료진들은 그 문제를 두고 거듭 확인하고 고민을 하더니, "혹시 연탄가스 중독 경험이 있지는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기억엔 없지만, 돌쟁이 시절 경찰공무원 아버지의 발령지인 충북 단양의 단칸방에서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고 했더니, 그 상흔이 남았을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순간의 나의 증상조차 인과관계없이 공연한 것은 없으며 나의 생활과 흔적을 담고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처음 가볍게나마 생각해본 것 같습니다.

그 후로도 유난한 두통은 계속되었는데, 휴대폰이란 것을 쓰면서부터는 전화를 걸 때마다 두통이 일었습니다. 휴대전화를 단 몇 초만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해도 귀 주변의 머리가 아파왔는데, 역시나, 특히 오른쪽이 더 빨리 더 많이 아팠습니다.

그랬는데 이 과민한 오른쪽 귀 주변에서 아프기까지 한 발진이 와르르 나타난 것 입니다. 발진은 여드름 같기도 하고 두드러기 같기도 한 것이 한참 괴롭히다 사그라질 무렵엔 아토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차례 장기단식을 끝내고 수개월의 생채식 수련도 슬슬 마무리하면서 채식 위주 식단으로 안착할 무렵, 또다시 머리와 옆구리에 발진이 돋았는데 특히 머리와 목 주변의 피부가 수년 동안 아토피를 앓아온 사람처럼 변했습니다. 진물도 보이고 각질도 일어나는 한편, 거칠기가 수세미 같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무렵엔 70킬로대의 몸이 50킬로대까지 빠진 바람에 어쩌다 집에 들른 친구들은 말은 안 해도 다들 눈빛에 걱정이 가득해서 돌아가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신 담마진으로 수 차례 입원을 했었음에도 고름까지 터지는 류의 피부병, 특히 얼굴 부위로 집중된 증상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몰골이 흡사 털갈이 중인 늙은 짐승 같다고나 할까요?

몇 주를 정체 모를 발진으로 끙끙거리다 보니 또 어느새 그것이 사라져버리고 피부가 맑아졌습니다. 그리고 일상이던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코가 전체적으로 아팠는데 안쪽으로 종기가 돋은 것 같은 통증이 있으면서도 그게 터져 나오지는 않고 묵직한 아픔이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예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어 버린 코였습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이 일상에 지장을 얼마나 미치겠는가 싶어서 자꾸 무뎌지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난해 봄, 생선조림을 다 태울 동안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 일이 발생하고는 이러다 큰일을 내겠구나 싶어서 종합병원에서 후각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수십 개의 검진 키트로 검사를 진행한 결과는 '후각 완전 소실' 판정이었습니다. 쉴 새 없는 비염으로 비호흡도 거의 못 하고 지내는데 후각까지 소실했다니, 이로써 나의 코는 미관상 역할 말고는 제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된 것입니다.

워낙에 예민한 편인 후각이었습니다. 꽃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멀리서 전해지는 향기로 이 근방에 무슨 꽃나무가 있는지를 맞칠 정도로 예민한 후각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하늘 높이 핀 오동나무꽃은커녕 낮고 짙게 깔리는 라일락 향기조차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머리 쪽에 큰 충격이 있었냐고 묻는데, 내적 타격이라면 모를까... 후각 관련한 가장 큰 충격이라면 일제 시대 형무소 수준의 대구교도소에서 머리맡에 옆방과 변기통이 연결된 재래식 화장실을 두고 생활하게 되면서 한동안 코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화끈거리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게 그때로까지 퇴화의 시작이 거슬러 가는 줄은 모르겠지만, 그 시절을 기점으로 향기로운 것에 상당히 예민했던 후각의 기능이 뒷걸음치기 시작한 것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호흡과 감각, 중요한 두 기능을 소실한 코가 단식과 채식수련을 하면서 다시 살아나려는 것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기로 하자.'

여러 불편한 마음을 누르며 당장 이비인후과로 달려가 콧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인내하는 사이, 코의 통증은 어느새 한 달 앓이를 끝내고 사라졌습니다. 요즘도 아침나절이나, 유독 공기가 안 좋은 날이면 종일 비염 발작을 하곤 하지만, 강도가 한결 덜해졌습니다. 불가능한 것인가 싶었던 비호흡도 어느새 다시 가능해졌고, 최근에는 독한 화학물질이 가득한 화장품을 치운 자리에 너무 얼굴이 땅기는 경우에만 한두 방울씩 취하려고 둔 동백기름 향이 은은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 향기가 좋아서 다시 한번 맡아보려 하면 어느새 무딘 후각으로 돌아가 있어서 방금 맡았던 그 향기가 상상의 산물이 아닌가 싶어 하긴 하지만, 동백꽃 향을 흠뻑 맡아본 경험이 없는지라 상상으로조차 조향할 수 없으니, 잠깐이지만 소실됐다는 후각을 일깨우는 것은 진짜 동백꽃 향이 분명할 것입니다.

 

▲ 은은한 향의 동백오일. 마약성 진통제나 멀미약을 피부에 붙이는 걸로도 알 수 있듯 우리 피부도 식사를 합니다. 화학물질이 가득한 고가의 화장품 치우고 마련해두면 쓸모있는 잇템. 한살림에서 구할 수 있어요  © 황선

 

명현은 통증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선명한 피나 발진으로 보이기도 하며, 지독한 냄새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피었다 지는 꽃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진 후에야 그것이 명현이었음을 깨닫는 일도 흔합니다. 우리 인생, 우리 사랑과 꼭 닮았습니다.

'명현 없는 치유는 없다'라는 말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몸에서 낯선 통증이나 증상들이 나타나면 두렵습니다. 단식과 보식, 생채식과 운동, 명상, 공부... 무엇보다 한동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과의 단절 속에서 철저하게 통제해온 시간이 혹시 부질없는 짓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언급한 것보다 더 많은 반응들이 몸을 거쳐 갔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쉽게 절망하고 억지로 마음을 다잡는 일을 반복하곤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도 없고, 우리 사회 역시 속으로 곪은 부분이 있거든 다 터져 나와야 더 나은 사회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내 몸의 명현반응도, 우리 사회의 명현반응도, 치유를 위해 피해서는 안 될 승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명현이고 무엇이 병이 깊어지는 것인가? 저도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명현인가 악화인가 하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압니다.

우리가 긍정적 목표를 갖고 긍정적 노력을 할 때 나타나는 '투쟁적 상황', 그것이 치유의 길목에서 만나는 ‘명현반응’입니다.

 

▲ 명현 없는 치유는 없습니다. 겨울을 이긴 꽃이 감동이듯  © 황선

 

▲ 봄과 어울리는 쑥인절미와 고구마의 만남. 고구마쑥절미  ©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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