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꽃이 진 자리"

황선 | 기사입력 2020/06/09 [17:43]

시 "꽃이 진 자리"

황선 | 입력 : 2020/06/09 [17:43]

꽃이 진 자리

 

-황선

 

한 계절을 작별하기도 전에

왜이리 많은 추모의 글을 쓰고 있을까

 

죽어 마땅한 목숨들은 질기게도 살아남아

함부로 차 던진 목숨들을 비웃는데,

 

왜, 외면하며 살았어도

특별히 죄 될 것 없었던 

착한 당신들만

자꾸 세상을 등지나. 

 

삼베 머리수건 흰 나비 얹고

우리 모두는 눈물을 나눈 상주가 된다. 

같이 짊어졌으면 좋았을 그 무게를

배웅길에 간신히 나눠받아

흰나비 빚어 정수리에 꽂는다. 

때로 눈물은 피보다 진하다. 

 

부디 잘 가세요. 

당신으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했습니다. 

고단한 역사를 돌보던 당신의 그 작은 평화를 

끝내 지키지 못한 상주들은 

그저 죄송합니다. 

그러나 야만의 한 시절도 조만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것입니다. 

 

꽃이 진 자리,

눈물로 영근 열매

꽃보다 붉어집니다. 

 

(여성인권운동가 고 손영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로그인 후 글쓰기 가능합니다.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