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째 부당해고...복직투쟁 나선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백남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0/06/24 [06:43]

35년째 부당해고...복직투쟁 나선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백남주 객원기자 | 입력 : 2020/06/24 [06:43]

▲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에 나선다. (사진 : 노동과세계)  © 편집국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에 나선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및 한진중공업지회는 23일 오전 11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불법과 부당함 천지였던 김진숙 조합원의 해고는 부당한 해고”였다며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투쟁에 연대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1981년 10월 1일 스물한 살 나이로 대한조선공사 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었다. 직접 겪어본 비참한 노동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했고 1986년 2월 18일 당선됐다. 

 

이틀 뒤인 2월 20일 어용노조 집행부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제23차 정기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유인물 150여 매를 배포한 혐의로 총 3차례에 걸쳐 부산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갖은 고문 속 조사를 받았다. 결국 사측은 경찰 조사를 핑계로 1986년 7월 14일 김진숙 지도위원을 해고했다. 

 

2009년 11월 2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해 “한진중공업에서의 노조민주화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부당해고임”을 명시하며 한진중공업 측에 복직을 권고하기도 했으나 한진중공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해고 사유가 된 유인물. (출처 : 금속노조)  © 편집국

 

김진숙 지도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제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임을 분명히”밟힌다며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용노조 간부들, 회사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그렇게 맞고 짓밟히면서도 ‘저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울며 매달리던 저곳으로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능했던 시절, 법도 제도도 노동자 편에 서지 못했던 시절, 그 앞에서 노동자는 한없이 짓밟힐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며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건 잘못된 것은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그래서 김진숙 조합원의 복직은 지난 35년간 빨갱이와 해고자로 덧칠된 삶을 다시 사는 길이자, 우리가 앞으로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로 함께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라며 “김진숙 조합원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고 연대해 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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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조합원 기자회견 발언]

 

3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꿈

회사 규모가 줄어도 줄지 않았던 꿈

경영진이 몇 번이 바뀌는 세월 동안에도 바뀌지 않았던 꿈

해마다 다른 사안에 밀리고, 번번이 임금인상과 저울질 되면서 상심하고 소외된 세월이 35년입니다만, 저는 그 꿈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 꿈에 다가갈 마지막 시간 앞에 서 있습니다.

제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여기 사진은 40여 년 전 제 모습입니다.

왼쪽 눈 밑은 용접 불똥에 맞아 부어있고 저 시절엔 늘 어딘가 상처가 있었습니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불똥에 벌집이 된 땜쟁이 얼굴은 40여 년이 지나도 기미처럼 흔적을 남긴 채 아물었지만 가슴 속 상처에선 아직도 피가 흐릅니다.

늘 누군가 크게 다치고 자주 사람이 죽어 나가던 공장에서, 배 한 척이 바다에 띄워질 때마다 그 배를 만들 때 죽었던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담배에 불을 붙여 철판에 올려놓던 아저씨들.

진수식, 명명식은 회사측엔 경사였지만 노동자들에게 추모식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엔 빗물이 스미고 쥐똥이 섞이고 겨울엔 살얼음이 덮인 도시락을 국도 없이 넘겨야 했던 노동자들. 우리도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죄는 컸고 유배는 너무 길었습니다.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운 채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갔던 대공분실의 붉은 방, 노란 방.

니 겉은 뺄개이를 잡아 조지는 데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제가 처음 뱉은 말은 저는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입니다!” 였습니다.

사람을 잘못 보고 잡아 왔으니 내일이라도 돌아갈 줄 알았던 세월이 35년입니다.

 

억압이 안정으로 미화되고, 탄압이 질서로 포장된 불행했던 시대에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빨갱이가 되고 자유의 외침은 불순분자가 되곤 했습니다.

무수한 목숨들의 피와 눈물로 세상은 변했지만, 한진중공업은 하나도 변한게 없습니다.

5월이면 담장을 뒤덮던 아름다운 장미꽃을 베어내고 시멘트 담장은 교도소처럼 높아졌고 노동자의 숫자는 5분의 1로 줄었습니다.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좋아 본적이 없이 늘 어렵기만 하다는 회사는 매각을 이유로 또다시 구조조정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경영진이 살길이 아닌 노동자들이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왜 모든 고통은 노동자들의 몫이어야 합니까!

왜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올해 정년퇴직을 하는 어떤 조합원이 그러더군요.

그래도 또 안 짤리고 내 발로 나가게 돼서 천만다행이라고. 38년을 다니면서 노조 위원장의 장례를 두 번이나 치르고 선배와 후배를 땅에 묻고, 정리해고됐다 복직한 파란만장의 세월을 보내고 정년을 맞으며 후배들에게 닥칠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게 한진중공업입니다.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용노조 간부들, 회사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그렇게 맞고 짓밟히면서도 저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울며 매달리던 저곳으로 이제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감옥에서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은 얼마나 이곳으로 오고 싶었겠습니까!

크레인 위에서 129일을 깃발처럼 매달려 나부끼던 김주익 지회장은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겠습니까?

가장 비인간적인 삶을 살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꿈이 있는 곳, 박창수 위원장이 김주익지회장이 재규형님이 강서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민주노조와 우리 조합원들이 있는 곳, 그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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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용접사에서 한진중공업 마지막 남은 해고자로

김진숙 조합원은 1981101일에 대한조선공사주식회사(현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용접사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노동 현실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도 못한 도시락을 먹고, 불똥 맞아 타 들어간 작업복에 테이프를 발라 넝마처럼 기워 입으며 함께 일하던 동료가 부지기수로 다치고, 어느 날은 갑자기 감전 사고로 죽거나 떨어져 죽었습니다.

하지만 24년의 뿌리 깊은 어용노조는 그런 비참한 현실을 바꿔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986218일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대의원 당선 직후인 220일 노동조합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23차 정기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유인물 150여 매를 동료 노동자와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같은 해 520일부터 72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부산직할시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결국, 경찰 조사를 핑계로 1986714일 회사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했습니다.

 

다시 법의 판단을 받는다면 김진숙의 해고는 부당해고

당시 김진숙 조합원이 돌린 유인물은 A4용지 한 장도 채 안 되는 분량으로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를 다녀온 소회를 적은 지극히 평범한 유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대의원으로써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다짐의 지극히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빨갱이가 되고, 해고자가 되어야 했던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35년을 외부세력으로 낙인찍혀 살았습니다.

지금으로선 정당한 해고 사유도, 적법 절차도 지켜지지 않은 그야말로 명백한 부당해고였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계엄군을 투입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나도 모르게 간첩이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가 죽어 나가던 때였습니다. 노동자 하나 해고되었다고, 더군다나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되었다면 정당한 활동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 곧 유죄이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능했던 시절, 법도 제도도 노동자 편에 서지 못했던 시절, 그 앞에서 노동자는 한없이 짓밟힐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건 잘못된 것은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불법과 부당함 천지였던 김진숙 조합원의 해고는 부당한 해고였습니다.

그래서 2009112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는 김진숙 조합원에 대해 한진중공업에서의 노조민주화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부당해고임을 분명히 하면서 회사에 복직을 권고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를 끝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세상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다

현실이 힘들고 비참할수록 그 현실을 벗어날 출구를 찾고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김진숙 조합원은 세상을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품고 사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지난 35년을 살아왔습니다. 2011년 김진숙 조합원은 309일간 고공농성을 하면서 늘 깨지고, 다치고, 죽기만 하던 우리 노동자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 당하던 이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대의 순환은 계절처럼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예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지나간 일도 아니고, 끝난 일도 아니고, 이제는 더 이상 꿈도 아닙니다.

그래서 김진숙 조합원의 복직은 지난 35년간 빨갱이와 해고자로 덧칠된 삶을 다시 사는 길이자, 우리가 앞으로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로 함께 나가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김진숙 조합원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고 연대해 나가겠습니다.

 

2020623

김진숙의 복직을 바라는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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