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8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은 왜 친일파를 버리지 못하나
최근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 논란은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악질 친일파로 알려진 백선엽이 해방 후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한국전쟁 영웅’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역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이렇게 친일 청산이 좌절된 이유는 미국이 친일파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의해 좌절된 친일청산
“많은 사람들이 경찰로 다시 복무하고 있다. 그들이 일제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면 우리(미국)를 위해서도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에 의해 채용된 이러한 조선인들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 - 미군정 경찰 책임자인 윌리엄 마그린의 발언.
윌리엄 마그린의 말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미국의 비호 속에서 친일파들은 친미파로 둔갑하며 다시 대한민국의 요직을 꿰차고 앉았다.
미국은 한국의 독립적인 정부 수립이나 민주주의 등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소련 등 부상하던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한 교두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해방정국에서는 민중들의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가 분출하던 시기였고,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이 강했다. 미국의 입장에선 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이런 미국에게 있어 친일파들의 친일행적은 아무런 문제될게 없었다. 오히려 행정적 경험이 있고, 외세에 굴종적 모습을 보였던 그들이 활용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미국은 한반도에 발을 내디딜 때부터 친일청산에는 관심이 없었다.
조선주둔 일본군은 일본이 패망한 뒤인 1945년 8월 18일 미국으로부터 일반명령 1호를 접수한다. 이 일반명령 1호에는 현지 일본군과 일본통치기구는 ‘공인되지 않는’ 현지 세력에 항복하지 말고 기존의 법과 질서를 준수하라고 한 것이었다.
이에 더해 맥아더는 8월 28일 “나의 군대가 임무를 맡게 될 때까지 조선의 38도선 이남의 행정기구를 그대로 보존하며 명령을 준수”하도록 명령했다. 이로 인해 조선 총독부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단순히 치안대로 격하시켰다. 이처럼 조선인 스스로의 독립국가 건설의 꿈은 미국에 의해 짓밟혔다.
미국은 한반도 진주 이후에는 더 노골적으로 친일파를 이용해 정치를 장악해 갔다. 일본 고위관리 대부분을 미군정의 고문으로 존속시켰고, 대다수가 친일파로 구성된 친일지주집단, 식민지 관료집단과 관계를 이루어 갔다.
심지어 미국의 비호아래 자주독립 국가 건설을 꿈꿔왔던 독립운동가들은 암살되거나 납치·구금 되었다. 대표적으로 여운형(1947년 7월 19일), 김구(1949년 6월 26일) 선생 등이 백색테러에 의해 암살되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교육·언론·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 친일파들은 권력층으로 부활했다.
일례로 교육부분에서 김우종(1929년 생, 만 91세, 문학평론가) 씨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해방이 되자 상급생들이 주축이 돼 학교에서 친일파 선생들을 쫓아냈는데 1년 뒤 등교 길에 내 옆에 미군 짚차가 딱 서더니 일제시대 창씨개명 된 내 이름을 부르더군요. 봤더니 쫓겨났던 나카모토라는 영어선생이더군요. 이 선생이 왜 다시 학교로 오나 했더니 서울로 가서 군정청 문교행정의 고위간부가 돼가지고 나타난 거예요. 그는 선생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교육행정 지시를 엄하게 내린 뒤 뽐을 내며 돌아가더군요.”
친일파들은 일본에 이어 미국을 새로운 주인으로 섬기며, ‘반공’의 깃발아래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으로 ‘신분세탁’에 성공한 것이다.
이완용이 아들에게 남겼다는 유언인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라는 말이 적중하는 순간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혼란스럽던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를 ‘등용’했던 미국의 정책은 45년여가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한반도는 미국에게 있어 동북아 패권, 나아가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교두보다. 동북아에는 G2 국가로 불리는 중국이 있으며, 다시 부활을 꾀하고 있는 군사강국 러시아가 있다. 핵보유국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는 북한 역시 존재한다.
오히려 냉전시기 강성했던 미국과 달리 점차 힘이 쇠약해지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과거에 비해 동북아시아는 더욱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인 곳이 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미국 정책의 1순위는 우리 국민들의 인권도, 대한민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도 아니다. “전쟁이 나도 한반도에서 나고, 사람이 죽어도 그곳 사람만 죽는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미국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과거 친일파를 등용했던 것처럼 지금도 한반도 내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여 움직일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변신한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활개 치며 주요 요직에 자리를 틀고 앉아있는 이유다.
결국 미국과 미국을 비호하는 정치세력이 있기에 우리의 친일청산은 여전히 발목이 잡혀있다. 미국에게 있어 일본은 동북아 패권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할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사죄를 요구하는 우리 국민들 앞에 여전히 자신들의 동북아 패권을 위해 한미일 동맹을 들이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미국과 미국을 비호하는 정치세력이 있는 한 친일청산은 우리 국민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친일잔재의 청산은 ‘친미굴종’에 대한 청산과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 * *
일생을 항일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선열들이 해방당시 친일파의 부활을 보고 얼마나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겠는가.
김원봉(의열단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선생이 독립투사를 때려잡던 악질경찰 노덕술에게 해방 후 갖은 수모를 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원봉 선생은 의열단 동지인 유석현 선생 앞에서 “조국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도 한 번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 있소”라고 통곡했다고 한다.
비단 이렇게 통곡을 한 선열들이 김원봉 선생뿐이었겠는가. 또한 친일파의 후예들이 국회의원 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이 친일세력을 비호하며 한일동맹을 압박하는 모습에서 항일 선열들이 얼마나 분통을 터뜨리겠는가.
이제는 민중들이 항일 선열들의 울분을 풀어드려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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