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단편 소설] 월담(1)

황선 | 기사입력 2020/08/16 [16:31]

[황선의 단편 소설] 월담(1)

황선 | 입력 : 2020/08/16 [16:31]

* 황선 평화이음 이사의 단편소설 ‘월담’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

 

수영이가 남대문경찰서에 있다고 했다.

무슨 관공서인지 담을 넘었다는데, 도통 믿기지 않는 소리다. 그 아이는 머스마같은 구석이 없어서 걱정이었던 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제까지 어딜 가도 덩치가 작은 편이었고, 피부도 하얀 것이 아이들 속에서 괴롭힘이나 당하는 게 아닐까 늘 노심초사 하게했다. 

놀이를 해도 여느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집안에서 사부작거리는 걸 좋아해서, 때로는 빗자루를 들고 제발 나가서 놀라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 괜히 한 번 쯤 해보는 멀쩡한 문 나두고 담 타넘는 그런 짓에도 손사래를 칠 정도로 고지식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관공서 담을 넘었다니, 우리 내외는 뭔가 잘 못 온 전화가 아닌가 싶어서 전화통을 붙잡고 괜히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수영이 맞아요? 전수영이?”

“어디 담을 넘었다고요? 대사요? 미국대사관저요?”

미대사관저가 뭐야?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애가 거기 담을 넘어?

묻고 싶은 것은 수두룩한데, 전화를 준 쪽은 그리 알라는 식으로 통보를 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다. 

데리러 오라는 것인가? 어쩌라는 것인가?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수영이 친구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영이 아버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수영이 친구 현욱이라고 해요.”

“안 그래도 방금 남대문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네, 아버님 그 일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수영이랑 몇 몇 친구들이 어제 미대사관저 담을 넘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대사관저라면... 미국 대사가 사는 집 말이가?”

“네, 미국대사가 요즘 우리나라에 돈을 내놓으라고 자꾸 협박을 하고 그래서 거기 항의한다고... 수영이가요, 아버님...”

“뭐라꼬? 그느마가 정신이 나갔나? 거가 어디라꼬 담을 넘노?”

“아버님, 미국이 이번에 방위비분담금을 6조원이나 내놓으라...”

“그건 내 모르겠고, 공부하라고 서울 보내놨드만, 이 놈이 단단히 미쳤네. 미국이 달라그만 줘야지 벨 수 있나? 미국이 지켜준다고 돈 든다는데 지들이 항의는 뭔 놈의 항의, 그런다고 미국 가들이 지들 말 들을 줄 아나? 힘 없으면 돈이라도 긁어 바쳐야지.”

친구란 놈은 내가 길길이 뛰며 난리를 치자 개미만큼한 소리로 웅얼웅얼 수영이랑 같이 담을 넘은 몇 명은 불구속 훈방 조치 됐는데, 수영이에게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지 계속 조사 중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새끼 깜빵에 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고, 호적에서 파버리고 없는 자식 치면 된다고 이미 끊긴 전화에다 대고 고함을 치고 전화기를 내던졌다. 애 엄마는 전화통화를 듣고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얼굴이 새파랗다.

명색이 구미에서 이런 반골이 나오다니, 그게 하필 우리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자식도 자식이지만, 동네에서 이 일을 알면 그 수모와 뒷담화를 어떻게 견딜지 그게 걱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구미의 자랑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녀석이었다. 이 동네사람들은 박정희 각하의 생가며 동상을 최고 자랑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자기 논에 피는 못 뽑아도 생가 마당 비질은 참빗살보다 가지런히 해놓는 사람들이고 그것이야말로 애국인 줄로 알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안은 박정희 대통령만큼은 못 돼도 그 후임으로 제법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을 보인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본이 아닌가.  

수영이는 몸이 부실해 보이고 성격이 워낙 조용한 것이 걱정이긴 해도 원체 말썽이라곤 없는 아이였다. 공부도 알아서 하는 편이라 시골이라 못 가르쳐 어쩌나 하는 걱정도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공부를 잘 해도 우물 안 개구리겠지, 싶었는데 시골 학교를 전전하면서도 덜컥 서울 유수의 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 해 입시에서 구미를 통틀어 가장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한 아이가 우리 수영이였다. 동네어귀며 출신학교에 현수막이 나붙었고, 우리 내외는 그 즈음 몇 날 며칠을 막걸리를 내는 재미로 보냈다.

아이문제로 크고 작은 골머리를 앓던 사람들에게 순종적이고 알아서 할 일 하는 수영이는 얼마나 큰 부러움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친 것이다. 

어차피 서울로 유학 보낸 아이이니 길 건너 어머니께도 이런 사실은 비밀에 붙이고 동네사람들에게도 자격시험 때문에 당분간 고향에 걸음을 못 한다고 해두면 그만이다. 녀석을 걱정하기에 앞서 이런 것을 정리하고 애 엄마에게 당부하고 있는데 마침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건너마을에 사는 사촌누나인데, 뉴스에 수영이가 나온 것 같다는 거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미대사관인지 담을 넘어 들어갔다가 연행되는 장면에 수영이가 나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방금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통화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버럭하고 끊었다. 

얼굴이 파리한 아내에게 또 한 차례 입조심을 당부하는데 뜻밖으로 비난의 눈총을 쏘며 

“아니, 당신은 남들이 어예 볼까 그게 걱정인교?, 애가 끌려갔다는데?” 

하길래, 더 부아가 치밀었다.

“아를 어예 키웠길래 이라노?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분수가 있지.”

창을 꽁꽁 여며 닫고 종편 뉴스채널을 찾아 켰더니, 아닌 게 아니라 평소에도 늘 소란을 떨며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가 한층 더 경악스러운 목청으로 미 대사관저 담을 넘은 대학생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미 대사관저라는 곳이 어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못해도 이조시대 대군마마 정도는 사는 집처럼 기와와 추녀, 돌담 등이 멋들어졌다. 코쟁이들도 여기 발령 나면 이국적인 궁궐에서 팔자가 늘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까지는 미국 대사가 누군지 신경도 안 썼는데 이제 보니 해리 해리스라는 사람이었다. 

저이가 뭐라 했는지는 잘 안 나오는데 아이들이 사다리를 들고 와 담을 넘고 뭐라 뭐라 외치다가 끌려가는 장면은 여러 차례 반복해 보여졌다. 누가 봐도 흥분상태처럼 보였고 무뢰배들 같았다. 늘 보던 아나운서의 고조된 목청이며, 번들번들 기름진 낯짝이 갑작스럽게 역해서 TV를 꺼버렸다.

“저 새끼는 뉴스나 읽을 것이지 지가 판사라? 지가 뭔데 저리 흥분해서 지랄이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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