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단편소설] 월담(4)

황선 | 기사입력 2020/08/19 [11:34]

[황선의 단편소설] 월담(4)

황선 | 입력 : 2020/08/19 [11:34]

* 황선 평화이음 이사의 단편소설 ‘월담’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4.

 

집에 도착하니, 몸져 누워있을 줄 알았던 아내가 그 사이 미장원을 다녀왔는지 염색에 화장까지 하고 밝은 얼굴로 맞는다. 

수영이가 어쩌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여유가 느껴졌다. 

“아주 침착하더라고, 단식에 묵비까지 하고 있다는데, 쫄리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허, 그늠 자식.”

단식 이야기는 하지말까 싶었는데 애 엄마도 불현듯 의연해진 것이 알아도 이상 없을 것 같았다. 

“기사에 다 나오니더. 여론은 좋은 거 같던데, 애들도 그걸 알라는동...”

수영엄마도 기사를 찾아보고 댓글들을 본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수영이 친구들이 애 엄마에게도 응원문자에 비교적 호의적인 기사들을 여러 개 보냈다는 것이다. ‘햐 요놈들, 치밀하네.’ 웃음이 피식 났다.

학생들이 보내준 글이며 수영이 사진들을 보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싶어서 미장원에 가서 이제는 이마 쪽으로 꽤나 늘어버린 흰머리를 염색하고 드라이도 했다는 것이다. 머리 염색하는 동안 YTN뉴스에서 미대사관저 월담 뉴스가 나와서 조마조마 했으나 애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귀밑까지 발개져서 혹시라도 미용사가 눈치채는 것은 아닌가 했는데, 이쪽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젊은 미용사가 종알종알 그러더란다.

“아이고, 그래도 저런 학생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미국이 우리를 위해서만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매 번 뜯어가도 너무 뜯어가는 거지. 안 그래요? 나는 이렇게 생각은 해도 죽었다 깨나도 길에서 소리 한 번을 못 칠 텐데, 저런 학생들은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나는지. 참 대단해요.”

옆에 수건을 두르고 있던 할매들도 의외로 빨갱이 소리는커녕, 

“난 놈들은 난 놈들이다. 미국이 어디라꼬...”하며 묘하게 혀를 찼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내는 내가 하필 아들녀석 면회로 난생처음으로 경찰서 유치장이라는 곳을 경험하고 서울역 광장을 지나며 감정의 기복을 이 산 저 산 등산하듯 오르내리는 동안 미장원 의자에 앉아 세상을 두루 만난 모양이었다.

미장원에서 드라이 받은 머리가 망가지기 전에 아들을 만나러 가야한다는 것인데, 오늘 면회는 다 끝났고 내일이나 모레 쯤 가보자고 하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니 그래, 유치장에 있는 아들 보여줄라꼬 염색에 화장까지 했다꼬?”

“우리가 의연해야 아들도 안심하고... 든든해하지 않겠니껴? 아닌 말로 도둑질을 하다가 끌려간 것도 아이고, 큰 도둑질 막을라고 한 건데”

엄마가 아니라 변호사를 하기로 작정을 했는지, 누가 들으면 빨갱이 교육을 혹독하게 이수한 사람마냥 달변이다. ‘이 사람이 애를 어려서부터 반골로 키웠나?’ 하는 의심까지 들었지만, 얼마 전에도 내달이면 있을 박정희 탄신일 맞이 생가터 미화사업에 관련한 새마을 부녀회 모임에 어울렸던 사람인데, 그럴 리는 만무했다. 

아내는 해리 해리스라는 미국대사가 실은 엄마가 일본인이고 아버지가 주일미군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 해줬다. 게다가 그 대사가 아이들이 연행된 직후 인터넷에 띄운 글을 찾아 보여주며 흥분했다. 일본놈인지 미국놈인지 그 대사의 글 끝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9명이 체포되었고 고양이들은 무사합니다. 한국경찰들 감사합니다.’

저녁이 다 된 시간에 신문지국을 하는 친구 김영식이 찾아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새벽에 남의 집 신문을 죄 끌어 모아들고 왔으니 종일 사무실 전화통에 불이 났을 거였다. 만난 사람은 없었으나 그래도 요즘은 CCTV가 촌에도 곳곳에 있으니, 그런 범죄야말로 완전범죄는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왜 그랬노? 아침에 배달한 신문이 없어져가, 새로 싹 다 돌렸다. 귀신의 곡할 노릇이다 했디만, 니가 그랬더마?”

“그럴 일이 있었다. 미안타. 이유는 천천히 상황이 좀 정리 되만 얘기해주께. 그고 이제는 신문 고만 볼란다. 그 신문은 더 못 보겠다.”

“그래, 난도 이제 지국 문을 닫아야 안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종이책도 안 팔린다는데 신문을 누가 보고 앉았나? 노인들은 눈이 안 뵈니 못 보고 젊은아들은 스마트폰 때문에 안 보고, 거다 이 신문들 말고 다른 거 찾는 사람도 많고 구독자 관리하는데 상품권이다 뭐다 구독료보다 더 마이든다 안그나! 사양산업인기라.”

“이해해줘가 고맙데이.”

“아이다. 그나저나 수영이는 어떻노? 몸은 안 상했나?”

“... 알고 있었나?” 

“우리 준호가 계명대 다니잖나... 갸도 무슨 역사동아리인가 그런 걸 한다는데, 거기 단톡방에서 난리 났다고 카드라만.”

“세상 좁구마... 그래 준호는 뭐라도?”

“그 놈도 물이 많이 들었는동, 짱 멋지다고 카드라. 흐흐... 걱정이야 되지만도, 수영이네가 허튼 짓 한 것은 아이지 뭐. 여기 왜관에 미군기지에도 월남전에서 쓰고 남은 고엽제를 몰래 파묻어놨다고 안 카드나. 그래서 기형아도 많고 암환자도 많은 거라꼬. 요즘은 또 왜관으로 탄저균인지 세균전부대인지도 들어온다고 흉흉한 소문도 들리고... 분단이 죄라 남의나라 군대 눈치야 보고 있어도 미국이 우리나라 많이 빨아먹는 거는 맞는 거 아이라?”

“니... 신문 말고도 뭐 많이 읽는구마?”

“요즘 누가 신문 보고 공부하나? 그나저나 수영이 그 놈이 그렇게 안 봤는데 당돌하네. 집에도 놀랐지?”

“믿기질 않았는데 오늘 가서 보니 우리 수영이가 맞긴 맞아. 허허 웃으며 걱정 말라고 하는데, 욕이 한 마디도 안 나오더라꼬.”

“하이고, 자식들 어찌 클라는지 아무도 모른다. 얌전하던 수영이가 미대사관 담을 넘을 줄 누가 알았노. 암튼 대단하다. 우리 준호도 따라 할 태세던데, 단도리 좀 쳐야겠다. 이러다가 다들 홍길동 된다칼라. 허허.”

신문 절도로 시작된 하루가 나름 평화롭게 저물었다. 친구는 신문구독을 해지하는 기념으로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했다. 3대가 하루도 쉬지 않고 ㅈㅅ일보를 봐 준 것에 대한 감사라 했다.

집에 오니 수영엄마가 가볍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자식을 철창 안에 두고 잠이오나?’ 소리가 나오려다가 나도 단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 곁에 눕는다. 

날 밝으면 서울 가겠다더니 드라이한 머리가 헝클어 질까봐 평소엔 잘 베지도 않는 목침을 어깨에 걸치고 자는 품이 웃기다.

아무래도 녀석들에게 끌려 월담한 사람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끝)

 

월담 3회보기->http://www.jajusibo.com/5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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