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은 왜 미군기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까?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09/15 [17:12]

대학생들은 왜 미군기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까?

하인철 통신원 | 입력 : 2020/09/15 [17:12]

▲ 9월 8일 첫 기자회견 당시 사진  

 

대학생들이 지난 9월 8일부터 동두천 미군기지 캠프 케이시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농성을 하고 있는 걸까요?

 

지난 달 30일 오후 9시 30분, 포천시 영로대교에서 SUV 차량과 미2사단 210포병여단 소속 주한미군 장갑차가 추돌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SUV에 타고 있던 50대 부부 4명(남자 2명, 여자 2명)은 병원에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뒤에 있던 SUV 차량이 앞에 있던 장갑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아 발생한 참변이었습니다. 

 

경찰측이 처음에는 “(미군 측을) 직접 소환해서 수사할 정도로는 아니라고 보인다”며 오히려 미군이 피해자라고 두둔해 나섰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미군측이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소환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경찰측은 입장을 바꿨습니다.

 

▲ 안전조치에 선두와 후미에 호송차량 동반등이 명시되어 있다. [자료출처=외교통상부]     

 

▲ 궤도차량 이동 72시간 전, 지자체를 통해 주민들에게 알리게 되어있으나 포천시는 전달받은 사항이 없었다. [자료출처=외교통상부]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는 2002년 미선이 효순이 미군장갑차 압사사건 이후 2003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 특별위원회에서 합의한 조약입니다. 이 합의문에 따르면 궤도차량은 이동할 때 선두와 후미에 호송차량을 동반하고, 궤도차량 이동 72시간 전에 한국군에 통보를 하고 이를 지자체와 마을 주민들에게 전달하기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호위차량은 전혀 없었으며 포천시와 마을 주민들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주한미군은 한미 당국이 합의한 기본 안전조치조차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 한밤중 장갑차가 시냇길을 달리는 장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식별하기 어렵다. [자료출처=유튜브]     

 

이는 명백히 제2의 미선이 효순이 사건입니다. 주한미군의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대한민국 국민 4명이 또 다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는 ‘애도를 표한다’며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측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9월 4일 진보당 또한 주한미군이 안정 규정 위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8일에는 서울대학생겨레하나,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회, 진보대학생넷, 청년하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등 여러 청년∙학생단체가 미대사관 앞에 모여 이번 추돌사망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같은 날, 저희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하 ‘진상규명단’)을 꾸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며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 면담요청서를 내려고 하자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농성을 시작한지 24시간이 채 안됐던 지난 9일 오후 3시, 동두천시는 저희에게 코로나19 긴급 행정명령을 통보했습니다. 원래 실외 100인 미만의 집회가 가능했던 동두천시가 진상규명단이 농성을 시작하자마자 실외 집회 5인이내(4명이하)로 제한을 바꾼 것 입니다. 진상규명단 측에서 “명백한 미국 편 들어주기”라고 항의했으나, 동두천시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지키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행정조치를 강행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저희는 농성 방식을 바꿔 농성장에 4명이 남고, 미군기지 주변에서 1인 시위, 거리공연 등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사령관에게도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 용산미군기지 13번 출구 앞에도 농성장을 꾸렸습니다. 캠프 케이시 앞, 동두천 곳곳, 미 대사관 앞, 용산 미군기지 앞 등등 곳곳에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건현장인 포천시 영로대교를 직접 답사하기도 했습니다. 사건 현장은 처참했습니다. 장갑차가 들이받은 가드레일은 완전히 휘어졌고, 바닥에는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 장갑차에 의해 가드레일이 휘어있는 모습이다.     

 

▲ 바닥에 바퀴자국이 남아있다.     

 

사고 당시 영로대교 위는 가로등이 띄엄띄엄 켜져 있었으며, 사고가 난 도로 방향 쪽에는 가로등이 없고 주변이 상당히 어두웠기에 장갑차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은폐 엄폐를 위해 국방색으로 이루어진 장갑차가 밤 늦은 시각 어두운 시골길에서 쉽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저희가 밤에 찾아간 영로대교는 사고를 의식한 듯 가로등이 전부 켜져 있었지만 고장난 한 곳이 깜빡거리고 있어 비교 사진을 찍었습니다.

 

 

▲ 가로등이 켜져 있을 때와 꺼져있을 때의 비교 사진     

 

 

▲ 후미등과 가로등이 꺼졌을 때의 비교 사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가로등이 꺼지니 민트색을 띈 밝은 자동차조차 식별하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고가 난 가로등이 없는 쪽은 너무나도 어둡습니다. 물론 가로등을 다 키지 않은 포천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골에서 이러한 모습은 흔한 일입니다. 

 

결국 근본 문제는 주한미군에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포천시에도 군용차량 이동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뿐더러, 주민들이 도로 한복판에 장갑차가 있다고 선뜻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한미군측은 아직도 제대로 된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농성을 이어가며 기다리는 대학생들의 면담요청서 한 장 받지 않으면서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은 제2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입니다. 안전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건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군은 국민 앞에 나와 명명백백히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상을 규명해야합니다. 또한 이러한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조사와 책임자처벌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해당 미군 기지인 캠프 케이시를 폐쇄해야합니다. 진상규명단은 미군이 국민 앞에 나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할 때까지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 용산미군기지에서 농성 시작할 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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