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10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북의 통지문과 남북미 정상의 친서 교환, 그리고 종전선언
서해에서 어업지도원이 총격을 받고 실종(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아직은 실종이다)되는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뻔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북의 통지문이 오면서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는 통지문에서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 병마의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번 일로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자하는 북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처음 국방부 발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여론은 반북 일색이었다. 그러다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사과의 뜻을 밝힌 북의 통지문이 공개되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국가지도자의 발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국가의 위상과 직결되므로 신중한 외교적 표현을 고르게 마련이다. 국가지도자가 함부로 사과를 하면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며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유감이다’, ‘안타깝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또렷한 표현을 썼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다는 정치지도자부터 의대생까지 이른바 ‘사회지도층’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아본 적 없고 간혹 나오는 사과도 전혀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었던 국민 입장에서 북의 사과 통지문은 충격이었고 강한 울림이 느껴졌다.
물론 ‘국민의힘’ 당을 비롯한 보수적폐세력은 반정부 공세에 여념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을 가벼이 여겼다는 것이다.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이어 추석 기간에는 전국 곳곳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공세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사실 ‘국민의힘’ 당과 조중동-종편 등 보수적폐세력은 국민의 생명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8.15 코로나 집회를 강행해 온 국민을 코로나 공포에 떨게 한 장본인이자, 세월호 참사에 대통령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또 박근혜 정권은 2013년 임진강에서 월북을 시도하는 국민을 수백 발의 총탄을 쏟아 부어 사살하고는 ‘탄포천 완전작전’이라 기념하면서 사격한 군인들에게 표창장을 주고 기념비까지 세우려 하였다.
국경지역, 특히 군사지역에서 민간인의 이상 행동은 자칫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어느 나라든 군사지역에 민간인이 침입했다가 검문에 불응하고 탈출하려 하면 사살하는 게 기본 대응 방식이다. 이를 놓치면 오히려 국가 안보 문제로 비화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어업지도원의 경우 만약 월북(이것도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을 시도하다 우리 해역에서 군인에게 발각됐다면, 그리고 검문에 불응하고 북으로 달아나려 했다면 우리 군인의 총에 사살됐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 문제의 근본에는 분단이 있다. 그리고 남북 정상이 이미 합의한 서해평화수역을 설치했다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는 남북 정상 사이에 9월 들어 주고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내용도 참으로 따뜻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남북관계가 극도로 험악해진 상황으로 알았는데 정상 사이에는 친서를 주고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의 위로 친서도 날아갔다.
남북미 정상 사이에 친서가 오고간 사실과 함께 주목받는 건 지난 9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물론 유엔총회 연설 내용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국내외 전반에서 부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현 한반도 정세를 볼 때 종전선언이 과연 가능한가, 이미 물 건너간 종전선언을 새삼스레 왜 꺼내는가, 청와대의 정세인식에 문제가 있다, 이런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남북 정상 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이 공개되고, 북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오는 10월 10일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후에 취소)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제 종전선언이 진지하게 준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미국에 파견해 종전선언을 논의하였다. 미 국무부는 종전선언에 대해 “유연한 접근을 할 의향이 있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북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함께 내놨다.
사실 대선에서 열세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10월 깜짝쇼’는 매우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하지만 북미 사이에는 현재 아무런 대화 창구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중재를 요구했을지 모른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남북 정상 친서가 오갔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서해 어업지도원 사건이 터졌다. 우발적 사건일 수도 있고 종전선언 추진을 가로막으려는 어떤 세력의 음모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이 협상을 하고 공동조사를 명분으로 접촉을 한다면 화를 복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미국의 태도다. 북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원래 2018년에 하기로 한 종전선언을 지금껏 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이 어떤 종류의 ‘사과’를 해야 한다. 또 북의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의 정치적 목적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하지만 또 무슨 명분을 내걸고 막판에 협상을 깰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미국이 약속을 어긴 게 한 두 번이 아니기에 북은 종전선언 추진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다. 일단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아간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내용의 답장을 보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으로 날아가 종전선언에 서명을 하게 될지, 아니면 또 분위기만 잡다가 무위로 돌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어쩌면 10월이 무척 중요한 한 달이 될 수도 있겠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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