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동지를 추억하며

강이슬 | 기사입력 2020/11/11 [10:03]

이창기 동지를 추억하며

강이슬 | 입력 : 2020/11/11 [10:03]

“김정은 국무위원장님께서 서울을 방문하셔서 한 번만 뵙게 되면 내가 살아날 것 같다.”

 

이 말은 이창기 동지가 생의 마지막 시기 병문안 온 동지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동지가 떠난 2018년 11월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있고 나서 3차 정상회담이 곧 서울에서 열릴 것이라는 온 국민의 기대감이 높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백두산을 뚫고 나온 용암보다 뜨겁던 통일 열기가 미국의 ‘격노’와 ‘승인’ 놀음에 발목을 잡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아파하고 분노했던 이창기 동지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열어내는 3차 정상회담을 누구보다 바랐고, 그 염원의 마음이 저 유언에 뜨겁게 담겨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잘 살아갈 수 있었던 우리 민족에게 철조망을 씌우고 승인이니 뭐니 하면서 자주를 압살한 미국은 그야말로 이 땅의 암 덩어리였습니다.

 

그 암 덩어리를 도려내고 우리 민족을 살릴 길은 자주통일밖에 없음을 깨달은 이창기 동지는 그 길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자신의 온 청춘을 다 바쳤습니다.

 

그 투쟁의 과정에 수없이 많은 탄압을 받게 되었고, 그 탄압은 동지의 몸에 암 덩어리를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창기 동지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마지막까지 민족의 붓을 놓지 않았고 죽음의 그 순간에도 우리 민족의 하나 됨과 더불어 떠오를 찬란한 아침해를 열렬하게 희망했던 것입니다.

 

이창기 동지가 우리에게 남긴 수없이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헌신’을 꼽고 싶습니다.

 

동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사랑’도 있고, ‘열정’도 있고, ‘실력’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용광로에 끓여놓으면 ‘헌신’으로 집약되는 것 같습니다.

 

동지는 자기 것이 없었으며 모든 것을 조국과 동지를 위하여 바쳤습니다.

 

그야말로 남김이 없었습니다.

 

병실을 찾아오는 후배 동지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손에 안겨주고 싶어 했으며 이미 그전에 찾아온 동지들에게 다 주고 난 빈 지갑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며 아쉬워했습니다.

 

동지의 헌신 중의 으뜸은 요구 앞에 충실한 것입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많은 이들은 ‘시인 홍치산’을 기억해서 온 사람들도 있고, ‘기자 이창기’를 추모해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동지는 어떻게 되어 ‘시인 홍치산’에서 ‘기자 이창기’가 되었을까요?

 

자세한 내막이야 동지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동지들의 요구, 시대의 요구에 충실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술가에게, 그것도 이미 20대 초반에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에게 있어 자신의 장기를 뒤로하고 요구를 따른다는 건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국과 민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헌신적인 운동가만이 내릴 수 있는 결단입니다.

 

이창기 동지는 ‘기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기자’가 되었고, 동지가 만든 언론사는 자주언론, 민족언론의 기수로 오늘도 당당히 솟아있습니다.

 

만약 동지가 살아있었다면 이번 열병식과 미국 대선을 보면서 얼마나 흥분해서 명 기사를 쏟아냈을지 괜스레 가슴이 설렙니다.

 

조국과 민중을 사랑했기에, 찬란한 통일조국의 미래를 사랑했기에 승리를 의심치 않고 늘 웃으며 자신의 온 몸을 깡그리 바친 헌신의 화신 이창기 동지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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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지자 2020/11/11 [10:36] 수정 | 삭제
  • 껍데기세상에서 영생으로..이타적인 민족지사 이창기님의 얼과 그의 행적을 깊이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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