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글에 이어서
4. 대외 환경 변화가 미국에 미친 영향
(1) 충격과 공포 속에 파괴되는 미국
미국의 대외정책이 총체적 난국에 빠지고 국제질서가 점점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미국은 자기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속칭 ‘개통령’으로 통하는 강형욱 개 훈련사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자기를 집의 대장이라 여기며 폭군으로 군림하는 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집에 사는 가족들은 사납게 짖는 개가 무서워 슬슬 피하며 요구하는 것을 다 해준다. 그런데 강형욱 훈련사는 개가 짖든 말든 무시하며 강하게 압박해 개 스스로 자신이 대장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이때 대부분 개들은 충격을 받아 한동안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결국 자기 처지를 깨닫고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 뒤로는 가족들에게 함부로 짖지 않는다.
지금 미국이 딱 이 꼴이다. 미국은 밀림의 폭군으로 군림하던 야수였다. 그동안 자신이 짖으면 세상 모든 나라가 슬슬 피하면서 요구를 들어줬다. 가끔 말을 듣지 않는 나라가 있으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그러면 다들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훈련사가 나타났다. 아무리 짖어도 신경 쓰지 않으며 역으로 강한 압박을 가한다. 미국은 당황해서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또 인정할 수도 없다. 그저 충격에 빠져 헛소리만 하고 있다.
일단 미국은 북미 대결 과정에서 농락과 수모를 당했다. 북한은 한 편으로 트럼프를 달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미국을 위협했다. 북한이 강온양면전략으로 미국을 우롱하자 미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세계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하루 만에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가 번복해 비웃음을 사질 않나, 지구 반대편 서울까지 날아와 북한 지도자에게 제발 판문점에 나와 달라고 애걸하질 않나, 아주 가관이었다. 미국의 고위 외교당국자들도 북한을 한 번 만나기 위해 종종 서울에 와서 며칠씩 서성거리며 읍소하곤 하였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한미연합훈련 취소할테니 제발 선물을 보내지 말아달라며 애원하기까지 했다. 미국 외교 사상 처음 있는 초유의 대 망신을 당한 셈이다.
미국에게는 전쟁 공포도 처음이었다. 물론 냉전 초기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에 혼비백산하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소련의 직접적 위협에 놀란 것이 아니라 미사일 경쟁에서 밀린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중국이 최초의 핵실험을 했을 때도 앞으로 중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을 했을 뿐 중국이 핵공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가하는 전쟁 공포는 현실이었다. 트럼프가 당선자 신분으로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오바마는 “북한이 가장 큰 악몽”이라고 경고했다. 그 후 실제로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연했고 수소폭탄 실험도 하였다. 그러자 미국 전체가 공포에 떨었다. 하와이에서는 직원 실수로 미사일 공습경보가 울리자 섬 주민과 관광객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려도 놀라지 않으며 침착하게 경보기가 고장났는지 살펴보는 한국인의 모습과는 천차만별이다.
미국은 경제위기 출로도 막혀있다.
그간 미 독점자본가들은 해외팽창으로 돈을 벌어왔다. 상대국의 시장을 개방시켜 약탈하는 게 미 독점자본가들의 기본 방식이다. 또 경쟁국가를 강제로 주저앉혀 경제위기를 탈출하기도 했다. 80년대 경제위기는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한 독일, 일본의 희생으로 극복했다. 또 90년대 동구권 붕괴로 새로운 시장이 출현하자 미 독점자본이 하이에나처럼 몰려 들어가 일시적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2008년 금융공황과 그 연장선에 있는 2020년 경제파국의 출로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미 독점자본이 눈독을 들일만한 곳은 몇 군데 없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이 동북아시아다. 하지만 여기는 북한과 중국에 막혀 들어갈 수 없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미국이 스스로 걷어차 버린 동안 중국과 아세안 주도로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11월 15일 타결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미국이 동아시아 경제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약탈을 하지 못하면 미 독점자본이 중산층에 던져줄 떡고물이 사라지며 양극화가 심화된다. 그리고 양극화 심화는 미국 사회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북미, 미중 대결 결과는 정치, 군사, 경제 전 영역에서 “미국을 파괴”(밥 우드워드의 『격노』에 실린 매티스 전 국방장관의 발언)하고 있다.
(2) 충격과 공포의 결과
가. 제국주의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을 두고 흔히 고립주의(혹은 일방주의) 대 다자주의의 경쟁으로 해석한다. 보통 고립주의는 국제문제에 중립을 지키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다자주의는 국제사회에서 강대국(혹은 세계경찰)으로서 역할을 다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른 측면으로 일방주의는 동맹을 신경 쓰지 않고 미국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며 다자주의는 동맹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대체로 공화당은 고립주의나 일방주의, 민주당은 다자주의를 선호한다는 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과 분석은 그저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숨기기 위한 기만일 뿐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다자주의는 먹이가 100 있을 때 미국이 70을 먹고 나머지 30을 동맹에게 나눠주는 것이며, 고립주의는 먹이가 70으로 줄어들자 미국이 독식하겠다는 것이다. 다자주의는 먹잇감이 풍부하니 늑대가 양의 탈을 쓴 것이며, 고립주의는 자기 패권이 먹히는 지역이 줄어들자 자기 욕심을 채우려 동맹이 가진 먹이까지 뺏으려는 것이다.
고립주의는 결코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지배하는 걸 포기하는 것도 아니며 경제침략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자주의는 미국 우선주의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둘 다 미국 우선주의, 패권주의, 팽창정책일 뿐이다. 다만 독점자본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이름만 바꿔 부르는 것이다.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며 집권한 오바마 정부가 ‘스마트 외교’를 앞세우며 무려 7개 나라에서 전쟁을 진행한 것만 봐도 고립주의와 다자주의가 아무런 차이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전쟁을 가장 오래 수행한 대통령으로 기록에 남았다. (연합뉴스, 「NYT “오바마, 미국 역사상 전쟁 가장 오래 수행한 대통령”」, 2016.5.15.)
미국이 다자주의를 내세울 때는 동맹에게 나눠줄 먹이가 있을 때, 상대를 위하는 척 하며 우아한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다. 그런데 이제 이런 여유가 없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배타적 이익을 관철하려 한다. 이런 모습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바이든이 집권하면 다자주의를 내세우며 동맹 관리에 신경을 쓸 것으로 전망하지만 먹잇감을 나눠주지 않는 동맹 관리는 현실 불가능하다. 조폭들이 ‘형님’을 모시는 건 떡고물이 떨어질 때뿐이다.
나. 정치적 대립이 극심해진다
한 사람의 내면에도 다양하고 복잡한 마음이 존재한다. 하물며 국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내에도 대외정책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이 잘 나갈 때는 개별 의견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미국은 원래 대외정책의 경우 초당적 협력을 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대체로 미 외교협회(CFR)에서 정리된다.
그간 미국은 대외정책을 두고 강·온파 혹은 비둘기파·매파로 크게 나눠 적절히 섞어가며 적용하였다. 두 정책 혹은 세력은 서로 의지하고 상호작용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런데 강한 상대가 나타나 뭘 해도 안 통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제 두 세력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분열한다. 하지만 강·온파 어디에도 대책은 없다.
지금 미국은 분열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하러 베트남 하노이에 간 사이에 탄핵까지 시도하면서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이 자랑하던 초당적 외교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정권을 넘길 수 없다며 대선 불복을 선언하고 지지자를 선동한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도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곳곳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키고 있다. 분열과 대립을 넘어 증오가 증폭되는 상황이다.
다. 독점자본가도 분열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진짜 분열은 독점자본가의 분열이다. 미국이 잘 나갈 때는 서로 힘을 모아 이윤을 나눠먹던 독점자본가들이 서로 줄어든 먹이를 독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한다.
독점자본가의 분열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잘 드러난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자 미 군수업체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반면 북한 투자를 주장해온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국 경제를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짐 로저스 “韓 경제 미래 위해 주한미군 철수해야” 주장」, 2020.1.25.) 또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출연한 공익재단의 자매기관 ‘오픈 소사이어티 폴리시 센터’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9월까지 2천만 달러 이상을 들여 의회와 국무부, 국방부 등을 상대로 ‘대통령이 대북 군사 행동을 못 하도록’ 로비를 하였다.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독점자본가는 분열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에 반대했다. 상하이 주재 미 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상하이에 진출한 미국 기업 434개 가운데 69%가 미국의 관세부과 계획을 반대했으며 지지는 단 8.5%에 불과했다고 한다. 애플, 휴렛패커드(HP)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주요 IT기업들은 백악관에 대중국 관세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반면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자본가인 조지 소로스는 트럼프 정부가 유일하게 잘한 조치가 미중 무역전쟁이라고 칭찬했다.
미국이 위기에 몰리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걱정하며 중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자본가들도 등장했다. 지난해 4월 22일 파이낸셜타임즈는 「왜 미국의 CEO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걱정하는가」라는 보도를 통해 다양한 발언들을 소개했는데 “나는 자본가다. 그러나 심지어 나조차 자본주의가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고, 진화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립자 레이 다리오)거나 “시스템이 인구의 광범위한 부분에서 실패”(지주회사 엘러게니의 소유주 웨스턴 힉스)했다는 주장부터 “CEO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 … 예수조차도 노동자 중앙값 임금보다 500배 더 값어치 있는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디즈니 상속자 아비게일 디즈니)라거나 “나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 나는 백억 달러가 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높은 세금을 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라는 주장까지 다양했다. LA타임즈도 「‘자본주의를 개혁하라, 그렇지 않으면 혁명에 직면할 것이다’, 밀켄 콘퍼런스에서 억만장자들이 말했다」라는 기사를 통해 비슷한 목소리들을 전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독점자본가 주류의 입장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할 정도로 불안에 떠는 독점자본가가 늘어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인 독점자본가 속에서 나타나는 분열은 미국의 몰락을 상징한다.
라. 사회가 분열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미일 사이의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인들은 하나가 되어 단결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승리한 이라크전 당시에도 미국인들은 단결했다. 그런데 미국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패배하는 전쟁에는 심각한 국론 분열이 나타났다. 한국전쟁을 둘러싼 정치권의 분열, 베트남전 당시 대중적으로 진행된 반전운동이 대표적이다.
지금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하자 미국 내 사회적 분열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겪은 미국인들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찬반 질문에 46% 대 41%로 팽팽하게 맞붙었다.
중국과의 대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미국인들은 35%만 찬성(7월 조사)하더니 두 달 후에는 무려 67%가 찬성(9월 조사)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무역공격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 판단하지 못하고 계급계층별, 종사업종별 여론이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미국 사회의 분열상은 이번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역, 인종, 성별, 학력 등에 따라 미국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나는 야생 환경이 되어버렸다. 특히 미국 연방을 구성하는 주(state)마다 성향이 다른데 갈수록 연방의 틀에서 벗어나 독자의 길을 가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6년 대선 직후 트럼프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며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연방에서 탈퇴하는 ‘칼렉시트’ 주민투표 움직임이 일었다. 주 단독으로 세계 6위 규모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니 독립을 해볼만 하다는 것이었다. 2017년 2월에도 캘리포니아 주는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에 맞서 불법체류 이민자 보호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하면서 관련법을 승인했다. 올해 4월에는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에 맞서 동부해안 7개 주가 워킹그룹을 구성하였고 서부해안 3개주가 서부주협약을 발표하면서 연방정부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코로나19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인 개개인의 분열과 대립도 심각해졌다. 개인주의가 극대화되고 이웃끼리 경계하며 총기 사재기가 벌어진다. 국가 우월주의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너진 자존심을 채우기 위한 백인우월주의 같은 극우 이념이 들어차고 있다.
* * *
북한과 중국은 앞으로도 자기 사상, 제도, 군사·경제 노선을 약화시키지 않고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단결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외정책은 갈팡질팡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으며 그 불똥은 미국 내부 문제로 번져 분열과 대결, 국민 사이의 증오를 증폭시킬 것이며 다른 동맹국에도 튈 것이다.
지금까지 대내외 요인을 살펴볼 때 미 대선을 둘러싼 혼란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며 구조적인 배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미국 사회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추락하는 새에는 날개가 없고, 패퇴하는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는 법이다. 실패한 정치, 실패한 정책에는 단결이 아닌 분열이 있을 뿐이다. 대선 결과가 어찌되든 미국 사회가 앞으로도 대립만 격화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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