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읽기] 8. 우리를 외친 러시아 대통령, 푸틴

이인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11/28 [12:20]

[러시아 읽기] 8. 우리를 외친 러시아 대통령, 푸틴

이인선 통신원 | 입력 : 2020/11/28 [12:20]

러시아 벌판, 광활한 대륙, 우리는 러시아를 부를 때 ‘대륙’이나 ‘벌판’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는다. 러시아의 총면적은 1,707만 5,400km², 남북의 길이가 2,500~4,000km이고 동서가 9,000km에 달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지구를 여덟 조각으로 나눈 빈대떡이라고 생각했을 때 한 조각이 러시아가 차지하는 몫이다. 그래서 러시아 땅으로만 지구를 거의 한 바퀴를 돌고 러시아를 횡단하면 열 한 개의 시간대를 경험할 수 있다. 

 

러시아라고 하면 또 어떠한 것들이 생각날까?  

 

모스크바, 마트료쉬카, 소련, 톨스토이, 볼쇼이 발레, 시베리아 벌판 등 갖가지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렇다, 우린 아직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른다. 러시아에 대해 얘기를 하면 소련을 기억하시는 분들로부터 “러시아? 거기 소련 아니야? 빨갱이 나라.”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2000년대 들어와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시베리아 가스를 끌어오는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우리에게는 러시아가 가깝고도 ‘먼 나라’인 것이 사실이다. 이에 러시아라는 숲을 다 보여드릴 수 없지만 적어도 러시아를 정확히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 9회에 걸쳐 [러시아 읽기]를 연재한다.


 

[러시아 읽기] 8. 우리를 외친 러시아 대통령, 푸틴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두 번 연임하고 잠시 총리직을 맡았다가 2012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다. 이에 현재 러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서 푸틴에 관한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쓴다. 1부는 푸틴 대통령 집권 1기, 2기의 이야기이고, 2부는 푸틴의 총리 시기, 대통령 집권 3기, 4기를 다룰 예정이다.

 

▲ 푸틴 대통령 [사진출처-크렘린궁 푸틴 페이지]  

 

새로운 러시아를 염원한 국민들

 

러시아는 소련 해체 후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정책을 밀고 나갔다. 특히 옐친 대통령의 집권으로 온갖 부정적인 현상, 즉 체첸전쟁 등 소수민족 분리주의 운동의 지속, 연방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통제권의 약화, 정경유착 및 부정부패의 만연, 마피아 등 조직범죄의 기승, 경제위기의 심화 및 최악의 국민 생활 여건, 보혁(保革) 간 또는 의회와 행정부 간 첨예한 대립과 갈등 지속, 군기 문란 및 군사기 저하, 그리고 경제위기 등에 따른 현저한 군사력의 약화 등이 나타났다.

 

옐친의 1999년 12월 31일 조기 사임으로 대통령 선거는 예정보다 약 3개월 정도 빠른 2000년 3월 26일에 실시되었다. 11명의 후보 가운데 53.4%의 지지표를 얻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이 4년 임기의 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푸틴의 대선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물론 옐친의 마지막 집권 시기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과반이 넘는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옐친 시대의 악조건을 벗어나 강대국 지위 회복 및 사회·경제적 여건을 개선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바라는 러시아 국민의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외의 요인으로는 11명에 달하는 대선 후보 난립과 이들의 대선 준비 기간의 부족, 대통령 직무대행에 대한 언론 매체와 재계, 관계의 지지 등을 꼽는다.)

 

2000년 5월 7일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푸틴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러시아가 자유롭고 번영하고, 부유하고, 강하고, 문명화된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푸틴은 자신의 활동을 공공의 이익에만 의존할 것이라며 “아마도 실수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약속하고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일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흔들리지 않는 러시아를 만들다

 

푸틴 정부의 첫 번째 국가정책 목표는 국내적으로 ‘강력한 국가권력의 확립과 경제 재건’, 대외적으로는 ‘강대국의 지위 회복’이었다.

 

푸틴은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된 1999년 12월 31일 이후 출간한 각종 문건 ‘천년의 전환기에 선 러시아’, ‘신 국가안보 개념’, ‘선거 공약’ 등에서 빈곤 퇴치를 가장 우선적인 정책 과제라고 꼽았다. 푸틴은 빈곤 퇴치를 위한 경제 재건 없이는 강력한 러시아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달성 및 사회복지 지향적 경제 제도의 정착을 위한 국내외 정책을 강력히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당시 많은 이들은 열악한 경제 상황,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양극화 현상, 과학 기술력의 저하, 사회범죄 증가, 연방으로부터 지역 정부의 이탈 경향 등을 러시아 국익의 대내적 위협요인으로 지적했다. 푸틴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국가의 역할 강화, 경제개혁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 과학 기술력의 복원 및 빈곤층의 사회보장을 위한 국가개입의 강화, 반부패 및 범죄와의 전쟁, 연방 체제의 효율적인 메카니즘 창출, 외환 통제와 외국기업의 활동 규제’ 등을 제시했다. 특히 푸틴은 국가두마 개원 연설에서 토지법 등 지체되어온 개혁과 민생 관련 법안들의 심의를 촉구하고 정부와 의회가 대립을 탈피해 협력 정치를 열어가자고 당부했다.

 

푸틴은 경제정책으로 첫째, 15~2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 발전전략으로 둘째, 경제·사회 영역에 대한 국가조정기능이 강화되도록 셋째, 러시아의 여건에 가장 적합하도록 만들 것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푸틴 1기 정부가 제시한 장기 국가발전전략은 경제 제도 개혁, 사회제도 개혁, 행정 개혁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푸틴 정부가 추구해야 할 주요 정책목표가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 사회·문화적 가치의 보존, 국제 사회에서의 러시아 정치·경제적 역할 회복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푸틴 정부는 장기 국가발전전략에 따라 2005년부터 14배였던 최고 부유층과 최저 빈곤층과의 소득 격차를 10배로 줄이고 1999년 36.2%이었던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지출을 85%까지 증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이와 더불어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 공무원의 부패 척결, 권력 감시와 활발한 시민사회 건설을 위한 여건 창출, 예산과 재정, 연방 7개관구제도 도입 등을 포함한 연방 관계의 개선, 상원 및 지방자치제도 개혁, 범죄 척결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 시행 등과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

 

푸틴은 대외적으로 ‘전방위 외교’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모든 주요 국가들과 협력적 관계를 지향했다. 이러한 전방위 외교는 이중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첫째, 현실주의적 판단에 따라 국가 또는 지역에 따라 협력을 추진하는 방식이 차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러시아 전방위 외교는 서로 갈등 또는 적대관계를 보이는 국가들에 대해서도 동시에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물론 러시아의 지위 강화를 방해하려는 서방국가들의 정책, 국제관계에서 러시아 입장의 무시, 러시아에 대한 타국의 내정간섭, 국제테러 등을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 강력히 경고했다.

 

▲ 2000년 북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 [사진출처-크렘린궁 푸틴 페이지] 

 

푸틴은 대통령 취임 첫해에 북을 방문했고 이때부터 북-러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다. 푸틴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러시아를 압박하는 미국에 대항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 7월 소련, 러시아를 통틀어 처음으로 국가 정상이 북을 방문하면서 북-러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양국은 군사협력 강화, 국제 패권 반대, 주권 존중,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양국 우호협력 증진 등 11개 항이 담긴 ‘북-러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 공동선언 내용은 북-러 관계 복원과 미국 중심 세계 질서 반대로 압축할 수 있다. 이듬해인 2001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무려 23박 24일의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이후로도 서로 교류하며 북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가졌다.

 

러시아에서 독립하겠다는 명목으로 발생한 1차 러-체첸전쟁은 1996년에 끝이 났다. 1997년 5월에는 새 평화 협정을 체결해 러시아와 체첸 공화국은 5년간의 정전을 합의했다. 하지만 평화 조약을 먼저 깬 것은 체첸공화국과 분리되어 테러를 벌이고 다니는 이슬람계 이치케리야 체첸공화국이었다. 1999년 8월 7일, 이치케리야 체첸공화국의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와하비즘 이슬람교 원리주의 무장세력 1,000명을 이끌고 다게스탄 공화국 국경을 침범해 일부 마을을 점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동시에 모스크바 아파트가 폭파되는 테러 사건이 발생해 100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러시아는 체첸 반군이 민족주의적인 세력과 이슬람 원리주의적인 세력으로 나뉘었음을 알고 민족주의 세력을 앞세워 친러시아계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체첸 반군 조직은 두 파로 나뉘었다. 러시아군은 친러 성향의 체첸군의 도움을 받아 산악 지대를 점령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2차 체첸전쟁은 러시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푸틴이 러-체첸전에 보인 강경한 태도에 83%의 러시아 국민이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이는 곧 푸틴의 지지율 향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2003년 3월 체첸공화국 주민투표를 통해 체첸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대신 체첸이 러시아연방의 일부임을 재확인하는 새 헌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체첸 반군이 저지르는 테러는 계속되었다)

 

첫 번째 임기에서 두 번째 임기로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레바다 센터)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미래의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과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난의 극복‘(42.4%)이 가장 높았으며 ’관료주의와 권력층의 부패와의 투쟁‘(41.2%)’, 국가의 질서와 법의 구축‘(36.1%)이 그 뒤를 이었다.

 

푸틴은 대통령 첫 번째 임기 동안 정책을 추진하는데 몇몇 이들에게 수차례 압박과 방해를 받았다. 그들은 바로 사임 이후 처벌을 면하고 싶었던 옐친과 과두재벌 올리가르히였다. 옐친과 올리가르히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을 당선시키기 위해 언론 매체와 재계, 관계의 지지를 모아 주었다. 그런 까닭에 푸틴 집권 시기 친옐친 인사들은 잔류해있었고 정책을 정함에 있어 올리가르히와 적당한 타협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푸틴의 정책을 명확하게 실현하기 위해선 올리가르히를 척결해야만 했다.

 

푸틴은 2004년 3월 14일 대통령 선거에서 71.22%의 지지표를 얻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푸틴이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98년 경제위기가 발생한 후 러시아 사회에 팽배해 있던 불안요인이 상당히 제거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러시아 사회의 불안정성은 푸틴 정부에 들어서면서 크게 개선되었고 경제성장률 역시 4~7%대의 이전에 비해 고성장을 유지했다. 러시아 국민은 실생활에서 경제 성장 등을 실감하면서 마음속의 불안감이 점차로 사라져 갔다. 즉, 푸틴 정부가 수립한 국가전략 목표 ’강력한 국가의 재건‘이 비단 이상적인 정치적 슬로건이 아닌 현실로 재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이 갖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푸틴 정부의 다양한 개혁정책과 외교정책의 성공이 러시아 국민에게 정치적 희망을 확신케 하였다.

 

▲ 푸틴 대통령 [사진출처-크렘린궁 푸틴 페이지]  

 

옐친 시대의 잔재를 타파하다

 

푸틴은 첫 번째 임기 때의 미흡한 점과 개선 방향을 논의한 후 두 번째 임기의 국내 정책을 정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강력한 러시아 재건(대내적으로 정치적 안정과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모색하고 대외적으로 합리적 외교를 통한 위상 제고 모색), 국가통일성 유지(분열주의, 인종주의 등을 국익을 해하는 근본적 요인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 개입 및 강력한 통제시스템 구축을 통한 국가통일성 확보), 위로부터의 개혁추구(정치적 무기력과 관료의 무능력 및 부패, 그리고 비합법적 경제활동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통해 러시아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유도), 균형적 국가발전(모스크바 및 주요 몇 개 지역의 발전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극동지역까지 포함하는 발전전략 채택), 안정적인 국내정치 기반의 확보, 경제 성장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올리가르히는 공공연한 탈세는 물론이고 부를 해외로 빼돌림으로써 연방 재정의 궁핍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더구나 세제개혁, 은행 구조조정, 국가경쟁력 강화 등 각종 정부 정책에 완강히 저항해 푸틴의 정책에 훼방을 놓았고, 반정부적 성향의 정당에 자금과 조직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12월 국가두마 선거에서 친정부적인 통합러시아당이 전체 의석 중 49.3%를 얻었다. 실질적으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성향의 정당들이 전체 의석의 2/3 이상을 차지했고 이들이 있어 푸틴이 지향하는 국정 운영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푸틴 집권 1기부터 과제로 꼽힌 부정부패의 대명사 올리가르히 처벌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푸틴은 두 번째 집권 초 러시아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 베레좁스키와 구신스키를 체포했다. 베레좁스키의 경우 이전 자신이 벌였던 경찰 살해 사건과 체첸 반군과의 접촉 및 후원, 무기 지원, 돈세탁, 뇌물 등의 각종 범죄 행각이 드러나면서 브라질, 네덜란드, 영국 등을 돌아다니며 망명 생활을 했다. 베레좁스키는 공공연하게 푸틴을 비난하고 푸틴에 반대하는 야당 인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했으며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불법적인 정치 자금을 조달했다. 사기죄로 체포된 언론 그룹 미디어-모스트의 회장 구신스키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유코스의 사장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도 횡령, 탈세, 사문서 위조,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구속되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푸틴은 소련 해체 이후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러시아 핵심 산업을 정경유착의 특혜 속에서 독식하며 성장해온 올리가르히의 과도한 정치개입을 청산할 수 있었다.

 

국민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푸틴 대통령은 2004년 5월 26일 연방의회 국정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목표는 완전히 명확합니다. 그것은 국가의 높은 생활수준과 안전하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주의이자 발전된 시민사회입니다. 이로써 세계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복지에 있어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원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들을 달성하는데 우리들의 삶을 저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국가를 적극적으로 현대화해 그 기능이 러시아 발전의 현재 단계, 실질적으로 더 높은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단계에 이를 것입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2004년 연방의회 국정연설에서 러시아의 인구감소 문제와 함께 의료, 교육, 주거환경의 질과 접근성에 대해 언급하며 효과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국가의 경제, 환경, 사회 및 문화개선을 위한 문제해결 방안으로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를 도입했고 보건 부문에 대한 관리와 운영에 국가개입을 강화했다. 프로젝트는 구성원들의 삶의 질과 사회복지를 결정하고 인구통계학적 문제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영역을 중심으로 인적자본개발이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세부적으로는 ①건강 ②교육 ③주택 ④농업이라는 네 가지 방향으로 프로젝트의 구체적 방향을 모색하고 적용했다. 푸틴 대통령은 국가 우선 과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대통령 위원회를 직접 구성하며 이에 대해 “러시아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예산과 행정자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수익성 없는 투자라 하더라도 사회 활성화를 위한 소비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이러한 정책의 추진을 통하여 집권기간 동안 법치주의 확립과 사회적 안정, 6~7%대에 이르는 고도경제 성장, 중산층의 성장기반 마련, 주택, 의료, 교육 등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국제사회에서의 러시아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임 기간 중의 이러한 업적과 권력 기반의 강화가 맞물려 푸틴 대통령은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70%를 넘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했다.

 

더구나 2010년까지 GDP를 배로 증가하겠다는 푸틴의 약속은 현실로 다가왔다. 2003년과 2004년에 GDP 성장률 7.2% 이상을 기록하고 2005년, 2006년에는 6.6% 정도를 이뤄냈다. 이에 대한 러시아인의 대체적인 정서는 “이제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정도(GDP) 차이는 문제가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인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연평균 11%에 이르렀다.

 

푸틴은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4년과 2012년 두 차례를 제외하고 2001년부터 매년 ‘국민과의 대화(Direct Line)’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화, 영상통화, SNS 등을 통해 전국의 시청자가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면 푸틴 대통령이 실시간으로 답을 해주는 방송이다. 단적인 예로 2016년에는 총 300만 개의 질문이 쏟아졌고 3시간 40분의 생방송 시간 동안 푸틴은 약 80개의 질문에 대해 답했다. 이렇게 국제적 이슈부터 일상의 문제들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이 방송은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민이 가까워질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국민과의 대화 사이트 : http://moskva-putinu.ru)

 

▲ 국민과의 대화 [사진출처-크렘린궁 푸틴 페이지]  

 

국민들이 만족한 푸틴 집권의 8년

 

2007년 12월 2일 실시된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이 64.30%의 득표율을 얻어 전체 의석 450석 중 315석을 확보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 유권자들은 변화를 선택하기보다는 당시의 정치구도에 만족하여 안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추진한 지난 8년 동안의 정치적 성과를 지지하고 기존의 정책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 국민들은 향후 러시아가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을 당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계속 유지해 정책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이 국가두마의 압도적인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이 추진해온 국가주도의 발전전략이 대통령이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국민의 힘으로 만든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 3선 연임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푸틴의 최측근이자 당시 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후임으로 밀어주었다. 메드베데프는 2008년 1월 22일 대통령 후보로 공식 등록 후 처음으로 실시한 시민 포럼(Civil Forum)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의 기존 정책을 유지해 나갈 것을 밝히면서 경제성장 기조의 유지, 부패척결, 법치주의 확립, 대화에 의한 문제해결 등을 강조했다. 이렇게 2008년 3월 2일 대통령 선거에서 70.28%의 지지표를 얻어 제5대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메드베데프는 5월 7일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다음 날 푸틴을 총리로 임명했다.

 

옐친 시대의 부정부패, 빈곤 등을 타파하고 국민들의 생활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고 매해 ‘국민과의 대화’ 생방송도 하는 푸틴 대통령의 8년(2000~2008)이었다. 러시아의 보수파, 개혁파, 소수민족 등이 하나로 뭉치고 균등하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정하고 시행해나갔다. 물론 정책에 대해 비판이 있기도 했지만, 제때 바로잡아 국민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푸틴의 대통령직 이임사를 마지막으로 푸틴에 대한 첫 번째 글을 마무리한다.

 

-푸틴 대통령 이임사(메드베데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행한 푸틴의 연설; 크레믈린, 2008.5.7.)-

 

러시아의 시민과 친구 여러분!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취임은 민주적으로 권력을 구성하고, 국가의 모든 지역을 통합하고 정치적인 힘과 시민사회를 결합하는 위대한 순간이다.

 

우리 모두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들에게 부과되어 진행되어온 국가발전 과정을 지속하기 위하여 오늘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가장 높은 국가권력 수준에서의 변화를 성취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시민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으며, 항상 우리나라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면서 앞으로 전진해 왔다.

 

나는 만일에 국가가 국민의 복지와 모든 개인의 잠재력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중요시한다면, 우리나라는 현대화되고 혁신적이며 세계에서 영향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는 동시에 진정으로 사회지향성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승전기념일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과 국가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문명의 보존과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세계과학과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이끈 우리 인민과 민족의 강력한 정신적 힘을 느낀다.

 

친애하는 친구들! 나는 8년 전 러시아의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선서할 때, 공개적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충심으로 우리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나는 그 약속을 깨뜨리지 않았다.

 

나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정부는 도덕적으로 바로 서고, 약속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확고한 신념이다. 이것은 전문적인 기술 못지않게 중요하며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도움을 주는 결과를 얻는데 필수적이다.

 

오늘 국가 원수 직에서 물러나면서, 나는 러시아를 돌보는 의무가 시민으로서의 내게 가장 큰 의무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의무감은 수년간 대통령지로서의 나를 이끌어 왔으며 나의 남은 전 생애를 통하여 나를 이끌게 될 것이다.

 

나는 다양한 인종집단과 종교적인 신념들을 갖고 있는 광대한 나라 러시아는 구성원들의 단결심을 고양하고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즉, 국가의 통합과 목적의 공유, 국민정신을 통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시민여러분과 친구들! 나는 진심으로 대통령으로서의 8년간 재임 중 내가 느꼈던 여러분들의 신뢰와 이해, 우리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힘과 믿음을 갖게 해준 지지에 대하여 감사한다. 나는 여러분들이 우리가 목표를 위하여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극적인 순간을 함께 살아가면서, 일견 극복할 수 없는 장애로 보이는 것 앞에서조차 멈추지 않고 나아갈 때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렇다, 이러한 과업은 문제점이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제적이고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 냈으며 새로운 생활을 향한 큰 발걸음을 걸어왔다. 오늘 우리는 한두 달이 아니라 앞으로 다음 20년이나 30년의 목표와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우리들은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여러분들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참여와 지원만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감사하다.

 

오늘 드미트리 아나톨리비치 메드베데프에게 국가권력의 상징을 전해주면서, 나는 그가 러시아연방의 대통령으로서 행운과 성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우리 모두 그에게 우리들의 지지를 보내자.

 

다음 편은 푸틴 대통령 2번째 이야기이다.

 

[러시아 읽기] 7. 미국이 좋아하는 러시아 대통령, 옐친-> http://www.jajusibo.com/53444

트럼프는 푸틴 대통령 발바닥 때보다 못한 20/11/28 [16:39] 수정 삭제
  ▶ 푸틴 대통령이 소련 해체로 풍비박산 난 러시아를 재건하고 안정화하면서 발전시키는 동안 미국은 아들 부시와 오바마의 시대를 보낸다. 이 시기 정치에 발을 붙이지 못한 트럼프는 여전히 포르노 배우, 플레이보이 모델과 씩씩거리고, 창녀들과 오줌싸기 놀이, 선량한 여성을 꼬셔 내 백주대로에서 엉덩이를 까고 씩씩거리는 일을 반복하다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직을 도둑질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름하여 '러시아 스캔들'이고 성공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임기 내내 은인인 푸틴 대통령의 꼬봉 역할을 자청했다. 이때부터 코로나19 숙주도 백악관에 입성했고 서서히 감염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겨울, 재임 첫해 8만 명 이상이 독감이라며 사망했다. 따라서 코로나19 발원을 숨긴 건 최장 3년이 될 수 있다.

▶ 아무튼, 집권기간 20년을 초과해 30년을 향해 달리는 푸틴 대통령과 고교 시절 숙제한 적이 없는 게 들통나 4년 만에 쫓겨나는 트럼프는 서로 품질이 전혀 달랐다. 솔레이마니 이란 군사령관 암살로 이란 미사일을 맞고 뇌진탕에 걸린 트럼프는 대선 패배 후 이스라엘과 모략해 또 이란 핵 과학자를 암살하면서 청부살인업자 이미지를 강화했다. 세상 만인의 시선을 받는 IS 수괴 같은 인물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서운 인상보다 아직은 똥 기저귀 찬 모습이 더 어울리는 트럼프다. (img5.yna.co.kr/etc/inner/KR/2020/11/28/AKR20201128006800071_02_i_P4.jpg) 미국인은 신사라서 그런지 그를 똥개로 비유하지는 않는다.

▶ 전임자가 이런 꼬라지를 남기며 꺼지면 새로 오는 수괴나 꼬봉(참모)도 유유상종이 된다. 즉,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된 설리번은 미국이 코로나19 발원국 겸 창궐국, 살포국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조사는커녕 중국에 누명 뒤집어씌우는 건 여전하고, 동맹을 다시 긁어모아 따까리, 사냥개나 총알받이로 활용하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넘도 싹수가 노란, 글러 처먹은 넘이다.

▶ 코로나19 발원국 회피가 그렇게 주둥아리로 씨버리며 중국에 누명을 뒤집어씌운다고 넘겨지는 게 아니고 코로나19가 탄생하게 된 그 근원, 즉, 포르노 배우나 플레이보이 모델과 씩씩거리거나 창녀들과 오줌싸기 놀이를 하거나 선량한 여성을 꼬셔 강간하기 위해 백주대로에서 엉덩이를 까고 씩씩거리는 거지 소굴 환경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러는 넘들의 화학적 거세나 물리적 거세를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전 국민이 트럼프처럼 대통령 돼 보려고 이런 지랄을 벌이니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으면 간첩이나 불법 체류자, 또는 대선 후보 자격 미달자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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