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의 치유하는 삶] 23. 공포를 이기는 법, 사탕과 팥죽 사이

황선 | 기사입력 2020/11/29 [09:33]

[황선의 치유하는 삶] 23. 공포를 이기는 법, 사탕과 팥죽 사이

황선 | 입력 : 2020/11/29 [09:33]

‘시월의 마지막 날’, 혹은 ‘십일월’은 굳이 유행가 노랫말이 아니라도 어감이 운치 있습니다.  

녹음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무섭도록 빠르게 단풍이 들더니 툭툭 떠나버리는 잎새들 때문일까요? 뭔가 아쉽고 아련한 것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시월의 마지막 날과 십일월의 첫날을 채우는 뉴스의 상당량이 할로윈데이와 관련한 뉴스가 돼 버렸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이태원이며 신촌 거리를 누볐고, 코로나19의 와중 숨통이 뚫린 듯 기괴한 분장을 한 젊은이들이 해방감을 만끽하는 눈치였습니다. 전에는 극소수 영어유치원에서만 했다던 할로윈데이 파티를 대부분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통에 작은 요괴들이 거리에 출몰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뉴스가 될 만큼 그렇게 기념할 만한 날인가 궁금해서 찾다 보면, 고대 유럽의 켈트족의 액막이 풍습과 만나게 됩니다. 1년을 10개월로 나눈 그들에게 10월 마지막 날은 한 해의 끝이자 겨울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오늘날 달력의 10월의 마지막 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거라 여겨지지요. 오늘날 10월 말일은 가을의 복판이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계절을 정교하게 나누지 않았던 시절, 농부들에겐 현실적으로 두 개의 계절이 존재했을 겁니다. 하나는 농사가 가능한 계절이요, 하나는 견뎌야만 하는 계절이지요. 

일 년을 열 달로 구분하고 마지막 달에 즈음해 농사지어 수확한 것들을 갈무리한 사람들에게 10월의 마지막 날은 한 해의 끝이자, 새해의 입구이며 길고 무서운 겨울의 시작이었습니다. 유독 밤이 긴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춥고 긴 밤은 갈 곳 잃은 혼령이 떠돌기 좋은 시간입니다. 그 계절에 많은 노약자들은 세상을 등지기도 하니, 겨울의 추위와 어둠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실로 클 수밖에 없었을 터입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알 리 없었던 켈트족은 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그 밤 사람이 아니라 구천을 떠도는 혼령으로 분장하기로 합니다. 배고픈 혼령을 집으로 들이지 않기 위해 문 앞에 음식을 두기도 하고 말이지요. 훗날 사람이 우주의 규칙을 깨닫고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상상은 한 판 축제가 되었지만, 추위와 어둠은 구천을 떠도는 유령만큼이나 공포스러운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긴 밤과 추워지는 날씨를 걱정하며 나름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집단의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음력 11월의 동짓날입니다. 오늘날 달력으로 보면 50일가량 간극이 있지만, 켈트족의 전통 달력으로 보면 거의 비슷한 즈음이 아닐까 싶지요. 동지를 한 해의 마무리로 여기고 그날 밤이 가장 길어 온갖 역신들이 출몰하는 것으로 아니, 비슷한 위도의 유럽에서도 동북아의 우리와 비슷한 상상을 했었나 봅니다.

 

다만 귀신에 대한 대응법에서 차이가 나는데, 켈트족은 사람이 귀신으로 분장해서 혼란을 주어 피하는 방법을 택했고, 우리 조상들은 귀신과 맞서 싸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서양이 배고픈 혼령에게 과자나 사탕을 주어 달래는 방식을 택했다면, 동양은 역신이 싫어하는 것을 해서 달아나게 하는 한편, 역신을 이길 수 있도록 사람의 몸을 보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동양의 세계관이 훨씬 인간중심적이고 적극적이라는 것은 비슷한 절기를 맞는 의식에서도 이렇게 뚜렷합니다. 

 

동짓날 팥죽은 역신이 무서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상태로 긴 겨울 추위를 이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맞춤한 영양제였습니다. 팥은 단백질도 많고 비타민 B군도 풍부하고 몸을 따뜻하게 합니다. 팥죽에 넣는 찹쌀 새알심 역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기를 튼튼하게 하는 좋은 음식이지요. 팥죽에 자기 나이만큼 새알심을 넣어 먹어야 했다니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동네마다 모여서 함께 팥죽을 끓여 나눠 먹고 민속놀이 등을 하며 역신을 질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연조건으로는 생물에게 가장 악조건인 겨울 복판 가장 어둠이 깊은 날, 공동체의 힘과 보람을 제대로 이용한 것이지요. 

 

전부터 겨울이면 많은 생명이 꺼졌습니다. 한해살이 식물이나 동물이 아닌 사람도 겨울을 나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는 예가 많았습니다. 문명이 바뀌고 의학이 발달한 요즘도 사람들은 ‘노인들이 겨울을 무사히 나면 또 한 해는 사신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켈트족이 가장 두려워했던 굶주림이나 우리네 조상들이 두려워했던 돌림병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겨울엔 모든 신체 기관이 기능을 최소화합니다. 코로나 같은 변종 바이러스가 없어도 겨울은 노약자들이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이 겨울이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할로윈데이에 내돌리던 사탕은 최대한 멀리하시고 동지팥죽 같은 것은 제대로 챙겨 드시면 좋겠습니다.

참, 사탕과 팥죽 사이에 무엇이 있냐구요? 건강한 세계관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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