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전철마저 잠든 밤』 2화 '오늘도 밖이니 언제 들어갈 거야'

김수형 | 기사입력 2020/12/18 [17:38]

단편소설 『전철마저 잠든 밤』 2화 '오늘도 밖이니 언제 들어갈 거야'

김수형 | 입력 : 2020/12/18 [17:38]

9월 8일부터 11월 28일까지 대진연이 벌였던 미군장갑차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 투쟁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김수형 대진연 상임대표가 쓴 작품입니다. (편집자 주)


 

미군장갑차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투쟁 단편소설

『전철마저 잠든 밤』 2화  '오늘도 밖이니 언제 들어갈 거야'

글쓴이 김수형

 

▲     ©하인철 통신원

 

 

9월 23일, 오후 3시

 

피부가 검게 그을린 주한미군 한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우리 앞에 멀뚱히 서 있다. 어두운 밤이었다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위장무늬로 도배된 군복을 입은 졸병이다. 그는 ‘Punish the guilty (책임자를 처벌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이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된 듯 계속해서 우리를 뻔히 바라본다. 

 

캠프 케이시 정문 앞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우리들 중 영어 회화에 능숙한 한 동지가 이때다 싶어, 이곳 미2사단의 210포병여단 소속 장갑차에 의해 벌어진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에 대해 들어봤냐고 미군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른다”라는 대답만 내놓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흐리멍덩한 저 푸른빛깔 눈동자. ‘나는 모른다’. 책임을 질 수도, 그럴 생각도 없다는 한낱 조무래기 미군의 말이었지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왜 이들만 모르는 걸까, 매일같이 학생들이 피를 토하듯, 다 쉰 목소리를 온몸으로 쥐어 짜내가며 면담 요청을 이어가고 있는데, 왜 정작 아픔의 원흉인 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걸까. 아니,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걸 감추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겠지. 순간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눈가로 차오른다. 여기서 울면 지는 것 같아 어떻게든 억누르고 싶었지만, 이미 의도와는 다르게 눈물샘 주변에 눈물이 가득 고여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9월 19일, 자정

 

이젠 반드시 잠에 들어야만 하는 시각,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에게서 또 한 통의 문자가 와있었다. 매번 이렇게 찰나의 시간을 낼 여유와 정신조차 없는 긴 하루가 저물어가고 나서야 문자를 확인한다. 죄책감이 엄습해온다. 

 

‘오늘도 밖이니 언제 들어갈 거야’ 

 

학창 시절 때 매번 초, 중, 교 전교 5등 권에서 늘 벗어나는 일이 없던 멀쩡한 모범생 딸이 늦가을 추위 속에서 집에 있지도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아버지 마음에 꽤나 걸리셨나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부모님 속 썩이는 일은 결코 없었다. 맏이로 자라나 어릴 때부터 철부지 소리로부터 일찍 벗어난 편인 데다가, 늘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반듯함과 학생으로서의 의무 앞에 철저히 충성을 다해왔던 나였다. 여러 부문에 다재다능했기에, 상장도 곧잘 타와서 매번 백일장이나 사생대회에서 내가 타온 상품권을 펼쳐놓은 사진이 아버지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렇듯 내가 뭔가를 성취해 온 순간순간마다 무뚝뚝하게 “잘했다” 한마디를 툭 던지실 뿐이었지만, 누가 보아도 세상 가장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아버지였다.

 

‘올바름’이란 게 균형 잡기와도 같다면, 나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은 세계 최장 시간 오래 버티기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거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하다못해 23년 평생 일탈이라고 벌인 짓을 꼽으면, 7살 때 화장대 위에 놓여 져 있던 500원짜리를 훔쳐 고무 딱지 하나를 몰래 동네 문방구에서 사 온 것밖에 없었다.

 

그런 딸이 어느덧 수도권 대학에 합격하고 3년째 서울에 독립해서 살고 있다니, 오죽 아버지 마음이 불편하랴. 나이가 찰 때로 찬 고등학생 때도 친척들 사이에서 나는 강아지똥이라 불리며, 매일 얼굴에 생채기 하나 나진 않았을지 확인당할 만큼 애지중지 귀한 딸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 가족들의 열렬한 믿음 속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이제 시련의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 부호가 섞이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짧은 두 문장만으로도 얼마나 화가 잔뜩 나셨는지를 이젠 알 수가 있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감추려 했으나, 하필이면 지상파 뉴스에 대문짝하게 이번 진상규명단 기자회견 사회를 보고 있는 사진이 실려 부모님과 친척들이 단숨에 알아버리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숨겨봤자 의미가 없다는 판단하에 20대 청춘의 당돌함과 긍지로 잘 대처해보자는 말을 한숨과 함께 되뇄다. 내가 어떻게, 왜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이번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이 어떠한 문제인지를 장문의 편지로 작성해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초반 안부 인사까지 작성하고 나니 벌써 장문 문자 메시지로 전환되고 말았다. 막막했다. 

 

문득 아버지가 과연 내가 뭘 길게 설명하든 그걸 모르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자식이 하고 싶다는 걸 하니, 그저 사랑으로 보듬어주시고 눈감아주신 것 아닐까. 그래서 흔들릴 때도 많았다. 이게 맞을까? 내가 즐겁고 행복해서 하는 일이지만 가장 가까운 민중인 부모가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직면할 때마다, 

 

더 나은 사회를 갈망하며 내일을 열어나가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인가, 당장 아버지와 내가 현실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길인 공무원 시험, 자격증 취득과 취업을 택할 것인가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이어졌다. 

 

사실 내가 전자로 완전히 마음을 돌렸다고 해서 후자에 대한 고민이 옅어지거나 아예 사라졌다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여전히 학벌주의와 자본이 99퍼센트의 얇디얇은 목을 졸라매고 있는 이 악랄한 사회에서 내가 과연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는 많은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한때 나는 다른 이들보다 이쁨받기 위해 더욱더 투철히 공부하고 상장이란 품질보증서를 수집했었던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무엇이 더 아름다운 일인지를 내 머릿속에 각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양심,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삶과 지금 이 투쟁의 가치라고 나는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싶다.

 

‘왜 남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목소리를 내는가?’라는 질문은 그동안 동두천과 포천에서 실천을 벌일 때마다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다. 사실 맞다. 돌아가신 피해자 네 분은 나뿐만 아니라 함께 진상규명단을 꾸린 우리들과 전혀 연고가 없는 분들이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친 것은 분명 모두가 이번 사건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함께 슬퍼하며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리 없을 것이라 절대 단정할 수 없기에, 그 어두운 도로를 주행하고 있던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우리는 오늘도 쏟아지는 별빛 아래 잠이 든다.

 

내가 지금 일상에서 느끼는 익숙한 공기의 흐름과 도로의 잡음, 차디찬 시멘트 바닥의 촉감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누군가는 간절히 살아내고 싶었던 이 하루가 나에게 온전히 주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과 나를 둘러싼 하늘, 바다, 강, 그리고 이렇게 아무런 방해 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단잠에 빠질 수 있는 작은 평화가 앞서 살아간 누군가의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존재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순간, 내 삶의 의미는 전변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나의 삶을 만들고 지탱해준 이들을 위해, 지금도 이름도 모른 채로 잊혀져 가는 이들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수십 년간 한반도의 자주를 목놓아 부르짖은 민중의 피땀과 눈물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그 모든 결실들이 아름답게 꽃 피어날 우리의 내일을 가로막는 이들을 철저히 반대한다.

 

우리 투쟁은 채 끝나지 않았지만, 어느 샌가부터 차디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 겨울이 은근슬쩍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부디 나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서로의 후더운 품 안에서, 웃음꽃들이 흐드러진 화단 속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오늘도 나는 하루의 마지막 전철 굉음 아래 잠을 뒤척인다.

 

“누군가는 나에게 바보라 한다

몇달 몇년 하다가

우리 딸은 알아서 잘하니까

저러다 말겠지

 

걱정의 말들이 떫은 이유는

진심이라 그런 거겠지

 

우리를 지켜준다며 이 땅 점령한 외국의 군대가

장갑차로 국민을 밟고 지나는 세상에서

우리 목에 칼을 들이미는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나는, 엄마는

우리는

안전할 수 있겠냐고

그런 것들을 못 본 체

사람으로 살 수 있겠냐고

 

우리는 동두천 다리 아래서

오늘도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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