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참사 피해자들 ‘언제까지 목숨 걸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가’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1/04 [17:17]

재난참사 피해자들 ‘언제까지 목숨 걸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가’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1/01/04 [17:17]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4일 오후 2시 국회 농성장 앞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재난참사 피해자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가습기 살균 피해자, 세월호참사 유가족 등이 참여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순미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총연합’ 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민을 구제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법이다. 법을 어긴 자는 작든 크든 그 크기에 비례한 배·보상과 처벌과 사죄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모든 시민의 안전을 위한 법”이라고 짚었다. 

 

유 위원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목적이 내 가족과 이웃이 어떤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목숨 걸고 일터로 나가고, 목숨 걸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목숨 걸고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둘 수 없다”라고 강조하며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누구나 시민재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시민재난참사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내가, 내 자식이 목숨을 위협받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으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대로 제정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선양(산업재해로 사망한 김재순 노동자의 아버지) 씨는 “가족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은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제2의 김 군, 김동준, 김용균, 김태규, 김재순 노동자처럼 시키는 일을 하다 죽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으며 일하게 해 달라 요구하며 냉기 가득한 난장에서 30여 일 가까이 곡기를 끊고 있다”라며 심정을 토로했다. 

 

김 씨는 “(국회는) 더 이상 국민과 시민, 노동자와 가족을 잃은 유족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말라. 기업주와 사업주를 보호하는 법안 만들지 말라. 10만 국민청원으로 이루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누구의 눈치도 말도 듣지 말고 원안 그대로 꼭 제정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부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문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와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10만의 국민동의 청원으로 제출한 원안대로 제정하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오는 5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 회기 내에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에 밀려 정부가 제출한 안은 ‘재벌 보호법’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아래-----------------

 

기자회견문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요구합니다.

 

국회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해야 합니다.

 

우리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국회에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재난과 참사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에 맞닥뜨리고, 이 죽음의 원인을 알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재난과 참사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운이 없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 참사는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가습기살균제로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은 것은 옥시레킷벤키저 등 기업이 유해성 실험결과를 은폐하며 버젓이 상품을 생산 판매했기 때문입니다. 대구지하철참사는 불에 취약한 내장재를 사용했고, 피난로와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대구지하철공사의 책임입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두 동강 난 것은 정부와 국회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기업의 탐욕 때문입니다. 인하대 봉사단이 춘천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산사태라는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군부대가 철수하며 산을 정비하지 않아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고, 산사태 위험지역에 민박집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싸우지 않으면 원인조차 밝힐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피해,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는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만 징역 6년을 받았을 뿐입니다. 대구지하철참사에서는 기관사만 책임을 졌습니다. 부실시공으로 10명이 숨진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에서 원청인 코오롱 건설은 기소도 되지 않았고, 신축 서류 위변조를 도운 공무원은 벌금 300만원이 다였습니다. 23명의 목숨을 잃은 씨랜드 참사에서 불법적인 결탁이 밝혀진 화성 군수는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우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와 국회가 오히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취지를 훼손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기업과의 결탁에 의한 위험한 인허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인허가나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공무원 처벌조항을 삭제하자고 합니다. 참사가 발생해도 기업의 손해가 적으니 기업들이 위험을 방치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삭제하거나 형량을 줄이자고 주장합니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정부와 국회에 요구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10만의 국민동의청원으로 제출한 원안대로 제정하십시오.

 

시민들은 안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권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혹은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이 아픈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대로 제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2021년 1월 4일

 

(사)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총연합/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춘천봉사활동 인하대희생자유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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