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백기완 선생 별세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2/15 [10:28]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백기완 선생 별세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1/02/15 [10:28]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9세.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수술과 병원 치료 등 투병 생활을 해왔다.  

 

통일문제연구소는 이날 “한국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큰 어르신이신 백기완 선생님께서 오늘(2021년 2월 15일) 새벽, 노나메기 세상을 위한 큰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셨기에 비통한 소식을 삼가 알립니다”라고 부고를 알렸다.  

 

1933년 1월 황해도에서 태어난 선생은 1950년대부터 민중·민족·통일·민주 운동에 매진해왔다.

 

선생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농민·빈민·통일·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도 치른 바 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 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을 지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당시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1992년 독자 민중후보로 재야운동권의 추대를 받아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이후 선생은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해왔다. 

 

선생의 뜻을 기리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일정을 확정했다. (노나메기란 ‘함께 땀 흘리며 일하고 함께 잘 살자’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선생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되었다.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민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으며, 온라인 추모 (http://baekgiwan.net)도 할 수 있다.

 

발인은 2월 19일(금) 오전 8시이며 노제와 행진은 오전 9시 대학로에서 진행된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시청 앞 광장이며, 오후 2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이 진행된다.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선생은 마지막에 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를 남겼다고 한다. 

 

장례위원회는 선생의 뜻에 따라 모든 조화·조기는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생의 뜻을 기리는 사람은 누구나 장례위원이 될 수 있다.(http://bit.ly/백기완장례위원)

 

[백기완 선생 약력] 

 

1933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남.

초등학교만 다니고 혼자서 공부함(독학).

 

1945

8.15해방 뒤 열세 살에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옴.

한반도 분단이 한 가족의 분단으로 이어져 여덟 식구가 남북으로 나뉘어 살게 되자 갈라진 집안을 하나로 잇고자 통일운동을 하게 됨.

 

1948~1949

독학으로 시, 소설등 문학작품을 읽고, 영어사전을 모두 외워 영어 천재로 신문에 알려짐.

 

1948

서울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을 뵙고 고결한 뜻에 영향을 깊이 받음.

 

1950~1951

전쟁 중, 부산제5육군병원(임시육군)에서 군복무.

 

1951

해외유학장려회에서 첫 수혜자로 해외유학을 권유받았으나 싸우는 조국을 두고 나 혼자만 유학 갈 수 없다며 거절.

 

1952~1961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을 열었고 도시빈민운동, 나무심기운동(자진녹화대), 농민운동(자진농촌계몽대)으로 젊은 날을 보냄.

 

1957

평생동지 김정숙 여사와 혼인.

 

1960

4.19 혁명 운동에 뛰어들어 혁명 세력을 하나로 묶고 정치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애씀.

 

1964~1965

6.3세대와 연대하여 굴욕적인 한일협정 반대투쟁 전개.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변영태 선생 등과 반일 투쟁에 나서 연행 구속.

 

1966

박정희 유신독재 끝장을 위해 재야 연합전선의 하나로 윤보선, 함석헌, 장준하 선생과 함께 야권 통합운동을 성사시킴.

 

1967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백범사상연구소 설립을 시도했으나 당국의 탄압으로 무산. 4.19 혁명의 성과와 한계를 수렴하여 한국진보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세우는 작업에 힘씀.

 

1969

3선개헌반대투쟁 전개.

장준하 선생등과 함께 <민족학교> 운동을 전개, 항일민족 시편과 항일운동 역사자료 수집.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의미와 독립군, 민중혁명의 의미를 담은 ‘어린 엿장수의 꿈’ 영화극본 창작.

박정희 정권의 반민주성에 맞서다 대한일보 객원 논설위원에서 쫓겨남.

 

1970

전태일 분신과 광주 대단지 사건 등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 분출하는 가운데 민중항쟁의 주체적 맥락을 다시 세우고자 애씀.

 

1971

민주수호청년협의회 결성, 대표를 맡아 구속 학생 즉각 석방 요구.

한일협정 비준 6주년을 맞아 대일문화투쟁을 벌일 것을 제안하는 성명서 발표.

장준하 선생과 함께 민족학교에서《항일민족시집》발간.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 분단독재 강화음모 반대투쟁 전개.

 

1972

백범사상연구소 충무로에 개소.

항일운동 연구에 매진하여 신채호, 백범 등의 글 수집정리.

《항일민족론》출간.

 

1973

《백범어록》출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창립.

유신헌법 개헌을 문제 삼고자 재야인사 30명 주도로 ‘개헌청헌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

민족학교 주최로 ‘항일문학의 밤’ 개최,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강연.

 

1974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

 

1975

2.15 석방조치로 영등포교도소에서 석방.

장준하 선생 암살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 결성.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 인혁당 사건 관련자 처벌 발표 후 풀려남.

 

1976

정부의 탄압과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던 백범사상연구소 문을 다시 열고자 딸들의 월부 피아노를 팔아 활동 재개.

 

1978

백범사상연구소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 공동으로 ‘민족문학의 밤’을 주도하여 중앙정보부에 끌려감.

 

1979

민주청년협의회 결성.

‘명동 YWCA 위장결혼사건’으로 구속, 전두환 서빙고 보안사로 끌려가 죽음 직전까지 가는 참혹한 고문을 당한 뒤 구속수감.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의 서간집《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출간, 책이 나오기도 전에 24시간 만에 판금 조치에도 대학가와 노동운동 진영의 필독서가 됨.

 

1980

서대문형무소에서 병감정유치로 풀려나 한양대병원에 장기 입원.

투병중 광주민중항쟁 소식에 분개하며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필연성을 역설.

 

1981

고문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장기요양 중, 옥중시《젊은날》(비매품)을 지인들의 도움으로 펴냄.

 

1984

재야인사들과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

백범사상연구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통일문제연구소>로 확대 설립.

 

1985

수많은 대학가의 강연 요청에도 경찰의 강제 출입통제(가택연금)로 무산.

고문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 서울지부 의장.

민중문화운동 활성화를 위해 민요연구회, 민중문화운동연합 고문.

대우자동차노조 민주화 투쟁, 구로동맹파업등 노동자 투쟁 전개에 주목하며 민중연대 지원 노력.

 

1986

민통련 본부 부의장.

‘민통련 개헌서명자 명단발표’ 건으로 민통련 서울시지부 압수수색 및 연행.

명동성당에서 권인숙 성고문사건 진상폭로대회를 주도하다 수배중 구속, 합병증으로 위독해지자 서울구치소에서 한양대병원으로 병감정유치.

 

1987

명동성당 성고문 폭로대회 관련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됨.

극심한 고문 후유증이 도져 병감정유치로 한양대병원에 입원중 재수감됨.

형집행정지로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6월 항쟁에 참여, 시민대표로 연설.

 

1987년/ 1992년

87대선에 30년 가까이 이어진 군사독재 청산을 위한 학생, 노동자, 민중들의 요구로 민중대통령 후보로 추대 출마.

민주화 세력의 대단결을 통한 민주정권 쟁취와 진보 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애씀.

92대선에 출마하여 완주,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 시대를 알림.

 

1988~1990

통일마당집 마련을 위한 ‘벽돌 한돌쌓기 운동’을 전개해 서울 대학로에 사무실 마련.

 

1988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고문.

미국 하원의원, 서독 녹색당 초청으로 해외 순회강연 차 출국.

전두환 이순자 구속 국민궐기대회 참석.

6.10 남북학생회담 성사 촉구 성명서 발표.

임진각 ‘7.4통일염원 평화대행진’ 참석.

핵발전소 안전대책 요구 재야, 학생 시민대회 참석.

 

1989

북쪽 김일성 주석, 남쪽 대표인사 7인에게 남북정치협상 제안.

민주화를 요구하는 재야인사 ‘89인 선언’.

장준하 선생 새긴돌(시비) 건립위원회 대표.

재야 통합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

국가보안법 철폐 시민결의대회.

노태우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장 원천봉쇄로 경찰 저지에 쓰러져 백병원으로 이송.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학생실무회담 고문단들 경찰의 원천봉쇄로 강제 연행.

원전건설반대 100인 선언.

 

1990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결성, 고문 추대.

노동자대학 초대 교장.

전국 6.10 계승대회 참석.

남북정치협상회의를 제의, 방북 질의서 발표.

국군보안사 재야인사 민간인 사찰 규탄, 독재정권 퇴진 재야원로 성명 발표.

 

1991

재야 전국연합 창립.

민족문화 특강 개최.

재야인사 3.1절 시국선언.

한반도비핵화 1천인 선언.

페놀불법방류 규탄, 반핵평화운동연합 지도위원.

원진레이온 직업병 은폐 규탄대회 참석.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 추모집회.

수서비리사건 규탄과 노태우 퇴진을 요구하는 철야농성을 시작으로 백골단 해체 투쟁, 명지대 강경대, 성균관대 김귀정 열사 싸움에 앞장.

 

1992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 결성.

강기훈 무죄석방 재야 공대위 결성.

 

1993

전국 구속, 수배, 해고노동자 원상회복을 위한 투쟁위원회(전해투) 지원대책위 참석.

쌀수입 개방 저지 범국민대책위 결성.

신자유주의 분쇄투쟁 전개.

 

1994

전노협 등 재야단체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 사법처리 촉구.

 

1996

고문피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고문 및 공권력 피해자 모임 발대식.

 

1998

“양심의 고향을 함께 세웁시다” 민족문화대학설립위원회 대표.

 

2000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운동 제창.

계절마다 내는 책《노나메기》창간.

북쪽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 초대되어 평양에서 열세 살에 헤어진 누님 상봉.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01

노나메기 통일그날 음악회 주최.

노나메기 사상을 전파하는 대중강연회 개최.

 

2002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선정한 올해의 ‘우리말 으뜸 지킴이상’ 수상.

 

2003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참석, 경찰 방패에 맞서다 부상.

 

2007

이야기 소설 《따끔한 한모금》창작, 소극장에서 온몸으로 말하는 ‘말림’ 공연으로 발표.

 

2008

《부심이의 엄마생각》출간, 신학철 화백의 《부심이의 엄마생각》그림전시회 개최.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싸움을 시작으로 용산참사, 쌍용차, 현대기아차비정규직, 유성기업, 콜트콜텍, 파인텍,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희망버스 운동 등 노동자, 민중투쟁 현장에 연대.

 

2009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 공연 개최.

용산참사 빈민철거민 투쟁에 참여.

 

2010

각계 각층에 우리 민중의 사상인 <노나메기> 운동을 제안하고 학술마당 개최.

 

2011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 노나메기재단설립추진위원회 발족.

밀양송전탑 반대투쟁,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참여.

 

2012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 개최.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싸움에 나섬.

 

2013

각계 대표 인사들과 4대강을 파괴하는 이명박 정권 반대투쟁 전개.

‘우리 시대의 저항선언문’ 발표.

죽음을 넘어서는 민중의 쇳소리 ‘백기완의 시 낭송의 밤’ 개최.

 

2014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 참석.

민중사상 특강 ‘나는 왜 따끔한 한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 개최.

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 참석.

 

2015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 싸움에 온몸으로 가담.

민중사상의 정수인 ‘꼴굿떼 이야기’ 민중사상 특강 개최.

 

2016

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집 ‘꿀잠’ 건립을 위해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붓글씨와, 서각 작품으로 <두어른 전시회>를 가짐.

 

2016~2018

박근혜 탄핵, 광화문 촛불집회(23차례)에 빠짐없이 맨 앞에서 자리를 지킴.

 

2017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며 추모 연작시 ‘쪽빛의 노래’ 발표.

조계종 적폐청산 운동에 힘을 보탬.

트럼프의 한반도에 대한 전쟁도발 음모를 깨부수고자 사회원로 기자회견 조직, 직접 성명서를 써서 발표.

 

2019

민중의 전형을 빼어나게 빚어내고 노나메기 사상을 담은 서사《버선발 이야기》출간.

태안화력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죽음에 맞서 ‘사람 잡는 비정규직 전면 폐기하라’,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공무원노조,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촉구 시민 사회원로 기자회견 주도.

 

2020

병상에서 심산김창숙연구회가 주최한 ‘제22회 심산상’ 수상.

*출처 통일뉴스

 

추모 21/02/17 [11:09] 수정 삭제
  다시한번 이분의 삶에 머리숙여 추모드리며..이기회에 국가보안법은 한국(국민)의 자주적인 정치,경제,사회,종교,학문발전을위해 있어서는 안될 악법임을.. 온국민이 함께나서 없애야한다고 믿습니다. 일제식민잔재와 군사통치가 강화시킨 낡고흉한 제도를 21C에 아직도 끌어안고 미적대는 촛불?정권도 미덥지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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