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단결로 외세를 물리친 러시아

이인선 통신원 | 기사입력 2021/02/26 [17:30]

국민의 단결로 외세를 물리친 러시아

이인선 통신원 | 입력 : 2021/02/26 [17:30]

▲러시아의힘은 러시아의 단결에서...     ©이인선 통신원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2021년 신년사에서 “우리(러시아)는 조상들의 전통과 명예를 지켜냄과 동시에 품위를 잃지 않았다”라며 러시아의 민족성을 내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러시아를 이끌어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정책의 중점에 국민을 두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러시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가 서방의 제재와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정운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2011년 9월 24일 통합러시아당 12차 전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며 모든 일에 국민을 중점으로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정말로 성공을 이루고 싶다면 항상 우리는 러시아 국민을 중점에 두어야 합니다. 러시아 가정들이 삶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업무의 주요 의미이자 목적이며 그래야만 사람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 시장의 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 경제가 확실히 회복되고 있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승리입니다. 그것은 우리 노동자, 기술공업자, 농업인, 기업가 등 성실하게 자기 일을 수행해온 수백만 명의 국민의 노력과 재능 덕분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강조해온 중점적인 구호는 러시아 민족을 포함하는 러시아 국가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호는 전체 러시아 국민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대외적으로 러시아가 외부 세력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국가적 자존을 지키려는 데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러시아의 민족성에 대해 알아본다.

 

  ©이인선 통신원

 

1. 민족성은 언제 발휘되나

 

나라마다 국민의 고유한 특징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것을 민족성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나라처럼 어려운 시기에 하나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미국처럼 개인의 이익과 자유를 우선하여 어려움을 돌려막기 급급한 민족도 있다.

 

러시아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타민족의 침략부터 약탈, 학살, 기근, 경제 위기, 서방의 제재 등을 국민의 힘으로 극복해왔다. 농민 봉기부터 갖가지 침략 행위에 맞서 승리를 이뤄온 역사를 지닌 곳이 러시아다. 러시아의 힘은 국민의 단결에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7년 신년사에서 서방과의 대립, 서방의 제재, 경제난 등이 겹친 2016년에 대해 “우리가 당면했던 어려움은 우리를 단결시켰고 전진을 위한 가능성의 거대한 잠재력을 열어 놓았다. 우리는 스스로와 스스로의 힘, 조국을 믿는다. 우리는 일하고 있고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으며 많은 일이 성사되고 있다”라며 러시아 국민이 단결해 시련을 이겨내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역설했다.

 

2. 침략·배신·매국 행위에 단호히 맞서 싸운 러시아 국민

 

(1) 반폴란드 국민군

 

1598년부터 러시아 땅을 통치하던 류리크 왕조의 대가 끊겨 1613년까지 차르가 없는 ‘대동란의 시대’가 이어졌다. 러시아는 1601~1603년 사이에 인구의 3분의 1가량인 2백만 명이 죽는 대기근을 겪었고, 1605년~1618년 사이에는 ‘참칭자 드미트리 전쟁(폴란드-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 제1공화국에 일시적으로 점령당했다.

 

국민들은 이런 일련의 사태를 눈으로 보며 분격했다. 국민들은 모스크바 총주교의 ‘정교 신앙과 러시아 땅을 지키자’라는 격문에 호응해 폴란드를 비롯한 외세와 지배 세력인 세습대귀족에 맞서는 해방투쟁을 선포하고선 해방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해방군은 중무장하고 고도로 훈련된 폴란드 정예군에게 처참하게 격퇴 당했다. 이때를 틈타 스웨덴이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모스크바로 진격해왔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상업 도시 니즈지의 푸줏간 주인이었던 쿠지마 미닌이 나섰다. 그는 상인들의 자금을 보태 국민의용군을 결성했다. 미닌이 발의하고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포자르스키 공후가 이끈 국민의용군은 1612년 10월, 마침내 폴란드군을 몰아내고 모스크바를 되찾았다. 러시아는 이때를 기려 11월 4일(당시 10월 22일)을 ‘국민 단결의 날’로 지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국민 단결의 날 기념 축사에서 “국내 분쟁과 모욕에 맞서 일어섰던 사람 중에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대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침략·배신·매국 행위와의 싸움에서 하나로 뭉쳐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국가의 단결성과 강력한 힘을 되찾았고 조국을 지켜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이는 1812년 전쟁과, 대조국전쟁 때 겪은 유례없던 시련에서 볼 수 있다. 조국 수호자들의 용기에는 민족적 차이도 없었다. 수호자들은 가족과 가정을 향한 사랑 및 형제적 동지라는 생각을 하며 기운차게 싸웠다”라고 말했다.

 

(2) 조국 전쟁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1812년 당시 유럽에서 파죽지세로 승리를 거두며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핀란드 땅을 주고 러시아 황제의 동생과의 혼사를 얘기하는 등 나폴레옹과 러시아 관계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무시하고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보를 보여 양국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급기야 나폴레옹의 대군은 1812년 모스크바(러시아의 수도)로 진군해왔다. 러시아는 1805년에 이미 나폴레옹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어 극도의 위기감을 느꼈고 모두가 하나로 뭉쳐 나폴레옹 대군에게 대항했다. 결국 러시아 국민이 승리를 이룩했다.

 

베스투제프 러시아 시인은 1812년 “러시아 국민들은 이로써 자신들의 힘을 느꼈다”라고 말했을 만큼 당시 국민들은 유럽의 그 어떤 나라도 아닌 자신들이 세계 최대이자 최강의 군대를 격퇴했다는 승리감에 고취되었다. 1812년 전쟁은 조국 전쟁((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이란 명칭이 붙여졌을 정도로 국가적으로도, 민족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3) 대조국 전쟁

 

▲ 대조국 전쟁 승리  © 이인선 통신원

 

러시아는 1812년 모스크바를 침공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 전쟁,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대조국 전쟁이라고 부르며 민족적 자긍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조국 전쟁이라는 명칭은 세계 지배를 꿈꾸던 히틀러의 군대를 소련의 군인과 국민이 끝내 굴복시켰다는 민족적 긍지를 보여준다. 즉,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뿐 아니라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승리한 전쟁이란 의미다.

 

1930년대가 되면서 국제정세는 다시 험악해졌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집권으로 유럽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전쟁의 먹구름이 다가올수록 각국은 전쟁을 모면할 길을 찾았다. 히틀러는 이 분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정복을 원활하게 하고자 유럽 각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폴란드, 영국, 소련 등이 협정을 체결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독일 외무장관과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소련 인민위원회 의장 겸 외무인민위원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일주일 전인 1939년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만나 ‘상호불가침, 한쪽이 제3국의 공격을 받을 시 제3국 원조 금지, 상호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의 내용을 담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에 합의했다.

 

서양 국가들은 소련의 배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의 반공산주의를 이용하기 위해 나치의 요구를 수용하며 나치의 전체주의 확대에 일조하기도 했다. 한편, 스탈린은 독일이 소련으로 곧 침입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유럽의 전쟁이나 중일전쟁에 관련되지 않은 어떤 국가(미국)에 의한 공격이 있을 경우 모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상호지원할 것’을 약속하는 3국 동맹을 체결했다. 독일과 일본은 양국 사이에 위치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일본과 상의 없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에 대응해 일본은 1941년 5월 소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은 나치에 대항하는 병력을 집중하되 이후 일본을 패망시키기 위해 불가침조약이 아닌 중립조약을 맺었다. 소련은 일소 중립조약을 통해 1941년부터 병력을 반나치 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이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소 불가침 조약은 폐기되었다. 스탈린 소련 서기장은 독일군의 소련 침공 10여 일 뒤인 1941년 7월 3일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서 “이것은 보통 전쟁이 아니라 총력전, 전체 소련 인민의 전쟁이다. 소련의 자유냐, 독일 지배하의 예속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련 국민은 하나가 되어 900일간의 레닌그라드 봉쇄전(1941~44년),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43년), 쿠르스크 전투(1943년) 등의 대규모 전투들을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차례로 승리로 이끌면서 나치군을 서서히 패망의 길로 몰고 갔다. 제2전선 구축을 통해 독일군 전력을 분산시켜 달라는 스탈린의 여러 차례의 요청에도 동부전선(소련 전선)에 숨통을 틔워줄 서부전선(유럽 전선) 구축을 미루던 서방 연합군은 소련군이 승기를 잡고 나치군이 수세에 몰린 뒤에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오랫동안 소련과 대결한 서방 진영에 속한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영국이 중심이 된 연합군과 나치 독일군의 전쟁으로 이해한다. 독일군이 패한 것도 1944년 6월 미·영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독일과 소련의 대결이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0년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등의 서유럽을 불과 한 달여 만에 점령하고 승승장구하던 나치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히고 4년간의 끈질긴 싸움 끝에 나치를 굴복시킨 주역이 바로 소련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역사학자들은 많지 않다.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에 따르면 2차 대전 기간에 희생된 소련인은 2,5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제2차 세계대전 전체 사망자는 6,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중 40% 이상이 소련 국민이었다. 국민은 후방 유격대 활동, 적군의 보복, 강제 노역, 포격, 굶주림과 추위 등으로 숨졌다.

 

한편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회고록에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은 소련의 참전이 없다면 1946년 11월 이전까지는 대일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스탈린 서기장은 1943년 11월 테헤란회담에서 “히틀러 독일이 괴멸된 후 소련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전쟁에서 연합군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소련군은 1945년 5월 9일 나치와의 전쟁이 끝난 후 극동으로 대규모 부대 이동을 시작했다. 부대는 철도를 통해 비밀리에 이동했는데 소련 국민이 떨쳐나서면서 3개월 만에 극동의 병력이 118만 5,000명에서 174만 7,000명으로 증가했다. 소련군은 연합국에 참전 약속한 8월 9일 일본군을 상대로 전면 공격을 시작했고 ‘조선인민혁명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이 완전히 항복한 8월 20일까지 한반도 이북지역에서 싸웠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을 패퇴시키는 데 소련의 힘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 마무리 : 러시아 국민의 선량함

 

러시아가 역사적 승리를 이뤄낸 것은 러시아 국민이 단결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국민이 단결할 수 있는 기저에는 선량함이라는 민족적 특징이 있다. 이 선량함은 무엇보다 원한을 품지 않고 평화를 추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모질게 미워하질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쟁터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적군을 대할 때 인정을 나타냈다고 한다. 전투 기간에 러시아 병사들이 “부상당한 러시아 병사는 누구라도 나서서 떠멜 수라도 있지만 프랑스인은 타국인이니 먼저 배려해야 한다”라고 하며 부상당한 프랑스인들을 러시아 병사들보다 먼저 들것으로 옮겼다고 도스토옙스키는 이야기했다.

 

1944~1949년 포로로 러시아에서 살았던 오스트리아계 독일인 오토 베르거는 『웃음을 잃어버린 민족』이라는 책에서 러시아 민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로들은 모자이스크 근처에 살면서 러시아인이 얼마나 특이한 민족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노동자, 특히 여자들은 포로들을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로 대했다. 때때로 여인들이 우리의 옷과 속옷을 가져가서 깨끗이 세탁하고 다림질하고 수선해서 돌려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러시아인 그 자신들이 어제의 적인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접어야 할 만큼 극도의 궁핍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레루아 볼리에는 러시아에 관한 자신의 책에서 ‘그러한 일치단결이 위대한 모든 민족의 위대함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하며 러시아의 단결이 러시아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역사의 굽이를 단결로 이겨온 러시아 국민이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또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갈지 지켜보자.

  • 도배방지 이미지

  • 아무도 믿지마라 2021/02/27 [16:15] 수정 | 삭제
  • 세상이 열백번 변한다해도
    백성은 믿는다 두목님을

    백성의 지위는 더이상 고정돼 있지않고 수령지위도 고정돼 잇지안타 누구든 수령이 될수있고 머리 나쁘고 게으르면
    수령 될수없다 수령은 세상 각계각층 모든곳에 존재한다

    잊지마라 이것이 상생주의의 지도/피지도, 수령/백성 사상이다
  • 역사속의아쉬움 ! 2021/02/27 [05:41] 수정 | 삭제
  • 극동지역에서소련군이일본놈들을박살낼때미국놈들무시하고일본본토로직공했더라면오늘날한반도분단도없엇고친일매국역적노무새/끼/들이권력을잡는일도없엇을거고6.25라는비극도없엇을것인데분단과전쟁의모든책임은 미국새/끼/들한테 있고오늘날빨갱이운운하는개/자/식/들 이탄생한것도미국새/끼/들이원인이다 6.25때통일이됏더라면친일매국역적노무새/끼/들씨를말려버릴수있엇을테고지금처럼미국새/끼/들똥개호구노릇하는일도없엇을거란생각든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