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칼럼] 기계로 만들 수 없는 것

청년 김 씨 | 기사입력 2021/03/07 [10:52]

[노동칼럼] 기계로 만들 수 없는 것

청년 김 씨 | 입력 : 2021/03/07 [10:52]

“삐-” 

 

주문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뒤이어 또 다른 주문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소리, 재료가 다 조리되었음을 알리는 소리, 재료 보관 시간이 지났다는 알람 소리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어디서 무엇이 날아올지 모르는 혼잡한 전쟁터. 이곳은 점심시간 패스트푸드점 주방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두 달째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서로의 생일과 퇴사일까지 챙겨주는 분위기 덕분에 정도 붙이고 열심히 일할 의욕도 생겼지만 짧은 시간에 청소나 조리를 마쳐야 하는 환경은 쉽게 적응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것들은 기계의 시간에 맞춰 움직입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소리와 함께 화면에 그 내용이 표시됩니다. 준비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모니터 화면의 주문표 색깔이 노란색, 빨간색으로 바뀌며 몇 초가 지났는지 표시됩니다. 정확한 시간과 온도에 맞게 재료를 조리해주는 기계는 몇 초만 지나도 조리된 재료가 아직 기계에서 꺼내지지 않았다며 사이렌을 터뜨립니다. 최종적으로 조리가 완료된 시간. 손님에게 전달된 시간이 모두 기록되어 통계로 남습니다. 이곳의 소리는 사람을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습니다.

 

눈앞에 지나가는 부품을 놓친 것도 아닌데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소리의 속도는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재촉합니다. 밀리는 주문, 꼬여버린 조리 순서, 일하는 사람들의 긴장된 표정과 다급한 소리 그 너머에는 빨리 나오지 않는 음식에 손님의 굳어버린 표정과 모습이 그려집니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실수가 이어졌습니다. 실수할 때마다 일하는 방법을 꼼꼼히 알려주는 선임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목소리도 다급해졌습니다. 빨라지는 ‘삐-’ 소리에 맞춘 듯 반복되는 설명에 일하는 사람 모두 지쳐갑니다. 잘 도와주고 알려주려는 마음과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답답함과 짜증으로 바뀌는 건 재촉하는 기계의 가장 비인간적인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은 인원이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재촉하는 기계는 일하는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서로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그 뒤에 있는 기업은 손 하나 까딱대지 않고 더 많은 이익을 남깁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이 더욱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일하는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욱 발전한 기계가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합니다. 더욱 효율적인 착취를 통해 고용인원을 줄일 수 있게 되니 그만큼 일자리도 줄어듭니다. 

 

며칠 전 쿠팡에서 과로사로 돌아가신 분과 그곳의 노동환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개별 노동자에게 지급된 단말기가 일 속도를 측정하고 이를 지켜보던 관리자가 성과가 더딘 노동자를 불러내 굴욕적으로 질책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습니다.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취를 자동화하는 재촉 기계는 일하는 노동자와 노동자마저도 서로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선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다가왔습니다. “오빠 저 오늘 말 너무 많이 했죠?”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항상 똑 부러지고 꼼꼼하게 일하는 선임에게 처음으로 듣는 말투였습니다. “아니에요. 저 때문에 말 너무 많이 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라고 대답하며 방금까지 같이 고생하며 일하는 사람을 짜증과 원망 섞인 마음으로 대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현장을 책임지며 후임에게도 일을 잘 알려주려는 마음, 더 많은 일을 짊어진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며 일을 잘 배우려는 마음이 어디에서나 잘 자라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곳에서 고된 노동 때문에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답답해하며 원망하게 되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의 고생과 고마움을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가 원망해야 할 것은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우리를 고생하게 만드는 재촉 기계 너머의 사람들이라는 것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다음 주 출근한 날 일을 시작한 지 15분 만에 저는 또 실수를 했고 선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왜 가르쳐 준 대로 일을 하지 않느냐며 지적했습니다. 아마 그 전날 저의 실수를 본 점장이 선임에게 지적한 것 같았습니다. 잠시 뒤 그 씩씩한 선임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조그만 목소리로 아침부터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거칠게 말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쉬는 시간에 매장 밖으로 나가 작은 종이가방을 샀습니다. 한 종이가방에는 선물을 넣어 생일을 맞은 다른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물함에 걸어놓고 다른 종이가방에는 꿀과 유자가 들어간 음료수를 넣어 선임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사물함에 걸어놓았습니다. 제가 실수할 때마다 설명하느라 목을 많이 쓰시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쪽지도 넣었습니다.

 

퇴근 시간 “잘 마실게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어도 내일 우리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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