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 평화이음 이사와 박현선 시인이 3월 22일 세상을 떠난 진보통일 예술인 신혜원 작가를 기리는 추모시를 발표했습니다. 아래에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원, 그대는
-황선
항상 말이 없었지 조금 말하고 작게 웃었다 크게 박수를 치지도 티 나도록 울지도 못 했다
제 몸 상하는 것 제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에도 한 없이 무디고 느긋했다
그러나 그대의 붓 그대의 심장은 늘 단호했지 묵묵하지만 칼같이 날카롭게 중심을 지켰다
날로 허술해지고 시시각각 낭창해지고 돈을 따라 이름을 따라 예술이란 것들도 한 없이 휘청거릴 때 곁눈질 한 번 하지 않던 거리의 환쟁이
가벼운 주머니 대신 무거운 사연들 끌어안고 들꽃처럼 짓밟힌 이들의 부활을 노래하던 그대의 화폭
가만히 길을 지키는 소녀상이었다 광장을 휩싸고도는 노란리본 곧 찢어질 성조기를 꿰매고 이어 모두의 머리 위 휘날리는 통일기를 짓던 직녀였다, 그대는. 삼킨 눈물 참았던 웃음 모두 붓끝으로 쏟아낸 그대는,
사랑이다. 사랑.
붓의 항해 (신혜원작가의 영전에 시 한편 놓아봅니다.)
-박 현 선
그대 어디로 가오 그대 웃으며 또 어디로 가오
탁하디 탁한 강물 위로 붓을 노 삼아 캔버스를 닻 삼아 신념을 돛 삼아 비 바람이 와도 눈 보라가 몰아쳐도 그대 건너던 자주, 통일의 항해
그대의 항해 너무도 짧았소 아. 그대 웃음만큼이라도 길었다면.. 너무도 짧았소 허나 그대의 항해 길 위에 그려진 그대의 화폭은 너무나 컸소
정문 앞의 군화발을 앞에 두고 체육관 바닥을 가득 메웠던 통일의 화폭은 그대가 흘린 통일의 절규였소 국가보안법의 암초에 걸려 그대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은 화가의 단두대였소
그대의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붓의 항해 단두대가 그 시작이었소
수갑은 그대의 붓을 강철로 만들어 놓았소 국가보안법의 암초는 그대의 켄퍼스를 붉게 만들어 놓았소
그리고 다시 시작된 붓의 항해
느릿느릿 노를 젓듯 붓질을 하는 그대 허나 그대의 붓은 새벽별과 함께 여명과 함께 지새고 지새웠소 느즈막이 공장에 자주통일의 불을 밝히고 또 마지막까지 공장의 붓을 잡으며 역사의 대하가 원하는 민중의 바다가 염원하는 멀지않을 그 세상을 향해 노를 젓듯 붓질을 했소
기억하오 그대의 붓의 항해, 붓질의 파도를
‘우리 아이들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대가 펼쳐낸 평화의 벽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바람들은 그대의 붓질로 민중의 심장에 파도로 일었소
그대의 5년간의 붓의 항해 그것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한 항해였소 멸종위기의 들꽃과 함께 그린 얼굴들 ‘들꽃의 노래’ 속지까지 그대가 손수 놓은 파도 그것은 그대의 눈물자욱이었소 울분이었소
그대의 붓의 항해 그 파도 속에 그대는 없었소 한 장이라도 단 한 장이라도 남았으면 품에라도 간직하건만 그 파도 속에는 동지만 가득 했소 아픔을 가진 이들만 가득 했소
그대가 그려주는 인터뷰
그 속에서 내세워주는 이는 동지였소 소중하게 사랑하는 동지였소
그대여 말없이 웃기만 하는 그대여 눈을 감지마오 붓을 놓지마오 웃으며 또 웃으며 함께 할 항해가 펼쳐져 있겄만 아 그대여 어찌 홀로 먼 길을 간단 말이오
그리울꺼요 눈물을 훔치며 그리워 할꺼요 그대와 함께한 기억, 추억 그 한 조각이라도 꼭 기억할꺼요 그 한 조각이라도 그리워 할꺼요
그대가 남긴 붓질의 파도 부둥켜안고 그리워 할꺼요 그대가 좋아 했던 뒷산 어귀의 바람, 햇살, 새소리들 그대의 다시 떠나는 항해에도 함께 할꺼요
항상 고마웠소 더 주지 못해 미안했소 먼길 먼저 보내 미안하오 웃으며 보내 주지 못해 또 미안하오
허나 꼭 잘 가시게 조심히 잘 가시게 항해길 반가운 이 만나거든 우리 잘 있다 안부 전해 주시게
사랑하는 그대 꼭 잘가시게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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