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17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 대선에 개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은 전날 러시아가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며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결과에 대해선)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바이든 정부는 3월 초 러시아 정부가 반체제 지도자인 나발니 독살 기도 사건에 연루됐다며 러시아 정부 관계자 7명을 제재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연장 합의 등에 대해 “함께 협력하는 것이 우리 상호 이익에 부합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나는 비교적 푸틴 대통령을 잘 알고 있다. 외국 지도자들과 협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아는 것뿐”이라고 강조하며 앞서 언급한 것과는 다른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대(對)러시아 외교 관계 악화 우려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거리낌 없이 말하겠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3월 17일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안토노프 대사가 대미 관계와 관련 무엇을 해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등을 분석하기 위한 협의차 모스크바로 소환됐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 의장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국민들을 모욕했다”라며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이라고 미국을 비판했다.
이번 글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주장이 진실인지와 러시아 정부 공격 의도를 파헤쳐본다.
1. 바이든 정부의 주장, 진실인가?
(1) 선거 개입?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중앙정보국을 비롯한 미국 정보당국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은 지난 3월 16일 15쪽 분량의 ‘2020 미국 연방선거에 대한 외국의 위협’ 보고서를 기밀해제 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해 ‘우크라이나 유착’ 주장을 증폭하기 위해서 트럼프 선거캠프 주요 인사들이 러시아 측과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 중국, 이란 등 미국의 적성국이 지난해 미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벌인 공작 행위를 평가해 작성한 것이다.
국가정보국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인 안드리 데르카크를 러시아 측 주요 인물로 지정하며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와 직접 만나 소통했다”라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이미 지난해 9월 미 정치 개입을 이유로 데르카르에 경고를 한 바 있다.
국가정보국은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활동을 알고 있었으며 2016년 미 대선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정보 공작 작전을 직접 승인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데르카크 활동의 상당 부분을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국가정보국은 보고서를 통해 “다른 러시아 고위 관리도 선거 개입 시도에 참여했다”라며 “이 중에는 최소한 푸틴 대통령의 암묵적인 승인 없이는 행동하지 않았을 안보와 정보 당국 고위 관리들도 포함됐다”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이 선거 개입을 시도했다고 언급했다. 보고서는 적성국들의 일부 개입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2020년 미 대선 투표 절차와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주장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국 정보당국은 2016년 미국 대선과 관련해 사이버 공격과 SNS를 이용한 여론 공작 및 선거방해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보당국은 보고서에 “푸틴 대통령이 2016년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적었다. 주요 근거는 핵심 기관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기반을 둔 인터넷 설문조사 기관이라며 이곳에서 댓글 부대를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당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할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미 정보당국이 제기해온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부정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 측과 대통령 지지층이 반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자신의 말에 실수가 있었다고 번복했다. 많은 이들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자체가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미국 정보당국의 주장들 중에는 신뢰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다. 미국의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이다.
미 국가정보국은 지난 2월 26일 4쪽 분량의 기밀해제 보고서에서 “우리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를 생포하거나 살해하는 작전을 승인했다고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카슈끄지 암살과 언론인 탄압에 연루된 사우디 인사 76명에 대해 비자 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도 카슈끄지 암살에 개입한 혐의로 무하마드 알 아시리 전 사우디 정보국 부국장을 제재대상에 올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사우디 왕실을 비난해오던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라진 뒤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우디 외무부는 2월 26일 당일 성명을 내고 “사우디 정부는 지도부에 관한 보고서의 부정적이고 거짓되고 인정할 수 없는 평가를 완전히 거부한다. 그 보고서는 부정확한 정보와 결론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외무부는 “과거 관계 당국이 발표한 것처럼 카슈끄지 암살은 혐오스러운 범죄이고 왕국의 법과 가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미국 측 주장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미 정보기관의 독선에 의해서만 확인이 된다. 보고서 내용 외에는 미국의 주장에 대한 어떠한 사실이나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번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 역시 결국에는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미 정보당국도 결론짓고 있다.
(2) 살인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7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알렉세이 나발니에게 독살을 지시한 의혹과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살인자(killer)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일 러시아 정부가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의 배후라며 러시아 고위 관리 7명과 연구소 및 보안기관 5곳, 기업체 14개 등을 제재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2014년)과 시리아 내전 개입(2015년), 대(對)이란 제재 위반(2020년) 등의 문제를 놓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해왔다.
러시아는 지난 1월 17일 알렉세이 나발니를 체포했다. 나발니를 체포하자 미국과 유럽 국가는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며 석방하지 않으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나발니가 만든 반부패 재단은 지난달 29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수십 명의 러시아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을 제재해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모스크바 구역법원은 지난 2월 2일 2014년 나발니의 사기 사건과 관련한 집행유예 판결 취소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실형으로 전환할 것을 판결했다. 뒤이어 20일 열린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이 적법하다며 나발니는 사기 사건과 관련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실형으로 살게 됐다. 나발니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전에 작성한 글로 갈무리한다. (나발니 사건 참고 : http://www.jajusibo.com/54323)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2월 27일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7주년을 맞아 백악관 성명을 내고 “미국은 결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공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10년 EU 편입 대신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협력체와 관세동맹 가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에 반발해 우크라이나 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결국 2014년 2월 말 우크라이나에서 야권이 정국을 장악하고 친서방 과도정부가 수립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는 과도정부를 반대하고 과도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러시아군이 크림반도 내 과도정부에 반대하는 무장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3월 초 우크라이나로 진입할 것이라는 설이 돌았지만 크림 자치공화국은 주민투표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기로 했다.
3월 11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의 약 78% 의원이 압도적인 독립 결의안 찬성을 함으로써 크림 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는 크림 독립 선언문을 발표했다. 3월 16일 크림 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러시아 귀속 찬반 주민투표에서 95% 이상 찬성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나왔다.
3월 18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공화국 총리,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크림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알렉세이 찰리 세바스토폴 시장이 러시아-크림 공화국 병합 조약에 서명하였으며, 3월 19일에는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이 조약이 합법이라고 판결내렸다. 그후, 러시아 하원 의회와 상원 의회가 조약 내용을 심의하여 채택하였다. 3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크림 공화국 병합 문서)에 대해서 최종 서명하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과도정부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세계는 크게 반발하며 러시아의 개입을 문제 삼았다. 서방 국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러시아의 크림반도 공격”이라는 말을 쓰며 제재를 가하고 있다.
2. 바이든 정부의 의도 : 동맹 중시 노선
“미국이 돌아왔으며 세계를 이끌 준비가 됐음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다시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동맹과 함께 적들과 마주하고, 우리의 가치를 옹호할 것입니다.”(2020년 11월 24일,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2월 4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무부를 찾아 외교정책 기조를 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으로 언급하고 “미국의 동맹들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라며 ‘동맹 중시’ 기조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영국·독일·프랑스·일본·한국 등의 지도자들과 통화한 사실을 거론하며 동맹 관계 회복을 언급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국을 ‘21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시험’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은 지난 2월 22일 유럽연합, 캐나다, 영국과 공조해 중국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동시다발 제재를 부과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일본·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기 위한 4국 안보 대화체인 ‘쿼드’를 일종의 안보동맹으로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견제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이처럼 중국을 겨냥한 것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내내 갈등을 빚어온 무역 분규 때문만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맞먹는 경제대국이자 기술대국으로 급속히 부상한 ‘전략적 경쟁국’ 중국을 견제하지 않고는 아시아에서 패권 지위를 누리며 미국의 이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은 앞서 언급한 러시아에 대한 비방부터 중국,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들에 인권 문제, 비핵화, 자유 보장을 꺼내 들며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대외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러시아, 중국, 북한, 베네수엘라, 이란 등을 제재하면서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끈끈이 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따르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이른바 미국의 적을 명확하게 만들고 위험성을 포장해 미국의 동맹국들을 묶어 세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3. 마무리 : 미국, 러시아, 타국의 반응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미국 시민들의 편지가 왔다고 전했다. 편지에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무례하고 근거 없을뿐더러 중상모략하는 발언을 한 점을 사과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주미 러시아 대사관이 공개한 편지 중 하나는 3월 21일 미 공군 노병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에는 “미국 시민으로서, 나는 바이든의 발언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의 무례하고 수치스럽고 부적절하고 근거 없는 말에 대해 사과한다. 나는 푸틴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며 그가 많은 미국 시민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푸틴 대통령이 말했듯이, 이 나라는 수 세기 동안 자국민을 위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3월 18일 자국 TV 방송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토론을 계속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다만 온라인 생방송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자 관계, 전략적 안정성, 지역 분쟁 해결 등 많은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크림 지역 사회활동가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남을 그렇게 부르면 자신도 그렇게 불리는 법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국가나 국민을 평가할 때는 항상 거울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살인자’ 발언을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날 피에르 백악관 부대변인의 입을 빌려 “때가 되면 푸틴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라고 회피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유감스럽게도 누적된 양자 문제와 전략적 안정성 등 의제의 논의를 위해 19일이나 22일 바이든 대통령과 공개 화상 대화 자리를 만들고 이를 생방송하고 싶다는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미국 측이 지지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외무부는 “미국 측 책임으로 러시아ㆍ미국 관계가 처한 교착 상태(dead end)를 벗어날 방안을 모색할 또 하나의 기회가 날아갔다”라며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3월 19일 이스탄불에서 금요기도에 참여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바이든의 발언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과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중시 노선은 국제정세를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계속 근거 없는 추측만을 내뱉으며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부터 추측성 발언과 제재가 속출하는 것으로 보아 정확히 알고 대처하지 않으면 미국의 뜻대로 갈 것으로 짐작된다. 한러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우리도 러시아에 한층 더 알아가는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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