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의 기준은 자신의 처지와 조건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가 되어야 한다

방희주 | 기사입력 2021/08/01 [14:42]

비판의 기준은 자신의 처지와 조건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가 되어야 한다

방희주 | 입력 : 2021/08/01 [14:42]

비판의 목적은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 망신을 주거나 혼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은 잘못된 지점을 명확히 하여 문제를 바로잡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비판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갖지 못하면 자신을 공격하는 거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비판하는 사람의 태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비판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근본 문제를 외면한 채 현상에 얽매이게 되며 제대로 혁신을 해나갈 수 없습니다.

 

물론 모두가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서 어려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차이는 왜 나타나는 걸까요?

 

그것은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서 기준을 무엇으로 두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비판의 기준을 국민 요구로 두었을 때 설령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에도 굳게 마음먹고 국민을 위해 비판을 받아들여 자신을 혁신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비판의 기준을 자신의 현황과 처지에 국한해서 사고하면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려울뿐더러 조직과 동지가 자신을 몰라준다고 원망하며 탓하게 됩니다.

 

이것은 비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판받는 동지의 처지와 현황에 국한해서 고민하면 인정에 끌려 차일피일 미루며 원칙적인 비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판을 하는 사람도 국민을 기준으로 했을 때야만 동지를 더 뜨겁게 비판해줄 수 있고 동지를 운동의 주인으로 세워 줄 수 있습니다. 

 

운동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민주권시대의 요청입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또 헌신했을 때 국민이 주인 된 세상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가의 실력이 부족하면 헌신하고 싶어도 헌신할 수 없습니다. 실력을 기르고 부단히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부족한 점 중에 어떤 부족함을 채워야 할까요? 그것은 국민의 요구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운동가의 활동목표가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서 부족함이 나서는 지점을 혁신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혁신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혁신해야 할 부족한 점을 국민의 요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에서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는 국민의 요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내용상으로 들어가 보면 자신의 요구인 경우입니다.

 

그래서 운동가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 한뜻을 가진 동지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줄 알아야 하고 또 동지를 위해 비판을 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비판은 운동가의 부족함을 빠르게 혁신할 수 있는 유력한 방도입니다.

 

결국 비판의 출발과 기준은 국민의 요구가 되어야지, 자신의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나선 운동가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자신의 요구를 앞세운다는 것은 운동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만자족으로 빠져 국민들과 멀어지거나 패배주의와 억하심정으로 빠져 자신을 갉아먹게 됩니다. 무엇이든 다 결국엔 개인주의, 이기주의입니다.

 

운동가는 비판의 과정을 통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데서 나서는 부족함을 깨닫고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을 위해 중단 없이 헌신할 수 있고 자신의 삶도 빛낼 수 있습니다.

 

운동가의 삶은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서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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