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왜 멀어졌나

이인선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1/09/24 [22:47]

[러시아는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왜 멀어졌나

이인선 주권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1/09/24 [22:47]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9월 1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 이인선 연구원

 

미국은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직후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확대를 통해 러시아를 공격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9월 1일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러시아에 대한 공동전선을 확인했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동유럽에서 러시아와 가장 불편한 관계에 놓인 우크라이나를 지렛대로 삼아 러시아 공격의 빌미를 찾는 전략적 행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왜 미국의 대(對)러시아 공격에 동참하며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는 걸까?

 

이번 글에서는 앞선 질문을 중점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살펴본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지역에 우크라이나인과 다양한 민족이 살아오면서 많은 역사를 만들어왔지만, 이 글에서는 1917년 이후부터 살펴본다. 

 

제1차 세계 대전 도중에 러시아 제국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멸망했다. 당시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지역에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비롯한 많은 공화국이 생겨났지만, 대다수는 1920년 무렵 해체되었고 곧바로 폴란드와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다.

 

소련으로 편입된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고 1922년 12월 30일 제1차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에 소련의 6개 공화국 중 하나로 참여했다.

 

소련은 1922년 건국 당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호라즘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이후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이후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이후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연합으로 이뤄졌다.

 

폴란드가 점령하던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은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점령하면서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한 후 해당 우크라이나 지역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합됐다.

 

그런데 1930년대 우크라이나 지역의 가뭄과 대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소련 정부는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러시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많은 노동자가 소련의 공업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이들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도 우크라이나를 공업화한 경제 역군으로 여겨진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과 카자크 수장국(1649년~1764년 우크라이나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의 통일을 합의한 페레야슬라브 협정 300주년인 1954년에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에 편입시켰다.

 

소련공산당 서기장들도 우크라이나와 연관이 있었다. 스탈린 이후 집권한 흐루쇼프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자라고 활동했다. 브레즈네프는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롭스크에서 태어났고 시당 위원장을 지냈다. 그 뒤를 이은 체르넨코는 시베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우크라이나인이었고,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와 그의 부인은 우크라이나 혼혈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벨라루스와 독립국가연합을 만들었다. 독립국가연합은 소련 해체로 독립한 국가들의 국제기구로, 경제 정책의 상호조정·단일 화폐의 사용·자유로운 경제 교류의 보장 등 단일경제권 형성과 집단 안전보장 체제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1991년 이후 독립국가연합에 몰도바·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그루지야(현재 조지아)가 추가로 참여했지만, 현재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탈퇴했다.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독립 후 전국의 행정단위를 24개 주와 두 개의 도시(키예프·세바스토폴), 크림 자치공화국으로 구성했다. 또한 중앙집권제를 채택해 대통령이 주지사와 크림 공화국 총리를 임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에는 총인구 5,170만 명 중에서 우크라이나인이 3,740만 명(72%), 러시아인 1,140만 명(22%)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독립과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많은 러시아인이 러시아로 이주해 2021년 기준 712만여 명(약 17%)으로 감소했고 현재까지 크림·돈바스 등 동남부지역에 밀집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이외에도 벨라루스인·헝가리인·루신인·유대계·그리스인·우룸인 등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이러한 민족들과 공통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서 연방주의 정치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국가건설의 주요과제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분리주의를 우려하면서 연방주의 도입에 반대했고 끝내 무산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외교적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래서 러시아의 기대와 달리 독립국가연합 간 경제통합에 소극적이었고, 1990년대 후반부터 크랍추크·쿠치마·유셴코로 정권을 이어가며 유럽연합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고자 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6월 독립국가연합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유럽연합과 동반자협력협정을 체결했고, 1997년 9월 우크라이나-유럽연합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유셴코 대통령은 2005년부터 유럽연합의 유럽근린정책에 입각해 행동계획을 마련했고 유럽연합과 협력·협정 체결을 추진했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과 단순히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국가연합에서 벗어나 약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유럽연합 규정을 모두 수용하는 유럽연합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와 독립국가연합 간 자유무역협정에 배치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와 연관이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은 소련이라는 과거에서 벗어나 동유럽의 한 국가로서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원한다. 이에 이들은 독립국가연합을 멀리하고 우크라이나인 다음으로 많은 러시아인을 경계하며 반러 정서를 만들어왔다.

 

우크라이나는 1996년의 제정헌법에서 다른 독립국가연합 국가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공식어로 지정했다. 이것은 모든 공문서와 표지판이 우크라이나어로 쓰인다는 것이다.

 

또한 2006년에는 유셴코 대통령이 의회에서 1930년대 대기근을 소련의 대학살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과 서방 언론들은 이를 근거로 소련을 또다시 헐뜯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야누코비치 총리를 포함한 동우크라이나 출신 의원들은 1930년대의 대기근을 우크라이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소련 전 국민이 함께 겪었던 뼈아픈 희생이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부가 들어서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야누코비치 정부는 2012년 최소한 주민의 10%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해당 지역의 공식어로 인정하는 언어법을 공포했고, 27개 중 13개 지역에서 러시아어를 공식어로 인정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전 국민 중에서 러시아어 가능 인구는 무려 80%에 달했다. 2012년 발간된 신문의 60%, 잡지의 83%, 도서의 87%, TV 프로그램의 72%가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다언어 정책이 러시아 주민의 분리주의를 촉진할 것이라며 야누코비치 정부에 반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2013년 5월 25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연방주의에 관한 찬반 국민투표를 동시 시행하자는 제안을 거부했고 연방주의와 분리주의는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야누코비치 정부는 끝내 2013년 11월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서명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러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와 야누코비치 대통령 실각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우크라이나 지도.     ©이인선 연구원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

 

우크라이나 사태란 ‘키예프의 마이단 시위’, ‘크림 공화국과 러시아의 합병’, ‘돈바스 독립 분쟁’이라는 3가지 사건을 총칭한다.

 

마이단 시위의 발단은 2013년 야누코비치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서명을 보류한 것 때문이었다. 이 시위는 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주도로 일어났기 때문에 유로 마이단(광장) 시위라고도 불린다. 2013년 말 키예프 시내 독립광장에서 일어난 마이단 시위는 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당과 티모셴코가 이끄는 조국당의 지지를 받았다. 즉 마이단 시위는 2004년의 오렌지 혁명(2004년 11~12월에 유셴코의 지지자들이 진행한 일종의 정치적 시민저항)에 이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의 반정부 시위였다.

 

마이단 시위 이후, 2014년 초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사실상 실각하였고 친서방 세력이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구성원이 되었다. 러시아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임시정부를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으로 규정했다.

 

러시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크림과 돈바스 지역에선 반 마이단 시위가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에 대항해 크림합병과 돈바스 내전으로 이어졌다.

 

크림합병은 크림의회 주도로 분리 독립·러시아 편입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통해 이뤄졌다. 투표 결과 83%의 주민이 참여해 96.7%가 찬성했다. 주민투표 직후 러시아 국가두마는 합병을 승인했고, 크림은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해 러시아의 22번째 공화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바스토폴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러시아의 3번째 연방시가 되었다. 이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크림합병이었다.

 

이에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캐나다, 독일, 리투아니아, 폴란드, 코스타리카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유엔총회에서 통과시켰다. 서방 국가들은 푸틴을 향해 비난을 일삼고 경제 제재를 가했다. 또한 미국은 그림자 침략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런 비난과 달리 러시아 국내외에선 합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은 크림반도를 잘못 넘겨준 역사적 오류가 정정되었다고 말하였다.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합법적이진 않지만, 이해는 된다고 말했다. 클라우스 전 체코 대통령은 크림 공화국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구로 이루어진 합병이라고 옹호했다. 즉 크림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선택한 결과가 러시아와 합병이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사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오랜 협상 끝에 1997년 흑해함대 분할에 합의했고 2년 후 우크라이나 의회의 비준을 통과했다. 세바스토폴 기지를 최초 20년간 임대했던 러시아는 2010년에 다시 25년을 추가 연장하는 대가로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는 천연가스 가격을 우크라이나에 톤당 100달러 할인해주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이곳에 최대 25,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었다. 크림합병이 있었던 2014년 당시 12,500명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 병력을 보낸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반발한 것이다. 이에 2014년 2월 25일 레이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연합 문제 담당 위원회 위원장이 이끄는 의회 대표단이 크림 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을 방문해 지방 정부·의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의회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주민투표와 의회 결정 등을 통해 병합 요청이 들어올 시 이를 신속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며 크림 공화국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크림합병은 돈바스의 러시아 주민을 고무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선포로 이어졌다. 브리드러브 나토 사령관은 러시아가 노보러시아의 재건을 시도한다고 경고했다. 노보러시아란 1764년 이후 약 150년 동안 러시아 제국에 소속된 행정단위로서 트란스니스트리아(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에서 돈바스까지의 흑해 연안을 가리킨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노보러시아 재건을 지지한 적은 없었다.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은 2014년 5월 11일 650만 주민에게 독립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했다. 투표 결과 75%의 주민이 참여해 96%가 찬성했다.

 

앞서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대통령 권한대행은 2014년 4월 7일 돈바스의 분리 독립 운동에 대해 대테러 작전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아르센 아바코프 내무부 장관은 2014년 4월 9일 돈바스의 분리 독립 움직임은 협상이나 무력 사용을 통해 48시간 안에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돈바스 지역에선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반정부군 간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2014년 9월 5일 러시아·유럽안보협력기구의 중재로 두 공화국 대표와 우크라이나 대표가 민스크에서 만나 휴전을 합의했다. 이 합의로 내전은 약화되었지만 완전 종식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당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체첸화”를 목표로 소형 무기를 제공할 것을 고려했다.

 

돈바스 분쟁이 장기화하자 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 정상은 2019년 12월 9일 프랑스 대통령관저인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나 ‘민스크 협정’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 국경 통제권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돈바스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런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구의 제재가 러시아에 가해졌다. 2008년부터 시작된 유럽연합과 러시아 간의 경제협력 대화가 중단되었고 소치에서 개최하기로 한 G8 회담이 취소되었다. 러시아 주요 인사의 해외자산 동결과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러시아의 에너지 기업과 은행들이 제재의 주요목표가 되었다. 미국은 UN 총회에서 크림합병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5월 28일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미국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 러시아를 고립시켰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 등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고 크림합병으로 우크라이나에 천연가스 가격을 할인해줄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러시아는 가스 가격 인상을 우크라이나에 제안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이를 거부하고 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러시아가 가스관 꼭지를 잠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여파로 러시아 가스의 유럽 수출이 차질을 빚어 유럽 전역에서 대규모 혼란이 일어났다. 유럽 국가들의 설득으로 재개는 되었지만 얼마 안 돼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고 우크라이나는 2018년 5월 19일 독립국가연합 탈퇴를 선언했다.

 

▲ 우크라이나는 2021년 9월 19일부터 10월 1일까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미국을 포함한 15개 나토 국가들과 합동군사훈련 ‘래피드 트라이던트 2021’을 하고 있다.   © 이인선 연구원

 

우크라이나의 친서방·반러 행보

 

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다. 젤렌스키는 마이단 시위를 지지하고 돈바스 분쟁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지지했다. 그는 2018년 3월 텔레비전 방송 제작사인 크바르탈95 소속 인사들과 함께 ‘인민의 일꾼’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2019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친서방·반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크림반도 등 우크라이나 접경에 러시아군의 집결 규모가 12만 명이 넘는다며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를 촉구해왔다. 

 

이에 러시아는 자국 군부대 이동이 군사훈련 일환이라며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며 해당 병력의 원대 복귀를 명령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의 우려를 고려해 2021년 4월 22일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참관한 뒤 남부군관구·서부군관구의 군부대 비상 점검 훈련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훈련 참가 부대들에 4월 23일부터 상시 주둔지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쇼이구 장관은 이날 크림 지역에서 나토의 군사·정찰 활동이 많이 증가했다며 나토 연합군의 ‘디펜더 유럽-2021’ 훈련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러시아 측의 발표가 나온 뒤 “상황을 감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자국으로의 군사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며 나토 국가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 접경 지역으로 군부대를 증강 배치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2021년 3월 1억2,500만 달러(약 1,500억 원)의 군사 지원을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의했다.

 

그리고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2021년 6월 28일부터 7월 10일까지 유럽의 흑해에서 다국적 연합해상훈련 ‘시 브리즈21(Sea Breeze 21)’을 실시했다. 시 브리즈 훈련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1997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러시아 압박용 군사훈련이다. 이 훈련에 2017년 18개 나라가, 2020년 9개 나라가, 2021년 32개국이 참가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2021년 9월 19일부터 10월 1일까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미국을 포함한 15개 나토 국가들과 합동군사훈련 ‘래피드 트라이던트 2021’을 하고 있다. 이 훈련도 나토 주도로 매년 시행되어 이번에는 15개국(우크라이나·미국·불가리아·캐나다·조지아·독일·이탈리아·요르단·리투아니아·몰도바·파키스탄·폴란드·루마니아·터키·영국)에서 6,000명의 군인이 참가한다.

 

훈련 책임자인 블라디슬라프 클로취코프 준장은 이번 훈련이 우크라이나의 유럽 통합을 향한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8년 동안 러시아 침략을 저지해 온 우크라이나군의 독특한 전투 경험을 국제 동료들과 공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올해 우크라이나 주도로 창설한 크림 플랫폼에 참가한 각국의 대표들.  © 이인선 연구원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군사적 협력을 넘어 국제회의를 출범시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1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 30주년을 맞아 유럽연합 국가들을 중심으로 46개국 대표들(발트 3국·폴란드·조지아·미국·독일·영국·일본·호주·한국·중국 등)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독립광장 행사로 초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44국 대표들(한국·중국 불참)과 ‘크림 플랫폼(Crimea Platform)’이라는 국제회의를 출범시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되찾아올 때까지 이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겠다”라고 선포했다. 이에 참석한 국가들도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위해 필요한 공동의 외교적 노력을 환영한다”라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반러 행보는 2021년 9월 1일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만나면서 당분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에 직면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 굳건히 헌신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은 우리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주권과 영토 보전의 확고한 지지자”라고 화답했다.

 

또한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전방위적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측은 전략적 방위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에 첨단 전략·감시 자산을 동원한 방위 협력을 약속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양국 간 방위 협력이 우크라이나가 희망하는 자국 내 미군 기지 설치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던 기존 안보 지원에 더해 6,000만 달러(약 696억 원)에 이르는 안보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수출입은행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초기 자금 30억 달러(약 3조4,824억 원)를 지원해 경제 재건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도 우크라이나를 도와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북한·이란에 대한 대응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러시아는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행보에 대응해 비판과 제재 연장을 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021년 8월 25일 크림병합을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합법 조치라며 “러시아는 크림 플랫폼을 우리에 대한 아주 비우호적 행사로 간주하며 러시아 지역인 크림에 대한 유사한 성명들을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1년 9월 20일 제재 관련 대통령령에 서명하며 서방 주요국 식료품 수입금지를 골자로 한 제재를 2022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병합 이후 이어진 서방의 제재에 대응해 제재 국가 목록을 만들고 해당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8월 초 서방의 대러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먼저 유럽연합(유럽연합) 회원국과 미국·캐나다·호주·노르웨이 등의 농수산물 및 식료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제재를 가했다. 그러다 2015년 8월부터는 알바니아·몬테네그로·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등을 제재 국가 목록에 추가했고 2017년 1월에서야 우크라이나를 목록에 추가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제재를 가하며 견제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당분간 좋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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