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째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노리나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2/02/08 [17:48]

일본은 어째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노리나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2/02/08 [17:48]

▲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사도광산 내부 갱도.  

 

조선인의 피와 넋이 서린 일제강점기 사도광산

 

지난 2월 1일, 일본 정부가 각의(국무회의)에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뒤 논란이 거세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으로 무엇을 노리는지 짚어보려 한다. 

 

일본 니가타(新潟)현에서 북서쪽으로 약 35km 떨어진 동해상에는 사도가(佐渡)섬이 있다. 바로 이 섬에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넋이 서린 사도광산이 있다.

 

▲ 사도가섬, 사도광산의 위치를 보여주는 구글맵 지도.  

 

에도(江戶)막부 시기였던 1601년에 금맥이 발견된 사도광산은 한때 일본에서 가장 많은 금과 은이 채굴되는 광산이었다. 사도광산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노동 강도가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았고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佐渡金山(사도금산·사도광산의 일본 명칭)을 검색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두드러진다.

 

“이 사도(광산) 징용은 무엇보다 두려운 일로 여겨졌다. …(중략)… 광산 갱 속에서 물을 퍼 올리는 인부들을 수용하는 헛간은 산 깊숙한 골짜기에 있어 외부와의 교통은 단절돼, (인부들의) 도망을 막았다. 관리인들이 (인부들을) 감독했는데 그 잔인함은 감옥 이상이었고 죽을 때까지 기한 없는 중노동을 억지로 해야 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위와 같은 반응이 나올 정도였으니, 머나먼 조선에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에서 사도가섬까지는 아주 멀고도 험한 길이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먼저 한반도의 부산에서 일본열도 내륙 깊숙한 니가타현까지 먼길을 가야 했다. 니가타현에 도착하고 나서는 다시 좁은 배에서 멀미를 견뎌야 간신히 사도가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도광산에서의 가혹한 채굴 노동은 조선인들이 사도가섬에 다다르기까지 겪은 고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식민침탈에 나선 일제는 사도광산에서 구리, 철, 아연 같은 전쟁물자를 채굴했다. 정확히는 전범기업으로 악명 높은 미쓰비시(三菱)가 2천 명에 이르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동원해 광물을 채굴하게 한 것이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증거는 니가타현에서 출판된 『니가타사 통사편9 근대3』, 『사도 아이카와의 역사 통사편 근·현대』 같은 책에 분명히 기록돼 있다.

 

심지어 일본 극우세력에서 ‘일제가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대우를 후하게 해줬다’라며 증거로 내놓은 『사도광산사』를 살펴봐도 착암, 운반 등 위험천만한 갱내 노동은 일본인 노동자들 대신 조선인 노동자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했음이 드러난다. 

 

방호복도 입지 못하고 갱도에 들어간 조선인 노동자들은 미세한 광물 가루를 흡입했고, 이로 인해 폐가 굳는 규폐증과 진폐증으로 죽기 전까지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인들이 겪은 참상은 임태호 씨의 증언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2021년 1월 6일, 진폐증으로 세상을 떠난 임태호 씨의 유가족은 MBC를 통해 임태호 씨가 남긴 증언을 공개했다. 임태호 씨의 장녀 임간란 씨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쉬는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한국 사람은 다 (갱도) 안쪽에서 일했고, 일본 사람은 입구 쪽에서 (일했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걸까”라고 말하며 곧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사도광산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43년 6월 기준으로 조선인 노동자 중 14.7%가 광산에서 탈출했다고 한다. 바다에 둘러싸인 사도가섬의 특성상 탈출은 굉장히 어려웠고 붙잡히면 끔찍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수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사도광산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말 뒤집기, 역사 왜곡 뒤에 도사린 ‘극우 아베’의 그림자

 

본래 일본 안팎에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올해 중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한국에서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 강제노동을 인정하라’라며 사도광산의 등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중순까지만 해도 기시다 정권은 “한국 측의 입장을 알고 있다”라며 사도광산의 등재 추진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2월 들어 기시다 정권이 “한국을 배려하지 않겠다”라며 말을 뒤집고 등재 신청을 강행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기시다 정권을 뒤에서 쥐락펴락하는 극우세력의 수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지난 1월 20일, 아베는 자민당 중앙본부에서 “최종적으로는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정부가 결정을 하는 것이지만 역사 싸움을 피하는 형태로 등록을 신청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라고 강조했다.

 

뒤이어 1월 24일, 아베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조회장은 중의원 예산위에서 “이번 연도 (사도광산의 등재) 신청을 미룰 경우 임금을 받고 일한 한반도 출신자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발신하게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정조회장은 집권 자민당의 정책을 두루두루 관장하는 실세 중의 실세다.

 

이제는 더 이상 총리도 아닌 아베가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한 분석을 아래에 소개한다.

 

“한국의 반발을 고려해서 올해는 (사도광산의 등재 신청을) 보류한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자민당 보수파에서 압박을 받고 기시다 총리가 방침을 뒤집은 모습이다. 이번 추천(등재 신청)은 꽤 무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3일, 사와다 가쓰미(澤田克己)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이 ‘선데이 마이니치’ 보도 <‘사도금산’은 원한 시합, 한국이 화내는 진짜 이유>를 통해 내놓은 분석에서

 

유네스코에는 한 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실패한 문화유산은 두 번 다시 등재를 신청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사도광산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21개국 가운데 3분의 2의 찬성을 받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은 아니지만, 국제사회를 향해 ’강제동원은 잘못됐다‘라며 여론전을 펼치면 사도광산은 후보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초강수를 두는 이유에는 반한감정을 불러일으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가 되면 좋고, 되지 않더라도 오는 7월로 다가온 참의원선거에 대비해 반한감정을 악용할 수 있으니 괜찮다는 식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본 내에서 잇따르는 비판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과 관련해 일본 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을 두고 일본 시민단체와 언론을 중심으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월 25일, 일본인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는 <일본 정부는 전시 조선인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해야만 한다>라는 제목으로 긴급성명을 내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일본에 의한 총력전 체제 아래 전시 노무동원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약 80만 명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사도광산이 강제노동의 현장이라는 한국 측의 주장도 사실이다.”

 

“그것을 ‘한국의 독자 주장’이라느니 ‘받아들일 수 없다’라느니 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는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역사를 부정하지 말고 이 기회에 강제노동의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한국 측의 비판이 문제라는 대응은 잘못됐다.”

 

▲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가 공개한 긴급성명 원문.  

 

그런가 하면 지난 1월 28일, 일본 민영방송 AHN은 “한국의 반발이 있는 가운데 세계유산의 추천은 정말 필요한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AHN은 “(일본에서 사도광산이) 지금까지 전혀 관심도 끌지 않았는데 한국의 등장으로 주목받게 됐다. 무엇을 위한 등록?”이라는 일본 사회네트워크서비스(SNS)의 여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 유력 신문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1일, 마이니치신문은 ‘문화의 정치 이용을 위험하게 여긴다’라는 사설에서 “가까운 이웃 나라와 대결 자세를 연출하려는 생각으로 문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동은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뒤이어 2월 2일, 아사히신문은 ‘사도광산 유적, 겸손하게 전하는 조화야말로’라는 사설에서 “부정적인 면에 대한 지적을 겸허히 마주 보고, (유네스코) 가맹 각국과 유산의 가치를 다면적으로 인정하는 조화의 자세를 유의해야 한다”라며 일본 정부의 대응을 꼬집었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는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잘못됐다는 평가가 적잖다.

 

세계 최악의 역사의식…단단히 망조 든 일본

 

앞서 살펴봤듯 일본에서도 기시다 정권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과 관련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극우세력이 행정부와 국회 권력을 통째로 틀어쥔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 사회 전반의 인식이 몹시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니가타현 사도시에서는 과거 에도막부 시절 갱도에서 일한 주민들의 모습을 65개의 밀랍인형으로 재현,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홍보하고 있다. 인형들은 하나 같이 활기차고 밝게 웃는 모습이다. 하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돼 고통받은 모습은 전혀 찾아볼 길이 없다. 

 

▲ 지난 2021년 2월 21일, 에도막부 시절 사도광산의 일본인 노동자를 본따 만든 밀랍인형을 소개하는 아사히신문 보도. 

 

지난 1월 19일, 니가타현 지역방송인 니가타스마일TV(NST) 보도에 따르면 하나즈미 히데요(花角英世) 니가타현 지사는 “(세계유산 등재와) 전쟁 중 시대의 이야기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며 “유네스코에 (사도광산의 등재를) 추천해 유네스코 내부에서 필요한 논의를 진행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한국을 무시했다.

 

와타나베 류고(渡辺竜五) 사도시 시장은 “25년 (동안 사도시의) 많은 분이 문화심의회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다”라며 “25년 (등재에) 도전한 무거움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받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위 발언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참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이야말로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극우의 수렁에 빠지는 일본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일본 정부에서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악용해 일본과 우리 민족 사이의 대결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일제 패망 이후 70여 년이 흘렀지만, 갈수록 엇나가고 후퇴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단단히 망조가 들었다는 평가도 지나치지는 않을 듯하다. 

 

마치며 : ‘제2의 군함도’를 막기 위해 싸워야

 

사도광산은 ‘제2의 군함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명 군함도로 불리는 나가사키(長崎)현 하시마(端島)섬에서 석탄 채굴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도 열악하고 비참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일본은 1910년(경술국치) 이전 시기의 하시마를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으로 강조하는 꼼수를 써, 하시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단 ‘조건부 등재’였다.

 

당시 일본은 ‘하시마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를 위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강제동원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사도광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에도시대(1603~1867)로 시기를 한정한 것도,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을 숨기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설마 일본은 숨기고 감추다 보면 언젠가는 일제의 죄를 완전히 파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이 추정대로라면, ‘역사를 잊고 싶은 일본’의 위험천만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역사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건 극우화와 역사왜곡으로 중무장한 일본이 사활을 걸고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본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국제사회 전반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끝까지 극우화한 일본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제 남은 길은 이 길밖에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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