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동지, 잘 지내시나요? 동지가 떠난 그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자주 만난 사이가 아닌데, 알고 보니 우리는 늘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그대는 나에게 가끔씩 아는 척을 합니다. 언제고 툭툭 나타나 평소처럼 완전히 공감해주는 그대를 만날 때마다 와락 반갑고 한편 너무나 그립습니다.
며칠 전 문득 동지가 보고 싶어서 주인을 잃어버린 문자며 인스타그램에 남은 사진들, 사무실 한켠의 그림들, 페이스북에 남은 글들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동지들 곁을 떠나 낯선 천마산 자락에서 투병 중에도 그대는 언제나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남긴 사진 하나하나 글 한 줄 한 줄이 그대가 모든 사람을 사랑했듯, 주변의 모든 것을 얼마나 애틋해했고 귀하게 대했는지 새삼 알려줍니다. 혜원 동지가 겨울을 사랑했구나… 했는데, 둘러보니 모든 계절을 사랑했습니다. 목련을 사랑했구나… 했는데, 떨어져 말라버린 목련의 이파리도 꽃을 닮았다며 사랑했습니다. 그야말로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대였습니다.
언제나 조용해서 없는 듯했던 혜원 동지는 돌아보면 모든 순간에 있었습니다. 이름이 걸리지 않는 무대에, 곧 부서져 사라질 거리의 조형물에, 행진하는 대오의 현수막에, 지붕과 조명이 없는 바람 속 전시실에, 남보다 먼저 날을 지새우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뒤처리를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곳에 남아있는 동지의 작품에 동지의 이름은 희미합니다. 몇 날 밤을 지새우며 만들고 단 몇 시간 만에 부서졌을 숱한 조형물들에도 그대는 영혼을 들이부었을 텐데, ‘신혜원’ 그 이름을 그렇게 숨겼습니다. 요구되는 작품을 내놓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선후배들과 토론하고 지혜를 구하고, 이거다 싶으면 몇 날을 지새우며 작업을 해놓고도 그 성과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 기획한 조직의 성과, 지혜를 준 선배의 몫, 토론에 함께해 준 동지들의 덕으로 돌렸습니다. 작은 공을 부풀리고 싶어 하고, 자신의 간판과 명판에 집착하는 세태에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기력이 다해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새로 나온 북녘 기행문을 챙겨 읽고 있었던 혜원 동지를 생각합니다. 동지는 그 책에서 오타를 하나 발견했다며 알려왔습니다. 야무진 사람. 느긋하니 무엇에도 크게 걸려하지 않을 듯 보이는 이면에 얼마나 완벽주의적인 일꾼의 기질이 있었는지, 그대는 사람에게는 자애롭고 주어진 임무 앞에서는 철저했습니다.
혜원 동지를 추억하는 모든 순간이 나의 부족을 떠올리게 합니다. 혜원 동지와 가까워질수록 내가 문예운동가로서 얼마나 부족한 품성의 사람인지 자꾸만 비교되었습니다. 동지가 그려준 시화를 담은 시집을 내고, 동지가 그려준 그림으로 전국을 다니며 시화전을 했는데, 거기에 내 이름은 있어도 혜원 동지의 이름은 희미했습니다. 전국을 돌며 반미통일 시화전을 하고 우리 다음번엔 금강산이랑 대동강 변에서 ‘통일만세’ 시화전을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기억하고 있지요? 언제 어디서든 꼭 함께합시다.
알수록 더 그리운 신혜원 동지, 배우고 닮아갈 수 있도록 더 많이 그대를 생각하겠습니다. 고마웠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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