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 17형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은 미사일이 고각발사됐으며 최대정점고도 6,248.5km, 거리 1,090km, 비행시간 4,052초(약 68분)이고 동해 공해상 예정수역에 정확히 탄착했다고 밝혔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탄두 중량을 1t으로 한다면 (화성포 17형의) 최대 사거리는 1만 5,000㎞ 이상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거리 15,000km면 미국 전역을 넘어 일부 남미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
화성포 17형 발사는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즉각 북한을 규탄하며 유엔 안보리 회의를 소집했다. G7과 유럽연합도 각각 북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전 세계 언론들이 화성포 17형 소식으로 뒤덮였다. 국내 언론도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북한 미사일에 더 주목했다.
1. 화성포 17형
노동신문은 화성포 17형에 대해 “그 어떤 군사적 위기에도 공세적으로 대응하며 공화국의 안전을 수호하는 강위력한 핵전쟁 억제력”이라고 평가했다.
화성포 17형은 길이 25m로 추정된다. 전 세계 이동식 ICBM 중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둥펑-41은 21m, 러시아의 RS-24 야르스는 23m다. 미국은 이동식 ICBM이 없다. 미국의 고정식 ICBM 미니트맨3의 길이는 18m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화성포 17형의 길이를 28.5m로 추산하며 “미국의 LGM-30 미니트맨3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도시 한 개를 초토화할 수 있고, 러시아의 사르마트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프랑스 영토만 한 크기의 나라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다. 사르마트보다 탄체 길이가 6.8m 짧은 화성포-17형은 프랑스 영토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나라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2017년 사거리 13,000km의 화성포 15형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음을 이미 증명했다. 그런데 왜 더 큰 미사일을 추가로 개발했을까?
가장 많은 분석은 화성포 17형이 다탄두 ICBM이라는 것이다. 탄두를 여러 개 실으면 총 탄두 무게가 늘어나고 그만큼 사거리는 줄어든다. 그래서 더욱 사거리가 긴 미사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화성포 17형은 화성포 14형의 4배, 화성포 15형의 2배의 탄두 탑재 중량을 가진 ICBM으로 추정된다”라고 분석했다.
다탄두 미사일은 미사일 한 기로 여러 지점을 공격할 수 있어 위력적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3월 26일 YTN 인터뷰에서 “(다탄두 미사일은) 이론적으로 워싱턴뿐만 아니라 그다음에 LA, 시카고를 동시에 타격이 가능하다”, “(다탄두 미사일은) 요격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북한은 화성포 17형을 발사차량에 장착한 상태로 쏘았다. 북한은 2017년 화성포 15형의 경우 차량 운반 후 별도의 지지대에서 쏘았다. 차량에서 바로 발사하면 발사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상대방이 선제타격하거나 요격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차량 기술도 진일보했음을 의미한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3월 25일 “화염을 TEL(Transporter Erector Launcher, 이동형미사일발사체) 반대쪽으로 유도할 수 있는 화염유도장치를 붙여 TEL의 손상을 막았”고 “발사에 따른 진동에도 안정화하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장영근 교수의 분석대로 발사 초기 화염이 차량 뒤쪽으로 유도되었지만 얼마 후엔 화염이 차량 아랫면 전체로 퍼진다. 따라서 북한이 타이어나 발사차량 본체가 대형 화염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기술도 함께 향상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발사차량에 대해서 살펴봐야 할 게 더 있다. 화성포 17형 발사차량은 바퀴가 11축에 달하는 거대한 차량이다.
미사일이 너무 크면 운용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 시사인 남문희 기자는 2017년 12월 25일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동식 미사일을 싣는 차량의 최대치가 보통 바퀴가 8개짜리”라면서 “8축 차량만 해도 기동성에 제약이 있다. 회전 반경이 커 웬만한 도로에서는 주행하기 어렵다”라고 논평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박사도 2020년 10월 16일 “(대형 미사일 발사차량은) 이동에 제약이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충분히 사전 탐지를 통해서 요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북한 영상을 보면 화성포 17형 차량이 격납고에서 나와 이동한 도로의 폭은 10m가량의 보통 크기였다. 이 도로를 따라서 거대한 발사차량이 90도 좌회전을 하는 장면을 영상에서 볼 수 있다.
길이 30m에 달하는 11축 차량이 어떻게 10m 폭 도로에서 90도 좌회전을 할 수 있을까? 영상을 보면 차량 앞쪽 바퀴 4개축이 옆으로 틀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차량의 회전 반경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 나오진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뒷바퀴 4개축도 동시에 움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차량을 설계하려면 바퀴마다 회전 각도가 달라야 한다.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차축을 늘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오스트리아의 민간연구단체 오픈뉴클리어네트워크는 2020년 10월 16일 보고서 ‘북한의 신형 ICBM과 수송트럭’에서 여러 축을 효과적으로 작동시켜 운전할 수 있게끔 미사일발사차량 조종 체계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도전 과제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총 8축 중 차량 앞뒤로 3축씩 총 6축을 작동할 수 있는 미사일 발사 차량이 있다. 가장 기술력이 높은 회사는 독일회사로 9축 차량 중 7축을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북한은 11축 중 8축을 작동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셈이다. 중국, 러시아 차량을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회전 반경 문제를 해결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대형 차량의 운용 가능성을 의심한 것이다. 북한이 기술력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2. 북한 동향
화성포 17형 시험발사에 대한 북한의 동향은 어떨까? 이는 북한이 공개한 화성포 17형 시험발사 영상에서 엿볼 수 있다.
영상은 “발사” 구령과 함께 화성포 17형을 쏘아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성포 17형과 함께 격납고에서 나온다. 영상은 북한이 준비를 마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 군인이 함께 환호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영상의 특이한 점은 뮤직비디오나 영화와 같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평소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활동 영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북한 표현을 빌리자면 말 그대로 ‘기록영화’였다. 북한은 이런 영화들을 통해 긍지와 자부심, 성취감과 함께 비장함, 결의, 각오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번에 완전히 다른 형식을 선보였다.
3월 25일 YTN은 “파격적인 구성과 화려한 편집 기법으로 차별화”한 영상이라며 “흡사 마블시리즈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 예고편이나 K-팝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한다고 묘사했다. 마블시리즈 같은 소위 ‘히어로물’은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영웅을 그리는 영화 장르다. 북한 영상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긍지와 자부심, 결의와 각오는 이전 영상과 똑같이 표현되지만 비장함이 줄고 신나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북한 국민이 기뻐하는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이 영상이 영화라면 그 주인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영상 초반부에서 양 옆에 군 간부를 대동한 채 화성포 17호를 이끌고 등장하거나 중반부에서 발사차량을 등지고 홀로 걸어 나오는 장면 등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영화 주인공과 같이 표현됐다. 후반부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인들과 횡대로 서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장면도 ‘히어로물’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다. 북한이 자기 지도자를 최고로 내세우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모습을 과시하려는 듯하다.
이 영상을 통해 화성포 17형 시험발사를 대하는 북한의 정신상태를 엿볼 수 있다.
첫째로, 북한은 자신들이 세계 최고, 극강의 군사력을 지녔다는 성취감이 충만한 것 같다.
노동신문은 화성포 17형을 “절대적인 힘, 무적의 자위적 핵전쟁 억제력”이라며 “이 강위력한 정의의 핵보검은 미제국주의와 그 추종무리들의 군사적 허세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자기 국방력이 미국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둘째로, 이런 극강의 국방력을 자력으로 만들었다는 자긍심을 가진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화성포 17형 시험발사를 “주체적 힘으로 성장하고 개척되어 온 우리의 자립적 국방공업의 위력에 대한 일대 과시”라고 평가했다.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나 중국의 지원을 받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전략무기의 경우 기술이전은 고사하고 쉽게 판매하지도 않는다.
미국도 동맹국에 전략무기 기술을 넘겨주지 않는다. 2011년 미국은 한국이 F-15 핵심 장비를 뜯어 기술을 훔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F-15의 핵심 장비에 있던 봉인이 뜯어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은 주요 전략무기의 한국 수출을 중지하고 정밀조사를 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만큼 기술 유출에 예민한 것이다. F-15는 전략무기가 아닌데도 이 정도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화성포 17형은 북한이 자기 힘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북한도 화성포 17형을 완전히 자기 힘으로 만들었다는 긍지를 느끼는 듯하다.
셋째로, 북한에서 평화와 자유를 느끼며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전략무력이) 미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위험한 군사적 기도도 철저히 저지시키고 억제할 만단의 준비태세에 있다”라고 확언했다.
영상에서 북한 군인들이 기뻐하는 장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 등에서 미국이 더는 전쟁을 걸어오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그로 인한 해방감이 풍겨 나오는 듯하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이 화성포 17형 발사 후 환호하면서 더 열심히 일할 각오를 다져 생산량을 늘리고 공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평화적 환경이 조성되니 경제건설에 더욱 집중해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넷째로, 앞으로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대미 정책을 생각대로 마음껏 펼 수 있겠다는 진취성과 포부가 느껴지는 듯하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당장 중단하라. 그렇지 않으면 워싱턴 앞바다 공해상에 ICBM 실사격 훈련을 하겠다’라고 엄포를 놓는다고 상상해보자. 미국은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북한이 앞으로 쓸 수 있는 대미 작전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 대남, 대일 작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미사일이 위력적이지 않거나 자체 개발한 게 아니었으면 지금 같은 경축 분위기가 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기존 수준의 무기나 수입 무기를 놓고 이렇게 떠들썩하게 축하하면 비웃음만 사게 될 수 있다. 북한의 경축 분위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사일을 스스로 만들어 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80돌을 성대히 경축하기로 한 바 있다. 북한 국민은 화성포 17형 시험발사를 바로 그 성대한 경축 행사 중 하나로 여길 듯하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발사로 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까지도 달성한 셈이다. 그런 기쁨이 북한 보도 영상에 응축된 것 같다.
3. 미국 반응
1) 대화 촉구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3월 24일 북한을 향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이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대화에 관여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등지에서는 화성포 17형 발사로 북한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미국이 금지선을 넘은 북한에 여전히 대화를 촉구하는 게 인상적이다. 금지선을 넘었으면 군사적으로 맞대응해 응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위 ‘죽음의 백조’라고 부르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미국이 자랑하는 무기, 군사력은 다 어디에 있나. 화성포 17형이 발사된 지 며칠이 지나도록 군사대응을 한다는 소식은 없다.
미국이 군사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북한의 더 강한 행동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괌이나 주일미군 기지에서 전략폭격기 등을 출격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북한이 ‘도발 원점’인 괌이나 일본을 포위사격 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더욱 수위 높은 군사행동을 하면 미국은 감당할 수 없다.
미국이 고심 끝에 군사대응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군사대응을 해도 김이 샌다.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리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다. 예측했기 때문에 미 공군 주력 통신감청 정찰기 RC-135V 리벳조인트, 고공정찰기 U-2S 드래곤 레이디, 주일미군의 전자정찰기 RC-135S 코브라 볼 등을 띄워 북한을 감시하고 있었다.
정찰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징후를 포착해 선제타격을 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사일 발사 후 1주일이나 한 달 쯤 뒤에 대응할 거면 그냥 기다렸다가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면 된다. 하지만 미국은 정찰기를 띄워 북한을 감시해놓고도 여태껏 군사대응을 하지 못했다.
만약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예상하지 못했던 거라면, 미국은 사실상 기습을 당한 것이다. 세계적 망신이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 발사를 예측했다면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으므로 이미 승기를 놓치고 기세가 꺾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킬체인, 선제타격 같은 이야기를 하는 마당인데 미국의 꼴이 한심하게 됐다.
2) 바이든 대통령 유럽 방문
북한이 화성포 17형을 발사했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4일 나토 정상회의, G7 정상회의, EU 정상회의에 참여했다. 25일엔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정상회담을 하고 폴란드-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있는 미82 공수부대를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한 이유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투입하자고 나토에 정식 제기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주요 의제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방문은 바이든 정부로선 중요한 정치 쇼였다. 우선 러시아를 압박하고 우크라이나를 고무해야 했으며 한편 미국 국민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었다.
미국 국민 속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는데 미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팽배하다.
AP통신이 3월 2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56%가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해 충분히 강경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라고 보도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2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0%로 같은 기관의 조사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쟁 초기 잠깐 지지율이 반등했지만 이내 곤두박질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여론을 유럽 순방으로 반전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 유럽 방문 중에 화성포 17형이 올라갔다. 전 세계 이목이 순식간에 화성포 17형으로 집중됐고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방문은 정치적 효과가 상당히 퇴색됐다. 미국이 한 방 맞은 것이다.
화성포 17형 발사로 미국의 군사적 선택지도 좁아졌다. 물론 원래도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개입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군사개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됐다. 화성포 17형 발사로 미국이 북한을 주목하고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만 하게 됐기 때문이다.
3) 대북정책 파산
화성포 17형 발사로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파산됐다.
많은 전문가가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바이든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분석이다. 2월 4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차관보는 미국의 소리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위협에 대한 대응은 미국에 최우선 순위”라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를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여긴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뿐이다.
현재 바이든 정부가 내놓은 대북정책은 현상 유지, 시간 끌기다. 대화하자니 북한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하는데 그러긴 싫고, 군사 대결을 하자니 북한의 군사력이 위협적이었다. 그러니 대화하지도 않고 적극적인 대결도 하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본 듯하다.
그런데 북한이 금지선을 넘었다. 금지선을 넘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패배를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미국은 언제까지 시간 끌기만 하고 있을 수 없게 됐다. 미국이 시간을 끌면 바이든 정부는 대체 무얼 하느냐는 여론이 빗발치게 될 것이다. 벌써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나약함이 북한 미사일 발사를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특히 4월에 하겠다는 한미연합훈련은 어떻게 될까.
4. 한국 대응
문재인 대통령은 화성포 17형 발사 당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주재해 “심각한 위협을 야기”했다고 북한을 규탄하며 “모든 대응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당일 오후 동해상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지대지미사일 현무2 1발, 지대지미사일 에이태킴스 1발, 함대지미사일 해성2 1발, 공대지 유도폭탄 2발을 발사했다.
이 대응은 ICBM에 대한 대응으로 보기엔 미흡하다. 발사한 미사일이 ICBM급도 아니고 ICBM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도 아니다. 그래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3월 25일 국군은 F-35A 28대를 활주로를 따라 이동시키는 ‘엘리펀트 워크’(코끼리 걸음) 훈련을 진행했다. 이 훈련은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직접 지휘했다. 하지만 이 훈련은 여러 비난을 샀다.
‘엘리펀트 워크’는 F-35를 실제 비행시켜 북한을 위협하는 게 아니다. F-35를 도열시켜 활주로를 이륙하지 않은 상태로 주행하는 훈련이다. 보유한 무기와 전투 준비 태세를 과시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한국이 F-35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북한도 이미 알고 있다. ‘엘리펀트 워크’는 북한이 화성포 17형의 실제 능력을 과시한 데 대한 대응으로는 급이 맞지 않는다. 급이 안 맞는 군사 대응을 하면 오히려 얕보이고 비웃음을 사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
북한을 압박하고 싶으면 F-35를 이륙시켜 휴전선 인근까지 진출해서 위협 비행을 하는 게 보통이다. 한미 당국은 2017년 9월에 이런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국군은 F-35를 이륙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이게 뭐하는 거냐는 비난이 나왔다. 관련 뉴스엔 “조기경보통제기 띄우고 휴전선까지 갔다 와야 진짜 무력시위지”, “일거에 타격당하면 어쩌려고 F-35를 한곳에 모으냐? 이거 너무 위험하다” 이런 댓글이 달리고 있다. 제대로 무력시위를 한 것도 아니어서 의미가 없고 오히려 미사일 한 발로 F-35를 모두 몰살시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국군은 왜 F-35를 이륙시키지 않았을까? 미국에 이륙허가를 받으려다 못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물론 국군이 평시작전권을 가지고 있으니 미국의 허가는 필요 없다. 하지만 국군이 습관적으로 미국의 승인을 받으려 했다가 괜히 허가를 받지 못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3월 28일 경향신문은 한국군이 북한에 맞대응하기 위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할 때 주한미군의 참여를 요청했지만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국방부 지시사항이라며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종합적으로 ‘엘리펀트 워크’는 군사적으로 무의미한 황당한 정치적 행사였다. 국제사회에 다 보도됐을 텐데 차라리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괜히 창피만 당하게 됐다.
5. 민심동향
국내 민심 동향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반윤석열 여론이 번지고 있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신임 대통령이 선제타격하겠다니 그동안 참았던 ICBM을 쏘는구나”, “선제타격 운운하니 윤 당선자에게 경고하네”라며 북한 미사일 발사의 책임을 윤석열 당선인에게 묻는다.
“선제타격하겠다던 바보는 어디로 갔나?”라거나 “5월 10일(윤석열 당선인 취임일)도 축하로 몇 발 쏴주세요”라며 윤석열 당선인을 조롱하는 반응도 나온다.
한편 일본에 미사일을 쏘아달라는 댓글도 눈에 띈다.
북한이 화성포 17형을 발사했다는 기사에는 “일본 본토에 한 발만 쏘자”, “기왕 쏠 거면 도쿄만 인근 해에 한방 줘라”, “후쿠오카 근처에 한방 쏘아 달라”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댓글 여론은 북한 미사일을 민족공동의 무기, 반일공동전선의 선봉으로 여기는 듯하다.
미국이 화성포 17형 발사에 경제제재로 대응하자 이를 비웃는 여론도 나온다.
“언제는 제재 안 했나”, “이제 북한이 무서워서 미사일 안 쏘고 핵포기 하겠네”라며 미국의 대응을 조소한다.
“미국 일본은 믿지 마라 뒤통수친다”, “미국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고도 모르냐 막상 전쟁 터지면 믿을 건 자주국방뿐이다”라며 미국에 대한 불신과 자주독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론이 양분된다. 문재인 정부 때는 남북대결이 없었는데 윤석열 정권이 시작되면 전쟁위기가 오겠다는 의견과 말로만 평화를 외쳤지 실제로 한 게 무어냐는 의견으로 갈린다.
북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북한이 발사한 무기에 어안이 벙벙해 하는 반응이다. 언론은 북한이 화성포 17형이라고 발표했지만, 한미 당국은 화성포 15형이라고 추정한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한미 당국이 직접 발표한 건 아니지만, 혹시 실제로 이런 추정을 하고 있다면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북한 미사일 능력을 낮게 보고 전쟁을 대비했다가 실제 북한 미사일 능력이 예상보다 높으면 전쟁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패배할 수 있다. 공개하지 않은 무기가 있을 거라고 보고 준비해도 모자란 게 전쟁이다. 그런데 북한이 시험발사를 통해 확인시켜준 미사일 능력조차 부인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래서 이런 보도는 여론 호도용이지 군사적으로 진지하게 볼 게 못 된다.
이런 보도가 쏟아지는 걸 보면 북한이 압도적인 ICBM을 선보였다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류가 있는 듯하다. 댓글에도 “(북한이) 어떻게 (화성포 17형을) 만들었지?”라는 반응이 종종 나온다. 북한이 어떻게 이런 최고 수준의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통념을 유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렇게 현실 부정하는 반응을 비웃는 여론도 나온다.
“화성포 17형이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그래도 인정해야지”, “화성포 15형 성공했을 때는 탄두 중량에 따라서 사거리가 9천~1만3천이라고 해놓고 (이번 미사일은) 사거리가 1만 5천km가 넘어가는데 그래도 엔진 2개짜리 화성포 15형이야? 왜? 제발 다탄두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냐?” 등의 반응이 나온다.
3월 28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성포 17형 시험발사 성공에 공헌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가공할 공격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어야 전쟁을 방지하고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며 온갖 제국주의자들의 위협공갈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라면서 “강력한 공격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하여 우리 군대에 장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4월 한미연합훈련을 비롯한 북미대결의 향방 그리고 5월 출범할 윤석열 정권의 앞날이 주목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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