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진보 활동가, 김은주 동지

황선 | 기사입력 2022/05/23 [14:32]

생활밀착형 진보 활동가, 김은주 동지

황선 | 입력 : 2022/05/23 [14:32]

▲ 김은주 진보당 후보가 지역 주민을 만나는 모습.  


어찌 보면 그녀는 다 가진 듯 보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세 자녀와 더불어 별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 다복한 주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얼마나 포기하고 살아왔는지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인정하게 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우리 강북구의 구의원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김은주 후보는 결혼 후 내내 강북구에서 살았습니다. 그 부부가 서울 변두리에 속하는 강북구에 신혼집을 낼 이유는 별로 없었습니다. 둘 다 제법 벌이하는 처녀·총각이었는데 아마도 그들 부부가 지역 활동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면 당연하게도 강남권, 최소한 소위 마용성(강북에 있으나 한강 인근이라 부동산 호재가 기대된다는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지역을 일컫는 말)정도에는 보금자리를 꾸리고 싶었을 터입니다. 두 부부의 출퇴근을 고려해도 그렇고 그들의 경제적 능력에도 과하지 않은 선택일 것이었습니다.

경제적 욕심을 더 냈더라면 김은주 동지 역시 일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출퇴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와 상근활동을 택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것은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기 마련이기도 하지만, 경제력의 수준이 곧 자아실현의 정도로 여겨질 만큼 돈을 제외한 모든 것의 가치가 하락한 사회라 자리 잡은 직업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들의 신혼집은 강북구 수유동의 좁은 골목 안에 있는 빌라였는데, 늘 사람이 북적거렸습니다. 그 집엔 집의 규모에 비해 넓은 테라스가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펴고 동네 청년회며 진보운동 선후배들이 숱하게 어울렸습니다. 내가 처음 들렀을 때도 그 부부는 다른 어떤 곳보다 그 테라스를 보여주며 이 정도면 빽빽이 앉으면 이삼십 명도 거뜬하지 않겠냐며 뿌듯해했습니다.

그럴 때 부부의 얼굴은 행복했습니다. 신혼집에 가면 새살림에 결혼 앨범을 들춰 보이느라 바쁘기 마련인데, 동지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쉬어갈 만한 공간이 자신들 집에 있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부부가 세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서도 그 가족이 온전히 집을 누리기는 했을까 싶은 것이 그 집 역시 늘 갖은 회의와 뒤풀이 장소로 한산한 날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니 그 사람들을 먹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일손이 빠른 전형적인 맏며느리 김은주 동지는 한 상 차려 사람들 먹이는 것을 척척 해내곤 했습니다. 

 

최근 몇 해는 지역의 건강한 밥상과 우리 농촌을 지키기 위한 밥상공동체 사업을 뿌리내리느라 애를 많이 썼습니다. 뭔가 손이 많이 가는 나물류 반찬을 할라치면, 전날부터 집으로 끌고 가 불리고 다듬고 썰고 하느라 일을 끝내고도 잠들지 못하기 일쑤였을 것입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세 자녀를 보내고 그 소중한 곳을 지키느라 마음을 다했고, 지역의 노동 사안이나 주민들 불편을 살피느라 늘 바빴습니다. 민족문제나 전쟁위기 고조, 주요 정치적 사안 등이 발생하면, 미아사거리나 수유역 등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행진대열에 서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바쁜 일정에도 한 편 동지들을 챙기는 것은 살뜰해서 그녀의 손길이 닿아 깔끔하게 다듬어진 생선이나 나물 등을 받아 펼쳐본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김은주 후보가 해낸 모든 일이 다 놀랍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그에게 현재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 세 자녀가 있다는 것입니다. 후대를 키운다는 것은 세상의 일 중 가장 정성이 많이 들어가야 하지만 통 정답을 모르는 일이라고 많은 부모는 생각합니다. 

가끔 진보운동을 하는 어머니 활동가들은 자녀 교육 문제 등에서 장애가 조성되거나 심란한 일을 마주하면 ‘내가 무슨 좋은 세상을 보자고 내 아이 하나를 책임지고 건사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뛰어다니나?’라는 자기연민에 빠지곤 합니다. 

그에게도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없었을 리 없겠지만, 오히려 김은주 동지가 고민한 것은 여타 다른 활동가들에 비해 형편이 나은 편인 자신이 다른 동지들보다 더 많이 헌신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형편임에도 자신의 어려움을 절대시하지 않고 늘 겸손했습니다. 경제를 전적으로 책임지면서도 전업 활동을 하다시피 하는 아내를 자랑스러워하고 내세워주는 남편의 존재만으로도 온갖 갈등과 억압 속에 진보운동의 길을 걸어야 했던 여성들에게 부러움을 살 수 있다는 생각, 자칫 활동이 취미활동이나 여가생활처럼 보여서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 속에서 얼마나 부단히 자신을 혁신하고 발전시켜 왔는지 모릅니다. 

더 좋은 학교 더 안전한 학교를 택해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음에도 가까이 안전진단에서 하자가 있다고 소문난 공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그 문제를 더불어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어떻게 저 많은 일을 다 해낼까 싶은 생각으로 그를 관찰하다 보면 김은주 동지를 감싸고 있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활과 밀착시킨 진보적 활동’은 김은주 동지가 지닌 강력한 힘이고 독보적인 매력입니다. 그 활동은 스스로 진보하게 하는 한편 동지와 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정치 관련해 도통 좋은 소식이 없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힘이 되고 낙관을 주는 진보적 정치인인지 모릅니다. 

그녀는 세상 가장 소중한 소양을 많이 가진 사람,

욕심뿐인 정치, 비겁하고 게으른 정치에 죽비를 내리 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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