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보여준 개방·실용 ‘야간 열병식’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기사입력 2022/06/21 [10:21]

북한이 보여준 개방·실용 ‘야간 열병식’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2/06/21 [10:21]



북한에서 탁현민 의견 받아 ‘야간 열병식’을 했다고? 

 

깜깜한 밤을 밝히는 환한 조명 아래 흐트러짐 없이 늘어선 군인들과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 17형 같은 가공할 무기들까지. 북한이 야간 열병식을 벌이면 전 세계의 시선이 평양 김일성광장에 쏠리곤 한다.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은 2020년 10월 10일 처음으로 야간 열병식을 열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야간 열병식을 진행했다. 이에 4월 25일 연합뉴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야간 열병식은 드문 사례”라며 “저녁 시간대에 행사를 열면 화려한 조명과 불꽃놀이 등으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북한이 진행한 야간 열병식과 관련해 한국에서 자신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5월 탁현민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겸 의전비서관이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에게 야간 열병식을 조언했다고 주장했다. 현 단장은 2018년 4.27 판문점,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탁 전 비서관과 머리를 맞대고 남북이 함께하는 공연을 준비한 장본인이다. 

 

탁 전 비서관은 5월 11일 보도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8년 현송월 (당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연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라면서 “현 단장은 연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결정 권한이 있었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 열병식은 밤에 하라고 내가 얘기해줬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탁 전 비서관은 북한에 야간 열병식을 조언한 이유로 “밤에 해야 조명을 쓸 수 있고 그래야 극적 효과가 연출되니까”라면서 “이후 북한은 계속 밤에 열병식을 했다. 북한의 연출이 조금씩 세련돼져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공개 표명을 하지 않는 이상 탁 전 비서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시기상 야간 열병식이 탁 전 비서관과 현 단장이 만난 뒤 진행된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이 펼치는 열병식은 전 세계의 눈길이 집중되는 행사다. 당연히 북한 측에서는 집단의 뜻을 모아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할 것이다. 

 

만약 탁 전 비서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외부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여 중요한 국가 행사를 치를 만큼 매우 개방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폐쇄된 사회였다면 탁 전 비서관이 낸 야간 열병식 의견은 아예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묻혔을 것이다. 

 

그런데 국힘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에서는 탁 전 비서관의 발언에 ‘이적행위’라며 공격했다. 

 

이 점을 보면 북한은 의외로 열려있고 탁 전 비서관을 공격한 한국이야말로 닫혀있는 사회일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북한은 정말 폐쇄사회인가? : 자유왕래

 

돌이켜보면 북한은 개방, 실용이라고 부를 만한 행보를 오래전부터 꾸준히 보여왔다. 

 

지난 5월 4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회담 관련 문서에 따르면 1971년 북한 측 대표는 “같은 민족끼리, 더욱이 한 핏줄을 이은 가족과 친척, 친우들끼리 만나고 자유로이 오고 가는 데 무슨 복잡한 절차와 수속이 필요하겠냐”라며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 친우들끼리 자유로이 편지를 주고받고 오고 가는 데 아무런 방해도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측에서 반대해 결국 자유왕래는 무산됐다.

 

또 2018년 1월 9일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북한에서 고위급회담 과정을 취재진에게 공개하자고 제안했지만 한국에서 거부했다. 

 

한국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고위급회담 당시에도 모든 회의 과정을 공개하자는 북한의 제안을 또다시 거절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2018년 6월 1일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이 온 겨레의 지지, 찬동은 물론 세계의 환영을 받고 있는 조건에서 선언 이행을 위한 첫 북남고위급회담인 만큼 공개적으로 기자 선생들이 다 있었으면 좋겠다”라면서 “실상황들을 보도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한국 측에 제안했다.

 

한국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기본적 내용을 얘기한 다음 정리된 것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기자분들이 다 보는 앞에서 논의할 수 있다”라며 북한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회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북한의 제안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독 북한과 관련해 나타나는 한국의 폐쇄성은 남북 민간교류가 활발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이 북한에서 온 인사들을 차에 태워 동선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살필 만큼 북한 인사들의 외부 노출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정부 기관에서는 버스에서 내려 이동하는 북한 인사들의 얼굴을 최대한 감추려 했고 환영 인사를 나온 한국 시민들이 ‘북녘 동포들과 만나게 해달라’며 항의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북한 인사들을 일일이 통제하고 감추려는 한국의 대응이 얼마나 강도가 높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을 듯하다. 

 

반면 한국의 시민들이 북한 곳곳을 찾았을 때는 상대적으로 크게 통제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측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찾았다. 정 전 장관은 평양 시내를 자유롭게 오갔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침에 대동강변을 산책했어요. 그러니까 아침 6시 반쯤 됐을까요. 고려호텔을 나서면서 평양역, 대동강을 다녀오겠다 그랬더니 아무도 제지하지 않더라고요. 거기 밑에 요원들이 많이 북쪽에서 나와 있었습니다만. …(중략)… 고려호텔이 시내에 있기 때문에 바로 옆에 평양역이 있습니다. 평양역 광장을 가로질러서 2~3km 쭉 남쪽으로 내려가면 대동강이 나오더라고요. 대동강변에 강변도로가 만들어져 있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시민들, 또 강변에 낚시꾼이 많아요. 낚시하는 사람들이 50~60명이 모여서 낚시를 하는데 그분들한테 말을 걸고 해도 자연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고.” (「정동영 “평양에서 연내 남북 100명씩 국회회담 열어야”」, YTN, 2018.9.21.)

 

같은 시기 남측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한 대학생 이에스더 씨는 당시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북한 인사들이 스스럼없이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나”, “북측 대학과 남측 대학이 많이 다른가”, “반갑다”라며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또 이에스더 씨는 북한 대학을 찾아 음대 학생들이 공연하는 모습도 직접 봤다고 한다. (강애란, 「평양회담 특별수행원 이에스더씨 “왜 우리는 하나인지 느꼈다”」, 연합뉴스, 2018.9.20.)

 

이러한 사례들을 톺아보면 북한이 한국과의 접촉을 흔쾌히 장려하고 강조해 왔지만 한국은 정반대로 북한과의 접촉을 꺼리고 반대해왔음을 알 수 있다. 

 

리명훈 선수의 NBA 진출을 가로막은 미국 

 

북한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깜짝 일화가 있다. 북한에서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신장 235cm)로 이름을 날렸던 리명훈 선수의 NBA(북미 프로농구) 진출을 모색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1990년대 후반 무렵 북한은 리명훈 선수의 미국 NBA 진출을 적극 추진했다. 그런데 미 정부는 리명훈 선수의 입국을 허가해주지 않았다. 미국은 리명훈 선수 측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국적을 바꾸지 않는 한 NBA 입단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농구를 하려면 조국을 버려라’라고 한 셈이다. 

 

당시 리명훈 선수의 NBA 진출을 모색했던 대리인 마이클 코인에 따르면 시카고 불스, 올랜도 매직, 인디애나 페이서스, 클리블랜드 카발리어 등 내로라 하는 NBA 구단에서 리명훈 선수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쩌면 리명훈 선수는 마이클 조던, 사킬 오닐 같은 유명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농구선수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미 정부가 쩨쩨하게 리명훈 선수의 NBA 진출을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분단돼 있던 독일과 우리의 사례를 비교해 봄직하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에서는 한국처럼 상호 방문을 완전차단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장벽의 검문을 통과해 가족, 친지들끼리 오가기도 했다. 

 

당시 서독에서는 동독 사람들에게 생필품과 지원금을 건네며 개방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동독은 서독 사람들의 접촉을 통제하며 까다롭고 민감하게 구는 폐쇄된 태도를 보였다. 오늘날 북한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는 마치 수십 년 전의 동독을 닮아있는 듯하다. 반면 북한의 개방된 모습은 동독보다는 서독에 가깝다. 

 

올해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22주년을 맞았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북한을 향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과 태도를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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