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187] 미국 자이언트 스텝, 경제 파국으로 가나⑥

김민준 기자 | 기사입력 2022/08/03 [08:56]

[아침햇살187] 미국 자이언트 스텝, 경제 파국으로 가나⑥

김민준 기자 | 입력 : 2022/08/03 [08:56]

(이어서)

 

미 연방준비제도(아래 연준)가 6월에 이어 7월에도 기준금리를 0.75% 포인트 올리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을 했다.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7월 27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파월 의장은 “물가가 1년간 많이 올랐고 추가적인 놀라움이 닥칠 수도 있다”라며 “상당한 추가 긴축이 있을지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또 “강한 노동시장을 유지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길은 분명히 좁아졌고 더 좁아질 수도 있다”라며 경제에 큰 충격이 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파월 의장은 “노동시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현재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다”라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통화정책이 더 긴축으로 가면 정책이 경제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면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말해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불확실’이라는 단어만 7번 이상 반복했고 ‘모르겠다’, ‘확신이 없다’는 말도 여러 차례 했다. 엇갈리는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의 횡설수설하는 듯한 발언을 두고 제각각 해석하면서 갑론을박하고 있다. 당장 앞으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7. 북한 변수

 

1) 서문

 

지금까지 「미국 자이언트 스텝, 경제 파국으로 가나」라는 제목으로 미국 경제위기의 원인과 파급 효과, 전망 등을 분석해보았다. 주된 내용은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 대결하다 역풍을 맞아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세계최강대국’을 자처하던 미국이 위기에 처한 건 그만큼 중국, 러시아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가 성장한 일차 요인은 물론 그 나라 국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미국의 개입도 있었다. 미국 자본이 대거 들어가 중국, 러시아를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켰다. 당연하게도 미국은 중러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러를 자국의 영향 밑에 집어넣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만약 미국 뜻대로 되었다면 이번에 중러는 제2의 플라자합의, 제2의 소련 해체와 같은 희생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희생을 통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는 위기를 넘기고 회생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엔 중러가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고 굴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국에 강경하게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중국, 대러시아 정책이 실패하면서 미국의 구상이 어그러졌다. 

 

그리고 이런 중러의 태도 변화에는 북한 변수가 있다. 지금부터 이를 살펴보려 한다. 

 

2) 단서들

 

가. 중국

 

북한은 중국에 영향을 주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되었고 2013년 3월 14일 중국 국가주석이 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6월 미중정상회담에서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다. 신형대국관계의 3가지 내용은 ▲대결과 충돌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한다 ▲상대의 제도와 노선,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존중한다 ▲함께 이익을 누리는 공동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존, 공리, 공영을 누리자는 것인데 미국이 동의할 리는 없었다. 미국은 군사, 경제, 외교적으로 중국을 압박했고 시진핑 정부는 미국에 맞서기보다는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가 되고 3개월이 채 안 된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시험을 하자 중국은 외교부 성명을 통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밝혔고 3월 7일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중국은 북한의 대미 강경 행동이 미국의 아시아 개입을 강화해 중국의 핵심 이익에 적잖은 손실을 입힐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박병광, 「시진핑 시기 북중관계에 대한 평가와 전망」, 『INSS 연구보고서 2020-8』,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20, 55쪽.)

 

그런데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하면서 분위기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급변하였다. 북중정상회담들에서 양 정상은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고 대미 외교에서 보조를 맞추기로 하였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당시는 중국이 주선했던 6자 회담이 최종 결렬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외교력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이었다. 여기에 2017년 11월 시진핑 특사로 방북한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할 정도로 새로 들어선 김정은 체제와 관계가 소원하였다. 이런 가운데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이른바 ‘중국 소외(차이나 패싱)’ 논란이 벌어졌다. 이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다니 시진핑 주석에게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상의하고 대미 외교에 관한 깊이 있는 협의를 할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3월 25~28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1차 북중정상회담 2주 후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은 다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조선중앙통신은 4월 18일 보도에서 “북중 간 전략·전술적 협동 강화를 논의했다”라고 하였다. 북중관계는 다시 ‘순치 관계(입술과 이의 관계)’와 ‘혁명의 한 참모부’를 얘기하는 상황으로 회복되었다. (박병광, 앞의 글, 55쪽.)

 

북미정상회담 직전인 5월 7~8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2차 북중정상회담에서는 양 정상의 해변 산책이라는 특이한 일정이 있었다. 이를 두고 노동신문은 5월 9일 보도에서 “(양 정상이) 흉금을 터놓고 따뜻한 담화”를 했다고 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의 관계”라고 말했다. 또 북한 수행단에 리수용, 리용호, 최선희 등 대미 외교 담당 일꾼들이 총출동한 것은 북중 사이에 대미 외교에 관한 긴밀한 협의가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6월 19~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차 북중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여기에는 박봉주 내각 총리, 노광철 인민무력상을 대동해 경제, 군사 협력까지 논의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동지들과 한 참모부에서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며 양국 관계가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특별한 관계”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조선의 입장과 결심을 적극 지지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국제정세, 지역정세가 어떻게 변화하든 ▲중국 당과 정부는 북중관계를 공고히 하는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며 ▲중국 인민은 북한 인민에 대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은 사회주의 북한을 계속 지지하는 등 3가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월 7~10일 4번째로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은 “북한이 주장하는 원칙적인 문제들은 응당한 요구이며 마땅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대하여 전적으로 동감했다”라고 하였다. 이는 대북 제재 해제, 평화협정 체결 등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신문은 1월 10일 보도에서 북중관계를 “진정으로 신뢰하는 동지 관계”라고 설명했다. 불과 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가 두 나라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19년 6월 20~21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는 미중 무역분쟁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6월 27~29일 일본 오사카에서 G20 회의와 미중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2018년 북미정상회담 직전에 북중정상회담을 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예정에 없었지만 6월 30일에는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전격 상봉해 사실상의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을 보면 시진핑 주석의 방북 기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대미 외교를 두고 긴밀한 협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방북 직전 노동신문에 특별기고문 「중조(북중)친선을 계승하여 시대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자」를 보내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노동신문 6월 19일에 게재된 이 기고문에서 시진핑 주석은 “전략적 의사소통과 교류를 강화하고 서로 배우면서 전통적인 북중친선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할 것”이며 “의사소통과 대화, 조율과 협조를 강화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2018년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순식간에 북중관계를 뒤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1년 반 사이에 5차례나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보인 중국의 대미 외교 정책 변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암시한다. 

 

나. 러시아

 

러시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은 바로 푸틴 대통령이다. 옐친 전 대통령과 푸틴 현 대통령은 전혀 다른 정책을 폈으며 두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인의 평가 역시 극과 극이다. 

 

옐친 정부에서 총리를 하던 푸틴은 옐친 전 대통령의 사임으로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5월 7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7월 19일 북한을 전격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11개 항의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당시 한국은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직후였고, 또 푸틴 대통령을 옐친 전 대통령의 그늘에 있는 정치 신인 정도로 여겼기에 푸틴 방북에 큰 주목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푸틴 방북은 소련 시절을 포함해 러시아 국가 원수로는 사상 처음이었으며, 푸틴의 대통령 취임 직후의 해외 방문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북러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알리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동북아는 극동지역으로 불리며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 변두리에 불과하다. 푸틴 정부가 극동지역에 관심을 돌린 건 2012년 신동방정책을 채택하고 극동개발부를 신설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미 12년 전인 2000년에 푸틴 대통령은 취임 2개월 여 만에 북한을 방문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을 주목해보아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을까?

 

소련의 마지막 원수이자 국방부 장관이었던 드미트리 야조프는 소련, 러시아의 대표적인 친북 인사다. 야조프 원수는 극동군 사령관 시절인 1985년 8월 광복절 40주년 경축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소련 군사대표단 성원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처음 접견하였다. 이후 2006년까지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접견했다. 김일성 주석 서거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난 첫 외국 정치인도 야조프였다. 1998년 7월에 방북했을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근 5시간이나 담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 드미트리 야조프 원수.     

 

야조프 원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야조프 원수는 주요 계기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축하 전문과 선물을 전달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야조프 원수에게 친서와 선물을 보냈다. 2012년 11월 8일 야조프 원수의 생일에 보낸 축하 친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야조프 원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혈연적이며 동지적인 관계를 맺어온 가장 가까운 동지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야조프 원수가 2014년 11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감사 전문에는 “저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와 맺은 특별한 관계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야조프 원수는 1991년 8월 소련을 해체하고 사회주의를 포기하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조직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고 야조프 원수는 1년 8개월의 수감생활을 했으며 1994년 사면되었다. 야조프 원수는 1998년부터 러시아 국방부 국제군사협력본부 주임군사고문으로 일했다. 

 

야조프 원수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려는 고르바초프를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며 미국과 정면 대결을 펼치는 북한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많은 시간 담화하고 또 북한 현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러시아가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가 약탈당하지 않으려면 북한의 선군정치, 자주외교, 자립경제 등을 배워야 한다고 여기고 이런 생각을 러시아 정치인, 군인에게도 널리 전파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미국에 뺏기지 않고 다시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한 푸틴 대통령도 야조프 원수의 주장을 놓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2001년 7~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북러관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월 26일~8월 18일까지 무려 23박 24일이라는 긴 기간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다녀왔다. 이렇게 긴 기간 열차에서 풀리코프스키 극동 대통령 전권대표 등 여러 러시아 인사들과 담화를 나누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의 현실을 잘 이해하기 위한 담화도 했지만,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데도 큰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레닌묘에 참배하자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큰 파문이 일었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참배를 위해 7년 전 없앴던 레닌묘 의장대를 부활시켰다. 소련 해체 후 누구도 찾지 않던 레닌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배한 것을 두고 러시아 신문 글라스노스트의 책임 주필은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러시아의 참된 혁명가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준 큰 걸음”이라고 말했다. 

 

▲ 레닌묘에 참배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스크바를 떠나기에 앞서 푸틴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단독 오찬 회동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요청해 이뤄진 이 회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급하게 요청하자 푸틴 대통령이 호응해 나선 것을 보면 푸틴 대통령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 방문 마지막 날 하산역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나는 귀하께서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이룩하지 못한 일을 꼭 이루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전문을 보냈다. 당시는 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런데 북한이 자신과 같은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러시아 공산주의자 대신 푸틴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낸 것을 두고 러시아 내에서도 놀랍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상적인 건 이 일이 있고 난 뒤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야당임에도 푸틴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고 일정하게 지지하면서 정치적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주가노프 당수가 반 푸틴 인사인 나발니를 두고 “초국적 거대 자본이 기획한 ‘색깔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러시아에 보내진 요원”이라고 비난하는 등 반 푸틴 시위를 미국의 음모라고 비난하고 푸틴 정부의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하는 등 반미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그간 북한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에 영향을 주려는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3) 대미 강경노선으로 바뀌었다

 

북한의 영향을 받은 후 중국과 러시아의 대미 노선이 전과 달리 강경하게 바뀌었다. 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가. 선군정치

 

노동신문은 2004년 12월 9일 논설 「온 누리를 비치는 불멸의 선군홰불(횃불)」에서 “(선군정치가) 세계정치에 미치는 그 영향력은 날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전 세계 340개당 대표단이 선군정치를 연구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으며 각국에 선군정치 연구조직이 결성되고 각종 토론회, 연구발표회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선군정치란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선군정치를 받아들이고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선군정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모습이 있었다. 

 

먼저, 군인의 정신 무장을 강조한다. 

 

북한은 군사력 강화의 핵심을 사상강군 건설이라고 본다. 군인이 많고 무기가 좋아도 군인의 사상 상태가 나쁘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강군 육성을 위해 군벌 문화와 군부 내 부정부패 청산에 집중했다. 

 

그간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을 7개 군구로 나눠 주둔했는데 이게 지방 군벌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군구 지휘관과 지방정부 정치인이 야합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8월 19일 보시라이 충칭 당 서기가 군구 사령관과 야합하여 중앙정부에 도전한 사건이다. 또 군구제도는 자기 군구를 방어한다는 방어전략을 지향하며 전투군대의 면모에서 벗어나는 단점도 있었다. (윤석준, 「“중국몽(中國夢)”을 이끄는 중국 특색의 군부 파워 엘리트: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주목하라」, 『다양성+Asia』 15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21.)

 

시진핑 주석은 2016년 토착화된 군구제도를 폐지하고 3대 군종 7대 군구를 5대 군종 5대 전구로 재편하였으며 각 전구 사령부가 공세적 원정 작전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또 군 지휘관을 실전경험이 풍부한 야전형으로 전면 교체하였다.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2명을 포함한 군급·장성급 100여 명을 부정부패와 규율 위반 혐의로 처벌했다. 이는 국공내전 과정에서 전사한 장군의 수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또 공산당 군사위원회 기율검사위원회, 군사위원회 정법위원회를 편성하고 군사 법규 40여 건을 제정하여 군대 내에 엄격한 규율을 세웠다. 또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군대의 경제 활동 참여를 금지했다. (「시진핑: 신시대의 길잡이」, 신화망, 2017.11.17.)

 

시진핑 주석은 2017년 8월 1일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경축식 연설에서 인민해방군이 승리하는 비법으로 “당의 지도, 이상적 신념, 개혁 혁신, 전투 정신, 혁명 기율, 군민 단결”이라는 “6개 위대한 역량”을 꼽았다. 또 강군 건설 노선으로 “정치건군, 개혁강군, 과학기술흥군, 의법치군(법에 따른 군 통치)을 근간으로 군민 융합 발전”을 제시했다. 여기서 ‘정치건군’이란 사상적, 정치적으로 군대를 건설하는 원칙을 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진핑 주석은 인민해방군의 정신 무장 강화를 추구했다.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군의 정신 무장 강화에 힘을 쏟았다. 

 

1991년 소련 해체 당시만 해도 러시아군은 무기력한 군대의 전형이었다. 탈영병이 늘고 무기는 녹이 슬었으며 자금도 끊겼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후 러시아군 재건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앤 M. 사이먼, 「소련 붕괴 후 개량된 군사력으로 우크라이나에 맞선 러시아(Russia Confronts Ukraine With Upgraded Military Rebuilt After Soviet Collapse)」, 월스트리트저널, 2022.2.1.)

 

푸틴 대통령은 2018년 국방부 내 군 정치국을 신설했다. 이를 소련 시절 군 정치장교의 부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군 정치국은 정치를 담당하는 부지휘관과 군종신부, 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병사와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주 임무라고 한다. (우태영, 「스탈린 부르는 푸틴...100년 만에 군정치국 부활」, 주간조선, 2022.5.8.)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애국심을 강조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강한 러시아’, ‘위대한 러시아’를 표방하면서 강대국의 지위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푸틴 대통령은 2019년 12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현대 민주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이념은 애국심”이라며 “애국심이야말로 가장 광범위하고 최고의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 2020년 5월 10일 인터뷰에서도 러시아의 국가 이념을 애국심이라고 규정하며 “애국심은 조국의 발전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영웅적이고 성공적인 미래를 내다봐야 하며 이것이 바로 성공의 입장권”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푸틴 대통령의 노력은 커다란 성과를 보였다. 90년대 무기력한 군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나토와 우크라이나군이 200만 달러(약 26억 원)와 유럽연합 거주를 미끼로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를 귀순시키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요원들은 러시아 조종사 10명과 접촉해 매수를 시도했지만, 조종사들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신고하면서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만약 러시아 조종사의 애국심이 부족했다면 러시아 첨단 전투기들이 우크라이나 손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반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막대한 무기가 암시장에서 밀매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로 보내진 미국 무기가 ‘잘못된 손’에 넘어갈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무기 밀매에 대처하기 위해 EU 지원센터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현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에 필요한 무기가 부족하다며 세계를 돌면서 지원을 간청하고 다닌다. 그런데 정작 우크라이나 군부는 전쟁이야 어찌 되든 무기 밀매로 돈이나 벌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중러가 선군정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다른 모습으로 무기 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정치사상 강군화’와 함께 ‘군사기술 강군화’를 강군 건설의 주요 방도로 내세웠다. 첨단무기를 계속 개발, 생산해 무기 분야에서도 미국을 압도해야 전쟁억제력, 전쟁 수행 능력이 ‘최상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대 지도자 중에서 시진핑 주석처럼 강력한 국가를 위한 강한 국방력의 필요성을 제창하면서 군 개혁을 공개적이면서도 공세적으로 추진한 적은 없었다.” (윤석준, 앞의 글.)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보면 중국 국방비가 2,520억 달러인데 3위인 인도의 국방비는 729억 달러로 큰 차이가 난다. 그만큼 중국이 군사력 강화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후 중국에는 첨단무기, 전략무기가 속속 개발되어 실전 배치됐다. 5세대 스텔스 전투기 J-20 웨이룽, 대함탄도미사일 DF(둥펑)-21D, 대륙간탄도미사일 DF-41, 극초음속미사일 DF-17, 장거리 순항미사일 YJ-18, 스텔스 무인기 GJ-11 리지안 등 여러 무기를 미국이 주목하고 있다. 또 미국에 맞서 해양 강군을 육성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3척이나 도입했다. DF-41 같은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극초음속미사일은 미국도 아직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 극초음속미사일 DF-17.     

 

이처럼 시진핑 주석의 강군 건설 정책의 결과 미국에서도 중국과 전쟁하면 패배한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몇 년 안에 우리의 전략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국에 대해 질적이고 양적인 경쟁우위를 잃게 될 것.”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의 상원 군사위원회 증언, 2017.6.)

 

“미국이 국가안보와 군사 부문에서 위기를 맞고 있으며 러시아나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 벌어진다면 패배할 수도 있다.” (미 국방전략위원회 보고서, 2018.11.14.)

 

“미국이 10년 후 태평양에서 중국과의 전쟁에서 질 것이고, 중국의 침입으로부터 대만을 방어할 수 없으며 괌 미군기지는 지금도 위험에 처해 있다.” (영국 더타임스, 2020.5.16.)

 

“지난해 10월 중국과의 교전을 가정한 워게임에서 미군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수십 년 동안 미군 작전을 이끌었던 합동전투 개념을 폐기해야 할 상황”,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존 하이튼 합참의장의 국방산업협회 연설, 2021.7.)

 

“지난 10년 동안, 중국과의 워게임에서 미국은 거의 완벽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워게임에서 패배했다.” (「“대만에서 미·중 충돌시 中이 이긴다”는 美 보고서」, 머니투데이, 2022.1.9.)

 

푸틴 대통령도 전략무기 현대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유가 급등으로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국고가 늘어나자 국방비부터 올렸다. 군인 급여를 올리고 혜택을 늘리자 젊은 인재들이 군대로 몰렸다. 무기 생산에도 박차를 가해 현재 러시아는 탱크, 로켓포, 자주포, 견인포 보유량 세계 1위다. 푸틴 대통령의 국방력 강화 정책을 두고 당시 러시아 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돈 안 되는 국방력 강화보다 경제 발전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만약 그때 국방력 강화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금 러시아는 나토에 유린당하고 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첨단무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 소련 시절 낡은 무기를 현대화하였다. 러시아는 푸틴 집권기에 세계 최강 탱크로 꼽히는 T-14 아르마타, 스텔스기도 탐지하는 대공미사일 S-400, 극초음속 전략미사일 아방가르드, 대륙간탄도미사일 RS-24 야르스와 RS-28 사르마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R-29RMU 시네바와 R-30 불라바 등 미국을 압도하는 여러 무기를 개발하였다. 러시아 역시 미국에 없는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등을 실전 배치한 상태다.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국의 첨단무기를 대거 투입해 승기를 잡고 있다. 레이저 무기 페레스베트, 극초음속미사일 킨잘, 스텔스 전투기 Su-57, 고정밀 공대지미사일 305 등은 모두 개발 후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된 최신 무기들이다. 

 

▲ Su-57.     

 

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로켓포를 몇 개 주고서 최첨단 무기를 제공했다고 요란한 광고를 하였다. 러시아와 확전을 피하고자 더 좋은 무기는 줄 수 없다는 논리를 대기도 하지만 러시아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 확전을 피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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