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2) 여성 후계자 불가론
북한 언론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자제가 자주 등장하면서 국내외에서는 이상한 논쟁이 벌어졌다. 자제가 딸이기 때문에, 즉 여성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이다.
다수의 전문가가 후계자 불가론을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북한에 유교식 가부장적 문화,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있고 여성의 지위가 낮다는 것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2월 15일 국회에 출석해 “북한 체제의 가부장적 성격을 감안할 때 여성 ‘세습’ 부분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도 많다”라고 언급했다.
후계자로 가능하다는 주장의 대표는 정성장 박사다. 정 박사는 “북한의 후계자론에서 수령의 후계자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해서도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후계자 여부는 논외로 하고 북한 사회에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고 실제로 여성의 지위가 낮은지를 살펴본다.
‘백두산 3대 장군’
북한은 김일성 주석, 김정숙 여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백두산 3대 장군’이라 부른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 일제를 몰아냈고, 한국전쟁에서 16개 다국적군을 상대로 승리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뒤를 이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연합세력의 위협을 분쇄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김정숙 여사에 관해서는 “일찍이 항일의 총검을 비껴들고 해방전에 참군” 하였으며 “무수한 전장들에서 백발백중의 명사격술로 일제 토벌군을 삼대 베듯 쓸어 눕히셨고 지하공작 임무를 맡기시면 능숙한 대민 정치공작원이 되시어 각 계층 동포들을 반일 애국의 기치 아래 결집시키셨다”, “(해방 후) 인민군 장병들에게 백발백중하는 명사격 묘리도 가르쳐주시고 민족 수호의 의지도 심어주시며 이북 땅에 자위의 무적군단들을 키우셨다”라고 소개한다. (전영진, 「민족의 대통운-백두산3대장군」, 1998.2.16.)
북한은 백두산을 신성하게 여긴다. 그래서 ‘백두산 3대 장군’은 북한에서 단순히 ‘훌륭한 인물’의 의미가 아니라 ‘신성한 위인’의 의미가 있다. 그런 위치에 있는 3명 중 한 명이 여성이라는 점을 주목해 봐야 한다. 북한에서 김정숙 여사는 북한 국민의 귀감이며 특히 북한 여성이 본받고 따를 추앙의 대상이다.
그런데 북한이 김정숙 여사를 전형적인 봉건적 여성상이 아닌 ‘빨치산 여장군’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1930년대 김일성 주석이 이끌던 조선인민혁명군에는 여성 대원으로만 구성된 중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대도 다른 중대와 똑같이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북한의 여성 부대는 지금도 세계 1위 규모를 자랑한다. 아직도 여성만으로 부대를 꾸리면 큰일 난다고 여기는 한국과 전혀 다른 정서다.
고위직에 있는 여성들
북한 고위직의 인물을 보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여성이 있다.
먼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무위원회 위원이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을 지냈다. 또 2018년 2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국내 전문가 중에는 김여정 부부장을 ‘2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후계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국내에서는 김여정 부부장이 단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위직에 올라간 것처럼 인식하지만 실제 김여정 부부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달랐다.
김여정 부부장을 세 번 이상 만났다는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한마디로 부지런하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싹싹하다. 시아버지 나이에 해당하는 노회한 군 원로를 처음 만나서는 ‘안녕하십니까~’하고 악수를 청하고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건넨다. 갑작스러운 악수에 놀라는 고령의 당 간부들에게 오히려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선수를 친다. 거침이 없다. 친화력이 대단하다”라고 하였다. (남성욱, 「김정은의 정상회담 카드 속내」, 『월간중앙』 2018년 3월호.)
연합뉴스 2018년 2월 12일 자 보도는 김여정 부부장을 직접 만난 청와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조용하면서도 잘 웃고 겸손하다”, “대화할 때는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른에 대한 예절이 몸에 밴 것 같았다”라고 평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국내 공연단 단장으로 활약한 현송월 단장도 고위직에 있다. 모란봉악단과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출신이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현송월 단장은 2015년 12월 중국 공연을 하러 갔다가 갑자기 취소하고 돌아간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중국은 공연 배경 화면에서 핵, 미사일을 빼라고 요구하였고 현 단장이 “토씨 하나도 고칠 수 없다”라고 거부하면서 공연을 취소해버린 사건이다. 북중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사안을 단독으로 결단할 정도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인 최선희 외무상은 북한 최초의 여성 장관으로 매우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고아 출신이며 외교부 통역과 직원으로 출발해 20년 동안 통역을 하다가 실력을 인정받아 2010년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이 되었고 2016년에 북미국 국장 겸 미국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그 후 5년 동안 외무성 부상, 외무성 제1부상을 거쳐 외무상이 되었으니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대미 외교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갖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여성 정책
1946년 발표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20개조 정강 가운데 5조의 내용은 “전체 공민들에게 성별·신앙 및 자산의 다소를 불구하고 정치·경제·생활 제 조건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따라 같은 해 7월 30일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선거권·피선거권 보장, 강제 결혼 금지, 이혼의 자유, 양육비 소송권 인정, 일부다처제 금지, 성매매 금지 등 봉건적 여성 억압 제도와 문화를 타파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 여성의 권익을 위한 최초의 법은 1987년 제정한 남녀고용평등법이다. 이후 북한은 여성의 가사 부담을 덜기 위해 1976년 ‘어린이 보육교양법’을 추가로 제정했다. (한국은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
북한은 일찍부터 영유아 보육에 관심을 두고 모든 기업소, 협동농장과 동에 탁아소를 의무적으로 설립하여 무상으로 보육하도록 하였다. 북한의 탁아소는 1948년 처음 설립된 이후 1953년 64개, 1963년 6,704개로 급증하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가 영유아 보육 문제인데 북한은 탁아소를 통해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하였다. (이윤진 외 3, 「통일에 대비한 북한의 영유아 양육에 관한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2011, 42~43쪽.)
참고로 한국의 경우 1961년에야 아동복리법을 제정하여 탁아소와 관련한 규정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의 탁아소 운영을 ‘아동 학대’처럼 묘사하며 비난해왔기에 어린이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고 1980년대까지도 어린이집을 찾기 어려웠다. 1990년에 와서도 어린이집은 1,919개에 불과했다. 어린이집의 뒤늦은 보급은 한국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늦은 원인 중 하나였다.
북한은 2010년 ‘여성권리보장법’을 제정해 기존의 여성 권리 보호 규정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여기에는 가정폭력 금지, 임신 여성 야간노동 금지, 결혼·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해고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법에 따르면 북한 여성은 산전 60일, 산후 180일로 도합 240일의 출산 휴가를 보장받으며 100% 유급 휴가라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볼 때 영국 다음으로 긴 유급 휴가다. 단, 영국은 급여의 90%만 받는다. 참고로 한국의 출산 휴가는 90일이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다.
3) 서방 주장의 배경
북한의 인민군 창건 75주년 행사에 관한 서방의 반응은 위와 같이 현실과 맞지 않고, 비과학적이며, 편파적이다.
서방이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북한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낙후하다, 낙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또 ‘북한은 비정상이고 악마다, 아니 악마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런 북한에 대한 강박을 잘 표현해주는 게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국장을 지낸 빅터 차 교수의 책 제목 『불가사의한 국가: 북한, 과거와 미래』(김용순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2016.)다. 이 책의 원제 ‘The Impossible State’를 직역하면 ‘불가능한 국가’다. 차 교수는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게 불가능한 나라’라고 주장한다. 자기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니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박은 잘못된 인식을 낳는다. 그리고 잘못된 대북 인식은 잘못된 대북 정책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고 ‘종이’로 만든 모형이라 여기는 사람과 진짜 미사일이라 여기는 사람이 구상하는 대북 정책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박을 가진 이들은 수십 년째 ‘북한은 곧 망한다’는 주장을 태연히 반복한다. 2021년 1월부터 3년째 ‘북한이 조만간 7차 핵시험을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아무런 수치심을 못 느끼는 정부 고위 인사들이 한미 양국에 즐비한 이유도 여기 있다.
이들은 자국 내 대북 정책만 엉터리로 만드는 게 아니라 유엔 무대에서도 억지 주장을 펼쳐 국제 외교를 교란한다. 이들은 ‘우리가 발사한 미사일은 통상적인 훈련이지만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도발이다. 왜냐면 북한은 불량 국가이기 때문이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그래서 북한은 미사일뿐 아니라 인공위성도 발사하면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한다. 자국이 발사하는 인공위성은 그냥 인공위성이지만, 북한이 발사하는 인공위성은 ‘인공위성을 가장한 미사일’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비과학적 대북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다. 그는 2022년 2월 4일 한미연구소가 주최한 화상 대담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국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게 가능할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중국과 논의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앉은 자리에서 자기 주장을 뒤집는 괴상한 발언을 한 셈인데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주장이 비과학적이니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열병식을 본 미국의 고위 인사 가운데는 있는 그대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 이도 있다.
마크 에스퍼 전 국방부 장관은 2월 10일 SBS 뉴스 인터뷰에서 “확연히 더 커 보이는 고체 연료 방식의 ICBM를 봤다. 북한은 군사적인 능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같은 날 주한미우주군 사령관 조슈아 맥컬리언은 미국 CBS 인터뷰에서 북한이 위성 잔해물을 미국 미사일로 오인해 보복 핵미사일을 쏠 것이 우려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한미일 군사훈련을 북한이 실전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이런 반응이 정상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선택해야 하는 과학적인 대북 정책은 무엇일까?
미국 언론 폴리티코는 북한 열병식을 분석한 결과 화성포-17형이 12기 등장했고 1기당 핵탄두 4발씩 탑재하면 총 48개의 핵탄두가 미국에 한꺼번에 날아올 수 있는데 미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격기가 44개뿐이므로 막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처럼 북한은 이미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다른 핵보유국과 똑같이 북한을 대하면 된다. 러시아, 중국과 미국은 직접 전쟁하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정책을 편다. 지금처럼 북한을 위협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며 북한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면 북한도 미국을 핵으로 위협하기 어려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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