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사랑
-황선
73년 소띠 동갑내기 당신이 나처럼 십대의 자녀를 둔 당신이 이제 막 반 백년 세월을 살아, 청춘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성성해지는 흰머리로 강 가운데서 한참 서성였을 당신이 몸에 불을 달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고통일까, 아니 어떤 마음이어야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차마 가늠할 수 없어서, 종일 그 마음을 생각하다가 생각조차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고 며칠째 말줄임표만 찍었습니다.
조합원들의 생활을 위해 협상탁에 앉으면 공갈이요, 집회결사 하자고 들면 협박인, 자유 없는 이 자유의 땅에서 집시법 국가보안법 시국사범도 아닌 뒷골목 깡패 행동대장 잡범 나부랭이 취급받으며 저 검경 완장 진짜 양아치들 앞에서 억울했을 것이다, 분루를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뜻밖으로 웃음 띈 당신의 사진. 끝까지 희망을 당부하던 당신의 유서.
사랑이었구나 마지막 저녁 눈물을 삼키며 소고기를 사 먹인 처자도 사는 게 안쓰러워 늘 눈에 밟히던 동지들도 밥그릇에 눈이 멀어 투지를 상실한 정치인들도 당신에겐 하나같이 사랑이고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었구나.
저 무도한 검찰청과 법원과 대통령집무실을 다 태워도 세상 가장 소중한 노동자 당신은 살아 남아야지. 이제 우리가 당신을 살려야지, 칼바람 속에서도 촛불을 포기하지 않던 당신을 기어코 살려야지. 영원히 살도록, 사랑의 항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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