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 국제기구인 아랍연맹이 지난 5월 7일(현지 시각) 시리아의 복귀에 합의했다. 이로써 시리아는 12년 만에 국제무대에 복귀하게 됐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는 중동지역의 탈미 행보와 미국의 추락을 보여준 장면이다.
아흐메드 알사흐하프 이라크 외무부 대변인은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회의에서 외무장관들이 시리아의 복귀에 동의했다”라며 “역내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고 시리아·수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알 아사드 정부의 연맹 복귀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모로코·쿠웨이트·카타르 등 일부 국가들이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년의 친미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를 비롯해 다수 중동 국가들은 찬성했고 이러한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시리아는 지난 2011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시리아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는 이유로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다. 배후에는 사우디, 카타르 등 아랍연맹 소속 국가들을 압박한 미국이 있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권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그 참모인 블루멘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미국이 자신에게 엇서던 중동 각국을 무너뜨리려 했음을 보여주는 대화가 나온다. 대화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있는 리비아,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정권이 있는 튀니지,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있는 이집트 3곳을 정권교체 대상으로 꼽았다. 이는 지난 2003년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직후부터 계획된 ‘미국식 중동개혁’의 일환이었다. (김은광, 「힐러리와 카다피, 아랍의 봄에 어떤 연관 있었기에…」, 내일신문, 2016.7.12.)
다음으로 미국이 노린 건 눈엣가시인 이란과 가까운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이었다.
미국은 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며 시리아에 개입했고 시리아에서는 반정부 시위를 넘어 내전이 벌어졌다. 미국은 서방 각국과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당시 사우디, 카타르 등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경제·안보 지원을 받아온 친미 중동 국가들도 시리아 반군에 훈련과 무기 등을 지원하며 미국의 돌격대로 앞장섰다.
하지만 미국은 알 아사드 정권이 반군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학살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사실이면 대응하겠다’, ‘정보를 모으고 있다’라고 할 뿐 끝내 증거를 대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등 서방 각국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반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정황이 나왔다. 지난 2013년 1월 한 영국 군수업체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 데이비드 골딩의 이메일이 해킹됐는데, 이메일에는 미 정부의 승인을 받고 시리아 반군에 화학무기를 전달하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시리아, 아사드 물러나면 평화 되찾을까」, 아시아엔, 2013.7.29.)
또 2013년 5월 6일 유엔 독립조사위원회의 카를라 델폰테 위원은 시리아 반군이 화학무기인 사린가스를 사용한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살상력이 높은 사린가스는 주변에 쉽게 퍼져 나가 테러에 자주 쓰이는 맹독성 가스의 한 종류다. (김진아,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 이후 미국의 對시리아 정책변화 가능성」, 한국국방연구원, 2013.5.15.)
그 뒤로도 미국은 ‘알 아사드 정권 악마화’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2014년 9월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시리아를 침공했다. 반군을 도와 시리아의 안정을 되찾겠다는 명분이었는데 사실상 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가 아랍연맹에 복귀하게 되면서 미국이 알 아사드 정권에 패배한 모양새가 됐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힘이 크게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19년에는 시리아,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황급히 미군을 철수시켰다. ‘야반도주’라는 조롱을 받을 만큼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에 관해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미국은 베트남전쟁 당시처럼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지만 얻은 것은 없다”라면서 “미국의 군사적 모험은 현재로서 (베트남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퇴각으로 끝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알 아사드 대통령을 향한 시리아 국민의 지지가 지금까지 견고한 점도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물리치고 아랍연맹에 복귀한 요인으로 꼽힌다.
2019년 10월 14일 미군이 철수하고 시리아 정부군이 진입했다는 소식에 시리아 탈타므르 서쪽의 게베쉬 마을 주민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나와 시리아 국기와 알 아사드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엄지 척’을 했다. 이 모습은 그동안 알 아사드 정권을 악마화하던 서방 주요 언론의 카메라가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알 아사드 대통령은 반군 세력을 거의 몰아냈고 시리아의 대다수 지역을 되찾았다. 알 아사드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에도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 아랍연맹 복귀를 논의하는 등 물밑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는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성사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국교정상화의 후속판으로 볼 수도 있다.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가 알 아사드 정권과 밀접한 시아파의 맹주 이란과 화해를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우디는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에 찬성하는 이유로 중동지역의 안보·안정 강화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미국이 빠진 중동지역의 질서를 중동 각국의 이익에 맞게 새로운 판을 짜보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등을 돌린 사우디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확정한 셈이다.
그런데 시리아는 학살을 벌이지 않았고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태도를 끝까지 고수했다. 중동 국가들이 태도를 바꿔 다시 시리아와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시리아가 정당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이 아랍연맹 퇴출을 결정한 것은 미국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중동 각국은 시리아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미국의 눈치를 살핀 것으로 보인다. 그랬던 중동 각국이 이제는 시리아의 편을 들며 미국에 반기를 든 모양새다.
미국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가 적절하지 않다며 시리아를 계속 제재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중동 각국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이미 시리아는 아랍연맹에 복귀해 중동 각국의 인정을 받았고, 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던 미국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미국으로선 시리아 내전이 길어질수록 유리했다. 시리아의 혼란을 이용하면 중동 국가들을 갈라치기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로 미국의 노림수는 파탄 난 상황이다.
이를 볼 때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이 저물고 중동지역 각국의 힘이 세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 구멍을 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앞으로 아랍연맹 소속 22개국을 통해 시리아에 생필품, 물자 등이 들어갈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중동 각국이 얽히고설킨 시리아 내전에 따른 사상자만 수십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미국이 시리아 내부 반군 잔존 세력을 지원하고 있어서 시리아에 완전한 평화가 오려면 아직 좀 더 갈 길이 남아 있다.
아랍연맹은 지난 1945년 3월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 아랍 각국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 등을 돌리고 시리아를 다시 품은 아랍연맹의 탈미·독자 행보가 앞으로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불러오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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