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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따돌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패착을 둔 미국

전쟁 당사국 러시아가 불참한 ‘맹탕’ 회의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3/08/11 [14:18]

러시아 따돌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패착을 둔 미국

전쟁 당사국 러시아가 불참한 ‘맹탕’ 회의

박명훈 기자 | 입력 : 2023/08/11 [14:18]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국제 평화회의(아래 제다 회의)가 지난 8월 5~6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휴양도시 제다에서 열렸다. 40여 개국이 초청된 제다 회의에서는 각국의 견해 차이가 두드러졌는데 무슨 일이 있었고 앞으로 전망은 어떻게 될지 짚어보려 한다.

 

▲ 2023년 8월 5~6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국제 평화회의'에는 40여 개국이 참석했다.

 

1. 전쟁 당사국 러시아가 불참한 ‘맹탕’ 회의

 

이번 제다 회의는 지난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1차 회의에 이어 두 번째다. 1차 회의 때 러시아를 따돌리며 초대하지 않은 미국 등 서방 진영은 2차로 열린 제다 회의에도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를 초대하지 않았다.

 

본래 국제사회에서 전쟁과 관련한 사안을 다루는 강제력·공신력이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를 통해 러시아를 규탄하고 전범국가로 몰려 한 미국의 시도는 번번이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 주도해 유엔 총회에 올라온 대러시아 제재 결의안에는 서방 진영 33개국만이 동의했다. 나머지 160여 개국은 미국의 편을 들지 않은 것이다.

 

과거 미국의 말이 잘 통했던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서는, 최근 몇 년 새 미국에 불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코펜하겐 회의와 제다 회의를 통해 러시아를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모아보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22년 11월 자신이 발표한 이른바 ‘평화공식’ 10개 항을 제다 회의에서 또다시 강조했다. 

 

10개 항은 ▲핵 안전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포로 석방 ▲유엔 헌장 이행 ▲러시아군 철수와 적대 행위 중단 ▲정의 회복 ▲환경 파괴 대처 ▲긴장 고조 예방 ▲종전 공고화 등이다. 

 

이 가운데 특히 ‘정의 회복’은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 지도부와 군인들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해 법정에 세우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요즘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연거푸 시도한 ‘대반격’에서도 맥을 못 추는 등 전쟁 양상이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공식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는 정반대로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안으로 평화협상을 제안했지만,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서방 진영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평화협상을 제안했는데도 서방 진영이 자신을 뺀 엉뚱한 평화회의로 전쟁을 장기화하려 한다는 게 러시아가 펴는 논리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를 뺀 제다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한데 모였음을 보여주려는 미국의 노림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애초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를 평화회의에 초대하지 않고 전쟁 종식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실효성·진정성이 없는 일방적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2. 중국 참석의 진짜 의미

 

서방은 코펜하겐에서 열린 1차 회의 당시 서방의 초대에 응하지 않던 중국이 제다에서 열린 2차 회의에 참석한 점을 유독 부각했다. 서방은 여기에 더해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이집트, 멕시코, 잠비아 등도 참석했다면서 ‘서방 진영만의 회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회의에는 한국의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참석했다. 회의 중간에 열린 각국의 국가안보보좌관 회의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표한 우크라이나 평화공식 ▲평화 정상회의 개최 ▲개도국을 포함한 더욱 많은 국가들의 참여 방안 등을 놓고 30여 개 주요국 안보 당국자 간 논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서방에서는 회의 분위기를 낙관하는 평가가 잇따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식량 안보와 같은 문제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및 세계 다른 지역의 수백만 명의 운명은 세계가 평화공식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환영했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은 “사우디는 중국을 끌어들였고 이것은 역사적인 승리”라고 강조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미국)는 그간 중국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주권을 존중하는 역할을 한다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라 말해왔다”라고 밝혔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리라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AFP통신은 러시아가 고립된 존재임을 보여주려 한 미국이 중국의 참석을 환영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유럽 국가 외교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대담에서 “중국의 참석만으로 러시아의 고립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실제 회의 분위기는 서방의 평가와 ‘딴판’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회의 과정을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와 서방 진영의 패착으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눈에 띈다.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과 교수는 8월 10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서구에서는 중국이 우크라이나 편을 들은 것처럼 그렇게 보도들도 하고 환영도 하고 했는데 실제 중국은 ‘이 회의가 반러시아 연대로 가는 것을 우리는 두고 볼 수 없다’라며 회의에 들어갔다”라고 짚었다.

 

또 “(리후이 중국 유라시아 사무특별대표는 회의가) 끝나고 나서는 바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하고 통화를 했다. 그랬더니 러시아의 외교부 장관이 중국에 ‘건설적인 노력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라면서 “중국은 러시아를 등지고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 평화회의를 끌고 갈 생각이 지금은 아예 없다”라고 강조했다.

 

리후이 대표는 회의 과정에서 “여러 의견 차이가 있지만 우리(중국)의 원칙이 공유되는 것도 중요하다”라면서 참석한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리후이 대표는 올해 2월에 발표한 ‘시진핑 식 전쟁 중재 12개 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12개 안의 내용은 ▲모든 국가의 주권을 존중할 것 ▲냉전 식 사고를 버릴 것 ▲적대 행위를 중단할 것 ▲평화협상을 재개할 것 ▲인도적인 위기를 해소할 것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보호할 것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을 보장할 것 ▲전략적 위험을 줄일 것 ▲곡물 수출을 허용할 것 ▲일방적인 제재를 중단할 것 ▲산업 공급망을 유지할 것 ▲전후 재건을 촉진할 것 등이다.

 

여기서 특히 ‘모든 국가의 주권을 존중할 것’, ‘일방적인 제재를 중단할 것’은 러시아에 유리한 내용으로,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표한 10개 항과도 내용이 크게 다르다. 결과적으로 서방의 초대에 응해 회의에 참석한 중국이 러시아의 우군이 되어준 셈이다.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이어가는 브라질의 셀소 아모림 대통령 최고 외교정책 고문은 “이번 전쟁은 러시아와 서방의 오랜 경쟁 중 한 장에 불과하다”라고 발언했다. 이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의 전쟁범죄’라는 서방 진영의 평가와는 결이 다르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러시아는 제다 회의가 끝난 뒤 오히려 높아진 자신감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오는 8월 22~24일 남아공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와 관련한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8월 6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사우디가 주최한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와 관련해 브릭스 회원국들과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그곳에 초대받고 참석했던 브릭스 회원국들과 우리(러시아)는 제다 회담에 뒤이어 대화를 하고 의견을 공유할 것이란 이해가 있다”라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제외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다) 회의 자체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고, 다른 브릭스 회원국들이 참여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서방 지지자들에게 일부 상식적인 것을 말했다는 측면에서 유익했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도 8월 8일 타스통신을 통해 “우리(러시아)는 미국 정부의 희망적 생각이 실패로 끝난 또 다른 시도를 목격했다. 제다에서는 (미국의) 외교적 성공이 없었다”라면서 “워싱턴은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노력으로 남반구의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그 나라들은 악명 높은 키이우의 평화공식을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러시아 고위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러시아는 이번 제다 회의 결과를 불리하지 않게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또한 본래 경제 협력체인 브릭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하는 등, 러시아가 제다 회의를 명분으로 브릭스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려는 포석도 깐 것으로 풀이된다.

 

3. 결론

 

아랍권 유력 매체 알자지라는 제다 회의를 앞두고 8월 5일 올린 기사에서 “(서방 진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핵심 원칙 초안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다.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8월 10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 회의에서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장한 10개 항을 이행하고 그것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려고 했던 건데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 했다”라고 진단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제다 회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올해 가을 중 자신의 평화 구상 10개 항을 구체화하기 위한 정상회담이 열리길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과연 젤렌스키 대통령의 바람대로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가 언급한 대로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제다 회의에 관한 논의가 오가고 러시아에 유리한 결정이 나온다면, 오히려 우크라이나야말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 서방 진영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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