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더 지원하라는 미국
유리 김(Yuri Kim)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2월 26일(현지 시각) 한미연구소(ICAS) 주최 화상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정치적 지지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방어 지원을 제공했으며, 우리는 그런 물자 지원을 더 보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미 국무부 당국자가 이야기한 것입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2023년 12월 4일 심층 기획 기사에서 한국산 155밀리미터 포탄이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된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기사는 “결과적으로 한국은 모든 유럽 국가의 공급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나라가 됐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앞으로 더 많은 무기를 지원하라고 한 것입니다.
김 부차관보는 “특히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155밀리미터 포탄”이라고 콕 짚어서 얘기했습니다.
현재 한반도 전쟁 위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단독훈련, 한미연합훈련, 다국적 훈련 등 군사훈련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무기 소모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비상사태를 대비해 무기를 비축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여력은 없어 보입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을 뻔히 알고 안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미국이 왜 이렇게 무기 지원을 요구하는 걸까요?
미국의 처지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서방의 무기 생산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보면 155밀리미터 포탄의 경우 미국 생산량을 늘려도 월 1만 발에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애초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충분히 지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럽연합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월 24일 자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155밀리미터 포탄 생산량을 지난 2년 사이에 40%가량 끌어올려 월 5만 발 정도를 생산하는데 우크라이나는 월 20만 발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한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이 우리에게 약속한 100만 발의 포탄 중 50%도 아닌 30%만 받았다”라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처럼 지금 미국과 유럽이 포탄 생산량을 늘려가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만 러시아군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뜻하지 않게 한국이 미국과 서방의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쇠락하는 미 군사 기술력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부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2월 27일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방문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국내 대표 군함 건조 기업입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델 토로 장관에게 회사 함정 사업 현황과 기술력을 직접 소개하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델 토로 장관은 조선소를 둘러보고 함정을 건조하는 특수선 사업부를 방문해 올해 인도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을 하는 우리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과 신형 호위함 충남함을 살펴봤습니다.
이어 경남 거제에 있는 한화오션 사업장으로 이동해 현재 건조 중인 잠수함 ‘장보고-3 배치-2’를 둘러보고 함정 사업과 관련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한화오션은 국내 업계 최초로 유지·보수·정비(MRO) 전담 조직을 운영 중입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번 델 토로 장관의 방한은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 사업과 관련한 한미 협력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미국은 본토에서 해군 함정을 유지·보수·정비하는 물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일부 물량을 해외에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델 토로 장관은 최근 공식 석상에서 “아시아 전역에서 미국 해군 함정 수리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함정 수리 물량이 포화 상태라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군함의 고장이 늘어나서 미국의 수리 역량을 초과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군함의 고장률은 그대로인데 수리 역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군함의 고장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수리 역량이 줄어든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술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의 현황을 보면 수리 역량이 줄어든 게 주된 요인으로 보입니다.
미국에는 존스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1920년에 제정된 이 법은 조선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에서 함정을 건조하거나 외국 함정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조선 산업이 존스법의 보호 속에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국 조선업체는 독점이 보장되니 기술 개발을 하지 않아도 주문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미국 내 인건비가 계속 오르다 보니 비용 절감을 위해 설비 투자를 줄입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세계 최고를 달리던 미국의 조선 생산성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기술력, 생산력이 외국에 비해 뒤처졌으며 고급 인력의 부족, 낡은 시설로 인해 건조 비용도 비싸고 건조 속도도 느립니다.
이제 미국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3곳뿐이며 이 가운데 미국 최대 군함 건조 시설인 뉴포트뉴스 조선소 규모는 HD현대중공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미 미국 주요 조선업체가 자국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발주하는 특수선 사업으로 먹고사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이 신형 호위함 건조를 의뢰하려다 예상 비용을 넘기는 바람에 중단하는 사례까지 나왔습니다.
2020년 말 미 의회 조사 결과 호위함 건조 비용이 해군 추정치보다 40%나 더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미 해군은 이탈리아 조선업체의 미국 법인에 호위함 건조를 맡겼습니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 중국 조선업체는 미국 조선업체의 절반 가격으로 군함을 건조하며 건조 속도도 2~3배 빠릅니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미 해군 잠수함 가운데 가장 성능이 강력한 시울프급 공격용 핵잠수함 코네티컷이 2021년 10월 남중국해에서 미상 물체와 충돌해 함수 부분이 대파했습니다.
코네티컷함은 곧장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수리받기까지 20개월을 대기했습니다.
조선소 측이 미 해군에 제출한 견적서를 보면 수리 기간이 무려 31개월이나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코네티컷함 수리 때문에 신형 핵잠수함 도입 일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는 존스법 폐기 여론이 전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델 토로 장관이 한국 조선소를 방문한 것도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군함 건조는 존스법에 막혀 외국에 맡길 수 없으니 보수·정비라도 맡겨서 자국 조선소가 군함 건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델 토로 장관의 방한은 쇠락하는 미 군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실 작년 2월 7일 미 해군 함정 사업 총책임자인 토머스 앤더슨 소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이미 한국에 와서 조선소를 둘러보고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를 찾으러 왔고, 그것을 찾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실무 책임자가 사전 답사를 한 뒤 장관이 최종 결정을 앞두고 확인차 방문한 셈입니다.
이걸 한국의 국방 기술력이 높아진 것으로 언뜻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한국의 국방 기술력이 높아져서 각광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기술력이 낮아져서 각광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서방을 합쳐도 북한의 30% 수준?
반면 러시아, 북한의 경우는 다른 방향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엄청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기 생산 능력이 오히려 확대되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9월 13일 보도를 통해 전쟁 전 러시아의 포탄 생산량이 연간 100만 발이었는데 현재는 200만 발로 늘었고 전차 생산량도 연간 100대에서 200대로 늘었으며 미사일 생산량도 늘었다고 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신무기인 핵추진 순항미사일 9M730 부레베스트니크의 마지막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12월에는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RS-28 사르마트 개발이 곧 완료된다고 공개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신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극초음속 공대지 미사일 킨잘, 핵추진 수중 드론 포세이돈 등 차세대 전략무기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개발, 실전배치한 무기입니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모두 가진 전략국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북한은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장·중·단거리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전략 순항미사일, 핵 무인 잠수정, 600밀리미터 초대형 방사포 등 최신 무기들을 자력으로 개발하였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의 경우 미국은 아직 실전배치한 게 없습니다.
북한, 러시아보다 늦은 것입니다.
며칠 전인 삼일절에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가 한반도 인근에 접근해 일본과 연합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훈련 사흘 전인 2월 27일 B-52H에 극초음속 미사일 ‘애로(ARRW)’를 장착하고 장병들에게 설명하는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건 ‘애로’가 6차례의 시험 발사 실패로 지난해 미군이 개발 중단과 사업 폐기를 공식 선언한 미사일이라는 것입니다.
마하 20이라는 엄청난 속도 때문에 미군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개발 중단 선언 후에도 개발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 미 공군은 “‘애로’는 현재 운용 시험 단계에 있고 아직 생산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신무기 개발이 원래 힘들고 어려우니 중간에 좌절도 하고 포기도 했다가 다시 시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개발하지 않은 미사일을 마치 실전배치한 것처럼 사진을 찍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자랑하는 모습은 코미디라고 하기에도 좀 씁쓸합니다.
이런 모습은 북한과 러시아의 국방 기술력이 얼마나 발전한 것인지를 역으로 입증시켜 줄 뿐입니다.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2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지난해 7~8월 이후 북한에서 러시아로 보낸 컨테이너가 6,700개에 이른다면서 152밀리미터 포탄이면 300만 발 이상, 122밀리미터 방사포탄이면 50만 발 이상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또, 현재 북한 군수 공장 가동률은 30% 정도인데 러시아로 제공되는 무기 공장은 모두 가동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신 장관의 발언은 컨테이너 내용물을 확인한 것이 아니니 모두 추정입니다.
북한, 러시아가 무기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북러를 악마화하기 위해서 추정, 발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신 장관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신 장관은 북한이 군수 공장을 30%만 가동했는데도 포탄 생산량이 미국과 서방을 합친 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것 아닙니까?
신 장관은 북한을 악마화하려고 아무 말이나 막 하다 보니 오히려 북한의 국방 능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 평가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신 장관의 이런 발언은 국민을 불안하게 합니다.
신 장관은 “북한의 전면전 도발은 현시점으로 볼 때 능력이 제한된다”, “국지도발은 언제든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북한은 지금 반복해서 “점령, 평정, 수복, 편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전면전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다양한 최신 무기를 갖추고 있고 또 신 장관 주장대로라면 포탄의 양도 엄청납니다.
북한은 전쟁 의지가 분명하고 전쟁 역량도 갖추었다고 자타가 공인합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하지 못한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전면전의 가능성이 작더라도 만에 하나까지 대비하는 차원에서 전면전까지 구상하는 것이 국방부장관의 역할입니다.
‘전면전은 없고 국지전은 있을 수 있다’라는 신 장관의 주장은 자기 주관에 빠진 비 객관적 주장입니다.
신 장관의 ‘아무 말 대잔치’가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 장관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는 국지전 실행을 연구하는 것 아닌지 의심만 들게 합니다.
신 장관은 “(북한이) 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거론되나, 미국은 확장억제를 공언했다. 북한의 선제 핵 도발에 미국이 가만히 있으면 미국의 핵우산을 믿는 나라는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약속만 믿고 우리나라의 운명을 미국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의 본토에 핵공격을 하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과연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 말마따나 “프랑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라는 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의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때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미국은 국방 기술력이 떨어져서 우크라이나 전쟁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미국에 우리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신 장관은 어느 나라의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전쟁 위기를 부추기기만 하고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3월 한미연합훈련 상황에서 국민의 걱정과 불안이 늘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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