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19일(이하 현지 시각) 평양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조약)을 체결했다. 세계 각국은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며 반응을 내놨다.
한·미·일 공동 반응
한·미·일은 북러 간 무기 거래와 군사 협력 강화를 경계했다. 또 러시아가 북한을 제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규탄했다.
20일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한·미·일 외교부장관은 북러조약을 규탄하며 엄중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한·미·일 외교부장관은 협의를 통해 “북러가 조약을 통해 상호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키로 한 것은 한미 및 한일 양국의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한반도와 역내의 평화·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24일 조구래 외교부 외교정보전략본부장과 정 박 미 국무부 대북고위관리, 나마즈 히로유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공동성명에서 “한·미·일은 북한에서 러시아로의 지속적인 무기 이전을 포함한 러북 간 군사 협력 심화를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일은 또한 대화의 길이 열려 있음을 재확인하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협상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한·미·일의 주장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한·미·일은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군사 협력을 삼각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북러는 이에 맞대응해 군사 협력을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한·미·일은 북한을 적대하는 공격적인 대규모 연합훈련을 여러 차례 해 왔다. 반면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러시아와 함께 한국을 적대하는 연합훈련을 실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래놓고 한·미·일만 군사 협력을 강화해도 괜찮고 북러가 하면 평화를 해치게 된다며 규탄하는 것은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북러정상회담 시기에 맞춰 6월 18일부터 28일까지 태평양과 동해, 오호츠크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훈련에는 미사일 순양함 ‘바락’을 포함해 함선 20척과 해군 군용기 및 헬기 20대가 동원된다.
하지만 한미 군 당국과 일본 자위대는 러시아의 군사훈련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에 공개된 항적 정보에 따르면 미국 정찰기로 추정되는 비행체가 한반도의 이른바 북방한계선 부근을 날아다닌 것이 확인됐다. 한 비행체는 18일 오후 11시 30분경에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가 날짜가 바뀐 19일 0시 무렵 다시 나타났다. 또 다른 비행체의 행적을 살펴보면 북방한계선을 넘나들었다.
한·미·일은 직접 군사 대응은 삼가면서도 조심스레 북러의 동향을 살피려 한 듯하다.
미국 정부 반응
20일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러조약 체결을 두고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면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무기 지원이 “잠재적으로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북러의 군사 협력이 깊어지는 것에 관해 “우리는 한동안 이와 관련해 경고해 왔다”라면서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무기의 종류에 따라 러시아가 지지해 온 안보리 결의에 대한 위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내 동맹인 한국, 일본 등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환영”한다면서 “한국의 결정에 달린 문제”라고 했다.
20일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의 미국산 무기 사용 범위가 하르키우 인근 러시아 영토로만 제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하르키우 인근에서만 미국산 무기를 사용할 것을 제한해 왔다.
다만 미 국방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러를 향한 미국의 직접 대응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 정치권과 전문가 반응
미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러조약 체결 이후 불안감과 위기감이 두드러진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관여했던 전문가들은 21일 미국의소리(VOA)를 통해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러조약으로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가 생겼다면서 북러의 밀착이 “미국의 전략 계획을 확실히 복잡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은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대북 지원을 약속한 것 외에는 아무런 실질적 변화도 없어 “군사적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라면서 미국이 과잉 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오핸런 선임연구원의 주장은 모순된다. 북러조약으로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가 생겼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라며 정반대의 논리를 꺼냈기 때문이다. 이는 북러조약 체결 후 충격에 따른 미국의 혼란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전 대북특사는 “현시점에서 미국이 (북러에 대응해) 긴장을 고조시킬 필요가 없다”라면서 미 정부 당국자들이 동맹의 대응을 강조한 것은 실효성 있는 별다른 조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갈루치 전 특사는 미국이 당장 군사 대응을 해야 할 정도로 지정학적 환경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만약 미 정부가 무력으로 러시아가 군사 기술을 북한에 이전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면, 국제법상 정당화될 수 있는 사안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외교협의회(CFR) 러시아·유라시아 선임 연구원인 스티븐 세스타노비치는 “미국은 양측이 비밀리에 논의한 내용을 모르기에 두 지도자와 정부의 의도를 알 수 없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양측이 군사력 강화에 전념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기술을 제공하고, 북한이 러시아에 군사 장비를 제공해 미국과 한국이 받는 위협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중국이 북한이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해 군사 기술을 키울 것에 불만을 가질 것으로 추정하며,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정치권 일부에서는 북러조약에 대응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오히려 미 본토를 향한 북한의 ‘핵위협’을 키울 수 있기에 미 정부는 선을 긋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 반응
20일 일본 정부 대변인을 맡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러 간 군사 연계·협력 효과에 관해 일본을 둘러싼 지역 안정이 한층 심각해진 가운데 일본 정부로서는 북러정상회담 결과에 중대한 관심을 두고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이 안보리 결의 직접 위반이 될 수 있는 북한과의 군사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았다”라며 “일본을 둘러싼 지역의 안전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대북 제재 무력화를 시사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들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일본은 계속해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관련한 안보리 제재를 완전히 이행해서 북한 탄도미사일 계획의 완전한 폐기를 촉구해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하야시 관방장관은 “원론적 답변”임을 강조하며 자세한 답변은 삼가겠다고 했다.
한국 정부 반응
북러조약 체결에 다소 맥없는 반응을 보인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강경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20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살상 무기를 지원 안 한다’는 방침을 재검토하겠다”라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일일이 다 가르쳐주는 것보다 러시아 측도 차차 아는 게 흥미진진하겠다”라고 주장했다.
21일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한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북러조약 체결을 항의했다.
그러자 지노비예프 대사는 러시아를 향한 위협과 협박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또 북러 협력은 국제법의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강화에 기여한다면서 정치적,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23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러시아 측이 하기 나름”이라며 “(러시아가) 고도의 정밀 무기를 북한에 준다면 우리가 더 이상 어떤 선이 있겠나”라고 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북러를 향한 날선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지지율이 20%대 수준인 윤석열 정권의 강경책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직접 나서는 대신 한국을 ‘돌격대’로 앞세워 북러의 대응을 떠보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중국 정부 반응
린지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러 정상이 회담하기 전날인 18일 “양국 정상의 만남은 러시아와 북한 간의 양자 교류 문제”라고 답했다. 정상회담 당일인 19일에는 “북한과 러시아는 서로 우호적인 이웃으로 교류, 협력, 발전 관계의 수요가 있으며 고위층의 교류는 양국 주권국가의 양자 문제”라고 거듭해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북러조약 전문이 공개되자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20일 린지엔 대변인은 “양국의 군사적 측면의 협정은 북한과 러시아 간의 양자 협력 문제”라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의 입장은 일관적이다. 늘 한반도 평화, 안정을 수호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 해결 과정을 추진하는 것이 각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원칙적으로 맹목적인 제재와 압박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적 해결만이 유일한 출구임을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번 북러정상회담 이후 미국, 서방의 정치권과 주요 언론에서는 중국을 향해 북한과 러시아를 억제할 것을 주문하며 ‘북·중·러 갈라치기’를 시도했다.
중국은 이러한 시도를 물리치고 북한·러시아와 연대할 뜻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나토·유엔 반응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VOA를 통해 대응 조치가 아닌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를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다.
피터 스타노 유럽연합(EU) 대변인은 북러조약을 비판하며 국제 동반자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북한 간 양자 합의가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법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라면서 “EU는 국제적 의무를 지키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만 했다.
나토 대변인은 “북한 정권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제공한 군사적 지원과 러시아에 물질적 또는 기타 종류의 지원을 제공하는 자들을 비난한다”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안보리가 승인한 대북 제재가 존재한다”라면서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대북 제재를 전적으로 준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처럼 대북 제재 이행을 주장하는 ‘말 뿐인 반응’이 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애초 미국과 서방 진영은 이번 북러조약 체결에 앞서 경고를 쏟아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북러가 양국의 의지대로 북러정상회담을 열어 북러조약 체결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러조약 체결은 국제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 대규모 군사·경제 분야 협력이 담긴 북러조약이 이행될 시 각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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