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독일 공영 방송 ‘도이치 벨레’는 8월 2일 「우크라이나 군인의 탈영: 처벌 또는 용서」라는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탈영 문제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동안 탈영과 관련해 기소된 사건만 2만 9,800건에 달한다. 이는 2023년 전체(약 2만 4,100건)보다 많고 2022년(약 9,400건)보다 세 배 늘어난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검찰이 집계한 사건 수만 6만 3,200건이라고 한다.
도이치 벨레는 우크라이나 내 일각에서 실제 탈영 관련 사건의 수가 통계보다 3배, 심지어 4배를 초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로펌 ‘알리아스’의 전무인 올렉산드르 고로보이는 도이치 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수사국은 최전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수사관과 요원들은 군부대에 들어갈 수도 없다”라며 “지휘관들의 보고를 지역 부서에서 전달하는 정도였다”라고 폭로했다.
고로보이는 2022년 2월부터 2023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우크라이나군 제115기계화여단 법무사로 근무하며 국가수사국과의 광범위한 협력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군 군법 집행 책임자로 임명된 비탈리 레브첸코는 도이치 벨레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교대 없이 전투 지역에 장기간 머무르는 것 등 정서적 과부하와 피로’와 ‘가족 및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지휘부의 불충분한 지원 수준’ 등을 탈영의 원인으로 짚었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이자 퇴역한 우크라이나 보안국 대령인 올레그 스타리코프는 “10일마다 어딘가에서, 즉 한 분대에서 한 명이 탈출하고 한 소대에서 세 명이 탈출하고 한 중대에서 10명이 탈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는 탈영병 중 한 명이 소속 부대에서 탈출해 루마니아로 간 경위를 전하기도 했다.
탈영병은 “2023년 초에 동원되었다. 1년도 채 안 돼서 탈영했다”라며 “솔직히 말해서 죽고 싶지 않았다. 다리나 팔이 잘릴까 봐 더 무서웠다. 매일 전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집으로 운전해서 도망쳤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근지역에서 나는 부모님을 만나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 SIM 카드, 휴대전화, 전쟁 전에 발급받은 외국 여권을 받았다, 나는 친척들과 몇 주 동안 머물면서 컴퓨터로 위성 지도를 보고 경로를 파악했다. 체르니우치주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혼자서 숲을 가로질러 루마니아로 향했다”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 ‘루비콘’은 탈영병이 ‘실종’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고 폭로했다.
루비콘은 “우리에겐 우크라이나 군대에 징집되어 싸웠던 지인이 있는데 그의 부대는 매우 초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문서에 따르면 그는 ‘실종’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는 현재 법적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우크라이나 후방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라며 실제 탈영병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병사들의 탈영과 더불어 사령관이 명령을 거부해 해임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종군 기자인 안나 칼류지나는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 차시우 야르에 있는 제24여단 사령관이 반격을 거부해 해임됐다고 폭로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제14·43·65·68·79여단 사령관도 해임됐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에 복무 중인 키릴 사조노프는 8월 5일 한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들은 명령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다”라고 토로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내에선 탈영, 명령 거부뿐만 아니라 병역 기피도 문제시되고 있다.
징집관들은 버스 정류장, 기차역, 식당, 슈퍼마켓, 공원 등 곳곳을 돌아다니며 징집 대상자를 붙잡아 입영소로 보내왔다. 그 과정에서 대상자들이 저항하면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대상자들과 주변 이들의 저항으로 징집관들이 몰매를 맞고 도망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해 4월 16일 징집 기피자 처벌을 강화하고 징집 대상 연령을 27세 이상에서 25세 이상으로 낮추는 법안에 잇따라 서명하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남성들은 징집될 수도 있어 결혼식은 물론이고 집 밖을 나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영국 BBC는 6월 17일 보도에서 “우크라이나가 2년 넘게 이어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많은 장병이 죽거나 다치자 병력 충원에 애쓰고 있지만 이 같은 징집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BBC 보도에 인용된 막심은 임신 7개월의 아내와 어린 딸이 있다면서 15년지기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쉽지만 징집관들에게 붙잡힐까 봐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대중교통 이용 등 외부 활동을 못 하게 되자 “감옥에 갇힌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때 여성의 모습을 한 탈이 판매되어 가면을 쓴 남성들이 등장했고 국경을 넘어 폴란드, 루마니아 등으로 도망가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폴란드 매체 TVP월드는 5월 7일 우크라이나의 40대 남성이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한 채 국경을 넘으려다가 붙잡혔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세르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해당 남성은 올해 44세로,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하고 마치 자신의 여동생인 척 위장해 국경을 넘으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지의 한 누리꾼은 “놀랍지 않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좋다”라고 남성에게 공감했다고 한다.
슬로바키아 국경수비대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무단 입국한 우크라이나 젊은이가 총 33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아그네사 코페르니카 국경수비대 대변인은 5월 첫째 주에만 45명을 체포했다며, 지난 3월에는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원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국경을 넘어온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젊은 남성의 해외 도피가 늘어난 것은 심각한 병력난을 겪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징집 대상을 확대하고 강제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종전 열망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5~6월 우크라이나 국민 3,075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32%가 ‘가능한 빨리 평화를 달성하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영토를 포기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물론 ‘전쟁이 더 오래 계속되더라도 영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답변이 55%로 더 많았다. 그러나 2022년 2월 이후 2023년 5월까지 이 답변이 80%를 넘었던 점과 비교할 때 대폭 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토를 일부 포기할 수 있다는 답변은 같은 기간 10% 이하에 그치다 2023년 12월 19%로 늘더니 올해 2월에는 26%로 급증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쿠르스크주를 향해 대공세를 펼쳤다. 공세를 펼친 지 7일째가 되어 가지만 오히려 우크라이나군 내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우크라이나 참모부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우리(우크라이나군)의 계획은 러시아가 돈바스 전선에서 병력을 철수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러시아는 하르키우 전선에서 병력을 이동시켰고 목표했던 돈바스 전선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의 병력만 이동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쿠르스크주에 보내진 우크라이나 정예 부대들이 체계적으로 궤멸하고 있다며 “우리는 함정에 빠졌고 러시아는 우리의 이를 부러뜨리고 말 것”이라고 비관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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