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가 아닌 6.25 경축사?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발표한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가 논란이다.
일본은 딱 한 번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이 되었지만…”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이 문구조차 비판을 받는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주동적인 해방을 이룬 게 아니라 일제가 패망하면서 저절로, 수동적으로 해방이 된 것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 이야기가 빠진 이유는 자명하다.
한일군사동맹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 처지에서 최대한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이런 의도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 1차장은 15일 KBS 뉴스라인W에 출연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라며 일본을 비호했다.
가해자가 사과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사과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괴상한 논리를 펼친 것이다.
이 발언이 거센 비판을 받자 18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의 수십 차례 사과가 있었고, 그런 사과가 피로감이 많이 쌓여 있다”라면서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한일관계와 한·미·일 관계가 대한민국 기업과 국민에게 안겨주고 있는 여러 혜택과 기회 요인들을 함께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이 해명이 더 기가 막히다.
일본 덕에 우리 기업이 혜택을 보니 과거사를 들추지 말자는 말인데 이완용의 논리와 다를 게 없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한·미·일 삼각동맹을 위해 일본에 저자세를 보이기로 정했고 이에 따라 광복절 경축사에도 일본 얘기를 쏙 빼버린 것이다.
‘자유’만 50번, 목적은?
이번 경축사에는 ‘자유’만 50번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아예 우리 민족의 역사를 ‘자유’를 중심으로 재해석했다.
예를 들어 “국권을 침탈당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여정을 관통하는 가치는 바로 자유”라고 하였다.
지난 100년의 역사가 ‘자유’를 위한 역사였다는 희한한 해석이다.
또 “1919년 3.1운동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들의 일치된 열망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성들은 일제를 몰아내고 자주독립을 이루자는 뜻에서 만세운동을 했지 독립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일치된 견해는 없었다.
윤 대통령이 역사를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다.
심지어 “1948년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여 이 땅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며 역사 왜곡까지 하였다.
제헌헌법을 ‘자유민주주의 헌법’으로 부르지도 않고 여기에 ‘자유민주주의’ 같은 용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자유’를 외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취임사부터 시작해 온갖 기념사를 할 기회가 있으면 ‘자유’ 타령을 한다.
심지어 교회 예배를 하러 가서도 ‘자유민주주의’가 성경 말씀에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발표한 새 통일 담론에 담긴 통일 방안도 ‘자유 통일’ 혹은 ‘자유 민주 통일’이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자유’를 강조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는 냉전시대 적아를 구분하는 기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한·미·일은 ‘자유의 편’, 북·중·러는 ‘자유의 적’이라는 게 윤 대통령의 철학이다.
그러니 미국, 일본은 함께 가야 할 동맹이고 북·중·러는 물리쳐야 할 적이 되는 것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해야 하는 명분을 아주 손쉽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자유’ 이념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세력은 ‘자유의 적’이므로 ‘빨갱이’, ‘종북세력’이 된다.
‘자유’가 독재의 명분이 되는 역설적인 현실이 윤석열 정부에서 펼쳐지고 있다.
위험천만 흡수통일론
윤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3대 통일비전’, ‘3대 통일 추진 전략’, ‘7대 통일 추진 방안’이라는 새로운 통일 담론을 제시했다.
새 통일 담론의 핵심은 ‘흡수통일’이다.
경축사에 나온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합니다”라는 문구는 정확하게 북한 체제를 한국의 체제로 바꾸겠다는 흡수통일 내용이다.
이는 북한 체제를 존중하면서 단계적으로 통일에 이른다는 기존의 통일방안을 폐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 국민도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한반도 전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 안에서도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국가’를 실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지지율 20%대의 대통령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인 총선 결과도 무시하고 검찰독재를 휘두르면서 이걸 북한까지 확장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북한 국민이 그걸 원할지 의문이다.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정권을 무시하는 흡수통일론을 두고 북한은 강경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충돌을 부르는 경축사, 전쟁을 부르는 경축사가 되었다.
유신독재 따라 하기
윤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첫 번째 방안으로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더욱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면서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이 “국민을 현혹하여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정당, 단체, 언론인, 유튜버, 촛불국민 등이다.
이들을 사실상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한 건데 이는 방송·언론 장악, 유튜브 장악, SNS 장악, 집회 통제를 통해 국민의 눈, 귀, 입을 틀어막겠다는 독재 선언이다.
마치 박정희가 통일을 명분으로 유신독재 체제를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특별 선언을 통해 “만일 국민 여러분이 (유신)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 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 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 두는 바”라며 대국민 협박을 하였다.
윤 대통령 역시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을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하며 적으로 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청년, 청소년을 “자유의 가치와 책임 의식으로 강하게 무장”시키기 위해 ‘첨단 현장형 통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청소년에게 뉴라이트 이념을 주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첨단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정부 예산이 누구 주머니로 들어갈지도 예의주시해야 하겠다.
대북 심리전 선포
윤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두 번째 방안으로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다.
북한 국민의 생각을 강제로 바꾸겠다는 대북 심리전을 선포한 것인데 매우 위험하고 경솔한 주장이다.
사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짜 심리전을 하려고 해도 비밀리에 진행하지 저렇게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우리 북한을 향해 심리전 합니다’라고 떠들지는 않는다.
그러면 당연히 북한 정부가 이에 대비할 것이고 심리전 효과는 거의 발휘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이 윤 대통령을 “진심으로부터” “‘특등 공신’으로 ‘찬양’”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아무튼 이렇게 보면 윤 대통령의 대북 심리전 선포는 사실 국내용일 수도 있다.
대북 전단 살포,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속할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우리의 라디오 방송, TV를 통해 북한 정권의 거짓 선전 선동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위 주장이야말로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대다수 탈북자는 북중 국경지대 출신이기 때문에 한국의 라디오나 TV를 접하기 어렵고 대북 전단이나 대북 확성기도 닿지 않는다.
아마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해서 심사를 받을 때 ‘돈 벌러 왔다’고 말하면 쫓겨날까 봐 ‘한국 TV 보고 부러워서 왔다’는 식으로 진술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북 심리전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여러 문제가 보인다.
먼저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연례 북한 인권 보고서』를 공개 발간했는데 이를 “앞으로 더욱 충실히 만들어서 전 세계에 더 널리 전하겠”다고 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3월 30일 이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영문판에 “정확성은 보증하지 못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논란이 되었다.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담고 있으면 보고서에 저런 문구를 넣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 보고서는 탈북자 증언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는데 2023년 5월 26일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탈북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북한인권기록보고서 특성상 내재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문판에도 상세히 기술했다”라고 털어놨다.
보고서 작성 주체인 통일부조차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 보고서 사업에 더 열을 올리겠다고 한다.
또 ‘북한 인권 국제회의’를 추진하고 ‘북한 자유 인권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통일 비용을 마련한다면서 ‘통일항아리’라는 모금 운동을 했고, 박근혜 정부도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조선일보를 내세워 ‘통일나눔펀드’를 조성했다.
남북관계를 대결로 몰아가 통일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정권마다 꼭 ‘통일’을 명분으로 무슨 기금이니 펀드 같은 걸 모은다.
이런 걸 만들면 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후원하기 마련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독재자가 기업가를 불러 돈을 강탈해 갔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 방식이 바뀐 건가 싶기도 하다.
***
지금까지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의 여러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올해 광복절은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사태로 광복회가 기념식에 불참하고, 지하철 역사에 있던 독도 모형이 사라지고, 공영방송에서는 기미가요를 틀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TV에 나와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망언을 하는 등 유독 친일 논란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있다.
이러다 광복절이 ‘친일절’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될 지경이다.
지금 국민들 속에서는 ‘윤석열이 이미 독도를 팔아먹고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고 있다.
대통령이 진짜로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기 전에 탄핵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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