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낙선
18일 민주당 전국당원대회 결과 정봉주 후보가 최고위원에 떨어져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경선 초중반까지 상당한 격차로 1위를 달렸기에 설마 낙선까지 하리라고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름 만에 1위에서 6위로 추락하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의 가장 큰 문제는 극도의 개인영웅주의입니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당원을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합니다. 국민이 정치의 주인으로 전면에 나선 지금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8일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SBS 라디오에 출연해 정봉주 후보가 “(최고위원) 다섯 명 안에만 들어가면 되잖나. 최고위원회의는 만장일치제다. 두고 봐,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하는지”라고 말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정봉주 전 의원은 자기 빼고 나머지 최고위원 후보들을 대부분 ‘명팔이(이재명 측근을 자처해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라고 여기며 최고위원회에서 이들을 손봐야겠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주변 사람을 무시하는 게 느껴집니다.
우상호 전 의원은 7월 22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정봉주는) 본인이 정청래 의원보다 ‘내가 훨씬 더 팬덤이 강하다’고 항상 주장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지지해 주는 당원을 향한 시선이 건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또 낙선 후 정봉주 전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당대회 마지막 주를 기점으로 ‘정봉주는 안 된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전국으로 퍼졌다”라고 주장하면서 “바른말을 하면 찍어내는 현재 상황이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자기는 잘못한 게 없고 당원들을 어떤 ‘조직’에 따라 휘둘리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정봉주 전 의원은 경선 마지막 연설에서 “진정한 투사, 진정한 싸움꾼은 늘 혼자 싸웁니다. 이명박 때도 혼자 싸웠고, 윤석열 탄핵 투쟁도 결국 혼자 싸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싸운 것만 생각하지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국민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김어준의 의도
민주당 경기 지역 경선 직후인 12일 방송인 김어준 씨는 자신의 방송인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가 “정봉주 전 의원 같은 경우는 최근에 일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현재는 2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라고 하자 “정봉주 의원 지지는 그런 것하고 상관없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여론조사 전문가 박시영 씨가 “(정봉주 전 의원은) 지지 팬덤이 좀 있다. 그 층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분석하자 “팬덤이라기보다 아주 오랜 세월 정봉주 의원에 대해서 가진 부채 의식이 있다. 그게 한두 번의 무슨 설화나 한두 번의 일화를 가지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유튜브 같은 데서 막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분들이 실제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라며 정봉주 의원을 비판한 유튜버들을 평가절하했습니다.
정봉주 의원이 초반에 높은 득표를 한 것은 부채 의식보다는 ‘윤석열 탄핵’을 전면에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민주당 당원이나 국민은 윤 대통령을 하루빨리 끌어내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비타협적인 강경 투쟁을 할 정치인을 바랍니다. 이는 전현희 후보가 막판에 ‘김건희 살인마’를 외친 후 순위가 급상승해 최종 2위가 된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김어준 씨는 정봉주 전 의원의 발언을 ‘무슨 설화나 일화’ 정도로 축소하고 정봉주 전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평가절하하며 ‘정봉주 지킴이’를 자처했습니다.
경선이 끝난 다음 날인 19일 김어준 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정봉주 후보는 자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수습하는 과정 때문에 탈락한 겁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정봉주 전 의원의 발언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정봉주 전 의원 발언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된 정봉주 전 의원의 발언은 박원석 전 의원이 공개한 것인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최고위원 선거 개입에 대해 상당히 열 받아, 최고위원이 되면 이 대표와 한 번 해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조그만 비판도 못 참는다. 행정가 출신이라서 그렇다. 제왕적인 권한을 행사하다가,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표본이 윤석열이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못 된다.”
누가 봐도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정봉주 전 의원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냐 묻는다. 예, 했다”라고 확인까지 했습니다.
지금 민주당 내 대다수는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부 반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딱히 대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봉주 전 의원뿐 아니라 이번 경선에서 맞붙은 김두관 후보도 대체로 이런 생각인 듯합니다. 그리고 김어준 씨도 여기에 동의하는 듯합니다.
음흉한 문재인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세력은 아무래도 친문세력일 것입니다. 김두관 후보도 친문, 친노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며 이재명 대표를 견제했습니다. 그렇다면 친문세력의 수장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일까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현실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으로 보면 순수하게 ‘보통 시민’으로서의 정치 참여가 아니라 상당히 음흉하게 개인의 정치적 욕심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총선 막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낙동강 유세를 한 것을 돌아봅시다.
만약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순수하게 민주당을 도와줄 마음이었다면 처음부터 선거를 지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진짜 험지로 가서 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산, 울산, 경남 등 이른바 ‘낙동강벨트’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오르며 당선 가능성이 보이자 갑자기 선거에 전면 뛰어들었습니다. 대통령 임기 중에도, 임기 후에도 매우 조심스러운 행보만 보여 ‘고구마’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은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것은 매우 특이한 모습이었습니다. 또 평소와 달리 윤석열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름 친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임종석 전 의원도 낙동강벨트 유세에 합류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될 것 같은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4월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 선거에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 같다”라며 “이재명 대표가 이기더라도 사법리스크가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그걸 다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탈당도 안 하고 당을 지키면서 기회를 보자, 승리에 우리도 기여를 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는데 그럴듯합니다.
이렇게 보면 정봉주, 김어준 배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친문세력은 지금이라도 이재명 대표를 밀어내고 민주당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 사법처리입니다.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내 의원들이 누구일지는 뻔히 보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이재명 대표가 사법처리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의지만 굳건하다면 감옥에 가서도 옥중 출마가 가능합니다. 지난해 체포동의안 가결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는 22일간 단식을 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당시 비명계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에게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공천권도 포기하고, 계파별로 지분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는 구속을 각오하고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체포동의안은 가결되었지만 이재명 대표는 대표 권한을 끝까지 행사했습니다.
이처럼 만약 사법처리로도 이재명 대표를 주저앉힐 수 없다면 그들은 정계 개편도 추진할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민주당이 분열하거나 야권이 이합집산하는 정계 개편으로는 이재명이라는 큰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당까지 포함하는 큰 틀의 정계 개편으로 정치판을 뒤흔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 방향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움직인다면 김경수, 양정철, 박영선, 조국, 임종석, 주진우(방송인) 등의 인물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윤석열의 노림수
지금 적폐세력 내에도 큰 틀의 정계 개편을 바라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한동훈 대표에게 국힘당을 빼앗기고 뒤통수 맞을 걱정에 빠진 윤 대통령이 친문세력과 손을 잡고 정계 개편을 하고자 한다는 주장은 언론에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김경수 복권을 두고도 한동훈 대표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친문세력과 손을 잡기 위한 밑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친문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위 채용 비리 의혹 사건을 명분으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의 계좌를 조회하였고 임종석 전 의원과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려고 불렀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 큰 사건은 아닙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탄압이라기보다는 모종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야당 인사들은 ‘전 정부 인사들 모욕주기’라며 윤 대통령을 규탄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정계 개편을 위해 친문세력과 손을 잡아야 할 때에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친문세력이 정권의 탄압을 받는 모양새를 만들어 띄워주는 것입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처럼 정치인은 언론에 나오지 않으면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지금 윤석열 정권의 탄압을 받는 정치인, 반윤석열 투쟁을 하는 정치인 하면 다들 이재명 대표와 친명세력을 떠올리지 친문세력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문세력의 몸값을 키워주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임종석 전 의원은 검찰 출두를 앞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건희 여사 물타기용이든 국면 전환용이든 이 더러운 일의 목적이 그 무엇이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친문세력을 자극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김경수 복권을 통해 윤 대통령은 친문세력에게 정계 개편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 친문세력이 어떤 호응을 한 정황은 없습니다. 그래서 빨리 움직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넣는 것일 수 있습니다. 친문세력이 원하는 ‘이재명 사법처리와 정계 개편’ 모두 윤 대통령이 해줄 수 있으니 손을 잡자는 것이지요.
요동치는 정국을 예의주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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