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슈퍼스타
세계은행(WB)이 지난 8월 1일 「2024년 세계 개발 보고서 : 중진국 함정」을 발표했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한국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성장의 슈퍼스타라며 한국 경제 발전 과정이 개발도상국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필독서라고 소개했다.
‘중진국 함정’은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 초기에는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다가 중진국에 이르면 성장이 장기간 둔화하면서 정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은행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1960년 1,200달러였지만 2023년 말에 3만 3,000달러로 급증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은 2022년 1인당 국민총소득을 기준으로 하위 중소득국(1,136~4,465달러)과 상위 중소득국(4,466~1만 3,845달러)을 중진국으로 분류했다. 그 이상은 고소득국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1994년 고소득국 기준(1만 3,845달러)을 넘어섰다.
세계은행은 중진국 함정 극복을 위해 투자(Investment), 기술 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 등 3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3i 전략’을 제시하며 한국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이 ▲금융시장 개방 및 외국자본 유치 등을 통해 기반 시설(인프라) 투자를 확대(1i) ▲해외 기술 도입 및 연구개발(R&D), 교육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효과적으로 생산성을 제고(2i)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융·재벌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고 시장 담합과 지배력 집중을 완화해 국내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전환(3i)한 것이 한국의 성공 배경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8월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세계은행의 평가를 언급하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실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당장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있고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빈부격차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마냥 좋다고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또 세계은행이 제시한 개방 중심의 전략 내용에 우려도 제기된다.
과연 성공한 것인가
먼저 세계은행은 금융시장 개방, 외국자본 유치, 해외 기술 도입 등을 경제 발전의 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당장 경제 발전을 추동할 수는 있지만 대외의존성을 높이고 자립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대외의존도(국민총소득 대비 수출입 비율)는 84.3%다. 미국(33.6%), 일본(43.9%), 프랑스(70.6%), 영국(75.8%)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보다 높다.
대외의존도는 세계 경제나 대외 교역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말은 외부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또 내수 시장이 작거나 부진해 경제를 이끄는 주축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다.
외국자본의 투자 비중이 큰 것도 문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증권 시장에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6%를 돌파했다.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주식을 팔면 국내 증시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또 외국자본이 한국에서 사업을 해 수익을 남겨도 국내에서 쓰지 않는다.
2005년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외국자본 속의 3가지 독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국내에서 번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모두 외국으로 내보내는 외국자본의 유출성도 우리 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라고 지적했다.
자체의 힘보다 외부의 영향에 휘둘리는 경제 체제로는 튼튼한 체질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세계은행은 연구개발, 교육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성공 요인으로도 꼽았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과학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연구개발과 교육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연구개발 성과와 능력 있는 인력을 계속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실정은 우려스러운 지경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 축소했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나눠 먹기 식 R&D”라고 지적한 후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줄었다.
그 결과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개발 과제 1만 2,000개의 연구비가 삭감되었고 아예 중단된 과제는 97개나 된다. 연구개발이 중단된 97개 과제에 지난해까지 투입된 누적 연구개발비가 716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올해 2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윤 대통령이 축사하는 도중에 한 졸업생이 연구개발 예산 삭감 항의 시위를 하다 연행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한국 교육은 갈수록 사교육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입식 교육과 기초과학에 소홀한 사회 전반의 현실은 과학 연구를 해도 돈이 되는 것만 하고 돈이 안 되면 신경 쓰지 않는 세태를 낳았다.
이래서는 앞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래 발전 동력을 잃은 셈이다.
다음으로 세계은행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재벌 개혁을 높이 평가했다.
그것이 경제 발전을 추동하는 혁신을 낳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는 여전하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하청 기업들은 대기업이 요구하면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2017년 국내 중소기업의 35%가 대기업과 하청관계를 맺고 있고 매출의 83.7%가 대기업에서 나왔다. 여기에 간접적 하청관계까지 포함하면 60%가 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대기업 위주의 고용 구조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등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만큼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세계은행이 언급한 벤처기업 육성은 한때 반짝한 것밖에 안 된다.
지금 벤처기업의 현실은 신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입증하고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데 자금이 없어 당장 사업 존폐부터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그렇다 보니 핵심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이 대기업에 인수 합병되거나 연구비를 지원받는 실정이다.
결국 대기업이 독점한 경제 구조가 바뀐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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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현실이 이런데 과연 성공한 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다.
그렇다면 세계은행은 왜 한국을 극찬했을까?
세계은행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전파한 주범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는 한국을 칭찬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 패권에 휘둘리는 한국의 현실이 ‘성공’, ‘슈퍼스타’라는 말 한마디에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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