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나가는 기자회견 내용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9일 국정브리핑을 하고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누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걸 보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러니 야당은 일제히 윤 대통령을 규탄했습니다. 민주당은 “불통과 독선, 오기만 재확인됐다”라고 하였고, 조국혁신당은 “윤 대통령은 혼자만 딴 세상에 사는 듯하다”라고 했으며, 진보당은 “우주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서 막 날아온 것만 같은 대통령의 참담한 인식, 이것이야말로 진짜 ‘국가비상사태’”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의대 증원에 관한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대응을 두고는 여당 내에서도 개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신지호 국힘당 전략기획부총장은 28일 대통령실을 향해 “달나라 수준의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있어서 정말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뉴스 댓글도 “거의 자화자찬 지나친 자기과신 상태”, “입만 열면 거짓말”, “공감 능력 제로”, “말로만 들으면 세계 1등 국가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니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인가”, “가상현실에서 사는 대통령” 등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 일색입니다.
4월 총선 참패 후 대통령실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했으며 야당과 긴밀한 협조와 소통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번 국정브리핑과 기자회견을 보니 다 없던 얘기가 됐고 다시 국정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겠다는 고집만 보입니다.
특히 응급실 대란 상황에 관한 윤 대통령의 태도는 ‘달나라’, ‘안드로메다’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합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이에 관한 기자 질문이 이어지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역정을 내며 “지역 종합병원 이런 데를 좀 가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카메라 앞이었기에 망정이지 비공개 회견이었으면 말로만 듣던 ‘격노’를 기자들이 직관할 뻔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혹시 진짜 현실을 전혀 모르고 어떤 환상에 빠져 그걸 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급함에 내지른 허풍?
물론 확신이 아니라 허풍일 수도 있습니다.
탄핵의 위기에 몰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한 윤 대통령이 전쟁과 계엄을 염두에 두고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을 반대하는 정도를 넘어서 분노하고 응징하자는 여론이 폭발적입니다. 매우 심각합니다.
8월 30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전주보다 4%포인트 급락한 23%로 나타났습니다. 총선 참패 직후 폭락했다가 몇 달 동안 어렵사리 29%까지 올렸는데 다시 원래대로 떨어졌습니다. 40대 이하 모든 연령대에서 10%대 초반이 나왔고 50대도 20%에 불과했습니다. 대구·경북에서도 잘못한다는 응답이 51%나 나왔습니다.
이대로라면 남은 선거도 해보나 마나 참패할 것입니다.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시작된 선거 연패의 악몽이 다음 대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다급한 마음에 아예 계엄까지 밀어붙이자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확신하는 이유
만약 국정브리핑과 기자회견 내용이 허풍이라면 윤 대통령이 상당히 연기를 잘하는 겁니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도 자기가 한 말을 굳게 확신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윤 대통령의 확신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윤 대통령 딴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국정브리핑 내용을 보면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기는 합니다.
특히 경제 현황에 관해 여러 통계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원래 경제 분야는 통계로 사람들을 속여먹기 쉬운 분야이기는 합니다. 한국 경제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국정브리핑 내용을 들었다면 정말 한국 경제가 매우 잘 나간다고 여길 법도 합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유럽 경제가 엉망이 되고, 일본 역시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아 보일 수 있습니다.
둘째, 천공의 냄새가 납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천공의 관계는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번처럼 달나라에서 살다 왔나 싶을 정도로 윤 대통령이 뭔가 이상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천공 영상을 보면서 근거를 찾곤 했습니다. 천공 영상을 보면 민심과 동떨어진 해괴한 말이 많습니다.
의대 증원 문제 역시 윤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2천 명이라는 수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이유가 혹시 천공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8월 29일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유튜브 방송 ‘시사끝짱’에 출연해 의대 증원에 관한 김건희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진 교수는 김건희가 2천 명이라는 수에 “굉장히 뭐랄까 완강하더라. 이거 뭐 과학적으로 된 거고. 블라블라블라 얘기하는데…”라고 했습니다. 김건희가 2천 명 증원에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천공을 소개한 사람이 김건희임을 생각해 보면 김건희도 천공의 말을 듣고 2천 명 증원을 ‘지상명령’으로 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진 교수는 “대통령 주위에도 많은 의사들이 있지 않겠느냐”라며 “이들이 얘기를 하기만 해도 대통령이 불같이 격노를 하기 때문에 아예 말도 못 꺼내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신성’한 천공의 지시에 토를 다는 것 자체를 불경한 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셋째, 검사 특유의 독선, 독단적인 모습이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검사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합니다. 또 검사가 표적으로 정하면 어떻게든 엮어서 범죄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한동훈 국힘당 대표는 검사 시절 후배 검사에게 “검찰이 하는 수사에 표적 수사가 아닌 게 어디 있냐”라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것에 맛을 들이면 세상 사람이 다 자기 발밑에 있다는 착각을 하고 안하무인이 됩니다.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됩니다.
윤 대통령은 이런 검사의 특질을 200% 갖춘 인물입니다.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한 인사는 “대통령 후보로서 준비도 덜되고 정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데, 자꾸 자기중심적 판단을 내리려고 했다”라면서 “입맛 맞추는 ‘윤핵관’ 얘기만 들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한 유명한 발언인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발언도 무슨 거창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상관 말을 안 듣고 항명한 걸 해명하면서 나온 말입니다. 원래 검사는 자기 상관도 감옥에 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집단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며 이에 반발하는 세력은 야당이든 국민이든 다 적으로, ‘반국가세력’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넷째, 미국이 부추긴 것일 수 있습니다.
한·미·일 삼각동맹 완성이 절실한 미국은 미우나 고우나 일단 윤 대통령을 우쭈쭈 해서 임기 중에 최대한 한일관계를 밀착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에게 ‘지금 잘하고 있으니 계속 열심히 하라’는 신호를 주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8월 1일 세계은행이 보고서를 발표해 한국을 “성장의 슈퍼스타”라고 띄워준 것이나, 미국 신용평가사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가 2026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4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한 것도 이런 일환일 수 있습니다.
또 미국 존 F. 케네디 재단이 2023년 ‘용기 있는 사람들 상’을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공동 수여한 것이나, 지난 4월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한 것도 윤 대통령에게 한일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라는 신호입니다.
윤 대통령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미국이 이렇게 확신을 주니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기홍 동아일보 대기자는 8월 22일 칼럼에서 요즘 윤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전했습니다. 사적인 술자리가 거의 사라지는 등 술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지지자들의 핵심 요구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다짐을 밝힌 게 광복절 경축사라고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진짜 뭔가 열심히 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복절 경축사를 돌아보면 이게 6.25경축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반공·반북에 찌든 내용이었습니다. 또 국내로는 ‘반국가세력’을 소탕한다는 미명 아래 독재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내비쳤습니다. 광복절 경축사임에도 일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걸 보면 한일군사동맹을 위해 친일매국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입니다.
원래 어떤 일에 확신이 생기면 그 방향으로 곧바로 가려 하고, 점점 더 빨리 가려 합니다. 아마도 윤 대통령은 국민의 뜻과는 반대인 친일매국, 독재, 계엄, 반북 대결, 전쟁 등의 방향으로 직진성, 가속성을 보일 듯합니다.
달라진 미국의 처지
이런 모습은 과거 이명박, 박근혜 때와도 다릅니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이 요구한 대로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가 광우병 촛불이라는 엄청난 역풍을 맞았습니다.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청와대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청와대 뒷산에서 광우병 촛불을 보는데 자기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렸다고 이야기하며 사죄했습니다. 그 후 한미는 추가 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4개 특수부위 수입 금지 등 쇠고기 수입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또 한미FTA 협상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게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한미FTA에 불만을 품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한미FTA가 체결되자 미국 정치인들은 한미FTA 협상에 실패했다고 혹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큰 손해를 봤다며 재검토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체결하고자 했지만 국민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에 차마 추진하지 못하고 임기 말까지 미뤘습니다. 결국 탄핵으로 쫓겨날 처지가 되어서야 서둘러 졸속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나 지소미아 같은 것들은 국내 정치 쟁점이 아니라 모두 미국이 관심을 두고 추진한 사업들입니다. 이걸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마음대로 속도를 늦추거나 수위를 낮출 수는 없습니다. 모두 미국이 양해 혹은 승인을 해줬기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미국은 적폐세력이 선거에서 참패하거나 정권에서 쫓겨날까 봐 승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윤석열 정권이 탄핵 위기에 몰려있는데도 전혀 속도를 늦춰주지 않습니다. 한·미·일 삼각동맹에 속도를 내다가 친일매국 정권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지지율이 추락하는데도 그저 밀어붙일 뿐입니다.
미국의 태도가 바뀐 건 미국의 처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한국 정권을 좀 풀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도 다급하니 한국 정권을 더 쥐어짜려고 합니다. 봐줄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처지가 바뀐 것은 미국의 패권이 몰락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막대한 무기를 제공하며 사실상 미국-러시아 대리전으로 진행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정예 부대를 모아 러시아 본토로 진격하는 모험을 했는데 결국 이것도 패착이 되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러시아가 동부전선의 부대를 본토 방어로 돌릴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기대와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이제 미국 언론조차 기존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 진격 속도가 빨라졌고 러시아 본토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정예 부대도 고립 위기에 처했다며 우려하는 보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상황도 비슷합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이란, 레바논 등으로 대책 없이 확전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에 공동 책임이 있다며 전 세계의 규탄을 받고 있으며 자국 내에서도 이스라엘 지원 반대 여론이 들끓는 등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과거 미국은 전쟁 초기에 막대한 물량을 퍼부어 기선을 제압하고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미국이 개입한 전쟁마다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승기를 잡지도 못하고 원하는 성과도 내지 못합니다. 미국의 군사 패권이 한물간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야심 차게 추진한 중국 봉쇄 정책도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특히 미국이 심혈을 기울인 반도체 봉쇄는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키워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중국과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규제를 회피하는 잔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프리카에서도 쫓겨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니제르와 9월까지 미군을 철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니제르 옆 차드에서도 특수부대원을 빼기로 했습니다. 모두 해당 나라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것입니다.
미국은 정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후보는 암살을 당할 뻔했고, 바이든 후보는 중도 사퇴했습니다. 미국 정치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입니다.
경제도 어렵습니다. 미국은 지표상으로 경제 호황이라고 자평하지만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해 이제 연착륙(경제가 서서히 안정기에 접어드는 현상)은 어렵고 경착륙(경제가 갑자기 냉각되는 현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8월 초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 폭락 사태도 미국의 경제 침체 우려가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반대편에 있는 북·중·러는 갈수록 똘똘 뭉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6월 19일 정상회담을 열고 조약을 체결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포한 뒤 전례 없는 교류,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대북 제재에 예전처럼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힘들다며 연일 비명을 지릅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 세계 질서를 해체하고 다극화 세계를 건설하려는 브릭스도 갈수록 성장합니다. 이미 G7을 뛰어넘은 브릭스에 세계 각국이 동참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다극화는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된 듯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제 미국에 남은 건 이것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것마저 무너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을 계속 독려하는 이유입니다.
확신이든 허풍이든 현실은 현실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 내용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든, 아니면 허풍을 친 것이든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윤 대통령이 뭘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6일 대러 경제제재를 발표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향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을 비롯해 세계 많은 나라가 경제 타격을 입었지만 러시아 경제는 오히려 승승장구했습니다. 지난해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G7 국가를 모두 앞질렀습니다.
이걸 보면 윤 대통령이나 바이든 대통령이나 비슷합니다. 자기가 하는 정책이 잘될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게 확신이든, 허풍이든, 연기이든, 달나라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윤 대통령에게 환상을 심어준 것은 바로 미국인 듯합니다. 미국도 환상에 빠져 있으니 윤 대통령에게 환상을 전염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대결 구도는 본질에서 민심과 미국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이 주요 변수로 등장합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맥매스터가 최근 출간을 앞둔 자서전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시절 “북한군을 열병식 때 전부 제거해 버리면 어떤가”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맥매스터가 보좌관을 지낸 건 2017년 2월부터 13개월 동안입니다. 아마도 트럼프가 저 말을 할 당시는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기 전일 것입니다. 당시는 트럼프가 북한을 향해 온갖 거친 말을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 분위기가 뒤바뀌었습니다.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매티스는 북한과의 전쟁 걱정에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고,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 자주 가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비핀 나랑 국방부 전 수석차관보가 강연에서 “핵, 탄도미사일, 재래식 무기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다양화하며 개선하는 북한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국방부장관이나 국방부 수석차관보가 북한 때문에 잠을 설치고 기도를 하는 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까 봐 그 정도로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을 잠 못 들게 하는 나라는 오직 북한이 유일합니다.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후 두 가지가 바뀌었습니다.
첫째, 핵무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미국도 개발하지 못한 차량 이동식 초대형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8월 20일 보도에서 과거에는 북한 핵미사일이 많지 않아서 미사일 방어로 막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 많아서 막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핵정책이 바뀌었습니다. 기존에는 핵무기를 방어용, 억제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 9월 핵무력법을 제정해 핵무기를 적극적, 공격적으로 사용한다는 새로운 핵정책을 공개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적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첫 발부터 핵무기로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북한 때문에 미국이 잠을 못 잘 만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북한의 핵능력이 윤 대통령의 전쟁 시도도 억제합니다.
탄핵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한다는 것은 민주당 수석최고위원도 주장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계엄을 하려면 명분이 필요하고 가장 적절한 게 전쟁입니다. 전면전은 본토에 핵미사일이 날아올 것을 두려워하는 미국이 못 하게 막기 때문에 할 수 없고 만약 한다면 국지전을 하고자 할 것입니다.
사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북한 체제를 바꾸겠다,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심리전을 진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은 이미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을 자극하면 북한이 대응하고, 그러면 북한의 대응을 빌미로 더 강도 높은 군사 행동을 하면서 위기를 고조시켜 결국 국지전을 일으키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구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북한이 대응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주로 미국을 향해 비판과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윤석열 정권을 향해서는 아예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무언의 경고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이 공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차량 250대, 자폭형 무인기, 신형 240밀리미터 방사포 등은 모두 한국을 겨냥한 무기들입니다. 만약 윤석열 정권이 연평도 포격전 규모의 국지전을 하려고 해도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무인기, 방사포가 수백, 수천 발 쏟아지면 이건 전면전이 됩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국지전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국정브리핑과 기자회견을 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오로지 직진이다,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고 있는 듯합니다. 말로는 뭔들 못 하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윤 대통령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석열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