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한 군인들에게 군복 등 보급품을 지급하기 위해 한글과 러시아어가 병기된 설문지를 준비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CNN은 우크라이나 문화·정보정책부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를 통해 해당 설문지를 입수했다며 설문지 복사본을 공개했다.
설문지에는 ‘모자 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러시아어와 함께 한글로 적혀 있다. 공개된 자료에는 ‘1.여름용 모자’ 항목과 ‘2.여름용 군복 치수’ 항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설문지를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글 번역이 이상하고 북한식 표현에 맞지 않는 점 ▲설문지 내 일관성이 없는 점 ▲수치 간 경계가 불분명하고 러시아 규정과 일치하지 않는 점 ▲문항 내 표가 잘린 점 ▲‘여름용’이라고 특정한 점 ▲설문지 응답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이 수상하다.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로 한글 번역이 이상하다. 북한식 표현에도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모자 크기 (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 ‘러시아씩’ ‘조선씩’ ‘센치’ ‘모자 둘레’ ...
설문지에 적힌 러시아어를 구글 번역기와 얀덱스(러시아판 구글) 번역기에 넣어봐도 저렇게 번역해주지 않는다.
‘모자 크기 (둘레), 체북/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 아래 적힌 러시아어를 번역한다면 ‘필요한 모자 크기(둘레), 군복 치수, 신발 치수를 작성해 주세요’와 같이 써야 한다.
그리고 ‘작성해 주세요’는 서울식 표현이기 때문에 북한에선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또 북한을 ‘조선’으로 쓴 것과 대비해 러시아는 왜 북한식 표현인 ‘로씨야’로 쓰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씩’은 ‘식’, ‘센치’는 ‘센티’의 오기로 보이며 북한식 표현으로 보기도 어렵다.
‘모자 둘레’는 어떻게 번역해도 ‘머리 둘레(обхват головы)’가 맞다.
북한군 파병이 사실이라면, 외국 군대 파병을 부탁한 상황이고 국방부 차원에서 파병을 부탁했을 것이기에 이러한 잘못된 번역이 난무한 설문지를 승인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오랫동안 협력을 이어온 러시아가, 특히나 북한과 교류를 활발히 해온 연해주가 이 같은 설문지를 만들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두 번째로 설문지 내 일관성이 없다.
‘1.여름용 모자(летний головной убор)’, ‘2.여름용 군복 치수(размер одежды)’의 경우, 1번에선 ‘여름용’을 의미하는 ‘летний’를 썼지만 2번에선 러시아어를 뺀 채 한글로 ‘여름용’이라고만 썼다.
또 ‘2.여름용 군복 치수’라고 쓰고 아래 가), 나) 항목에선 ‘군복의 키 치수’, ‘군복의 치수’라고 썼다.
1번 항목 ‘러시아씩 모자 크기’를 적어놓은 부분에 60, 61, 62는 다른 부분과 색깔이 다르다.
범위가 있는 ‘모자 둘레’, ‘군복의 키 간격’, ‘군인의 가슴 둘레 간격’을 비교해보면, ‘모자 둘레’에선 ‘간격’이라는 표현을 빼먹었다.
‘가)군복의 키 치수’, ‘나)러시아씩 군복의 치수’ 부분에선 나) 항목에서만 ‘러시아씩’이라는 표현을 쓴 점도 이상하다. 나) 항목에 들어가야 할 말은 ‘군복의 치수’ 또는 ‘군복의 가슴 둘레 치수’ 아니었을까?
또 작성자가 러시아어를 잘 몰랐던 것인지 표에는 러시아어를 하나도 써놓지 않았다. 만약 북한군만 보면 되는 것이었으면 애초에 러시아어를 써놓을 이유가 없고, 러시아군이 보고 알려줘야 하는 것이었다면 표에도 러시아어를 써놨어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로 군복의 키 치수 부분에 적힌 수치들의 경계가 이상하고 러시아 규정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키가 162~168센티미터인 사람은 치수가 2다. 키가 168~174센티미터인 사람은 치수가 3이다.
그렇다면 키가 168센티미터인 사람은 어떤 치수의 군복을 입어야 할까?
이처럼 경계가 겹칠 경우, 소수점 아래 한 자릿수까지 경계를 정해주는 게 정상이다.
애초에 러시아에서 지정한 규정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설문지에 나온 키 간격처럼 러시아에서도 키 간격을 6센티미터씩 범위를 지정하는 것은 맞다.
다만 기본적으로 164센티미터를 기준으로 ±3씩 계산해 161.1~167.0센티미터에 해당할 때 치수 2를 배정한다. 170센티미터를 기준으로 ±3씩 계산해 167.1~173.0센티미터에 해당할 때 치수 3을 배정한다.
규정된 치수가 있는데 군 당국에서 임의적으로 범위를 정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즉 설문지에 적힌 키 간격은 러시아 군복 규정을 모르는 누군가가 적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네 번째로 나) 항목의 표가 잘린 점이다.
보통 설문지에서 표가 잘려 다음 장으로 넘어갈 것 같으면, 응답자의 편의를 위해 해당 질문을 다음 장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표가 잘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는지 관련 수치를 바로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또 ‘러시아씩 군복의 치수’ 부분에는 키 치수와 달리 ‘가슴 둘레와 관련’이라고 작성하지 않았다.
과연 이런 설문지를 외국 군인들에게 보여주는 공식적인 설문지라고 할 수 있을까?
다섯 번째로 ‘여름용’이라고 특정해 조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장에서는 여름용을 묻고 뒷장에서 봄용, 가을용, 겨울용 등 계절별로 물어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계절별로 모자나 옷이 달라진다고 한들 모자 크기나 옷 치수가 달라지진 않는다.
만약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에 투입될 예정이고 지금도 파병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름용’이라고 특정해서 물어볼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한국 등이 주장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문지라는 의심이 든다. 이들은 지난 여름 북한군이 파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설문지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보급품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일반적으로 해당하는 부분에 체크를 하라는 문구가 있기 마련이다. 아니면 치수를 알려주지 않고 모든 부분을 주관식으로 쓰게 한 다음 보급 담당자가 규정 치수에 맞게 보급할 수 있다.
공개된 설문지와 같은 경우, 치수를 작성하라고 했지만 칸이 많다 보니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북한식 규정 크기들을 모두 적기를 바라는 것인지, 응답자가 임의로 아무 칸에 또는 해당하는 치수 부분 칸에 자신의 크기를 쓰기를 바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이유들로 해당 설문지는 러시아군이 북한군을 위해 만든 설문지라고 믿기 어렵다.
우크라이나가 만든 것은 아닌지, 우크라이나 주장을 가장 앞장서 지지해주고 있는 한국 국정원이 만들어 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우크라이나 상황을 전하는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조선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전선에서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하니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조선어로 항복하기 쉽게 해주는 짧은 치팅시트(컨닝페이퍼)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는 항복합니다. [Чонын ханбокхамнида(영어: Jeoneun hangbokhamnida)] - Я сдаюсь’, ‘저를 해치지 마세요 [Чорыль хечхичи масейо(영어: Jeoreul haechiji maseyo)] - Не причиняйте мне вреда.’, ‘제발 쏘지 마세요 [Чебаль сочи масейо(영어: Jebal ssoji maseyo)] - Пожалуйста, не стреляйте’, ‘무기가 없어요 [мугига опсойо(영어: mugiga opsoyo)] - У меня нет оружия’ 등의 예시를 언급했다.
또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이 수집해 공개한 이른바 ‘북한군 파병’ 영상의 경우, 지난 9월 러시아에서 진행한 러시아-라오스 연합훈련 영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러한 영상, 설문지 등이 증거라고 나오고 있음에도 미국과 나토가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 인정을 유보하고 있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앞으로 공개될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 관련 근거들을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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